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발랄 문학 청년의 축구사랑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이세준 군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대사전』에는 축구, 수비수, 골키퍼, 축구부 등 축구에 관한 어휘가 제법 많이 등장한다. 특히, 축구부에 대해서 ‘축구부가 축구를 잘한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설명을 달아놓았는데...
200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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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아는 ‘사면초가’의 뜻은 사면이 모두 적에게 포위되거나 고립된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레출판사에서 나온 패러디 사전인 『학교대사전』에서는 ‘사면초가’를 일러 ‘주변에 애들이 모두 잠들어서 내가 선생의 눈에 잘 띄게 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대머리’를 가리켜 ‘유난히도 학교 선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헤어스타일. 형광등 빛이 넓은 이마에 반사되어 학생들의 이목을 끌게 되기 때문에 유행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썼기에 이렇게 재기 발랄한 언어들로 학교생활을 묘사하고 있을까. 학교 안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이런 톡톡 튀는 소재를 잡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짐작대로 『학교대사전』의 저자들은 지금은 새내기 대학생이지만 집필 당시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학교대사전』을 처음 쓰기 시작한 이세준 군은 엠브로스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긴장감 넘치고 고단한 고3 교실에서, 이세진 군은 판촉용으로 받은 노트에 학교생활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을 패러디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터라 공부하는 틈틈이 머리를 식힌다고 생각하며 했던 작업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읽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거웠다.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작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이세진 군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뒤트는 해방감을 안겨주는 모두의 작업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3 교실에서 친구들과 돌려보던 비밀 일기 같은 『학교대사전』이 어떻게 책으로 출판되어 나올 수 있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이세진 군은 디지털이용기회지수 1위의 나라 대한민국 학생답게 인터넷의 힘을 꼽았다.
“일 년간 학교생활의 애환을 기록한 노트를 그냥 묵히기 아쉬워서 졸업할 때 제본으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타이핑을 해보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 뭡니까. 저는 그 작업에 참여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아마도 타이핑을 한 친구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디시인사이드 등에 광고를 한 모양입니다. 사흘 만에 방문자 수가 십만을 돌파하며 저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요.”
주변 친구들이 공감하며 작업에 동참했듯이 전국의 학생들이 공감하며 작업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학교대사전』 홈페이지는 이제 이세진 군의 손을 떠났지만 여전히 새로운 단어들이 추가되고 있다. 홈페이지의 인기가 치솟자 책으로 출판하자는 제의가 여러 출판사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출판을 위해 분량을 늘리고, 삽화 작업을 하고, 여기저기에 소개되는 과정은 장래 소설가를 꿈꾸는 이세진 군에게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책이 얼마나 팔렸느냐는 질문에 그다지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며 수줍게 웃는 이세진 군. 그러나 유럽여행 갈 만큼은 팔렸다고 답한다. 올여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세진 군은 축구의 본고장이자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인 아스날팀이 있는 영국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동행할 친구의 사정으로 제외됐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이세준 군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대사전』에는 축구, 수비수, 골키퍼, 축구부 등 축구에 관한 어휘가 제법 많이 등장한다. 특히, 축구부에 대해서 ‘축구부가 축구를 잘한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설명을 달아놓았는데 덧붙여놓은 보기가 걸작이다.
「<보기> 필자의 학교에서는 축구부가 야구부와의 축구 시합을 하여 지는 바람에 폐부되었다.」(『학교대사전』 중에서)
기말고사 기간이라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축구를 보느라 지난밤을 꼬박 샜다는 이세준 군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는 아스날팀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의 외국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유럽축구에 관심을 두는 축구팬들이 많아졌다.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이영표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 등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왜 굳이 우리나라 선수가 속해 있는 팀도 아닌 아스날의 팬인가라는 질문에 이세준 군은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실은 그로 인해 팬 생활에 애로가 많다고 토로한다.
“아스날의 매력이라고 하면 경기 흐름을 스피디하게 전개한다는 점이 있어요. 하여간 친구들은 거의 맨체스터나 토트넘을 응원하거든요. 아스날을 응원한다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좀 튀는 일입니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로 이적했을 때 저는 빌고 또 빌었지요. 제발 아스날과의 경기에는 나오지 마라, 나오더라도 좀 잠잠해줘라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제 소망을 무시하고 지난 4월 10일 아스날과 맨체스터의 경기에 박지성 선수가 오랜만에 선발로 나왔지 뭡니까. 거기다가 한 골을 넣었으니 박지성 선수한테는 최고의 일이었지만 아스날 팬으로서는 아쉬움이 남았지요.”
남들 공부하느라 정신없을 때 학교 현실을 이리저리 비틀어 보던 이세준 군답게 남들 다 응원하는 팀보다는 좀 더 남다른 팀의 팬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내친김에 축구 팬의 입장에서 문화와 인종이 다른 전 세계 사람들을 공 하나로 열광시키는 축구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질문했다.
