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필성슈퍼’를 운영하는 가족이 있다. 인근에 입점한 대형마트로 인해 집안이 휘청이기도 하지만 ‘간당간당’ 버티고 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얻고 성장하며 변모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권여름 작가는 자신만의 활기찬 문장,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 같은 인물의 목소리로 우리를 ‘작은 빛’ 속으로 데려간다.
첫 번째 장편소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로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을 수상하신 후, ‘채널 예스’인터뷰에서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냐는 질문에 처절하게 실패하는 이야기지만 그사이에는 수많은 성공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소설을 집필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소설이 『작은 빛을 따라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하신 소감 말씀 부탁드려요!
말씀하신 ‘채널 예스’ 인터뷰의 답이 되었던 그 소설 맞습니다. 그걸 발견하시다니! 놀랍고, 감사해요. 두 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한 소감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는데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은 안도입니다. 많은 작가가 그렇겠지만 장편소설을 쓰면서 길을 잃기도 하고,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의심의 몸부림을 칠 때도 있거든요. 붙들고 있던 꼬질꼬질한 원고를 씻기고 예쁜 리본도 달아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심정입니다.
장류진 작가님이 작품을 미리 읽고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울고 웃으며 소설을 보셨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또 출간 전 제 방에 있던 교정지를 넘겨보던 언니가 앉은 자리에서 킥킥대며 거의 다 읽고, 다음날 다시 찾아와서 남은 부분을 읽더라고요. 다 읽고 나서 말이 없기에 바라보니 눈물을 닦고 있더라고요. 언니가 울어서 행복했어요. 하하. 일단 두 사람을 끝까지 읽게 했고 거기에 더해 울고 웃게 했으니,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런 마음입니다.
첫 번째 장편소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의 배경은 ‘유리 단식원’입니다. 대형 프로젝트인 ‘Y의 마지막 다이어트’의 주인공 운남이 사라지고 그를 찾기 위해 담당 코치 봉희는 지리산으로 향해요. 『작은 빛을 따라서』의 배경도 내장산 가는 길목에 있는 ‘필성슈퍼’이고요. 작가님 소설에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가 있고, 지방에 실재하는 곳이 등장해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소설을 읽다 보면 인물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소설 속 배경을 콕 집어 설정하시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장편소설 쓸 때 잘 아는 공간을 쓰고 싶어요. 단순 정보로서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특유의 느낌을 아는 곳이요. 그곳의 공기와 토양 그리고 냄새 같은 것들이 제 몸을 직접 통과하며 만들어진 감각들이 있잖아요. 그 감각을 가지고 상상을 보태면 훨씬 더 생생한 느낌을 구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전작의 지리산과 이번 작품의 내장산 길목은 이야기의 결이나 하고자 하는 바에 도움이 되는 공간이라 믿었기에 고민 없이 배경으로 설정했죠.
소설의 가장 큰 줄기는 ‘필성슈퍼’를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조그만 도시에 대형마트의 입점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었지만 ‘두부 한 모라도 배달’을 할 만큼 슈퍼를 찾아오는 고객이 간절해요. 김장철에 배추를 한 포기라도 절여주고, 섬 위도로 행상을 나가고, 남는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 판매하는 등의 손님을 발길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합니다. 간당간당하게 이어지는 슈퍼를 보며 희미한 희망을 믿는 힘과 노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소설의 배경을 ‘슈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기 휴무가 있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동네 슈퍼는 보통 365일 운영하죠. 슈퍼에는 믿음이 있잖아요, 매일, 정해진 그 시간에는 열려 있을 거라는 믿음이요. 우리 생활에 가까이 있고 사람들이 성실하게 움직이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가장 큰 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이라는 점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생각해요.
더욱이 제가 어렸을 때 실제로 슈퍼집 딸이기도 했고요. 처음 이 이야기를 구상할 때는 슈퍼에 드나드는 다양한 인물들을 재미나게 그리려 했어요. 개성 강한 손님들, 과자, 라면, 유제품 등을 납품하고 진열해 주는 대리점 직원분들까지요. 하지만 필성슈퍼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어요. 과자 진열해 주는 이모 삼촌들이 더 좋은 자리에 자기 브랜드 과자를 놓으려고 대판 싸운 이야기, 땀범벅으로 쌀 배달 가다가 첫사랑 만난 이야기 등등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이야기의 구성을 위해 많이 삭제했어요.
