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맨 밑바탕을 찾는 과학을 제대로 펼쳐 보이는 이야기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초의 물질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어떻게 모이고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면 세상이란, 인생이란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글ㆍ사진 곽재식(작가)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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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쿼크』

김현철 저 | 계단


세상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대체 무엇일까?


사람의 몸은 세포라는 작은 생물의 조각이 아주 많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 그 숫자는 대략 30조 개에서 40조 개 사이다. 수십조 개나 되는 세포들이 어떤 모양으로 붙어 있는 덩어리냐에 따라서 사람의 모습과 개성은 달라진다. 팔 근육에 세포들이 많이 붙어 있으면 힘이 센 사람이 되고, 간에 세포 숫자가 부족하면 술에 약한 사람이 된다. 사람을 한눈에 반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포들이 어떤 모양을 이루며 서로 붙어 있느냐 하는 문제다.


그 하나하나의 세포는 여러 가지 물질이 조합되어 만들어져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주성분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이라면 역시 단백질일 것이다. 단백질이라는 물질은 세포의 주재료이기도 하고 세포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만드는 화학 반응의 원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람이 술을 마시면 간 세포에서 알코올을 분해해 주어야 하는데, 그 말은 알코올 분해 효소라고 부르는 독특한 단백질이 간 세포 속에 있어서 그 단백질이 알콜과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포가 대체로 단백질로 되어 있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대략 줄잡아 보자면 수억 개에서 수 십억 개 정도의 단백질이 모여 하나의 세포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단백질은 여러 개의 원자가 붙어서 만들어진다. 단백질 하나는 수천 개에서 수만 개 정도의 원자가 붙어 있는 덩어리다. 원자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화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원소라는 기준으로 원자를 나누어 118 종가량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118 종이나 된다고는 했지만, 보통 단백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의 대부분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원자들이므로 생각보다 그 종류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다만 수천, 수만 개의 원자들이 이리저리 붙어 있는 그 모양이 무척 복잡하고 다양할 뿐이다.


단백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무생물을 이루고 있는 원자와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사람 몸의 근육을 이루고 있는 단백질의 재료가 되는 탄소는 숯덩어리 속의 탄소와 같은 탄소다. 탄소가 그냥 탄소끼리 아무렇게나 덩어리져 있으면 그냥 시커먼 숯덩어리가 되고, 탄소가 다른 질소, 산소, 수소와 규칙적으로 일정한 모양을 섬세하게 이루며 붙어 있으면 단백질이 되어 생명체의 몸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무엇과 어떻게 붙어 있느냐에 따라 쓰레기도 되고 생명체도 될 수 있는 것이지 그 원자 성분 자체에 무슨 차이는 없다. 옛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무척 어려워했다. 생명체는 무생물과는 다른 어떤 마법적인 신비가 서려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대로, 현대의 과학자들은 돌, 금속, 석유 같은 무생물 속의 원료를 뽑아내서 잘 조합해서 생명체 몸의 일부와 같은 물질을 만들어 내서 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원자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원자(atom)라는 말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근원적인 조각(atomos)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한동안 사람들은 118가지의 원자를 조합해서 세상의 모든 물건을 다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대신 그 원자를 더 작게 쪼갤 수는 없다고들 생각했다. 원자 하나의 크기는 대략 1천만 분의 1 mm 정도인데, 이 정도면 더 작게 쪼개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작아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19세기 말, 20세기 초 과학자들은 원자가 사실은 원자 중심에 있는 원자핵이라는 부위와 그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전자라는 물질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그중 무게를 비교했을 때 훨씬 커 보이는 것은 원자핵이다. 가장 가벼운 원자핵이라고 하더라도 전자에 비해서는 거의 2000배나 무겁기 때문에 원자의 무게 대부분은 원자핵의 무게다. 그렇다는 말은 원자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단백질 무게의 대부분도 원자핵의 무게고, 단백질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세포의 무게, 세포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사람의 몸무게도 결국은 그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그 많은 원자핵들의 무게라는 뜻이다.


그 후 20세기 초 과학자들은 원자의 중심에 있는 원자핵이 다시 중성자와 양성자라는 더 작은 두 가지 물질이 모여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탄소의 원자핵은 여섯 개의 양성자와 여섯 개의 중성자가 모여서 붙어 있는 것이다.


