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작가의 책장
25년 상반기를 『혼모노』로 뜨겁게 달군 성해나 작가가 한여름에 어울리는 B급 영화와 보사노바를 추천합니다.
글 : 성해나
20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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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계』

장아이링 저/문현선 역 | 민음사

 

책을 덮은 뒤 생각했다. 여름에 읽어서 다행이다, 겨울에 읽었으면 너무 쓸쓸했을 텐데. 장 아이링의 소설은 피부에 먼저 닿고 그 후 심장에 닿는다. 아마 사랑과 고독에 관한 명징하고도 저릿한 묘사 때문이 아닐까. 얇은 비단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부드러운 감촉이 아닌 –묘하게도- 서늘한 통증만 남는다. 그 멍이 다 가실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린 아픈 작품이었다.  




B급 영화 

 

B급 영화를 좋아한다. 나의 삐딱한 취향을 제대로 건드린달까. 진지함을 비껴가는 과장된 연출, 완성도보다는 열정을 앞세우는 뜨거움도 좋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패기 때문인지 여름에는 B급 영화가 더 끌린다. -이게 이열치열 아니겠는가- 존 카펜터의 <보디 백>, 주성치의 <희극지왕>, 저메인 클레먼트의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는 꼭 보셨으면. 

 



『왜 우니?』

소복이 글그림 | 사계절

 

어느 서점에서 북토크를 하던 날, 옛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렸다. 나도 독자들도 센티멘털해 있는데, 서점 한 편에 진열되어 있던 책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왜 우니?’ 북토크가 끝나고 한 독자분께서 이 책을 선물해 주셨고, 집으로 돌아와 읽었다. 소복이 작가의 책은 다정하고, 그 다정함이 참 고맙다. 그 밤의 눈물이 주책맞고 성숙하지 못하다고 여겼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가셨다. ‘사람과 고양이와 개미가 위로해 줘서 울어’ 내 슬픔을 닦아준 건 이 책일 수도 있지만, 그 밤의 독자분들일 수도 있다.  

 



보사노바

 

여름만큼 보사노바가 어울리는 계절이 있을까. 일어나서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판을 튼다. 아침이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다. 한국 가요 중에도 보사노바풍의 음악이 많다. 정미조의 <7번 국도>나 손진태의 <이 계절이 가기 전에>를 듣다 보면 오후가 별 탈 없이 지나간다. 밤이 되면 밥 브룩마이어가 보사노바로 편곡한 곡들을 들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음악만으로 여름 한나절이 풍요로워진다.  

 


 

『노상관찰학 입문』

후니모리 데루노부, 미나미 신보 저/아카세가와 겐페이 편/서하나 역 | 안그라픽스

 

이런 더위에는 바깥을 누비는 것보다 소파에 누워 산책자들의 탐방기를 읽는 게 더 좋다. 그들과 동행하는 기분으로. 단순히 산책하는 기분만 느끼게 해주는 책은 결코 아니고, 계단 타일 얘기를 하다 외계인으로 느닷없이 신학개론으로 넘어가는 어마무시한 관찰자들의 대담이다. 그 때문에 누워서 읽다 몇 번이나 일어섰다. ‘아니, 갑자기?’ 나 정도면 섬세한 관찰자라고 여겼는데 이들에 비하면 나는 그저 ‘흉내만 내는 놈’이 아닐까. 맨홀 하나에서도 뜻을 찾는 이들의 관찰기를 읽다 보면 나가서 뭐라도 발견하고 싶다는 기분 좋은 조바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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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니?

<소복이> 글그림

출판사 | 사계절

색, 계

<장아이링> 저/<문현선> 역

출판사 | 민음사

노상관찰학 입문

<아카세가와 겐페이> 편/<후지모리 데루노부>,<미나미 신보> 저/<서하나> 역

출판사 |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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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혼모노』, 경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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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이링

소설가이자 산문가, 영화작가.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명문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조부는 청나라 관료였고 조모는 청 말기 양무운동을 주도한 리훙장(李鴻章)의 딸이었지만, 두 살 때 어머니의 유럽행 유학을 시작으로 부모의 이혼, 계모와의 불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겪었다. 1938년 런던대에 1등으로 합격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유학을 포기하고 홍콩대에 입학한다. 하지만 1941년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이듬해 상하이로 돌아와 「첫번째 향로(第一香爐)」「경성지련(傾城之戀)」「붉은 장미와 흰 장미」 등의 작품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44년 장아이링은 친일파 관료에 나이차도 많이 나는 후란청(胡蘭成)과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1947년 그녀의 짧은 결혼생활은 끝이 났고, 1952년 홍콩을 거쳐 1955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56년에 재혼했지만 1967년 남편과 사별하고, 이후 줄곧 혼자서 살다 1995년 9월 미국 LA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최근에 타이완 여행기를 담은 그녀의 유작 「충팡볜청(重訪邊城)」이 공개되어 또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집 『전기(傳奇)』와 장편소설 『연환투(蓮環套)』,『열여덟의 봄(十八春)』,『앙가(秧歌)』,『붉은 땅의 사랑』 등이 있으며, 산문집 『유언(流言)』이 있다. 1994년 타이완의 황관출판사에서 『장아이링 전집』 전 15권이 출간되었으며, 소설 <원녀>, <반생연>, <레드로즈화이트로즈> 등으로 영화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