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천동에 은하계 환승터미널이 생긴다면?
이상한 외계인들이 가끔 오가는 어둑어둑 허름한 환승터미널. 도통 어울리지 않는 낡은 구멍가게. 그 앞에 앉아있는 한 아저씨의 이미지. 이렇게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가 탄생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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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행성과 전혀 교류가 없던 지구에 느닷없이 은하계 간 환승터미널이 생겼다. 그것도 대한민국 봉천동에! 그저 잠시 알박기 투쟁을 하는 척하며 크게 한탕 벌고 싶었을 뿐인 구멍가게 주인 원동웅 씨는 졸지에 지구가 속한 44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 사장님이 되어버렸다. 생긴 것도, 언어도, 문화도 너무나 다른 그들 틈에서 장사를 하기에 그는 영어조차 낯선 48세 아저씨다. 봉천동 진상들에게는 큰소리가 먹히기나 했지, 이 ‘외계인’들은 원동웅 씨의 호통이 44 은하계의 귀여운 소통 방식인 줄 알 지경이다. 쏟아지는 ‘외계인’들로 정신이 없는데, 은하계 대사관은 ‘외계인’이라는 용어는 멸칭이니 쓰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외계인이 그럼 외계인이지 뭐야!” 싶은 원동웅 씨지만, 다채로운 외계인들 틈에 조금씩 이방인의 삶을 스스로 애정하게 된다.



배인경 작가님의 신간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의 제목이 독특한 느낌을 주는데요. 제목에서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라고 특이한 표현을 쓰신 이유가 궁금해요.


자신을 늘 외계인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배제된 어떤 인물을 상상해 보다가, 이 사람이 진짜 외계인들을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본인도 일종의 외계인이면서) 외계인들이 들락날락하는 구멍가게에서 “외계인은 이래서는 안 돼!”라며 혐오 가득한 절규를 외치는 가게 주인 이미지가 떠오르자 웃음이 나왔죠.


왠지, 그런 인물은 누구도 머무르지 않는 장소에 머무를 것 같았어요. 소외되고 내쳐지다가, 결국은 사람들이 그저 얼른 떠나고 싶어 하는 장소에 뚱한 표정으로 평생을 앉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환승터미널 같은 곳 말이에요.


이상한 외계인들이 가끔 오가는 어둑어둑 허름한 환승터미널. 그곳에 들어선, 도통 어울리지 않는 낡은 구멍가게. 그 앞에 뚱하니 앉아있는 한 아저씨의 이미지. 짠, 이렇게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가 탄생했답니다.


내용을 먼저 집필하고 제목을 지으셨는지, 제목을 먼저 지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거의 동시에 나왔던 것 같아요. 튀르키예 시장에서 슬픈 구두닦이 아저씨를 만난 다음 날(제 책 ‘작가의 말’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어요!) 카페에 앉아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끼적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두닦이 아저씨를 생각하다가 관련된 아이디어가 우다다다 나왔죠. 그 아이디어의 홍수 속에 제목도 끼어있었고요. 사실 대부분의 에피소드 아이디어가 이때 이미 나왔어요. 물론 그 아이디어들을 실제 글로 집필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요. 가끔 보면, 글 쓰는 작업은 굉장히 기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참 신기하지요.


혹시 작가님께서는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의 인물들처럼, 살면서 이방인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있나요? 만일 있으시다면, 혹시 그런 경험이 이 소설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가 된 것인지. 아니면 소설을 집필한 다른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나의 소설을 집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질문해 주신 것처럼, 살면서 저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꼈던 순간들 역시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어요. 이방인으로 느꼈던 순간들을 꼽아보자면 끝도 없을 것 같은데, 여기서 한 가지만 적어볼게요.


저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느꼈던 순간 중 가장 힘들었던 건, 고등학교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때예요. 혼자임을 즐기는 척했지만, 사실은 매일 같이 교실 전체가 저를 밀어내는 느낌을 받았어요. 많이 힘들었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과거에 제가 외면했던 어떤 친구들이 계속 떠올라서 심장을 죄는 것처럼 아팠어요. 나서서 가해하지는 않았지만, 가해를 모른 척하고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비겁하게 넘겨버린 적이 있었거든요. 따돌림 당하는 사람을 테두리 바깥으로 밀어내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면 일상이 평온해지잖아요. 근데 막상 제가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니까, 이러다가 저 자신이 점차 희미해져서 사라져 버릴까 봐 무서웠어요.


그때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람은 생각보다 민들레 홀씨처럼 약하고 가벼워 언제든 사라져 버릴 수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너와 함께 여기 있어서 좋다’라고 분명히 말해주어야 비로소 안심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요. 그런 말을 건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를 쓰게 되었어요.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에서 작가님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인가요?


음, 저는 두 번째 에피소드, ‘그 모든 외딴 곳에서’를 꼽겠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수정을 거듭한 이야기였어요. ‘양파처럼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누군가’라는 설정은 꽤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아이디어인데, 그래서인지 초반부를 쓸 때 굉장히 즐겁게, 단숨에 썼어요. 그런데 초반부(기자 손님이 짜야의 비밀을 터뜨릴지 말지 고민하는 부분)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후반부를 더하고 싶은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죠. 그래도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 구조로 완성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꾸역꾸역 쓰다보니 자꾸 유치한 억지 전개로 흘러가더라고요. 저는 원래 제 자신의 작품에 후한 평가를 주는 편인데요(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을 쓰고 나면 작업실을 한 바퀴 돌며 저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기도 함). 이때 말로만 듣던 ‘내 글 구려병’에 시달리고, 건강도 많이 해쳤어요.


