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의 볼만한 세상] Let it rip! - 마지막 화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들고 어쩔 줄 모르겠을 때, 도저히 내 힘으로는 내 인생을 헤쳐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더 베어(The Bear)>는 그럴 때 보기 좋은 드라마다.
글ㆍ사진 김혜경(광고AE, 작가)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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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광고AE가 격주 화요일,
볼만한 드라마와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드라마 <더 베어 시즌1> 포스터 (디즈니플러스 제공)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 저마다 난이도와 풀이가 다를 뿐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가득한 인생은 버겁다. 내가 들 수 있는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바벨을 억지로 들어 올려야 하는 느낌이다. 집과 회사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는 문제를 마주하다 보면, 손가락으로 물이 새는 댐의 구멍을 막고 있는 네덜란드 전설 속의 소년이라도 된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막으면 전설이겠으나 이대로 터지면 현실이겠지. 곧 닥쳐올 내일이 두렵고 미래가 암담하다. 문제가 지나간 다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 테니까.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들고 어쩔 줄 모르겠을 때, 도저히 내 힘으로는 내 인생을 헤쳐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더 베어(The Bear)>는 그럴 때 보기 좋은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카르멘 베르자토(제레미 엘런 화이트 분)가 자살한 형의 식당을 물려받으며 시작된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올해의 신예 셰프'로도 선정되기도 했던 그가 새롭게 일하게 된 'The Beef'는 시카고의 낡고 조그만 레스토랑이다. 예전에 일한 곳에 비해 규모도 명성도 보잘것없지만, 카르멘에게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의 어머니가 밤을 새워가며 지켜온 공간이자, 그의 형에게 인정받고 싶은 곳이니까.

그러나 식당은 문제투성이다. 빚만 가득한데 거래처는 외상을 받아주지 않아 식재료를 살 돈조차 부족하다. 돈이 될만한 옷은 내다 팔고 오락기의 동전까지 꺼내 고기를 사지만, 그조차 원하는 부위와는 달라서 조리법을 다르게 강구해야 한다. 함께 식당을 꾸려가야 할 직원들도 비협조적이다. 카르멘은 식당의 사소한 문제점부터 고쳐가려고 하지만, 누구도 그의 새로운 운영 방식을 환영하지 않는다. 시키는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텃세를 부리고, 기존 시스템을 벗어나지 않기만을 원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매화마다 소리 지르고 싸우는 사람들과 무엇 하나 쉽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포기하면 편해"라는 말이 떠오른다. 카르멘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이전에 형이 운영하던 그대로만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불필요한 상상이다. 그런 선택 자체가 카르멘에겐 문제가 다름없으니까. 그는 이전보다 더 잘하고 싶고,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라고 한 사람이 없어도, 이 식당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나아가게 한다.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을 엿보는 것처럼 리얼한 스토리와 빠르고 밀도 높은 연출은 7화에서 정점을 찍는다. 가게 영업 이익을 늘리기 위해 포장 판매를 시작한 첫날에 주문 앱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아 초콜릿 조각 케이크 78개, 감자튀김 99인분, 닭고기 54인분, 샐러드 38인분, 소고기 샌드위치 255개를 8분 안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는 것으로 시작하는 에피소드다. 일만 해도 모자란 시간에 모두가 예민하게 언성을 높이고, 멘탈이 나가 주저앉고, 급기야 일을 관두는 사람까지 나오는 하루다. 그 모든 일이 '원 테이크'로 흘러가는 20여 분의 시간 동안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다.

물론 그런 일이 있어도 식당의 영업은 계속된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다음 날이 되면 일찍 출근해 재료를 다듬으며 그날의 영업을 준비하고, 그런 노력 속에서도 사건 사고는 계속해서 터진다. 변기가 부서지고, 반죽기의 속도를 올리다가 전기가 나가고, 가스가 끊기고, 보건국의 위생 점검에서 기대 이하의 등급을 받고, 5년 동안 세금을 미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뼈 빠지게 돈을 벌어도 온갖 이유로 돈은 없고, 한계에 몰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사람들이 계속해서 싸우고. 그래도 여전히 식당의 영업은 계속된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실수하게 될 거예요. 근데 그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에요."

자책하며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직원에게 카르멘이 답하는 대사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고, 실패는 패배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인생은 계속된다. 주저하는 시간에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이 뭐라도 하게 된다. 어떤 일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을 알기에 우리는 꿈을 꾼다. 그렇게 아등바등 애쓰다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을 때도 물론 있겠지만, 서로 싸우고 실수를 거듭하면서도 한 사람의 부족한 빈틈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역시 다른 사람이다. "나랑 내일도 싸울 거야?"라는 동생의 질문에 카르멘이 "응"이라고 답하듯이. 뒤늦게 발견한 형의 편지에 쓰인 'I love you dud. Let it rip!(사랑해. 그냥 해 버려!)'라는 문구를 보고 그가 다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원동력을 얻게 된 것처럼. 그런 사람만 있다면, '어떡하지'란 생각에 잡아먹힐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용기를 낼 수 있을 테다.

"그런 걸 부르는 이름이 있나?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게 두려운 거."

"모르겠네. 인생?"

살아있는 것은 힘이 든다. 우리는 계속해서 실수하고, 실패하고, 실망하고, 후회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싸울 것이다. 그렇지만 더 나아지려는 욕심은 우리를 더 나아가게 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더 베어(The Bear)>의 주방에서만 벌어지는 유난스러운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인생이기도 하다.

<더 베어(The Bear)>는 곧 시즌 2가 공개된다. 시즌 1에서 온갖 시련을 극복하며 단단해진 등장인물들의 맷집이 시즌 2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궁금하다. 바뀐 식당 이름인 'The Bear'처럼, 말 그대로 계속해서 인내('Bear'는 동사로 '참다'라는 뜻) 해야 할 시간이 또다시 펼쳐질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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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광고AE, 작가)

회사 다니고 팟캐스트 하고 글 써서 번 돈으로 술집에 간다. 『한눈파는 직업』, 『아무튼, 술집』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