“다른 운동과 다르게 축구에는 그리 어려운 규칙이 없습니다. 오프사이드 뭐 이런 간단한 규칙만 알고 그저 굴러가는 공만 따라잡으면 되는 것이 축구입니다. 골치 아픈 현대 생활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공에 몰두하며 집중할 수 있는 운동경기로는 축구가 최고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 교수님이 또 그러시더군요. 단순하면서도 원시적이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면서 우리 편을 결속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축구에 열광하는 거라고요. 그 말씀에 상당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유형이 있다. 일요일 오전 운동장을 뛰며 축구를 즐기는 조기축구팀에 속해 있는 사람이 있고, 한일전이나 월드컵 경기처럼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경기만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세준 군에게 어떤 유형의 축구를 즐기는가 묻자 자신은 몸으로 뛰는 축구보다는 눈으로 보는 축구를 즐긴다고 대답했다. 그런 면에서 축구 관련 서적을 꼼꼼히 살펴보고, 나름대로 경기분석까지 욕심을 내는 편이라고 한다. 직접 구입하지 않으면 서점에 서서라도 축구 관련 책은 빠트리지 않고 읽는 편이라고 하니 이세준 군에게 소개를 부탁해봤다.
“축구와 관련된 책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자서전류가 있습니다. 축구 선수들의 자서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지요. 하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던 선수들의 성공담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카를로스나 펠레가 이런 선수들입니다. 특히 펠레의 자서전은 축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펠레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좋은 책입니다. 두 번째로는 유럽의 유소년팀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들의 자서전입니다. 대표적으로 베컴 자서전이 있는데 그의 개인적인 면보다는 유럽 클럽축구와 선수 육성 과정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차범근 에세이 : 슈팅 메시지』나 『히딩크 자서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세준 군은 월드컵 열기 속에서 축구에 대해 좀 더 호기심을 가지는 초보자라면 에두아르노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라는 책이 적당하다고 추천한다.
“저자인 에두아르노 갈레아노가 참 박학다식한 사람인데 아쉽게도 이 책에는 번역에 빈틈이 많습니다. 올해 개정판이 나왔는데 그 책에서는 이 부분이 좀 수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마니아용으로는 『2006 월드컵 스카우팅 리포트』가 있습니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 선수들에 관한 개인적인 기록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월드컵 경기를 좀 더 분석적으로 관람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한마디로 월드컵을 위한 책이지요. 또 <베스트 일레븐> 같은 잡지도 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참고할 만한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이세준 군이 축구에 관한 가장 재미있는 책으로 꼽은 것은 단연 닉 혼비가 쓴 『피버 피치』였다. 의역하면 만화 제목 같은 ‘불타는 그라운드’쯤이 될 거라고 하는 『피버 피치』는 닉 혼비의 축구 사랑에 관한 연대기쯤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이 책은 축구에 관한 기술이나 분석처럼 축구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축구를 소비하는 팬에 입장에서 쓴 책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축구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심리적인 상태를 아주 위트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닉 혼비가 아스날 팬이라고 해서 이 책의 독자도 꼭 아스날 팬이나 프리미어리그 팬일 필요는 없습니다. 축구팬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거든요.”
이세준 군의 『피버 피치』에 대한 찬사를 듣고 있으려니 은근히 닉 혼비와 이세준 군의 유사점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아스날 팬이라는 점, 축구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상대편 선수에게 저주를 퍼부을 만한 외모는 절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래 희망이 소설가인 이세준 군과 이미 소설가인 닉 혼비의 문학적 재능에 관해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이과를 지망했던 이세준 군은 뒤늦게 자신의 적성에 따라 진로를 변경, 올해 국문과에 입학했다.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고3 교실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학교대사전』을 기록해 나간 것을 보면 아무래도 닉 혼비보다 더 유쾌한 축구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된다.
열성 축구팬에게 월드컵 시즌인 요즘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는 계절이다. 2002년에 비해서 기량이 많이 향상된 김남일 선수를 좋아한다는 이세준 군은 오늘도 경기 분석에 여념이 없다.
“잉글랜드는 8강을 갈 것 같고 독일은 예전의 스타일하고 무척 많이 달라졌어요. 훨씬 세련되었다고나 할까요. 4강까지는 갈 것 같아요. 우리요? 우리는 글쎄…”
『학교대사전』을 처음 쓰기 시작한 이세준 군은 엠브로스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긴장감 넘치고 고단한 고3 교실에서, 이세진 군은 판촉용으로 받은 노트에 학교생활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을 패러디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터라 공부하는 틈틈이 머리를 식힌다고 생각하며 했던 작업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읽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거웠다.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작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이세진 군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뒤트는 해방감을 안겨주는 모두의 작업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3 교실에서 친구들과 돌려보던 비밀 일기 같은 『학교대사전』이 어떻게 책으로 출판되어 나올 수 있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이세진 군은 디지털이용기회지수 1위의 나라 대한민국 학생답게 인터넷의 힘을 꼽았다.
