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문해력> 두 번 세 번 읽었는데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모바일 기기 화면으로 읽어서 그런가? 나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닌데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말라는 피드백을 받는다. 지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아니, 근데 이 계약서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쓰여 있는 거야? 별개의 상황 같지만 실은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고도로 복잡한 텍스트를 읽고 쓰면서 살아가고, 우리가 이해한 텍스트들은 소통의 기초가 된다. 3월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어제보다 오늘 더, 문해력과 언어 감수성을 키워보자! |
읽을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만 우리는 헤맨다. 글자를 해독하는 능력 이상의 문해력을 갖추면 좀 더 주의 깊게 몰입하는 독서가 가능할까? '깊이 읽기'의 중요성을 인지신경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 그리고 읽을 수 있는 매체가 많아진 요즘 읽기의 본질적 가치를 언어학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나오미 배런의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두 권을 순차적으로 번역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한 번역가 전병근은 문해력의 흐름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종이책에 익숙한 독자들이 종이책 읽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고정 관념을 짚습니다. 이들이 현재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종이책에 익숙한 독자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경계심이 있을 겁니다. 쉽고 편리한 기기가 일상을 장악해 오면서 종이책 읽기를 통해 누릴 수 있었다고 여기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가거나 위협받고 있다는 걱정이 이는 거지요. 하지만 나오미 배런은 종이책 역시 시대적 산물이며 도구였음을 보여줍니다. 종이책이라고 해서 깊이 읽기가 절로 이뤄진다거나, 디지털이라고 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매체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핵심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번역가님은 믿었던 자신으로부터 배반당하는 읽기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평소 종이책과 전자책을 오가며 이용합니다. 특히, 외서의 경우 곧바로 전자책 형태로 내려받아 읽기가 좋아요. 그래도 깊이 읽을 때는 종이책을 선호합니다. 그러다 전자책을 읽거나,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왔을 때 몰입하기까지 적응 과정에서 지체 현상 같은 것을 느낍니다. 초기에만 해도 지체 과정이 길어서, 깊이 있는 종이책의 경우 몇 줄을 반복해서 읽어야 겨우 이해의 가닥이 잡히고는 했지요. 지금도 완전히 가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읽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문해력이 함께 논의되고는 합니다. 그동안 문해력 담론에 있어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통적으로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다 단순히 책을 읽고 이해하는 지점을 넘어 인간 사회의 보다 큰 텍스트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으로까지 확장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때 읽기를 통한 주체적 사고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비판적 사고 능력이 강조되었지요. 이후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매체를 둘러싼 문해력 논쟁이 시작되었고요. 현재 최대 관심사는 디지털 다매체 환경에서 읽기란 무엇이며, 그 핵심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저자는 이 쟁점에 관한 검토와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 현장에서 비용과 효율의 논리에 따라 읽기 교육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지요. 우리도 사정은 비슷할 겁니다.
나오미 배런이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주요 독자로 책을 잘 읽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사, 사서, 정책 결정자, 부모'를 염두에 둔 것이 이러한 변화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가장 많은 고민의 몫을 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교사와 학부모의 고민이 가장 클 텐데요. 독자적 판단이나 결정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학생들에게 읽기를 지도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별 학부모나 교사의 선택을 넘어, 공동체의 읽기 교육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정책 결정자입니다. 문해력도 일종의 공공재여서 공공의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회 전반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된 일련의 문해력 논란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징후입니다. 나오미 배런은 자신의 책을 읽고 난 독자들에게 필요하면 정책 당국에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썼지요.
『다시, 책으로』 출간으로부터 4년이 흐른 후, 읽기에 대한 질문을 좀 더 본격적으로 던지는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출간됐습니다. 또다시 4년 뒤, 사람들의 읽기 경험을 예측해 볼 수 있을까요?
『다시, 책으로』가 출간됐을 때, 깊이 읽기가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에 공감하는 분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몰입에 필요한 집중력 저하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처럼 다가왔을 겁니다. 디지털 기술은 앞으로도 더 빠르게 혁신을 거듭할 겁니다. 최근에도 대화형 AI인 챗GPT(ChatGPT)가 기존의 검색 엔진을 대체할 조짐마저 보인다고 하지요. 무엇이든 물으면 답해 주는데 굳이 내가 읽는 수고를 왜 해야 할까, 하는 물음이 반복해서 고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인간의 읽기가 가진 쓸모와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중요해지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출판과 독서 관련 일을 하는 분들도 그 본질을 어떻게 재해석해 나갈지 고민이 커질 겁니다. 독자 개인이 정보, 지식, 즐거움을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활동으로서 다양한 형태의 모임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 섞인 전망을 해봅니다.
