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아 “우리가 앞으로 만날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놓아 버리면 휩쓸리기만 하지만, 나아지고 싶다고 바라면 언젠가는 정말 나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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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작가강진아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미러볼 아래서』가 출간됐다. <환상 속의 그대>를 비롯해 다수의 영화를 연출한 강진아 작가는 2020년 첫 소설 『오늘의 엄마』를 시작으로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강진아 작가의 소설에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인물들이 있다. 『오늘의 엄마』의 ‘정아’는 엄마를, 『미러볼 아래서』의 ‘아엽’은 고양이 ‘치니’를 잃어버린다. 『오늘의 엄마』의 정아가 온몸으로 상실을 견뎠다면, 신작 『미러볼 아래서』의 아엽은 잃어버린 것을 향해 쉼 없이 걷고 뛴다. 치니를 찾아나서는 아엽의 발걸음엔 힘이 실려 있고, 아엽은 쉽게 포기하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강진아 작가는 성실하게 땀을 흘리고 시간을 보내며, 정면으로 상실을 껴안는 인물을 그려 냈다. 아엽이 치니를 찾기 위해 동네를 순찰하며 그린 구불구불한 동선은 우리의 주름진 마음을 닮았을 것이다. 우리는 아엽이 그린 구불구불한 마음의 길을 따라 걸으며 ‘각자의 생에 소중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복되는 이별과 만남에서 주변 이들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강진아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강진아 작가님 안녕하세요?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미러볼 아래서』는 작년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된, 주인공 '정아'가 엄마와 이별하는 과정을 그린 『오늘의 엄마』에 이은 두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작가님께서 첫 책을 낼 때와 달라졌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첫 책을 낼 때는 많이 불안했습니다. 과연 책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오더군요! 첫 책을 무사히 출간한 덕분에 두 번째 책은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책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사라졌습니다. 나올 테지만, 이건 고치자, 그런 느낌으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교정을 볼 때는 편집자님과 빽빽하게 메모를 주고받았는데요, 그렇게 몇 주간 메모로 대화를 나누다가 실제로 만났을 때는 이상하게 부끄러워져서 혼자 배실배실 웃고 그랬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즐거운 기억이 참 많습니다.

전작에 이어 이번 『미러볼 아래서』에서도 삶에서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리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두 작품에 연이어 상실을 겪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네요. 연이어 상실이군요. 상실을 겪는 인물을 연달아 써 보자, 이런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움켜쥔 것들이 비슷한 맥락 속에 있는 듯합니다. 어느 날 문득, 과거의 제가 현재의 ‘나’가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크게 분노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에는 제가 과거에 지키고 싶던 것은 없고 새로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키지 못한 것을 더 그리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새로운 것을 소중하다고 여겨도 되는 걸까? 속 시끄러운 질문을 이어 가다가 과거의 저를 이해시킬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처음의 뼈대는 제가 지키고 싶던 것 중의 하나인 지금은 영화를 찍을 때 쓰지 않는 ‘필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커다란 수정을 여러 번 하는 중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지금의 『미러볼 아래서』가 되었습니다. 계획적으로 작업을 하는 편이라 다른 이야기로 바뀌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이야기가 되었는데도, 시작했던 마음은 담긴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왜 제목을 '미러볼 아래서'로 정하셨는지 이유가 궁금해요. 표지를 보고 미러볼과 고양이가 어떻게 이어질까 잠시 고민했거든요. 어지러운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빙글빙글 도는 것들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미러볼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제목 후보는 없으셨나요?

대공사를 진행하면서 제목도 바뀌었는데요, 부끄럽지만 필름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던 소설의 제목은 '편집의 왕도'였습니다. 무슨 이야기일지 감이 안 잡히시겠죠? 필름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였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편집회사 ‘모션콩’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훨씬 컸습니다. 후에는 관계를 더 선명하게 만들고 '고양이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때는 동네 고양이들과의 유대가 더 컸습니다. 하지만 역시 원하는 이야기에서 조금씩 어긋난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억지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러던 중에 전정 신경염에 걸려 며칠을 앓아누웠습니다. 소설 속 아엽이처럼요. 회전 속에 놓이게 되니,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고 다시 수정해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회복 후에 지금의 모양으로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소설 속 '아엽'은 영문도 모른 채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가장 사랑하는 고양이 치니를 잃어버리고, 최악의 이상 고온이 지속되는 한여름에 에어컨마저 고장나 버립니다. 소설 초반, 아엽에게 이런 시련을 한꺼번에 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아엽의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어요?

