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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인가 일제의 프락치인가

독립운동과 친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군상을 다룬 영화 <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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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은 대개 이 시기의 모더니즘적인 분위기를 많이 차용해왔을 뿐 독립운동이나 애국심 등을 중심 주제로 다루는 것을 어쩐지 어색해하곤 하였다. (2018.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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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밀정>에서. 이정출(송강호 분), 하시모토(엄태구 분), 김우진(공유 분)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자부심보다 가난이 부끄럽다’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사실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일제에게 핍박받고 고통 받으면서도 꾸준히 한반도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타전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독립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동안 우리 사회는 독립운동가의 공을 기리고 감사해하기보다는 외면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영화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영화계에서 독립운동을 정면에서 다룬 예는 많지 않았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은 대개 이 시기의 모더니즘적인 분위기를 많이 차용해왔을 뿐 독립운동이나 애국심 등을 중심 주제로 다루는 것을 어쩐지 어색해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2015년 <암살>의 흥행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루어도 관객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경험치가 생기면서 이 시기의 독립운동이나 일제의 핍박을 다룬 영화들이 부쩍 늘었다.


그중 <밀정>(2016년 작, 감독 김지운)은 여러 사건과 캐릭터를 조합한 <암살>과 달리 좀 더 심도 있게 당대의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1920년대 독립운동과 친일 사이에서 갈등했던 인간 군상의 면면을 파헤치고 있다.

 

 

열사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사건

 

영화 <밀정>의 주요 모티브는 ‘황옥 경부 폭탄사건(1923년 경기도 경찰부 소속 경부인 황옥이 의열단 단원과 합심해 일제 주요 기관을 파괴하기 위한 폭탄을 중국에서 국내로 반입했다가 발각된 사건)’이지만 그에 앞서 도입부에 김상옥(金相玉, 1890~1923) 열사의 의거를 영화적으로 재가공하여 보여주고 있다. 영화 서두에서 독립운동가 김장옥(박희순 분)은 군자금을 마련하려다가 친일 부호가 쳐놓은 함정에 빠지고, 일경과 극한 대치를 벌이다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군자금 마련 부분은 다소 다르지만 극중 인물 김장옥이 일제와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싸우다가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실제와 유사하다.


김상옥 열사는 3ㆍ1 운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1919년에 일어난 3ㆍ1 운동은 그야말로 계급과 지역, 성별을 초월한 범국민적 독립운동이었고 왕권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민권 중심의 국가관을 가지는 계기가 되는, 우리 민족사에서 참으로 큰 사건이었다. 이 3.1 운동을 계기로 민족적 자각과 단결의 의미를 깨닫게 된 사람들이 속속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는데, 김상옥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20년 그는 서울에서 혁신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독립사상을 계몽ㆍ고취하는 한편, 일제 주요 인사의 암살을 기도하였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총독 암살을 계획했지만 일경에 동지들이 발각되자 국외에서 힘을 기르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 상해로 망명하였다. 이때 그는 김원봉(金元鳳, 1898~1958: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한 독립운동가)을 중심으로 결성된 의열단(義烈團: 1919년 11월 9일,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비밀결사)에도 참가하였다.


김상옥은 군자금을 모으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1923년 다시 한 번 총독 암살 계획을 실행하려고 국내에 들어온다. 그러나 김상옥과 그 동지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상해 주재 일본경찰의 통보로 일제가 경계를 강화하자 총독 암살은 여의치 않게 되었다. 대신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핍박한 대표적인 기관이었다. 이 사건으로 종로경찰서는 아비규환이 되고 김상옥은 일경에 신분이 드러나 쫓기는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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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옥 열사(출처: 김상옥 열사 기념 사업회)

 

 

<밀정>에서 김장옥이 단신으로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총격전을 벌이며 지붕을 넘나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김상옥의 도피 과정도 그러하였다고 한다. 이 도피 과정에서 김상옥은 주요한 일경을 사살하는 등 마치 시가전 같은 전투를 벌인다. 사안이 이에 이르자 일경은 김상옥을 잡기 위해 1000여 명을 동원하여 그를 쫓았다. 김상옥이 아무리 신출귀몰했다지만 1대 1000은 중과부적이었다. 영화에서 김장옥이 권총으로 자결하는 것처럼, 김상옥은 마지막 남은 탄환 한 발을 가슴에 겨누고 벽에 기댄 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자결, 순국하였다. 그때 나이 34세였다. 영화에서 김장옥이 동상으로 엄지발가락 하나를 잃었다고 나오는데 실제 김상옥도 일경과 싸우면서 동상을 얻어 엄지발가락을 잃었다고 한다. 김상옥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의 시신을 찾았을 때 그의 몸에는 11군데의 총상이 있었다.


김상옥의 마지막 총격전을 중학생 시절 목격한 화가 구본웅(具本雄)은 자신의 시화첩에 감동적인 시와 당시의 광경을 담은 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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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웅이 김상옥 열사의 순국을 목격한 장면을 그린 그림과 시(출처: 김상옥 열사 기념사업회)

 


<밀정>과 ‘황옥 경부 폭탄사건’

 

영화의 제목인 ‘밀정’은 첩자와 동의어로 취급되는데 ‘비밀리에 남의 사정을 살핀다’는 뜻이다. 간첩과 같은 말이지만 밀정은 특별히 일제 강점기의 첩자를 부를 때 주로 쓰인다. 일제는 독립운동을 궤멸시키기 위해 다수의 밀정을 독립운동조직에 심었다. 밀정은 비밀리에 일제의 명령을 받은 한국 사람이었다. 그들은 독립운동가들 틈에 숨어들어 독립운동의 동향을 일제에 보고하고 나아가 독립운동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였다.


