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환경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 온 우리나라 최고의 생태 작가 이상권이 ‘조선 호랑이 멸종사의 불편한 진실’을 담은 청소년 인문교양 『위험한 호랑이 책』을 출간했다. 국립생물자원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1위는 바로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단군신화부터 평창올림픽 마스코트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얼이 담긴 상징이자 수호신으로 우리 삶에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호랑이는 왜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몰아낸 것은 누구인가?
작가가 된 이후, 호랑이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한 이상권 작가는 그간 강한 민족의식 때문에 호랑이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음을 되새기며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로 이 책을 펴냈다. 호랑이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호랑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 그가 밝힌 조선 호랑이 멸종사의 ‘불편한 진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위험한 호랑이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작가의 말에서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나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왜 많은 동물 중 호랑이였나요? 호랑이에 대한 책을 기획하고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이 말은 굳이 하는 것은, ‘이 나라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모두 호랑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동화책 대중화 세대가 아닌 저는 어린 시절 들은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 호랑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때론 악당으로, 때론 정의의 수호자로,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호랑이는 어린 시절 제 친구였고, 제 신이었지요. 저는 실제로 어린 시절에 호랑이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또한 호랑이 신의 존재도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은 제 성장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적어도 자연을 보는 눈을 크게 해주었고, 나 혼자만 잘 살아서 천국 가는 그런 신앙심이 아니라 주위의 생명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신앙심을 심어주었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호랑이가 멸종했다는 것을 알았고, 공부를 할수록 그 멸종사가 처참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꼭 쓰고 싶었어요. 호랑이의 입장에서 호랑이의 역사를 쓰고 싶었다는 뜻입니다.
『위험한 호랑이 책』은 다양하고 객관적인 사료뿐만 아니라 시골에서 나고 자란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나 옛 어른들의 말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더욱 흥미진진했어요. 책에 싣지 않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우선 산에 가서 주위에 노린내가 진동하면 호랑이를 의심하라고 했어요. 만약 호랑이가 나타나면 당황하지 말고 주위에 소가 있으면 소에게 가고, 소가 없으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산을 내려오라고 했지요. 눈이 내리면 호랑이 발자국을 찾으려고도 했습니다. 어른들은 ‘호랑이는 영물이라서 외발로 뛴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거든요. 당시에는 외발로 뛴 큰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이 발견되기도 했어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 입에서 간밤에 호랑이를 봤다는 이야기가 쏟아졌어요. 어느 마을 누구네 소가 호랑이한테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물론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말을 모두 믿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도시의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봤는데 실망스러웠습니다. 그 무기력한 호랑이는 제가 듣고 자란, 그 신비로운 동물이 아니었거든요.
‘작가의 말’에서는 민족의식이 너무 강한 탓에 그동안 호랑이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고 하셨지요.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범 내려온다’ 현수막을 두고 일본과 논란도 있었는데요, 이러한 민족적 인식과 완전히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쓸 때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저는 최대한 단순하게 ‘인간 대 호랑이’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사실 호랑이는 우리 민족하고 워낙 가깝게 살아온 터라 민족의식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었어요. 어쩌면 그렇기에 더 호랑이의 입장에서, 가장 단순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즉 생태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에요. 우리가 호랑이에 대해서 운운하는 것은 다 인간들 입장이잖아요. 사실 호랑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서, 그래서 한반도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거든요. 그냥 한반도의 지리적인 조건이 좋아서 살았을 뿐이지요. 호랑이는 한국인 일본인, 그렇게 특별히 인간들을 가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냉정하게 호랑이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어요. 앞으로 누군가 더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랑이를 내세워 민족의식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런 호랑이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호랑이를 철저하게 이용해먹은 셈이에요. 이제라도 호랑이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역사를 복원해주어야 해요.
인간중심주의 사고이기도 한데요, 면적이 작은 한반도에 인간과 맹수(호랑이)가 함께 사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르니 어쩔 수 없이 맹수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의견을 가진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호랑이라는 생명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이 문제를 풀 수 있어요. 당연히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호랑이는 엄청난 방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 호랑이의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그들의 삶을 보장해줄 것인가 고민해야 해요. 지금까지 인간이 그들의 영역을 거의 다 빼앗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만 서로 다른 커다란 생명체가 같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어요.
보호종이었던 제주노루는 개체수 조절을 위해 유해동물로 지정되고, 또 과잉포획으로 개체수가 지나치게 급감하자 다시 포획이 금지되었다고 들었어요. 호랑이를 국가적으로 탄압하고, 다시 복원하려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보는 듯했습니다. 인간이 마치 신처럼 특정 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데요,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일정 부분 어찌할 수 없는 측면도 있기는 하지요.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그 종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면 반대하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원칙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인간이 맘대로 조절할 권리는 없어요.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 외래종 식물을 적으로 규정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그 식물을 다 뽑아내고 없애버려야 한다는 내용의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과학자들이 쓴 책이었습니다. 당연히 민족의식으로 똘똘 뭉친 책이었지요. 저는 그 책을 보며 소름이 돋았어요. 적어도 과학자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외래종 식물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이곳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잖아요. 다들 인간들 때문에 온 것이지요. 그것이 문제지, 풀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은 살아야 합니다. 나머지 몫은 자연의 선택입니다.
연해주, 중국, 북한의 접경 지역에는 조선 호랑이와 같은 혈통의 호랑이들이 소수지만 살아남아 있다고 하지요. 언젠가 한반도에 호랑이가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날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 지켜야 할 마음가짐 등이 있다면요?
저는 동물권을 헌법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이 땅은 인간들만의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생명체는 둥근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둥글게 집을 짓고 살아요. 인간도 둥근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요. 둥글둥글한 것이 자연의 전통이에요. 그 전통을 배격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입니다. 그 상징적인 것이 네모난 것이고요. 인간은 그런 동물이에요. 그런 인간들이 다른 동물이랑 같이 산다는 것은 쉽지 않지요. 그런 유토피아를 꿈꾼다면, 헌법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가야 해요. 제가 알기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볼리비아가 그런 헌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위험한 호랑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호랑이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호랑이가 우리 민족의식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냉정하게 그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왜 호랑이가 우리 주위에서 사라졌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주위에 살아가는 또 다른 생명체들의 멸종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린 시절 동화책 속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준 호랑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 것입니다.
*이상권 산과 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나만의 옹달샘이 있었고, 나만의 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고, 나만의 동굴도 있었다. 대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불안증과 난독증으로 학교생활이 불가능해졌을 때 문학이 찾아왔다. 『창작과 비평』에 소설 〈눈물 한번 씻고 세상을 보니〉를 발표하면서 작가가 됐고, 소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됐다. 지은 책으로 『난 멍 때릴 때가 가장 행복해』, 『숲은 그렇게 대답했다』, 『어떤 범생이가』,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서울 사는 외계인들』, 『대한 독립 만세』(공저), 『첫사랑 ing』, 『빡빡머리 앤』(공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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