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졸업 후 회사원 생활 6년차로 접어든 어느 날, 길에 멈춰 하늘 사진을 찍고 봄꽃 구경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텅 비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됐을까.’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이 책을 쓴 이유다. 그래서 스스로 내린 처방전은 ‘주변의 모든 것을 귀여워해 보’며 글을 써보기! 참으로 ‘귀여움 덕후, 낭만 덕후’ MZ다운 발상이 아닌가. 쨍한 오렌지 색감의 표지에 그림도 귀엽고 글에는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이 책의 저자는 그러니까 낮에는 회사 다니고 퇴근 후 틈틈이 글을 쓰고 그림 그리며 창작 활동을 하는 MZ 세대 직장인 작가다.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진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귀여움 수집가』라는 제목이 너무 귀여워요. 세상을 귀여워 해보자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회사에 말을 너무 날카롭게 해서 제가 좀 싫어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간단한 엑셀 작업을 못해서 쩔쩔매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막 식은땀을 흘리면서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어, 좀 안쓰럽게 귀여운 면이 있네. 자존심 때문에 도와달라고 못하는 건가?’ 이후부터는 그 사람이 못된 말을 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저 사람도 일부러 나쁘게 행동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니 좀 더 참게 되고, 웃게 되고, 농담하게 되고…. 확실히 관계가 둥글어졌어요. 그런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아요. 불편하고 미워서 마음이 힘들 때는 일단 내 시선부터 바꿔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구나.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우리 함께 세상을 귀여워하며 둥글어져 보는 건 어때요?” 하고 말을 걸어보고 싶었어요.
집필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회사 다니면서 글 쓰는 그림 그리는 게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것 같은데. 회사 생활은 그렇게 빡빡하진 않으신가요?
직장생활 3년차부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그 즈음에 마음속에 화가 제일 많았거든요.(웃음) 또 월급의 달콤함에 더 오래 절여졌다가는 현실에 안주하며 창작자라는 꿈과 영영 멀어질 것 같았어요. ‘브런치에 주 1회 에세이 업로드하기’를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정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좋아요를 한 개도 못 받을 때도 그냥 계속했어요. 제게는 모든 창작 스케줄을 기록하는 노트가 있는데요, 그 노트를 다 쓰고 새로 살 때마다 맨 앞에 적어 놓는 문장들이 있어요. '꾸준함은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오늘이 있을 뿐이다’. 지칠 때마다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회사 일이 너무 바빠 여유가 없을 땐 5분이라도 창작 관련 활동을 해요. 출퇴근길에 글감을 메모하거나 스케치를 하는 식이죠. 회사 다니면서 지치지 않고 창작하기 위한 비법은 1.조급해하지 않기, 2.과정을 즐기기, 3.스스로를 믿기 입니다. 즐기는 게 특히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면, 최소한 즐거워야 하지 않을까요?
글은 주로 언제, 어디에서 쓰는지 작가의 루틴이 궁금해요. 퇴근하면 땡! 창작자 자아로 돌아가나요? (웃음)
퇴근하고 땡! 창작자 자아로 돌아가려면 회사 일도 열심히 해야 해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월급 받아도 된다! 싶은 기분으로 퇴근해야 그 날의 창작도 잘 돼요. 어쨌든 본업이고, 대충 했다가는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 테니까요. 회사에서 글 생각하고 글 쓸 때 회사 생각 하는 게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경험담이에요.)
평일엔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고 곧바로 집에 옵니다. 저녁 먹고 집안일을 끝내면 8시쯤 되는데 그 때부터가 창작자 모드가 켜지는 시간이에요. 카페보다는 주로 집에서 글을 쓰는데요, 대신 분위기를 한껏 잡아야 해요. 조명도 어둡게 하고 가사 없는 잔잔한 음악도 틀어 놓고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읽은 책 내용을 정리하거나 그 날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기도 해요.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이 때는 카톡 답장도 잘 안 해요. 가능하면 주말에는 일 생각 않고 열심히 놉니다. 신나게 술을 마시거나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숏폼 영상만 볼 때도 있어요. 오래 지속하기 위한 저만의 방법이에요. 최소한 주말만이라도 열심히 놀면서 스스로를 돌봐야 번아웃이 안 오더라고요.
