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일 재능 있는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폴란드 바르샤바로 모였다. 제19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5년마다 개최되는 프리데리크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국제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권위있는 음악 콩쿠르 중 하나다.
특히, 쇼팽 피아노 콩쿠르는 피아노 콩쿠르 중 단연코 최고의 위상을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는 단숨에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며, 주요 음반사와의 계약, 국제 페스티벌 초청, 전 세계 투어 등 눈부신 커리어의 문을 열게 된다. 故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라파우 블레하츠, 그리고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까지 모두 쇼팽 콩쿠르가 배출한 스타다.
이번 제19회 쇼팽 콩쿠르 본선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는 84명이며 그중 4명이 한국 연주자이다. 한국 피아니스트인 이혁, 이효 형제가 현재 3차 라운드까지 진출하여 연주를 마치고 결선행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3차 라운드(14~16일)에서는 결선 진출자 12명을 가리며, 결선은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치러진다. 그리고 우승자는 21일 새벽(한국시각)에 발표될 예정이다.
오늘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기다리며, 쇼팽 콩쿠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피아노 올림픽 같은 쇼팽 콩쿠르 무대
이 콩쿠르는 폴란드의 국가적인 행사이기도 해서, 대회 기간 동안 바르샤바는 말 그대로 ‘쇼팽의 도시’로 변한다. 도시 곳곳에서 쇼팽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시상식에는 폴란드 대통령과 문화부 장관이 참석한다. 쇼팽에 대한 폴란드의 사랑은 지극한데, 폴란드의 국제 공항의 이름이 바르사뱌 쇼팽 공항인 것만 봐도 그 애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폴란드 사람들에게 쇼팽은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국민의 사랑과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기에 폴란드 국민의 쇼팽 콩쿠르에 대한 관심은 엄청나다.
경연 현장은 마치 올림픽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데, 세계 각국의 기자, 음반사 및 공연관계자들이 바르샤바로 모여 우승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본선과 결선, 그리고 입상자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연의 티켓은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되고, 바르샤바 필하모니홀 앞에는 현장 티켓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늘어선다. 모든 경연 무대는 폴란드 TV와 라디오는 물론,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서도 생중계되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올림픽 중계를 보듯 밤을 새워 참가자들의 연주를 지켜본다.
쇼팽 콩쿠르는 특전도 막강하다. 이번 대회에서는 1위 수상자는 6만 유로와 금메달을, 2위는 4만 유로와 은메달을, 3위는 3만 5천 유로와 동메달을 받는다. 4위, 5위, 6위 수상자에게는 각각 3만 유로, 2만 5천 유로, 2만 유로의 상금이 주어진다. 결선에 진출했으나 입상하지 못한 참가자들에게도 8천 유로의 상금이 수여된다. 대회가 끝나면 우승자를 비롯한 입상자들은 유럽, 아시아, 미국 등지에서 월드투어를 갖는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특전은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 그 자체일 것이다. 우승과 동시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발돋음하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재도전하는 연주자들이나, 다른 콩쿠르에서 수상하고서도 쇼팽 콩쿠르에 도전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번 콩쿠르에 참가하는 피아니스트 이혁은 2021년 쇼팽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바 있고, 2022년에는 롱티보 콩쿠르 공동 1위를 수상했다. 에릭 루 또한 2015년 쇼팽 콩쿠르 4위에 오른 후, 2018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 후 다시 2025년 쇼팽 콩쿠르에 참가 중이다.
한편, 쇼팽 콩쿠르는 우승자를 내지 않기도 하는데 심사위원들은 결선에서 기준에 부합하는 피아니스트가 없을 경우, 우승자를 내지 않고, 1등을 공석으로 두기도 한다. 1990년, 2010년 대회에서는 1등을 내지 않았다. 그만큼 쇼팽 콩쿠르는 까다로운 무대 중 하나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쇼팽 스페셜리스트 찾기
쇼팽 콩쿠르는 다른 국제 콩쿠르와 달리 오직 쇼팽의 작품만을 연주해야 한다. 예선부터 결선까지 모든 라운드가 쇼팽의 음악으로만 구성되며, 참가자들은 소나타, 발라드, 스케르초, 마주르카, 녹턴, 에튀드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작곡가의 세계를 완전하게 탐구한다.
본선 1차 라운드는 쇼팽의 에튀드 중 1곡, 녹턴 중 1곡, 왈츠 중 1곡, 그리고 발라드·뱃노래·환상곡 중 한 곡을 골라 무대에 오르며, 2차 라운드에서는 쇼팽의 프렐류드 중 6곡, 폴로네이즈 1곡를 포함시켜 40-50분 분량의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무대에 오른다. 3차 라운드에서는 쇼팽의 소나타 중 1곡, 마주르카를 포함하여 45-55분 분량으로 연주하게 되며, 결선에 진출한 12명의 참가자는 쇼팽의 협주곡 중 하나(1번 또는 2번)를 연주하는데 올해는 폴로네이즈 환상곡이 지정곡으로 추가됐다.
따라서 이 콩쿠르의 무대에 선다는 것은 단순히 피아노 실력을 겨루는 일이 아니라, 쇼팽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콩쿠르 심사위원단도 또한 쇼팽 전문가들로 꾸려지는데, 과거 쇼팽 콩쿠르 수상자, 교육자, 쇼팽과 작품 및 삶에 대한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이렇다 보니, 쇼팽 콩쿠르 우승자는 이후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데, 실제로 많은 역대 수상자가 이후에도 쇼팽 리사이틀과 녹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관전 포인트
전 세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펼치는 경연이기에, 새로운 연주자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물론, 앞으로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 나갈 차세대 스타를 미리 만나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대회는 전 곡이 쇼팽의 작품으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그의 거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연주자마다 다른 해석, 음색, 스타일을 비교하며 듣는 즐거움도 있다.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기 때문에 채팅 창으로 전 세계의 언어로 응원하고 소통하는 것도 재미있다. 또한 참가자들은 매 라운드마다 자신이 연주할 피아노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데, 스타인웨이, 야마하, 가와이, 베흐슈타인 등 대회의 공식 피아노 브랜드 중에서 고를 수 있다. 같은 곡이라도 어떤 피아노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음색이 달라질 수 있으니 이 부분 또한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되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오는 21일, 새로운 클래식 스타의 탄생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쇼팽 콩쿠르는 단순히 우승자를 기리는 경연을 넘어, 전 세계의 피아니스트와 관객들이 하나로 모여 쇼팽의 음악으로 소통하는 진정한 축제이자 예술의 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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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점원 (뉴스레터 '공연장 옆 잡화점')
클래식 공연 기획사 '크레디아'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클래식 공연 기획자들이 직접 무대 비하인드 스토리와 음악,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