영화 <밀정>의 모티브가 되는 ‘황옥 경부 폭탄사건’에서 이 황옥이란 인물이 과연 밀정인가 아닌가가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황옥이라는 인물을 모델로 이정출(송강호 분)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만들었다. 영화 속 이정출의 행보는 실제 황옥의 행보와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황옥(黃鈺, 1885년~?)은 경기도 경찰부에서 경부(警部)로 근무하던 중 의열단 단원인 김시현과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의한다. 영화에서 이정출이 김우진(공유 분)을 통해 김원봉(이병헌 분)을 만난 후 갈등 속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과정도 황옥과 유사하다. 영화에서는 이정출이 김장옥의 친구로 과거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심하여 일본 경찰이 되었다고 하였지만 이는 실제와 다르다. 황옥은 1919년을 전후해 중국을 드나들면서 독립운동가들 틈에서 밀정을 했던 전력이 있었고 1923년 당시 그 공을 인정받아 일제의 경찰에 발탁되었다. 다만, 황옥이 텐진(天津)에서 김원봉을 만나게 된 계기가 1923년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중국 출장이었다 하니, 김상옥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영화의 주제가 된 사건은 일제의 기관을 파괴하고 일제 요인과 친일파를 암살하기 위한 무기를 국내로 반입하는 일이었다. 황옥은 의열단으로부터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받아 권동산ㆍ김시현ㆍ김재진 등 단원들과 함께 신의주를 거쳐 서울까지 이를 운반하였다. 의열단은 이 무기를 이용해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결행하려 했지만 김재진의 배신으로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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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3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황옥 경부 폭탄사건’ 재판에서 황옥(왼쪽)과 김시현.

 

 

이 사건은 체포 직후부터 일제의 현직 경찰인 황옥이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으로 이슈가 되었다. 그가 과연 독립운동을 했는지, 그의 전력을 볼 때 독립운동가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밀정으로 들어갔는지가 당시에도 논란이 된 셈이다. 그를 밀정으로 본 것은 재판 과정에서 황옥 스스로 자신을 밀정으로 증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옥이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의 동향을 정탐해 일제에 보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황옥의 이러한 증언은 고육지책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스스로 밀정이라고 거짓 증언을 해서 형량을 줄이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와 함께 행동한 김시현이나 김원봉 등도 사건 이후 그를 배척하지 않고 동지로 대우한 것을 보면 진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에서는 이정출이 스스로 밀정이라고 고백하고 형량을 줄여 출소한 후 의열단이 반입한 폭탄을 이용해 무장투쟁을 한다고 나오지만, 실제 황옥이 그러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황옥은 출옥 후 별다른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일경에 다시 들어갈 길은 물론 막혔지만, 그렇다고 뚜렷하게 독립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여전히 독립운동가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황옥은 해방이 되자 미군정기 경무총감으로 근무하면서 반민특위에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파주에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불굴의 독립운동가, 비운의 삶 김시현

 

한편 이정출과 함께 국내로 무기를 반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우진(공유 분)의 모델이 된 김시현(金始顯, 1883~1966)은 그 삶이 매우 남달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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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김시현을 모델로 한 <밀정>의 김우진(공유 분).

 

 

안동 출신인 김시현은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지식인으로 1919년 3ㆍ1 운동 이후 만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의열단에 입단하여 무장투쟁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황옥 경부 폭탄사건’의 주모자로 체포, 10년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출소 후 김시현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의 생도들을 모집하는 북경 지역 책임자가 되었는데 이때 이 학교에 민족시인 이육사가 1기생으로 입교하기도 하였다. 김시현은 불굴의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 6회, 19년간의 복역을 거치면서도 결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한 김시현은 해방 정국 초기에는 귀환 동포와 국외 동포를 원호하고 구제하는 활동을 하면서 해방된 새 나라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간 국제 정치 속에서 한반도의 분단이 확실시 되자 이를 바로 잡아 보고자 정치에 투신하여 1950년 안동에서 제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제 2대 국회는 한국전쟁의 발발로 불과 일주일밖에 열리지 못했고 김시현의 국정 활동도 여기서 그친다. 


김시현은 1952년 의열단 단원으로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유시태와 함께 돌연 이승만 대통령의 암살을 꾀하다가 총알이 불발되어 실패하였다. 이승만이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위하기는커녕 민간인을 학살하고 독재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본 김시현이 그를 제거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유시태였고 배후의 인물은 김시현이었다. 당시 유시태의 나이는 62세였고 김시현은 6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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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발생 후 용의자로 체포된 유시태.

 

 

이 사건으로 김시현은 사형을 언도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는데 8년여의 수감 생활 이후 1960년의 4ㆍ19혁명으로 석방되었다. 1960년 제 5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1961년 5ㆍ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정치에 대한 뜻을 접고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는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여전히 활보하는 세상을 개탄하였다고 한다.


김시현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불굴의 삶이었다. 이렇게 그는 한평생을 독립운동과 반독재 투쟁에 몸을 던졌으나 이승만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으로 현재까지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지 못한 비운의 인물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스스로의 삶을 돌보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핍박받던 민족의 역사는 광복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친일파의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그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새로 부상하는 세력들과 합종연횡하는 동안 자신과 가문을 희생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고의로 잊혔거나 세월에 가려졌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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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미(영화 시나리오 작가)

이화여자대학교 국사학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박사 과정 수료. 현재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 『한 번에 읽는 역사인물사전』, 『한 번에 보는 세계인물사전』, 『천추태후』, 『세계사, 여자를 만나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 『한국사 영화관』 등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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