소설의 주인공 은동은 세 자매 중 둘째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은동의 모습을 통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라는 인물을 떠올렸어요. 언니에게 치이고, 동생에게 치이며 항상 양보해야 하는 위치인 ‘둘째’ 그 자체였습니다. 소설 속 은동은 특별하게 살고 싶고, 고유한 ‘나’를 잃는 것에 큰 두려움이 있는 아이입니다. 이 인물을 구상하고 중심으로 소설을 집필하게 된 이유 혹은 계기가 있으실까요?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고, 특별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사춘기 때에는 더 그런 것 같고요. 더욱이 위아래에서 치이는 둘째이기에 그 욕망이 더 깊게 잠재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으로 공감이 가능한 인물을 만들고 싶었죠.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 열망이 있고 그걸 대변해 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작은 빛을 따라서』에는 필성슈퍼 식구들을 비롯해, 전교 1등 석희, 연극반 부장 선우정 언니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요. 저는 주인공 은동보다 할머니에게 마음이 더 갔습니다. 하는 말과 행동은 거칠지만, 집안이 어려워져 지원해 줄 수 없는 언니 은세의 미술 학원 특강비를 금반지를 팔아 내어주는 모습을 보며 ‘츤데레’ 같다고 느꼈는데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작가님이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 혹은 작가님과 많이 닮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저 역시 할머니를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할머니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오은동의 엄마가 마음에 들어요.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기도 해요. 느긋하지만 생활을 위해 늘 발 빠르게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부지런히 만들어 내는 점이요. 무거운 일을 단박에 가볍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모습이 좋아서요.
저와 가장 닮은 인물은 아무래도 주인공 오은동이에요. 외모도 성적도 평범하지만, 그 속은 특별하게 살고 싶은 욕심과 꿈으로 가득 찬 인물이에요. 오은동을 만나고 ‘와, 내 이야기 같아.’하는 독자들이 많으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
작가의 말에서 ‘경험에서 출발해 처음엔 비교적 쉽게 풀어나갔지만, 경험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공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작은 빛을 따라서』는 작가님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들이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고 노력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흩어져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기 위해 이야기를 직조하는 일에 가장 긴 시간을 쓴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슈퍼의 흥망성쇠, 할머니의 한글 공부, 은동의 꿈 이 세 이야기가 단순히 병렬되거나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지 않게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일이 요. 그러려면 제가 겪었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과감히 삭제하거나 제 실제 경험 속의 인물, 사건, 배경 그게 무엇이든 더 확장해야 할 일이 생기거든요. 경험에 갇히다 보면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이야기가 멈춰있기도 해요. 자전적인 이야기가 바탕이지만, 작가로서의 자아를 최대한 가동시키며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필성슈퍼 가족들은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또다시 나아갈 궁리를 하고, 꿈꾸던 배우 아카데미에서 자존심을 짓밟힌 은동은 그곳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해 꿈을 키우고, 할머니는 한글 공부를 미루지 않고 꾸준하게 노력하여 문예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위기와 실패 속에서 무너지고 주저앉는 것이 아닌, 다시 나아가기를 선택해요. 작가님께서 『작은 빛을 따라서』를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요?
제가 소설 쓸 때 자주 ‘아, 망했다.’ 이런 말을 혼자서 자조적으로 하거든요. 어떨 때는 머리를 꽝꽝 때리면서 중얼거릴 때도 있어요. ‘아, 진짜 망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진짜 망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아, 망했다.’라는 말은 지나고 보면 ‘아, 나 망하기 싫은데.’ 이 말과 같았던 것 같아요. 단편이든 장편이든 결국 끝까지 쓰고 간당간당 버티고 있어요. 그리고 믿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제가 분명 조금씩 성장하고 변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걸 믿으면 버티는 힘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을 읽은 독자분들도 망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며 행복하게 끈질겨지셨으면 좋겠어요. 실패의 순간에도 우리가 믿는 각자의 작은 빛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시길! 이 소설을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권여름 전북 부안의 작은 섬, 식도에서 태어나 정읍에서 자랐다. 장편소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로 2021년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2의 세계』(공저) 『스터디 위드 X』(공저) 등을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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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