문해력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번역가 전병근은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속도를 더해가는 디지털 시대에 올바른 읽기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시의적절한 안내서"라고 했다. 지금 종이책과 전자책 단말기 사이에 있는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은 읽기와 문해력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보여준다. 다음은 독자가 자주 하는 질문에 대해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본문 내용을 재구성하여 답한 것이다.
나오미 배런 저 / 전병근 역 | 어크로스
읽을 때 매체가 중요한가?
나오미 배런은 단호하게 말한다. 이 질문에 한마디로 답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이와 함께 "이제는 익숙해진 조언, 그러니까 디지털로 읽는 동안 속도를 늦추라든가, 멀티태스킹의 유혹에 저항하라든가, 읽기의 목표를 정하라든가, 우리가 읽은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기억하는지에 솔직하라든가 하는 조언은 당연한 것으로 치자"고 말한다.
종이책 읽기 전략이 디지털 읽기에도 적용될까?
종이책 읽기 전략이 디지털 읽기에도 곧바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독자는 종이나 디지털 스크린에 담긴 콘텐츠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믿어야 하고, 기기와 상관없이 읽는 목적이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읽기를 할 때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형적으로 읽기보다는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등 비선형적 읽기를 한다. 또한 시간제한이 있는 시험을 디지털 스크린으로 볼 때에만, 우리는 눈앞의 지문을 차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읽기 방식의 차이 때문에 동일한 전략이 적용되기는 어렵다.
디지털로 읽을 때 어떻게 집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온라인으로 무엇인가를 읽을 때 클릭 한 번에 여러 페이지를 넘나드는 '하이퍼링크 형태'로 읽는다. 원래 읽고 있던 글에 대한 사전 지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독자일수록 하이퍼링크를 잘 읽어낼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전 지식이 많은 독자일수록 외부 자료로부터 방해받는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사전 지식이 적고 주제 친숙도가 낮은 독자에게는 이러한 하이퍼링크가 마치 정신적 미로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전 지식은 내용 이해도뿐 아니라 텍스트를 읽는 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하이퍼링크 앞에서, 독서란 우리가 어떤 페이지와 얼마나 오랫동안 씨름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까지의 복잡한 문제들을 포함한다.
디지털로 읽고 나면 왜 잘 기억나지 않는 걸까?
디지털 읽기 방식은 크게 '페이지 넘기면서 보기'와 '스크롤을 내려서 보기'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이 중 페이지를 넘기면서 볼 경우 조금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페이지의 테두리는 독자에게 비록 가상적이나마 지리적인 '장소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기억을 위한 인지 능력은 장소 감각이 있을 때 더 활성화된다. 반면, 스크롤을 내려서 볼 때는 이야기의 시작이나 끝을 표시하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어서 내용을 기억하기 더 어렵다.
요약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탁월한 요약은 방금 읽은 내용을 학습하고 장기 기억으로 남기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효과적으로 요약하는 방법에 대해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러한 기술이 특별히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교육 과정에서 좋은 요약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소설은 디지털 기기로 읽을 때 더 잘 읽힐까?
기본적으로 장르는 이야기와 정보로 구분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픽션' 대 '논픽션'으로 장르를 나누지만, 이 책에서는 '내러티브(narrative)' 대 '정보성(information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보성 텍스트는 종이로 읽었을 때 이해도가 더 높다. 반면 내러티브 텍스트는 종이와 디지털 기기로 읽었을 때의 이해도가 비슷하다.
소설의 독자는 경제경영서의 좋은 독자도 될 수 있는 걸까?
존 제림과 제마 모스는 '소설 효과'를 증명한다. 소설을 읽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시험에서 읽기 평점이 높게 나온 것이다. 이들이 소설 읽기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소설은 추론 능력에 도움을 준다는 것. 두 번째로 소설은 일반적으로 장문의 읽기물이라는 점이다. 추론 능력과 긴 분량의 읽기가 가능한 소설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쓸수록 장르와 상관없이 기본적인 읽기 능력이 늘어난다.
지금부터 종이책만 읽으면 '깊이 읽기'가 가능해질까?
이것은 환상에 가깝다. 우리가 디지털 기기 때문에 글을 더 얕게 읽게 된다는 믿음은, 종이책을 읽는 스스로를 과하게 평가하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결국 매체보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이를 위해 『다시, 책으로』를 쓴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는 새로운 읽기 모델인 '양손잡이 문해력'을 제안한다. 이는 언어 사용자가 환경에 따라 두 언어를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듯 독자가 이중 문해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목표에 맞춰 읽기 방식과 읽기 플랫폼을 바꿔가며 적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전병근 (역자) 북클럽 오리진 지식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비즈> 지식문화부장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정책연구통계센터장으로 일했다. 공군사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와 존스홉킨슨 대학교 부설 국제대학원에서 객원 연구원을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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