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안녕 커뮤니티>, 당신과 나의 안녕을 빕니다
다드래기 작가는 스스로 ‘스케일 작은 만화가’라고 소개하지만 『안녕 커뮤니티』는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니다.
글ㆍ사진 최지은(칼럼니스트)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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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안녕 커뮤니티』의 한 장면

노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성장은 이미 끝나 노화의 길로 접어든 지 한참 되었음을 실감할 때마다 두려워진다. 빈곤, 질병, 고독 등 아직은 닥치지 않은 괴로움이 상상 속에서 꼬리를 물고, 고독사나 존엄사에 관해 떠올리는 일도 부쩍 늘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나이 든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는 일은 어떤 것일까. 마흔 살 생일선물을 골라 보라는 친구들에게 다드래기 작가의 『안녕 커뮤니티』를 얘기한 건 조금은 충동적인 마음에서였다. “우리 동네 고독사 방지 모임에 초대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표지에서 와글대는 노인들의 얼굴이 나를 붙잡았다. 우리 얘기 한 번 들어보라는 듯 생동감 넘치는 표정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의 선물이었다. 

재개발이 살짝 비껴간 동네 문안동, 10년 전 상처한 홀아비 방덕수가 자신의 건물에 세 들었던 사진관 박씨의 고독사에 충격을 받고 가까운 동네 주민들을 모아 ‘문안동 안녕 연락망’을 만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매일 아침 일어나 순서대로 전화를 걸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이 연락망에는 방덕수를 비롯해 자전거포의 김춘복, 분식집을 하며 치매에 걸린 엄마를 부양하는 신세봉, 식당 일과 공공근로로 생계를 잇는 설쌍연과 조영순 부부, 은퇴한 교사 부부 김경욱과 장형팔 등이 우선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그다음에는…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다. 모두가 지병 한둘쯤 가지고 있고 하룻밤 새 숨이 멎을지 모르는 나이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삶에는 매일의 과제와 해소하고픈 욕망, 가능한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다드래기 작가는 스스로 ‘스케일 작은 만화가’라고 소개하지만 『안녕 커뮤니티』는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니다. 문안동 주민들은 물론 결혼이주여성 안젤라와 비혼여성 진주까지 각자의 역사와 우주를 품은 인물들은 가부장제, 페미니즘, 다문화가정, 성 소수자, 노인 빈곤, 성매매, 불평등, 젠트리피케이션 등 다양한 이슈를 날개 단 것처럼 펼쳐 나간다. 자신이 겪은 차별을 손녀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김경욱의 용기, 여성 생계부양자로 평생을 살아온 신세봉의 긍지, ‘외국인 며느리’로 한국에서 살아남은 안젤라의 처세를 비롯해 결점과 매력이 공존하는 캐릭터마다의 개성은 이 묵직한 주제들이 이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화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핍진성과 페이소스가 넘치는 1200페이지의 긴 여정을 울고 웃으며 따라가다 보면 문안동 주민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길 바라게 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다드래기 작가가 2013년 발표한 데뷔작 <달댕이는 10년차>부터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거울아 거울아>, 여성의 질병과 노동을 그린 <얼렁뚱땅 병상일기>를 거쳐 『안녕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지향하는 바에 담겨 있을 것이다. “현실의 이야기를 그리되 잔혹하지 않은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만든다” 


웹툰 『안녕 커뮤니티』의 한 장면

『안녕 커뮤니티』를 읽고 난 며칠 뒤, 동네 마트에 갔다.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담는데 한 노인이 커다란 유리병을 들고 계산대로 다가왔다. 어제 산 유자차인데 손아귀에 힘이 모자라 뚜껑을 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중년 여성인 계산원, 줄 서 있던 초로의 남자가 차례로 병을 받아들고 끙끙댔지만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낙심한 노인은 젊은 사람에게 부탁해보겠다며 병을 품에 고이 안고 마트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품을 진열하고 정리하느라 바쁜 직원들은 그를 눈여겨볼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왠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노인의 어정쩡한 발걸음을 눈으로 좇았다. 

‘뭐라도 좀 해 봐.’ 방덕수 씨인지 신세봉 씨인지 모를 누군가가 등을 떠밀었다. 나도 모르게 냉동고 사이를 서성이던 그에게 다가갔다. 병을 받아들고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병뚜껑 아래 끼운 뒤 말했다. “여기에 숟가락 머리를 대고 이렇게 누르면 공기가 들어가서 열릴 거예요.” 마스크 너머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노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집에 돌아가 유자차를 마실 수 있었을까? 나는 가끔 그 노인의 안부를 떠올린다. 이제 내 마음속에서 살고 있는 문안동 주민들을 생각한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줄었다. 대신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의 하루하루가 안녕하기를, 조금 더 자주 빌곤 한다. 



안녕 커뮤니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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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커뮤니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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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칼럼니스트)

대중문화 웹 매거진 <매거진t>,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