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은 어디에 있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직전의 실제 상황을 어린 소년의 순수한 시각으로 표현한 논픽션 그림책입니다. 전쟁 직전, 마을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과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일상의 파편화를 그립니다. 이 책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전쟁의 그림자 아래에서 변화하는 삶의 현실을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의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설탕은 어디에 있지?』라는 제목이 전쟁을 바로 연상시키지 않는데요, 제목의 의도와 이야기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 그림책의 제목인 『설탕은 어디에 있지?』는 전쟁의 직접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 의도적인 선택이었어요. 2022년 겨울, 저는 라디오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한 작은 마을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요. 당시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BBC의 한 기자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마을에서 나타난 설탕 품귀 현상에 관해 보도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매일 차에 설탕을 넣거나 잼을 먹는 등 설탕이 중요한 식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에, 설탕이 동나는 현상은 전쟁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었음을 암시하는 신호였죠.
그리고 그 보도를 들은 일주일 뒤에 실제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소식은 제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전쟁의 불안이 일상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사례라고 느꼈어요. 그 순간, 저는 '설탕'이라는 일상적인 물건을 통해 전쟁이라는 비일상적인 사건을 연결 지을 수 있는 강력한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설탕은 어디에 있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쟁 그림책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선택하셨는데 어린이들에게 전쟁의 현실을 전달하고자 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나요?
전쟁이란 주제는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전달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전쟁의 사실적인 묘사는 어린 독자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으며, 이는 제가 원치 않는 결과에요. 하지만 동시에 현실성과 진실성을 잃어버리면, 이야기는 무게를 잃고 독자들은 공감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전쟁의 심각성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주제를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논픽션 그림책으로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기존의 전쟁 그림책과 『설탕은 어디에 있지?』는 무엇이 다른가요?
이 책은 일상적인 요소인 '설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것은 전쟁이 어떻게 평범한 삶 속 작은 것들마저 빼앗아 가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이에요. 『설탕은 어디에 있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의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뉴스 기관과 유엔 난민 기구의 자료를 참고하여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았어요. 전쟁에 대한 교육적인 접근을 넘어서,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과 보호자가 전쟁이라는 주제를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보호자가 아이에게 설명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책의 미주에 사건들을 정리해 두었죠. 이러한 구성은 아이들이 전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자신의 감정을 탐색하며, 세계에 대한 더 깊은 공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점이 『설탕은 어디에 있지?』를 기존의 전쟁 그림책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들이죠.
『설탕은 어디에 있지?』를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제가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진정성'의 문제였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으로서, 전쟁 그림책을 제작하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이었죠. '내가 전쟁을 겪어본 적도 없는데,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부딪혔을 때, 솔직히 기획을 접으려고 했습니다.
돌파구는 6살 조카의 순진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저 나라는 왜 싸우는 거야?", "전쟁터에도 아이들이 있어?"라는 질문에 저는 말문이 막혔버렸죠. 이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고,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더 큰 책임감을 부여했습니다. 단순히 조카에게 좋은 고모가 되고 싶어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다민족이 공존하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쟁에 대한 대화법이나 육아법이 훨씬 더 발달해 있습니다. 2022년 뉴욕 타임스에서도 아이들에게 겁을 주지 않고 전쟁에 대해 알려주는 그림책을 소개한 바 있죠. 우리나라도 분명 전쟁의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나라 중 하나이지만, 전쟁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선 아직 소극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 관한 기사를 매일 읽으며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전쟁의 현실을 이해하고 평화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조카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설탕은 어디에 있지?』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전쟁에 대해 열린 대화를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논픽션 전쟁 그림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직후 우리나라의 반응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다음 날, 우리나라 대표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는 전쟁 관련 상승 주식 리스트였고, SNS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상업적,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업로드되고 있었어요. 이는 먼 나라의 전쟁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또 어떻게 상업적으로 이용되는지를 목격하는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업로드 자제를 요청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는 점과 대조적이었죠. 이러한 차이는 전쟁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고, 이 책을 통해 전쟁을 좀 더 현실감 있고 인간적으로 풀어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림책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 같은 세부적인 요소가 있다면, 독자들에게 힌트를 줄 수 있나요?
『설탕은 어디에 있지?』에는 매우 의미 있는 이스터 에그가 숨겨져 있어요. 바로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어요'라는 문구입니다. 이 문구는 실제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자기 집과 건물 외벽에 적기 시작한 것인데요. 러시아 군이 쇼핑몰, 병원, 학교, 마을과 같은 민간 시설에 무차별 포격을 시작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호소로 탄생했습니다.
그림책의 앞면지에서 이 문구는 우크라이나어로 등장하며, 소년의 아버지가 그 문장을 쓰는 장면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문구의 뜻이 설명되지 않아,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그 의미는 미스터리로 남죠. 책의 마지막 부분인 뒷면지에 도달했을 때 한국어로 번역된 이미지가 나타나며, 비로소 그 문구의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 독자들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절박한 심정과 그들의 삶을 지키려는 강인한 의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어와 한국어로 된 이 문구는 전쟁의 참혹함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합니다. 독자들이 이 작은 단서를 통해 전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충돌과 우크라이나-러시아 갈등을 비교하며,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전쟁이 『설탕은 어디에 있지?』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어떤 연결고리를 제공하나요?
전쟁은 어떤 형태로든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충돌이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 모두, 권력과 영토에 대한 투쟁, 정치적 이념의 대립, 그리고 민간인들의 삶에 대한 깊은 영향이라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각각의 분쟁이 특유의 역사적 배경, 문화적 맥락, 그리고 지정학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겠지요. 분명한 사실은 그 어떤 국가도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분쟁 상황은 90년대 이후 태어난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저를 포함한 현재 젊은 세대는 대체로 평화 속에서 자랐고, 전쟁의 실질적인 위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의 위험성과 평화의 소중함을 잊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탕은 어디에 있지?』는 바로 이 점을 인식하고, 어른들이 어린 세대에게 전쟁의 현실을 전달하는 책임과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설탕은 어디에 있지?』는 한국의 독자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전쟁의 실체를 이해하게 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세계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충돌이라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습니다.
*김태경 미국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아트 전문 번역가 및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컨셉 아트 기법을 그림책에 접목시키는 작업으로, 『어린 곰의 아침 식사』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을 출간했습니다.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