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도 같이 살 수 없는 걸까?”
“나를 반겨 주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
『거미와 농부』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책에는 농부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방해로 계속 거미줄이 끊어짐에도, 살기 위해 꿋꿋이 집을 짓는 거미의 이야기가 주로 펼쳐질 뿐이죠. 배경에도 사람보다는 시시각각 익어 가는 토마토와 이를 찾는 나비, 벌, 애벌레 등 다른 생명체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만 몰두해 놓치고 있던 관계들에 주목합니다. 십여 년간 농사를 지어온 농부이자 이 책을 쓰고 그린 안혜경 작가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첫 그림책 출간을 축하드려요!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을 펴낸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어릴 때 아버지께서 작가가 돼서 아버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셨는데, 일단 이렇게 작가가 되었네요. 혼자만 알고 있던 이야기를 그림책을 읽는 독자들과 나누게 되어 설레는 마음입니다. 책이 될 수 있도록 기회 주시고, 함께 고민해 주신 곰세마리 출판사에 감사드려요.
작가로서는 신인이시지만, 농부로서는 16년간 친환경 농장을 운영해 오신 베테랑이신데요. 그림책을 만드는 일과 농사를 짓는 일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난겨울, 토마토가 자라는 순서대로 그림을 그리며 1년 농사를 미리 지어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무리 오래 농사지어도 해마다 다른 어려움이 꼭 생겨나고 잘 자라기까지 어려움을 겪어요. 그럼에도, 다음 해가 되면 얼른 토마토를 심고 싶어지죠.
농사를 지으며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그림은 익숙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그래도, 다시 그린다면 좀 더 낫게 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아요.
『거미와 농부』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궁금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토마토를 수확하려는데, 모자 위로 지이익 하고 거미줄이 늘어지다 뜯기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미의 집이 망가져 버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기를 며칠간 반복하던 어느 날, 거미줄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주위를 살펴보니 고랑을 가로지르던 거미줄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랑과 같은 방향으로 지어져 있었어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시행착오를 겪는 거미를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거미와 농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길을 피해 집을 완성한 거미, 토마토를 수확하는 농부와 소년이 함께 있는 장면이에요. 거미가 얻게 된 편안함과 농부가 느끼는 수확의 기쁨을 담고 싶어서, 구도를 많이 고민하며 스케치도 여러 번 바꾸었어요. 채색은 가는 붓으로 조금씩, 며칠 내내 했는데요. 색을 칠할수록 변해가는 그림이 재미있으면서도 실수로 그림을 망칠까 봐 조마조마했던 시간이 생각나요.
거미와 농부가 각자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모습이 참 인상 깊어요.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셨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농장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연스레 양보하고 배려하며 친구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봤어요. 이 책이, 이미 알고 있는 그 배려를 사람만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러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에서 ‘동료 생명체’라는 표현을 읽었어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은 곤충들 역시 소중한 우리의 동료이며, 익충과 해충으로 나누는 인간의 기준을 떠나 그렇게 나누어질 수 없는 각각의 생태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에서 크고 작은 동료 생명체들이 균형을 잃지 않고 공존할 때 우리도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양보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거미를 통해 전할 수 있기를 바라요.
실패를 거듭해도 “뭐 어때. 다시 시작하면 되지” 하고 꿋꿋이 나아가는 거미의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작가님은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이겨내는 편이신가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는, 가능한 한 처음으로 돌아가 찬찬히 되짚어 봐요. 내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놓친 것이 있다면 만회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다 보면 조금씩 괜찮아지고, 그다음엔 좀 더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저는 미련이 많은 성격이라,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대체로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면,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답니다.
