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가이드북에 있는 명소와 인스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괜찮은 여행이지만, 느지막이 숙소를 나서며 골목을 걷고 현지 사람들과 눈빛을 맞추는 빈틈 많은 여행도 좋다. 그러다 보면 아주 우연히,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평범한 곳에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를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민양지 저자는 그동안 쌓아둔 여행 경험, 지리 정보, 인문 교양을 묶어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여행인문지리학잡론』으로 펴냈다. '눈으로 떠나는 세계 여행'에 어울리는 글과 사진이 400여 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먼저 독자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딜 가도 자기소개라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색하더라도 진심을 전해봐야죠. 여러 수식어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 소개되고 싶은, 지도 위에서 자란 사람 민양지입니다. 여행을 하고 세상을 공부하며 보낸 시간들을 새 책으로 종합하여 정리할 기회를 얻어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인디 여행가, 부티크 여행사 디렉터, 종합상사 근무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전히 '지리학자'를 꿈꾼다고도 하셨고요. 어떻게 이러한 독특한 경력을 쌓게 되셨나요?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삶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삶을 둘 다 놓지 못하고 그 사이에서 방황한 결과라 할까요?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포근한 둥지 속에 있었지만, 여행, 낯선 것, 새로운 것에 항상 목말라 있었어요. 다른 세상과 다양한 경험을 꿈꾸고, 때가 되었다 판단되면 뛰어들다 보니 이력이 조금 독특해졌네요.
다만, 타고나고 배워온 성향상, 호기심을 최대한 객관적인 것으로 충족시키려 하다 보니, 여행 중에도 기획 중에도 공부에 가까운 걸 하게 되었어요. 경험과 감정은 당연하게도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에 대한 판단과 파악은 숫자에 근거하거나 여러 출처의 정보를 비교해서 종합하는 걸 기준으로 합니다. 제 경험 중 가장 손꼽히는 즐거움은 여행, 인문, 지리를 공부하고 의미를 캐내는 과정에 있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리학자를 꿈꾸며 인생 학업을 쌓는 중입니다.
신간 『여행인문지리학잡론』을 간단히 소개해주십시오.
제 호기심과 여행경험을 엮어 만든 책이에요. <네이버 여행 플러스>에 연재를 시작하며 그런 걸 꿈꿨어요. 한 나라에 대한 짧은 글이 그곳과 다른 이웃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세상 밖을 꿈꾸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젊은이를 여행자로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이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지에 대한 관심보다 단순한 흥미나 환상이 여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여행에 의미를 조금 더 보태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죠. 지리 지식과 여행 경험이 겹치고 엮인, '알고 느끼며 다니는 여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책 한 권을 내고 싶었습니다.
82개국이라는, 쉽게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나라들을 여행해오셨습니다. 세계 여행을 사랑해온 이유가 있으신지요?
어릴 때 큰 세계 지도 위에서 뒹굴며 자랐어요. 글을 먼저 익혔는지 지도를 먼저 읽기 시작했는지 모를 만큼 지도 속 세상이 친숙해져 버렸죠. 지도를 보다 보니 지도 속 나라들은 어떤 곳인지가 궁금해지고, 백과사전과 여행담을 통해 그곳의 지리와 문화에 대해 조금 알고 나니, 자연스레 가보고 싶어진 거죠. 여행을 하며, 처음에는 나라 수를 늘리고 가본 곳을 채워가는 게 흥분되었었어요. 내 생애 100개국은 꼭 가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나라의 숫자도 금방 늘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발 내디딘 나라 숫자가 스스로에게 주는 의미가 크지 않다는 걸 깨달아 버렸습니다. 요즘엔 다녀왔던 나라의 익숙한 여행지를 다시 방문하는 계획을 짜곤 합니다. 기억을 따를 수도 차이를 깨달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꼭 가보리라 벼르고 있는 가보지 못한 여행지들도 여전히 있죠. 그리고 여전히 다녀온 나라의 숫자는 헤아리게 되네요.
