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오 칼럼] 손이 떨려도 좋아 글자가 틀려도 좋아
시와 삶이 모두 헛되지만 헛된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의 시들을 읽으며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글ㆍ사진 김선오(시인)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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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승훈 시인의 시 한 편을 찍어 올리며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이승훈 시집 읽으면 시 쓸 수 없어, 우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이승훈 시인의 시들은 읽는 이의 감정적 동요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잘 울지 않는 편이고 시를 읽으면서는 더더욱 울지 않는다. 정말로……

『이승훈 시전집』에는 1957년에 쓰인 시 「나목이 되는」부터 2010년대에 쓰인 시 「맨발」까지 약 오십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이승훈 시인의 시적 여정이 수록되어 있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쓴 시를 선형적인 흐름 위에서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은 시전집이라는 형식이 지닌 아름다움이다. 다 읽고 나면 그 사람의 삶을 내가 살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나목이 되는」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길을 가면
나의 마음은 비어 간다


열일곱 살의 이승훈 시인이 적었을 이 문장을 다시 들여다본다. 걸을수록 마음이 비어가는 ‘이 길’이라는 공간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마침내 선불교에 다다른 이승훈 시인의 삶의 궤적을 의미하는 것처럼 읽힌다. 시인의 생애는 열일곱 살에 쓴 시의 첫 문장을 통해 이미 예언되었던 것일까. 문장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삶을 미리 발설할 수 있는 것일까. 서문에서 이승훈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해 이렇게 쓴다. “그동안 나는 시를 쓴 게 아니라 나를 찾아 헤맸고, 그것은 초기의 자아찾기, 중기의 자아소멸, 후기의 자아불이로 요약된다. (…) 언제 미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시를 썼고, 지금도 쓰고 있지만 최근엔 두통으로 고생이 말이 아니다. 그동안 불안과 두통을 먹고 살았지만 이젠 그들이 나를 먹고 산다. 언제나 사는 건 쓸쓸하고 오는 사람도 없고 가는 사람도 없고 기대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전집을 읽다보면 시인은 어느 순간 언어가 환상이고 환상이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자유로워 보인다. 이후에 쓰인 시들은 나에게는 거의 무한에 가까울 만큼 열린 텍스트처럼 읽혔다. 가령 아래와 같은 시들.


겨울 저녁 일곱 시 호준이가 목욕하다 말고 문을 열고 말하네. “함께 목욕해요.”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난 책 읽다 말고 “응. 난 오전에 목욕했어.” 말했지. 그래도 그는 벌거벗은 채로 서서 말하네. “또 하면 안 돼요?” “응, 너 혼자 해. 난 오전에 했으니까.” 그는 문을 닫고 나간다.

– 이승훈, 「무엇이 시인가?」 전문

학교 연구실에서 20년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다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빗물 묻은 우비를 걸치고 배달 온 청년이 묻는다 다른 건 잘 못 먹어요 청년이 나가면 연구실 낮은 탁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맛없는 잡채밥을 먹는다 학생들이 연구실에 앉아 잡채밥 먹는 걸 보면 실망할지 몰라 문을 잠그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오전 열한시 반 낡은 잠바 걸치고 앉아 고개 숙이고 잡채밥 먹는다 물론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그릇을 신문지에 싸서 연구실 문밖에 내놓는다

– 이승훈, 「잡채밥」 전문


삶과 시가 분리되지 않는, 천진하고 일상적인 말들로 쓰인 이러한 시들은 언어를 의심하고 개념으로 사유하는 것을 불신하는 선불교적 지향을 오롯이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편은 「손이 떨려도 좋아」이다.


손이 떨려도 좋아 글자가 틀려도 좋아 감기에 걸려 또 약을 먹었지 바른 손이 저리면 왼손도 저리고 저려도 좋아 저려도 좋아 이런 시는 쓰지 않아도 좋아 감기에 시달리며 가을이 가네 그대 소식 없어도 좋아 인제 가던 길가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동서 작은 아버지 머리는 하얗고 난 머리 빠지는 게 좋아 이런 시 쓰다 말고 화장실 가서 침을 뱉고 돌아왔지

가을 오전 은행 탁자에 고개 숙이고 축의금을 썼지 글쎄 국민은행까지 가서 떨리는 손으로 글을 쓰고 지금은 방에서 쓰지 읽을 수 없어도 좋아 나오는 대로 쓰는 거야 내 안엔 아무것도 없지 이런 소리가 무슨 소린지 모르니까 좋아 밥맛은 없지만 매일 밥을 먹고 밥 먹다 말고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 가는 사람 나만이 아니리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기침하는 가을이 좋아 떨리는 글씨가 좋아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어느 날 그대 낙지 천국에서 매운 낙지 먹고 난 고등어 먹으리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바람에 흔들리는 백지 읽을 수 없어도 좋아 

– 이승훈, 「손이 떨려도 좋아」 전문

 

이승훈 시인은 생애 동안 백 권이 넘는 책을 썼다. 말년의 육필원고에는 알아보기 힘들 만큼 떨리는 서체로 적힌 시들이 빼곡하다. “그동안 내가 부른 노래는 모래 그리고 나도 모래야 그러나 당신은 모래에 물을 주지 그러므로 허송세월이 아름답도다” 시와 삶이 모두 헛되지만 헛된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의 시들을 읽으며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또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이승훈 시전집』을 넘기다보니 함께 읽은 독서 모임 친구들을 웃기기 위해 이승훈 시인을 따라 썼던 시 한 편이 남아 있다. 선생님께서 부디 용서하시길 바라며 아래 그 시를 남긴다.

제목: 감자튀김

시를 써서 뭐해 감자튀김이나 먹지 나는 문을 잠그고 매일 감자튀김을 먹는다 수강생들이 보면 어째 아니다, 온라인 수업이지? 온라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볼 수도 보여줄 수도 없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야 이곳이라는 건 없다 모든 곳이 이곳이지 창밖은 온통 어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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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시인)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좋아하는 것이 많지 않지만, 무한히 변주되고 갱신되는 피아노와 시만큼은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하는 시인. 시집 『나이트 사커』와 『세트장』, 에세이 『미지를 위한 루바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