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시 수업] 주술이 있는 시 쓰기
김승일 시인이 주술에 의존해도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 그럼에도 계속 주술을 이용하는 사람들, 주술하는 마음, 그 창조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글 : 김승일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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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믿지 않으면서 믿거나, 믿으면서 믿지 않는 화자가 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장르다. 화자가 직접 번복하면서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믿어, 안 믿어, 믿어, 안 믿어, 이건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99% 미신을 믿더라도, 1% 확신하지 못한다면…… 신실한 종교인에게서 갑자기 방언이 터진다면? 이상한 말이 계속 터져 나온다면? 그런데 그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 속에…… 1%의 의심이 발현된다면? 그 말은 무엇일까?

 

우리는 주술을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한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예시는 이미지의 삶과 사랑을 다룬 책,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읽을 수 있다. 책의 저자 W. J. T. 미첼은 대학원 수업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한 장씩 가지고 오라고 한다. 그러곤 눈을 송곳으로 파보라고 시킨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행위를 끔찍하게 느낀다. 사진이 실제 어머니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그저 이미지일 뿐인데도, 우리는 주술적으로 거기 어떤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미지가 살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지만, 동시에 살아 있다고 여긴다.

 

시를 쓰면서 자주 처하게 되는 곤경에 대해서 말해보자. 꼭 시가 아니어도 좋다. 과제나 보고서, 기획서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 전에는 마음에 들었던 소재나 주제가 쓰고 있으면 갑자기 싫어지곤 한다. 시에서는 특히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많은 경우,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시를 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는 도중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게 정말 내 마음이 맞아? 좋은 생각 맞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주술이 있는 시 쓰기>는 그런 갈등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시의 화자로 내세우거나, 등장인물로 만들어보는 워크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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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이 있는 시 쓰기


시는 기본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이용하는 놀이입니다. 제가 자주 제 시의 화자로 등장시켰던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이 주술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과학이나 국가, 종교에서 규칙의 오류를 발견하고, 그 오류를 신고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유하여 자신의 규칙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이상한 규칙을 손수 만들어서 그걸 이용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주술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믿는 것에 너무 심취하여 남에게 피해를 끼치곤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것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지 못합니다. 믿음을 위해 타자의 삶을 망치는 규칙을 만듭니다. 종교를 만들고, 이론을 짓고, 군대를 만들고,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죽입니다. 이들 역시 주술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주술인들 역시 대부분 개인적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주술에 기대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더 좋아하는 주술인들은 주술에 의존해도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주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효과 없는 주술에 대한 사랑. 주술하는 마음. 불쌍한 마음. 저는 그 마음이 창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수업은 주술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픽션 속 등장인물들과 실제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주술에 대한 책이나 이론도 소개합니다. 그런 다음 주술인들을 화자로 만드는 방법, 주술인의 규칙을 시에 담아내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제가 아는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이 수업의 제목은 <주술이 있는 시 쓰기>입니다. 여러분은 매주 시를 써 와서 합평을 합니다. 주술인들이여. 규칙을 만듭시다. 

 

- 2021년 12월 29일에서 2월 23일까지 진행했던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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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종종 ‘이상한 말’이라고 답하곤 한다. 매번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글자로 쓰는 것이기는 하지만 비언어적인 것일 수도 있다.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래도 오늘은 시가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바로 화자다. 화자는 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말의 내용이 바뀌고 형식이 바뀐다. 내가 했던 거의 대부분의 수업은 시의 화자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다룰 것인지, 부정할 것인지에 대한 조언의 말로 이뤄졌다. 그러니까 김승일의 시 쓰기 수업은, 함께 모여서 비슷한 주제나 목표를 지니고, 각자의 방식으로 화자를 만드는 워크숍이라고 할 수 있다. <주술이 있는 시 쓰기>의 키워드인 ‘주술’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삶의 방식이다. 특히 수업 소개서에서 설명했던, “주술에 의존해도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은 정말로 매력적이다.

 

우리는 인류 최초의 주술 행위 중 하나가 동굴 벽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옛날 사람들이 동굴 벽에 소를 그려놓고 창으로 찔러대면서,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사냥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얘기 말이다. 인류학자 J. G. 프레이저는 그 사람들을 단순히 계몽되지 않은 인간으로 보았다. 그가 보기에 주술은 사실 과학과 닮은 점이 많은데, 자연을 특수한 행위를 통해 통제, 이해, 이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술은 과학과 달리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레이저의 주장에 반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주술이 단순히 미개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주술인들이 세상을 과학적으로 보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기적”으로 바라보았다고 썼다. 예를 들어 하늘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든 우리가 하늘 자체에서 경이를 느끼는 것과 같다. 게다가 주술인들이 실제로 주술 행위와 현상의 인과관계를 믿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앞서 나는 시를 쓰기 전에 떠올린 아이디어가, 의심 속에서 좌초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좌초의 과정이 한 편의 시가 된다면? 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자가 화자로 등장한다면?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8번의 연재 동안, 과거에 내가 썼던 시 쓰기 수업의 소개글을 함께 읽어보려고 한다. 내가 나중에 만들고 싶은 수업의 계획서를 미리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수업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일어날 것 같은지)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내가 했던 시 쓰기 수업은 거의 항상 뚜렷한 주제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조금은 웃기고, 가끔 진지하기도 하고, 자주 터무니없었다. 솔직히 어떤 수업은 끝난 지 오래되어서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약간은 얘기가 산만하게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동료 시인들이나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이 내게 자주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얘기를 듣고 있으면 시를 쓰고 싶어진다고 했다. 시 얘기를 할 때 내가 너무 즐거워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신도 곧 시가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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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W. J. T. 미첼> 저/<김전유경> 역

출판사 |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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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데뷔. 시집으로 『에듀케이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항상 조금 추운 극장』, 산문집으로 『지옥보다 더 아래』가 있다. 2016년 현대시학 작품상. 2024년 박인환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