여행길이 차단되었던 코로나19 펜데믹 시기는 어떻게 견디셨나요?
모두가 견뎌야 하는 시기에는 함께 견디어야지요. 여행을 다니지 못한다는 것보다 힘들었던 건, 우리 것/우리가 아닌 것, 익숙한 것/낯선 것 사이에 선을 긋고 선 밖의 것들을 혐오하게 되는 분위기였어요.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지기도 했죠. 2020년 초에 설립한 부티크 여행사가 막 안정화된 시기였거든요. 열심히 기획하고 모객한 팀들의 모든 예약이 취소되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건 허탈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새로운 걸 해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도전을 하고 다른 공부를 하며 다양한 경험을 얹으며 지냈습니다.
독자들에게 특히 소개해주실 만한 선생님만의 여행지들을 추천해주세요.
앞에서 판단과 파악은 숫자에 근거를 둔다 말씀드렸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되겠네요. 여행자의 선호와 취향, 여행의 시기, 그날의 날씨,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좋은 여행지는 너무나도 달라지니, 참고만 해주시길 바라며 세 곳을 추천해 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은 '칠레 파타고니아의 토레스델파이네'예요. 두 가지 전제 사항이 있습니다. 남반구의 여름일 것, 차를 렌트할 것. 토레스델파이네의 바람은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지만, 그 바람을 오래 품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추워지거든요. 토레스를 향한 트레커분들의 꿈을 지지하지만, 드넓은 국립 공원을 여유와 함께 즐기려면 렌터카도 현명한 선택입니다.
두 번째는 '9월의 아이슬란드'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아름답지만, 여행자들로 붐비거든요. 가뜩이나 비싼 여행물가도 더 오르고요. 9월은 아이슬란드가 충분히 따뜻한 달이면서도, 운이 좋으면 오로라 헌팅이 가능할 만큼 밤이 길어지는 때예요. 덜 붐비는 따뜻한 얼음섬의, 꿈같은 9월 밤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미비아 대서양 해안의 작은 도시 스와코프문트'를 뽑겠습니다. 추천 이유는 이렇게 꼽을 수 있겠네요. '붉은 사막, 차가운 바다, 다양한 액티비티를 품은 안전한 아프리카 도시.' 대서양으로 떨어져 꽂히는 석양을 일 년 내내 선선한 날씨 속에 맛있는 독일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에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여행은 시간과 돈을 잡아먹는 일이죠. 지출이 큽니다. 여행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들 하죠. 확실히 그렇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경험마다의 편차가 클 거예요. 큰맘 먹고 떠나는 여행, 조금 더 알찼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머릿속을 스쳐 간 여행지의 인문적, 지리적, 객관적 정보들이 좋은 여행에 도움을 주리란 확신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이드북에 있는 명소와 인스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괜찮은 여행이지만, 느지막이 숙소를 나서며 골목을 걷고 현지 사람들과 눈빛을 맞추는 빈틈 많은 여행도 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주 우연히,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평범한 곳에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를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민양지 25년 전엔 바른 생활 어린이였다. 5년 전엔 일 잘하는 대리였다. 지금은 그렇게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스스로를 좋아한다. 무난하다는 말과 특이하다는 말을 번갈아 듣는다. 그래서 가끔 형용사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늘 웃는데도 진지하고 무겁다 하니 날개라도 달고 가벼워져야겠다. 숙취를 못 견뎌 하면서도 술을 끊지 못한다. 세상 어느 식당에서도 오이만은 골라낸다. 좋아하는 게 많지 않으나 여행 앞에선 흥분한다. 어릴 적 깔고 놀던 세계 지도가 운명이었던 건가 되짚어 보는 중이다. 요즘엔, 당신의 입술이 남긴 커피잔 커피 방울이 자욱이 될 동안, 또는 피곤한 퇴근길이 두 정거장만큼 줄어들 동안, 여행 얘기로 마음을 건드려 흔들어 놓을 글쟁이의 꿈을 꾸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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