마지막 수정에서는 ‘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 하고 자축하긴 했지만, 사실 최종고를 넘긴 후에도 이 에피소드를 읽는 것이 너무 조마조마했답니다. 다행히 책이 나온 이후, 이 에피소드를 최애로 꼽아주신 독자 분들의 말씀을 여럿 들어서 눈물나게 기뻤죠. 마치 짜얀체체게가 옆에 있는 것처럼 글썽글썽해졌어요.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를 집필하시면서 가장 마음을 많이 담아냈던, 문장이나 단어가 있을까요? 혹은 작품 내에 기억에 남는 문장도 좋습니다.


모든 문장이 소중하지만, 하나만 골라 볼까요.


“떠돌아다닌다는 건 어쩌면 삶을 오롯이 짊어지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삶 자체가 짐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 애착이 가는 모든 것들은 짐이 되었다.”


이 문장은 저의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진 문장이기에 기억에 남네요. 비유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몇 년 전, 제게 넘치는 패기와 체력이 있었던 시절, 저는 홀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어요. 원래는 세계 일주를 하겠다면서 요란을 떨다가, 제주도 일주를 한 번 해본 이후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겸허하게 ‘유럽 횡단’으로 규모를 축소했죠. 옷이며 노트북, 캠코더, 자전거 수리 장비, 캠핑용품 등을 바리바리 자전거에 싣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서쪽을 향해 출발했답니다. 저는 사실 그렇게 체력이며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에요. 좀 가다 보니, 진짜, 진짜로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야말로 삶을 짊어지고 가는 감각이 온몸에 느껴졌어요. 아끼던 옷들도 죄다 버리고 싶고, 제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미워졌죠. 가다가 너무 힘들면 울면서 달렸어요. 흐르는 땀과 눈물이 참으로 짭짤하더군요.


…그런 경험에서 나온 문장이랍니다. 쓰고 보니 일화가 너무 멋이 없어서 실망하셨을까 봐 걱정되네요. 책 출간 이후, 유튜버 메르헨님이 제 책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짜주셨을 때 이 문장을 고르셨는데, 그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본 문장은 너무 멋있게 느껴졌거든요. 참!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이 있을까 말씀드리자면, 자전거 여행은 두 달 반 후 영국에서 무사히 끝났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작가로서 활동하고 계신데요. 이 책을 준비하시면서, 멀티 아티스트 작가로서 활동하던 경험이 소설을 집필하며 많은 도움은 되었을지가 궁금합니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로서의 경험 때문에 오히려 혼란스러웠던 것 같기도 해요. 미디어 작업을 할 때는 의도적으로 내러티브를 해체하거나, 겹겹이 층위를 쌓아서 빈 공간처럼 보이는 부분들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관객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곳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그들이 오히려 길을 잃고, 새로운 질문을 찾아서 돌아가기를 바라는 거죠. 모든 미디어 아트 작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 작업은 그런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를 쓸 때는 미디어 작업과는 약간 다른 결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디어 아트처럼 콘텍스트와 이미지, 사운드, 설치 미술 등을 겹겹이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텍스트로만 세계를 구축하고 그곳으로 여러분을 초대해야 하죠. 또한 독자가 책을 집어들 때의 기대하는 바가,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설 때 기대하는 바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설명해야 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듣고 충격받기도 했어요. 언제나 덜어낼 궁리만 했는데, 차곡차곡 채워 넣어 아름답게 짜맞추는 것의 미학(?)을 알게 된 것이죠. 두 가지 모두 굉장히 매력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 아트보다는, 영상 작업자로서의 경험이 소설 집필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듯 ‘생생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보다는, 무엇을 이 장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를 선택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 이 장면이 와이드샷인지, 클로즈업인지, 이 장면에 어떤 소품들이 포함되고 누구의 어떤 행동이 조명되는지 등이요. 캐릭터들의 심정이나 생각에 대한 서술이 필요할 때, 내면 묘사보다는 감각으로 느껴지는 주변 환경을 통해 이를 드러내려고 노력한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으신지와 작가님의 개인적인 꿈이 궁금합니다.


저는 만들고 싶은 것이 언제나 확고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상하고 따뜻하고 웃기고, 결국은 이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하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왜냐하면 현실은 이미 너무 차갑고 매정하니까요! 예민하고 외롭고 다소 부정적이었던 어린 인경이는 책을 읽으며 세상을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고, ‘원래 그런 세상이야!’ 하고 빈정대기보다는 사랑의 가능성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죠. 저도 누군가의 마음 속에 약간의 따뜻함을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어요.


물론 언제나 그 방향성을 지킬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그러려고 노력 중이에요.


제 꿈은 이미 이루어졌어요. 방금 위에서 말한 무언가를 만들며 살아가는 삶이지요. 앞으로도 계속 즐거움을 잃지 않고, 더 웃기고 따뜻한 세상을 위한 무언가 창작하며 살고 싶어요.


약간의 세속적 욕망이 섞인 꿈을 말하자면, (좋은 방향으로) 제 작품이 엄청나게 유명해져서 널리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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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