처음에는 한꺼번에 시련을 주지 않았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대로 맞닥뜨리도록 구성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중에, 아주 작은 마음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연쇄 폭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참,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방향을 수정하고 사건들을 다시 배치하면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곽아엽’이라는 인물은 매우 흐릿하게 시작했어요. 무리에 있으면 잘 안 보이는 애,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는 아예 입을 열지 못해서 대사를 쓰는 것이 영 어색했습니다. 언제 말하나, 말할 때까지 지켜보자,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몇몇 상황을 썼다 지우길 반복하다가 고양이 앞에서 편하게 말을 내뱉는 것을 보고 대사 톤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고양이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습니다.

사라진 고양이 '치니'를 찾아 동네를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동시에 옛 친구와 새 친구 사이의 관계를 다시 다져 가는 아엽의 모습에서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성장의 순간을 목격한 것 같았습니다. 이 소설이 한편의 성장 일기 같다고 느꼈는데요. 작가님이 가장 마음이 쓰이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요?

전정 신경염처럼, 주변에는 ‘그냥’ 일어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냥’인데 나쁘기까지 한 일들이 반복되면, 자칫 의지를 잃기가 쉬운 것 같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엽이가 희미하고 연약한 내부의 불씨를 지켜내도록 하는 데에 제일 많은 시간을 쏟은 것 같습니다. 많은 장면이 위기였는데요, 특히나 아엽이가 노랑 고양이를 공격하고 그걸 캣맘에게 들켰을 때는 저도 끝장이라고 느꼈습니다.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놓아 버리면 휩쓸리기만 하지만, 나아지고 싶다고 바라면 언젠가는 정말 나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게 참 많은 아엽이가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를,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지기를 바랐습니다. 

이 소설에는 아엽을 돕는 '캣맘'이나 아엽과 치니와의 첫만남에 등장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처럼 고양이를 애정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요. 작가님도 고양이를 키우신다고 들었는데요(소설 속 '치니'가 실제 작가님의 고양이 이름이라고.....!), 작가님과 함께 사는 고양이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가님께 고양이는 어떤 존재인가요?

고양이 말이죠! 저는 (베)토벤과 (푸)치니, 두 마리 고양이와 3년 전부터 함께 살고 있습니다. 토벤이는 집 앞에서 만났습니다. 핸드폰보다 작은 새끼였는데 어미도 없이 혼자 바닥에 누워 있더라고요. 너무 더운 여름이라 잠깐 쉬라고 집에 들였다가 여차여차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치니는 토벤이를 만나고 한 달쯤 후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산에서 만났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우엥우엥 울면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습니다. 이미 집에 토벤이가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려고 했으나 몇 시간을 집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토벤이가 곁을 내주어서 치니도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 치니는 저의 치니와는 다른 면이 많아요. 소설 속 치니가 좀 어른스럽고 듬직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같은 이름을 쓰다 보니 제 옆의 치니가 달리 보이더군요. 작업하는 동안에는 더 자주 만져 주게 되었는데, 그러느라 아주 버릇이 나빠졌습니다. 요즘에도 틈만 나면 키보드를 점령하며 어리광을 부려서 곤란한 상황이 잦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에 저는, 혼자 있을 때 욕을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타인 앞에서는 하지 못할 잔인하고 험악한 말들을 입 밖으로 뱉어 내곤 했습니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와 함께 살다 보니 그럴 수가 없더군요. 제가 내뱉은 욕을 고양이들이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삼켜 버렸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났더니, 욕하던 습관이 사라졌습니다. 토벤이와 치니는 제가 저에게 뱉어 내던 욕을 멈추게 해 준 존재입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대면 만남이 적어지다 보니 멀어진 관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렇기에 더욱 소중함을 깨닫는 관계들도 있을 테고요. 이런 시기에 『미러볼 아래서』는 관계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작가님은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남길 바라시나요?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저의 경우에는 그랬습니다. 사라져 버린 것을 그리워하다가 또 다른 것을 잃고 또 그리워하고.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은 순환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 그리워하는 노력 말고, 잃기 전에 소중하다고 느끼는 노력이요. 아무것도 잃지 않고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가장 좋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그러니까 이미 잃은 게 있는 경우에는 다른 것을 소중히 한다는 것이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지금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게 과거의 노력에 대한 배신은 아니라고, 이해하기까지가 저의 경우엔 가장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왜 나아져야 하지? 왜 포기하면 안 되지? 질문들이 자꾸만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스스로 답하는 중에 제 주변의 존재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사라져 버린 것을 그리워하느라 바라보지 못했던 그 존재들이 뒤늦게 보였습니다. 그 존재들 덕분에 조금은 나아질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소설을 읽으시는 분이 지금 혼자일지라도 그런 존재들이 있음을, 혹은 앞으로 만날 것임을 바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진아

198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다수의 단편영화와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대표작으로 「환상 속의 그대」가 있다. 『오늘의 엄마』는 첫 장편소설이며, 이어서 2021년 『미러볼 아래서』를 출간했다.

 


미러볼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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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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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