10대 후반 학교 밖의 글쓰기 모임 ‘어딘글방’을 제 발로 찾아갔던 작가 이슬아. 이곳에서 “아무도 안 시켰는데 하필 글을 쓰겠다고 애쓰는 청년들(198쪽)”을 만났고, 23살부터는 글쓰기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무수한 아르바이트를 거쳐가면서도 놓지 않았던 글쓰기 수업. 그의 글쓰기 수업 첫번째 사명은 ‘궁금해하기’였고, 10대 초반의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가장 따뜻한 격려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부지런한 사랑』은 작가 이슬아의 여섯 번째 책이자, 글쓰기 수업에서 탄생한 ‘부지런한 사랑’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제목 말고는 떠오르는 제목이 없었다. 언제나 사랑과 용기를 듬뿍 담아, 이야기하는 이슬아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가장 오래 다듬은 책이라고 들었어요. 책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우선 제자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수업에 온 아이들의 수많은 글을 인용하는 책이니까요. 제 글의 힘뿐 아니라 아이들 글의 힘을 크게 빌리는 책이라, 인용 허락을 아주 정확히 받기로 했죠. 아이가 몇 살 때 쓴 글을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인용하는지, 왜 인용하고 싶은지를 상세히 적어서 모든 아이와 가정에게 연락 드렸어요. 아이와 보호자가 모두 동의해야 그 글을 책에 모셔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이들이 마흔 명 넘게 등장하니까 인용 허락을 구하는 작업만 며칠이 걸렸죠.
고단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제자들도 이제 책을 읽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소감을 이야기해주던가요? 피드백이 궁금합니다.
대체로 잘 받았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은 이제 거의 성인이 된 파도라는 아이에게 들은 말이에요. “많이 기쁘고 좋아요. 슬아가 제 글을 좋아하고 아름답다고 해주셔서요.” 파도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과 저는 선생님이라는 호칭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지내는데 그래도 서로에 대한 존중이 결코 사라지지 않죠. 이름으로만 불러도 존중과 예의와 동료애는 아주 살아있는 것 같아요. 제 글쓰기 스승 ‘어딘’과 저의 관계도 그렇죠.
아르바이트로 글쓰기를 가르치셨고, 지금은 헤엄출판사가 있는 파주에서 아이들의 글쓰기를 가르치고 계시는데요. 수업을 오는 아이들은 어떤 계기로 오게 되는지, 무엇을 목표로 수업을 듣는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청강해보고 싶을 정도로 그 광경이 궁금해요.
파주 헤엄출판사에서 진행하는 동네 아이들 글쓰기 수업에는 아홉 살부터 열두 살 사이의 초등학생들이 와요. 처음엔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제안하셨겠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다니지 않겠죠. ‘글쓰기가 삶 전반을 얼마나 풍부하게 만드는지’ 실감하시는 부모님들이 글쓰기 수업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한두 번 다녀보고 재밌어서 다니고요. 글쓰기 수업을 하러 헤엄출판사에 갈 날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아이도 있어요.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안학교 로드스꼴라에서도 수업을 하나 해요. 이 수업에서는 10대 후반의 청소년들과 만나요. 대안학교 진학 역시 부모님과 상의해서 결정하겠지만, 10대 후반 아이들은 더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으로 오는 편이에요. 글쓰기란 ‘어렵지만 재밌고 아주 잘해보고 싶은 무엇’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게 저의 목표예요.
<경향신문> 칼럼 등을 통해 글쓰기 수업 이야기를 종종 나누셨는데요. 아이들의 글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나요. 많이 배우시기도 했을 것 같고요.
예전에는 너무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압도되어서 글을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초등학생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그 습관을 많이 버리게 되었어요. 초등학생들은 정말 용감하게 첫 문장을 그냥 시작하더라고요. 별 욕심 없이 아무렇게나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가 고심해서 쓴 문장보다 나을 때가 있어요. 아이들 글의 도입부를 보고 첫 문장에 대한 강박을 조금 버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용감한 마음, 정말 중요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글쓰기 교사 ‘어딘’이 참 궁금했어요. ‘어딘’으로부터 배운 많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넓고 깊은 사랑이요. 넓고 깊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어딘을 가까이에서 보며 배웠어요. 어딘 만큼 훌륭해질 수 있는 세월이 저에게도 주어진다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지구가 무탈했으면 좋겠고요.
전작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을 비롯해 『심신 단련』,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등 책 제목들이 모두 문학적이면서 낯선 느낌이 들어 단번에 반했었어요. 이번 책 제목도 ‘역시’라는 탄성이 나오더군요. 혹시 다른 후보 제목도 있었나요?
유일한 후보였습니다. 다른 유력 후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 제목 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글쓰기가 어째서 부지런한 사랑인지 이야기하는 책이라서요. 또한 제가 글쓰기 교사로 일하며 부지런히 사랑한 타자들에 대한 책이기도 하고요.
매일 글을 쓰고 연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슬아 작가가 쓰는 문장은 닳고 닳은 느낌이 없어요. 그래서 늘 읽을 때마다 신기하다는 감정이 드는데요.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글을 읽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글쓰기 수업을 할 때, 교사가 지녀야 할 마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글쓰기 교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좋고요.
저도 아직 배우고 있어요. 교사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요. 좋은 글쓰기 교사의 자질 중 가장 기본적이고도 어려운 것이 아이로 하여금 쓰고 싶게 하는 능력인 것 같아요. 근데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능력은 비단 글쓰기 교사에게만 중요한 능력은 아니죠. 사랑과 우정에 영역에서도 늘 중요하잖아요. 좋은 질문을 가진 사람,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글쓰기 수업에 들어가요.
아이들에게 글쓰기 교사로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나요?
아이가 안 좋은 컨디션으로 글쓰기 수업에 올 때마다, 제가 칠판에 자주 쓰는 말이 있어요. ‘잠 > 밥 > 글쓰기’ 이렇게 적어요. ‘잘 자고 잘 먹는 것이 글쓰기보다 늘 더 중요하다, 글은 못 써도 상관 없지만 몸이 축나면 안 된다, 절대로 밤 새가며 글 쓰지 마라.’ 라고 해요. 졸리면 일찍 자고, 차라리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쓰라고도 말해요.
너무 중요한 이야기네요. 아참, 후속작이 궁금해요.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여섯 번째 책을 냈어요. 지난 2년간 책을 여섯 권이나 낸 거예요. 열심히 해서 기특하지만 앞으로는 이 속도로 작업하지 않을 것 같아요. 스스로를 덜 소진하는 방식으로 글 쓰고 싶어요. 몸과 마음을 돌보며 천천히 쓰자는 게 새해의 목표예요. 2020년 한 해 동안 인터뷰를 열심히 해서 원고를 많이 쌓았으니 2021년에 헤엄에서 인터뷰집을 만들 계획이고, 제가 좋아하는 위고 출판사와 함께 아무튼 시리즈를 함께 만들 계획이에요.
작가 이슬아가 품고 있는 가장 큰 꿈은 무엇인가요?
글쓰기를 언제까지나 쾌락의 영역으로 간직하는 것. 그게 요즘의 꿈이에요.
*이슬아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간 이슬아]를 발행하고 헤엄출판사를 운영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10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심신 단련』,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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