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쓸 때면 무언가를 노려보았다. 보이는 것을 질료 삼아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턱을 넘는 일, '낯설게 하기' 전에 수행되는 '관찰하기'에 있어 능수능란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훈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2021년 가을, 김경태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범핑 서피시스(Bumping Surfaces)>(두산갤러리)를 보기 전까지는.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나오기까지 내가 경험한 '본다'의 과정을 느슨하게 전개해보자면 이렇다.
1.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외부에 걸린 하나의 작품을 보게 된다. 노란색 꽃의 뒷모습. 2. 입구에 들어서면 내 키보다 큰 튤립이 한 송이가 찍힌 사진을 마주한다. 가까이 갈수록 꽃잎의 표면과 질감이 눈에 들어온다. 꽃잎은 진짜 같은데, 테두리 부분은 천을 자른 것처럼 거칠어 조화 같다. 3. 작품에 바짝 다가가니 꽃잎 표면에 실오라기 하나가 붙어 있어 있는 것이 보인다. 조화였던 것이다.(나는 자연스럽게 진짜와 가짜에 대해 생각한다. 복제품과 대용품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4. 그 옆으로 전시장의 벽을 따라 내 침대보다 커 보이는 작품이 연달아 걸려있다. 조화의 일부가 크게 확대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추상화처럼 색과 형태의 구도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각 작품 앞에 서면 조화를 구성하는 각기 다른 표면의 질감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나는 시각의 촉각화, 스케일 변화를 통한 낯설게 하기와 같은 개념을 떠올린다) 5. 한 눈에 작품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서서 눈알을 굴리며, 작품 위에 앉은 한 마리 곤충처럼 사진을 훑다보니 또 다른 것이 보인다. 원단 조직의 치밀함 정도 같은 것. 어떤 것은 성기고 어떤 것은 촘촘하고, 어떤 것은 울퉁불퉁하고, 어떤 것은 매끈하다. 재료와 재료 사이에 삐져나온 본드 자국, 달라지는 염색의 농도, 재료마다 갖는 고유한 조직 등... 정밀해서 놀라고, 조악해서 놀랐다. 집에 있는 식물들을 떠올려본다. 한 눈에 들어오는 형태와 색깔 이외에, 각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꽃잎과 꽃받침의 질감이 어떻게 다른지 도통 떠올릴 수 없다.(그 와중에도 전시장을 거닐며 여전히 나는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보아야 하지? 이 작품들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6. 또 다른 작품 앞에 서니, 문득 사진의 선명도에 꼼짝없이 몸이 갇힌다. 이것에 대해선 사전에 공부를 좀 해왔다.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은 이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촬영 기법인데, 과학 분야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사물을 근접해서 촬영할 때 초점을 맞춘 부분은 선명하고 그 외에는 흐려지게 되는데, 각기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뒤, 이를 한 장으로 합성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진 전체에 초점이 맞춰진 선명한 이미지가 된다. 7. 신기한 점은 이것이다. 그렇게 모든 곳에 초점이 맞춰진 커다란 사진 앞에서 내 눈은 다시 부분 부분에 초점을 맞춰가며 전체를 순차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사물을 관찰했던 과정 자체가 한 장의 이미지로 합쳐졌다가, 작품을 보는 내 눈을 통해 다시 그 시간이 다시 단계적으로 풀어지는 것이다. 작가의 '보는 눈'이 관객에게 이식되는 순간이다. 8. 이식된 눈을 통해 서로 다른 표면이 부딪히며 증폭되는 이질의 감각에 나는 그대로 노출된다. 9. 이쯤 되니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사유로 위장한 게으르고 습관적인 괄호 안의 질문들이 무색하여서. 애초에 작가는 작품을 경유하여 저기 멀리 떠 있는 의미의 구름들을 가리키지 않았으므로.(눈으로 작품을 보고 있으면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를 묻다니! 시를 읽고 시의 의미를 한 줄로 요약하고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려나) 적어도 이 전시장에서는 예술 사진이라는 매체가 보통 거느리는 기억, 진실, 서술, 암시와 같은 단어들과의 고리는 끊어지고, 보는 행위만이 공유된다. 보이는 것을 보는 눈을 새롭게 체득한 나는 앞으로 보게 될 세계의 각종 부위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전시장을 나온다. |
전시는 내가 그동안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일에 심취한 나머지 실은 보이는 것을 잘 관찰하는 일을 얼마나 하대해 왔는지, 보는 척하면서 의미의 층위로 얼마나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쉽게 도약해 왔는지 단박에 알려주었다.
얼마 전 초로 백내장 말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눈을 뜨면 보이고,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 너무 당연한 원리에 익숙한 나로서는, 각막을 절개하고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동안 뜬 눈으로 시야가 사라지는 경험은 꽤 오싹했다. 어쨌든 혼탁해진 수정체를 걷어내고, 새로운 인공 수정체를 삽입한 나는 <범핑 서피시스> 전시장을 나올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요즘 보이는 것을 뒤덮고 있는 통속적인 환유의 껍질들을 벗겨내고, 보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하고자 애쓰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언어를 찾는 일을 여전히 나는 사랑하는데, 양 눈의 시력이 각각 온전해야만 강력한 하나의 초점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과 건축역사·이론·비평을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