책 속의 캐릭터 이름이 ‘바삭이’더라고요. 목살이 딱 접히는 뚱냥이 모습이 너무 귀엽던데, 캐릭터 탄생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 주세요. (언제 태어났고 무엇에 착안해서 태어났는지.. 등등)
바삭이는 2년 전, 카카오톡 이모티콘에 지원하리라는 원대한 포부와 함께 태어났습니다. (짐작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일 벌이기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고양이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이모티콘 심사에서는 떨어졌지만 그림은 계속 그렸어요. 공감 가는 상황을 한 줄 대사와 함께 그려 넣는 게 재미 있었거든요. 어차피 에세이를 업로드하고 있었으니 별 생각 없이 그림도 함께 올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이 붙었어요. 겉은 바삭해 보이는 무표정이지만 속마음만은 촉촉한 직장인이라서 ‘겉바속촉’ 바삭이입니다. 목살이 접히는 뚱냥이인 이유는, 사진 찍을 때마다 턱이 두 겹으로 나오는 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거고요. 사실 초기에는 ‘호랑이가 되고 싶어하는 고양이’라는 비밀스러운 세계관도 있었답니다. 하찮아 보이지만 사실은 호랑이 같은 야망의 발톱을 숨기고 있는, 야생의 직장인이라고 할까요?
지금 가방에 들어 있는 물건을 보여줄 수 있어요? 직장인 작가의 가방에는 뭐가 들었나, 평소 들고 다니는 창작템 궁금해요.
저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한결같은 보부상이라서 이런 질문을 참 좋아합니다. 아이패드와 애플펜슬, 아이패드 거치대, 손목 보호대, 접이식 키보드, 헤드셋, 비상용 줄이어폰, 보조 배터리. 여기까지가 창작 아이템이고요. 그 외에도 볼펜, 업무용 수첩, 전자책 단말기, 비상용 우산, 각종 상비약, 마스크, 맥주병따개, 홍보용으로 들고 다니는 <귀여움수집가> 책과 명함… 너무 많죠? 저도 요즘 MZ처럼 쿨하게 미니백 한 개 들고 다니고 싶은데 절대 안 되네요.
요즘 자기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정말 많잖아요. 첫 책을 낸 소감을 말해 주세요.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주변 누구에게도 글 쓴다는 말을 안 했어요. 뭐 하는지는 안 알려주는데 정작 저녁마다 연락이 잘 안 되니까, ‘항상 바쁜 사람’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어요. 사실 집순이라서 친구도 별로 없는데 말이죠…. 그렇게 비밀스럽게 글을 쓰다가 대뜸 책을 냈다고 말하면 다들 놀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안 놀라서 제가 더 당황했어요. 알고 보니 제가 어릴 때부터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대요. 정작 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숨긴다고 숨겼는데 창작을 향한 관심과 열정이 평소에도 티가 나긴 했나 봐요. 주변의 과분한 응원을 받고 나니 그 동안 왜 이렇게 쓸데없이 비밀스러웠나 싶어 머쓱한 마음도 드네요. 자기 글을 쓰고 싶지만 부끄러워 망설이시는 분들, 그냥 당장 시작해도 될 것 같아요. 모두 진심으로 응원해 줄 거에요.
마지막으로, 내 책을 내가 홍보한다. 그러면 어떻게 소개하시겠어요? 예비 독자들에게 책 어필 한번 해보시죠. (웃음)
냉소주의자가 되기 쉬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낭만과 긍정의 힘을 믿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은 직장인의 팍팍한 일상에서 작은 귀여움을 한 방울씩 ‘착즙’해 만든 100% 농축 오렌지주스 같은 에세이집이거든요. 주변 모든 것을 ‘귀여움 필터’ 장착한 상태로 바라보며 세상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된 지난 몇 년간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웃기고 짠하고 공감되는 에피소드 35편을 다 읽고 나면 온 몸에 상큼한 비타민이 도는 걸 느끼실 거에요. 어쩌면 ‘나도 한 번 세상을 귀여워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죠. 그런 분들을 위해 저의 ‘귀여움 철학’을 공유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귀여움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