많은 뛰어난 과학자들은 여기까지 알아낸 후 바닥까지 다 알게 되었다고 짐작했다. 즉 세상 모든 물질은 전자와 양성자, 중성자, 세 가지 물질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 것이다. 마침 전자는 (-) 전기를 띄고 있고, 양성자는 ( ) 전기를 띄고 있고, 중성자는 전기를 띄고 있지 않아서, 무엇인가 음과 양이 어울려 세상이 만들어져 있고, 음양이 합쳐진 중성도 있다는 듯한 조화로운 느낌도 풍겼다. 실제로 닐스 보어 같은 과학자는 원자에 대해 연구하면서 중국의 음양 이론에 관심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1970년대, 말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11월 혁명”이라고 부르는 몇 가지 발견이 이어지는 사건을 거친 후, 과학자들은 그 양성자와 중성자조차도 더 작은 무엇인가가 모여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이 바로 쿼크라는 물질이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세 개의 쿼크가 붙어 있는 덩어리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쿼크에는 두 종류가 있어서 각각 위 쿼크와 아래 쿼크라고 한다. 양성자는 위 쿼크 두 개와 아래 쿼크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이고, 중성자는 아래 쿼크 두 개와 위 쿼크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이다. EXID 노래 중에 ‘위 아래’라는 곡이 있는데, 이 노래의 후렴 부분에 나오는 춤을 나는 양성자 춤이라고 부른다. “위 아래 위 위 아래”라는 가사에서 앞에서 셋만 보면 양성자가 위 쿼크 둘과 아래 쿼크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 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1970년대 이후 지금껏 그 쿼크가 더욱더 작은 무엇인가가 모여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대신 쿼크와 같은 세상의 가장 기초가 되는 물체의 성질을 계산해 낼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 방법을 양자장이론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주로 접하는 세상 대부분의 일은 양자장이론에 따라 쿼크와 전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라고 부를 수도 있다. 만약 쿼크가 어떤 성질을 갖고 있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변화해 갈지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생겨 났고 어떻게 되어 갈 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들은 꼭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깊은 생각에 빠질 때 돌이켜 볼 만한 사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거리들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며 설명하기에 김현철 교수의 신작 『세 개의 쿼크』는 아주 충직하게 큰 길을 뚫어 주는 역할을 하는 책이다.

『세 개의 쿼크』는 세상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쿼크를 사람들이 어떻게 찾아 냈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었는지, 그 역사와 과정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이러한 발견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과학 실험과 과학의 발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전후 사정을 알려 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굳이 주변 배경 묘사 같은 것을 세세하게 하는 책은 아닌데, 그런데도 과학자들과 그 주변의 사연에 대한 이야기들이 워낙 많기에, 책을 읽다 보면 과학에 몰두하는 위대한 과학자들의 멋이나, 훌륭한 과학 연구소의 고고한 분위기가 은은히 아름답게 스며 있는 것 같은 매력도 있다.


소위 말하는 벽돌 책으로서의 묵직한 든든함이 워낙 강한 책이기도 하다. 『세 개의 쿼크』는 김 교수가 일전에 낸 『강력의 탄생』에 이어지는 속편이라고 볼 수도 있는 책이다. 『강력의 탄생』과 『세 개의 쿼크』가 소설처럼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많지 않은 독자가 본다면 『강력의 탄생』을 먼저 독파한 후에 읽어야 『세 개의 쿼크』의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 개의 쿼크』는 정말 화끈하게 과학과 과학자 이야기를 넉넉히 많은 분량으로 다룬 책이다.


정말 어떤 내용을 알고 싶어서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생각에 한 번 빠져 보고 싶어서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요즘 서점에 가 보면 “이 책은 너무 재미나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넘쳐난다”고 선전하는 책이나, “이게 유행이니 꼭 알고 넘어가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광고하는 책은 어차피 너무 많아 보인다. “술자리에서 아는 척할 때 필요한 지식을 얻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같은 것도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 지금 출판계 형편이다.


그 와중에 학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우직하게 써낸 이런 책이 간만에 눈에 뜨여 나는 무척 반가웠다. 지난 세기의 독서가들은 사색이 필요할 때 『순수이성비판』이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곤 했다는데, 그런 책들 보다야 『강력의 탄생』과 『세 개의 쿼크』 시리즈는 훨씬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한번 마음먹었을 때 도전해 볼 책으로 권해 보고 싶다.


*필자|곽재식

공학 박사이자 SF 소설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호기심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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