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그렇게 엄마가 되는 여자들 (2)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된 ‘그녀’에 대하여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밤이 깊어질 때까지 불도 켜지 않은 채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딱 하루만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게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에 에바가 케빈을 끌어안으며 영화가 끝났다는 것이 미미한 온기, 희미한 빛처럼 느껴졌다.

한몸의시간

 

저녁 무렵, 해가 저물어갈 때 <늑대아이>를 생각하며 좀 외로웠다면 어둠이 완연히 내려앉은 밤에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떠올라 침울해졌다.

 

옆 사람과 같이 <케빈에 대하여>를 본 건 2012년 여름이었다. 영화에 대한 정보라곤 좋아하는 틸다 스윈튼이 주연을 맡았다는 것과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꽤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평 정도였다.


평일 낮이라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 앉은 채 관람했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팔뚝에 돋은 소름을 몇 번이나 쓸어내려야 했다. 내게 그 영화는 모성애나 사이코패스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지만 하드고어에 가까운 공포영화였다.


극장에서 나와 카페에 자리 잡은 우리는 한동안 다른 얘기만 나누었다. 그리고 팔뚝의 소름이 완전히 가라앉았을 때쯤 이 문제적 영화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천천히 털어놓았다. 내 눈에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에바는 조용하고 자기애가 강하고 자유를 갈망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사람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가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된 여자, 그래서 엄마가 될 준비나 모성애 모두 결여된 여자로 보였다. 나는 겁에 질리고 공허한 눈동자로 아이를 응시하는 그녀를 이해했다가 책망했다가 가여워했다.


영화의 원제가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지만 그건 에바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훨씬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케빈이 처음부터 괴물이었거나 엄마에게 존재를 거부당하고 사랑받지 못해서 괴물이 되었거나, 괴물이 된 아이를 본다는 건 고역이었다.  

 
나는 공포영화라고 생각했지만, 틸다 스윈튼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엄마와 아들의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답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했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불도 켜지 않은 채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딱 하루만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게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에 에바가 케빈을 끌어안으며 영화가 끝났다는 것이 미미한 온기, 희미한 빛처럼 느껴졌다.




[관련 기사]

- 그렇게 엄마가 되는 여자들 (1)
- 교집합의 세계
- 달콤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 완전한 고독을 원했던 시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3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오늘의 책

장재현 감독의 K-오컬트

2015년 〈검은 사제들〉, 2019년 〈사바하〉, 2024년 〈파묘〉를 통해 K-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장재현 감독의 각본집. 장재현 오컬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리지날 각본은 영화를 문자로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독자를 오컬트 세계로 초대한다.

위기의 한국에 던지는 최재천의 일갈

출산율 꼴찌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재생산을 포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최재천 교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펴냈다. 갈등을 해결할 두 글자로 숙론을 제안한다. 잠시 다툼을 멈추고 함께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아요, 함께 해요 채식 테이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의 첫 번째 레시피 책. 한식부터 중식,일식,양식,디저트까지 개성 있는 101가지 비건 레시피와 현실적인 4주 채식 식단 가이드등을 소개했다. 건강 뿐 아니라 맛까지 보장된 비건 메뉴들은 처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할 말, 제대로 합시다.

할 말을 하면서도 호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계,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다뤄온 작가 정문정은 이번 책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을 전한다. 편안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대화법, 말과 글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방식을 상세히 담아낸 실전 가이드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