거미와 농부의 이야기만큼, 배경에 등장하는 토마토들의 변화가 눈에 띄어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토마토가 탐스럽게 영글어 가는 것도 볼 수 있고요. 토마토를 그리실 때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토마토는 자라는 과정을 신경 써서 살펴야 하는 식물이에요. 그래서 모든 과정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죠. 다만, 그걸 세밀하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죠. 더미북을 만들 때처럼 편하게 그리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림 실력은 부족한 것만 같았고요. 그렇지만, 이미 생겨 버린 잘하고 싶은 마음을 더해 완성해 보았어요. 노란 꽃이 피고, 작은 초록 토마토가 열리고 주먹만큼 자라다가 짙푸른 초록색에서 빨갛게 익기까지 다양한 색으로 변해 가는, 토마토 밭에서 볼 수 있는 그 다양한 색의 변화를 표현하고자 노력했어요.
지금의 『거미와 농부』로 완성되기 전, 작가님께서 자체적으로 제작하신 더미북이 있었어요. 더미북과 출간된 그림책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더미북은 저의 즐거움에 집중하며 편하게 쓰고 그렸다는 것, 『거미와 농부』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더욱 생각하며 작업했다는 게 큰 차이였어요.
더미북을 만들 땐, 학생 때 그려보던 그림을 다시 접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내가 그림을 다시 그릴 일이 있을까? 못 그리면 어때, 재미있는 걸!’ 하고 계획한 날짜에 맞추어 후딱 그렸죠. 처음 출간이 결정됐을 때만 해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쓱쓱 그리듯 작업했고, 마감 기한이 오히려 넉넉하게 느껴질 정도였죠.
하지만, 편집부와 함께 의견을 나누며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죠. 어떻게 하면 이 책을 잘 전할 수 있을까 하고요. 고민의 과정에서 제가 그리 대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과정에 한병호 작가님께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요. 선생님께선 ‘더미북을 만들 때처럼 부담 없이 하라’고 하셨어요. 결국, 그 부담은 작업을 마치면서야 내려놓게 되었지만요.
그림책 작업을 하기 전과 후, 작가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먼저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전문성을 갖춘 편집부와 소통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 나갔던 과정이 저에겐 좋은 경험이었어요. 독자의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림과 글이 조화롭게 전달되기를 고민하면서, 더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된 것도 큰 공부였고요. 편집부의 응원과 격려와 조언으로 작업을 무사히 마친 지금, 제일 큰 변화는 ‘작가님’ 하고 불러 주시는 호칭을 이제야 조금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작가님은 월간지 『비건 Vegun』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계신데요. 언젠가 소소한 그림도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소망을 비추기도 하셨어요. 작가님께 그림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봄부터는 들나물과 들나물 요리법을 곁들인 수필을 내고 있어요. 여기에 사용되는 들나물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데, 언젠가 꼭 할 계획이에요. 나름 큰돈을 들여 장만한 120색 색연필도 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매일 가까이에서 만나는 식물과 곤충, 그리고 그날의 이야기를 그리고 써 보고 싶어요.
사진으로 찍으면 간편한데 왜 자꾸 그림으로 그리고 싶을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사진과는 다른, 내 시선이 담뿍 담긴 특별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매력도 있고요.
농장에서 프로그램도 진행하시며 많은 어린이를 만나고 계신데요. 이제, 『거미와 농부』를 통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독자분들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농장을 개방하고 진행한 첫 프로그램이 경기교육청에서 주관한 ‘꿈의 학교’였어요. 7개월 동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20여 명의 아이들과 친환경 농장에서 활동했던 시간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고 모아 책으로 만들기도 했죠. 그때 아이들에게 “농사를 열심히 지었더니, 농장에 작은 학교가 생기고, 농부 선생님이 되었어요” 하고 인사했었던 게 생각나요. 이번에는 이렇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은 곤충도 귀하게 여기며 농사를 지었더니, 농부 작가가 되었어요.”
농사에 해가 될까 걱정하다가도 결국엔 작은 곤충들과 풀꽃에서 생명을 느끼는 농부의 경험을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깨달았던 몇 가지 일들 중 하나를 이렇게 그림책으로 펴내게 되었어요. 주인공은 거미지만 다른 어느 곤충이어도 이야기의 결과는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양한 생명의 공존이 평화로운 삶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익힌 농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안혜경 16년간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흙에 기대어 살며 다양한 생명의 공존이 평화의 기본임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친환경 농장의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흙으로 안내하고, 흙이 주는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