“일 년간 학교생활의 애환을 기록한 노트를 그냥 묵히기 아쉬워서 졸업할 때 제본으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타이핑을 해보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 뭡니까. 저는 그 작업에 참여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아마도 타이핑을 한 친구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디시인사이드 등에 광고를 한 모양입니다. 사흘 만에 방문자 수가 십만을 돌파하며 저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요.”
주변 친구들이 공감하며 작업에 동참했듯이 전국의 학생들이 공감하며 작업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학교대사전』 홈페이지는 이제 이세진 군의 손을 떠났지만 여전히 새로운 단어들이 추가되고 있다. 홈페이지의 인기가 치솟자 책으로 출판하자는 제의가 여러 출판사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출판을 위해 분량을 늘리고, 삽화 작업을 하고, 여기저기에 소개되는 과정은 장래 소설가를 꿈꾸는 이세진 군에게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책이 얼마나 팔렸느냐는 질문에 그다지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며 수줍게 웃는 이세진 군. 그러나 유럽여행 갈 만큼은 팔렸다고 답한다. 올여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세진 군은 축구의 본고장이자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인 아스날팀이 있는 영국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동행할 친구의 사정으로 제외됐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이세준 군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대사전』에는 축구, 수비수, 골키퍼, 축구부 등 축구에 관한 어휘가 제법 많이 등장한다. 특히, 축구부에 대해서 ‘축구부가 축구를 잘한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설명을 달아놓았는데 덧붙여놓은 보기가 걸작이다.
「<보기> 필자의 학교에서는 축구부가 야구부와의 축구 시합을 하여 지는 바람에 폐부되었다.」(『학교대사전』 중에서)
기말고사 기간이라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축구를 보느라 지난밤을 꼬박 샜다는 이세준 군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는 아스날팀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의 외국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유럽축구에 관심을 두는 축구팬들이 많아졌다.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이영표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 등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왜 굳이 우리나라 선수가 속해 있는 팀도 아닌 아스날의 팬인가라는 질문에 이세준 군은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실은 그로 인해 팬 생활에 애로가 많다고 토로한다.
“아스날의 매력이라고 하면 경기 흐름을 스피디하게 전개한다는 점이 있어요. 하여간 친구들은 거의 맨체스터나 토트넘을 응원하거든요. 아스날을 응원한다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좀 튀는 일입니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로 이적했을 때 저는 빌고 또 빌었지요. 제발 아스날과의 경기에는 나오지 마라, 나오더라도 좀 잠잠해줘라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제 소망을 무시하고 지난 4월 10일 아스날과 맨체스터의 경기에 박지성 선수가 오랜만에 선발로 나왔지 뭡니까. 거기다가 한 골을 넣었으니 박지성 선수한테는 최고의 일이었지만 아스날 팬으로서는 아쉬움이 남았지요.”
남들 공부하느라 정신없을 때 학교 현실을 이리저리 비틀어 보던 이세준 군답게 남들 다 응원하는 팀보다는 좀 더 남다른 팀의 팬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내친김에 축구 팬의 입장에서 문화와 인종이 다른 전 세계 사람들을 공 하나로 열광시키는 축구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질문했다.
“다른 운동과 다르게 축구에는 그리 어려운 규칙이 없습니다. 오프사이드 뭐 이런 간단한 규칙만 알고 그저 굴러가는 공만 따라잡으면 되는 것이 축구입니다. 골치 아픈 현대 생활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공에 몰두하며 집중할 수 있는 운동경기로는 축구가 최고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 교수님이 또 그러시더군요. 단순하면서도 원시적이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면서 우리 편을 결속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축구에 열광하는 거라고요. 그 말씀에 상당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유형이 있다. 일요일 오전 운동장을 뛰며 축구를 즐기는 조기축구팀에 속해 있는 사람이 있고, 한일전이나 월드컵 경기처럼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경기만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세준 군에게 어떤 유형의 축구를 즐기는가 묻자 자신은 몸으로 뛰는 축구보다는 눈으로 보는 축구를 즐긴다고 대답했다. 그런 면에서 축구 관련 서적을 꼼꼼히 살펴보고, 나름대로 경기분석까지 욕심을 내는 편이라고 한다. 직접 구입하지 않으면 서점에 서서라도 축구 관련 책은 빠트리지 않고 읽는 편이라고 하니 이세준 군에게 소개를 부탁해봤다.
“축구와 관련된 책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자서전류가 있습니다. 축구 선수들의 자서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지요. 하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던 선수들의 성공담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카를로스나 펠레가 이런 선수들입니다. 특히 펠레의 자서전은 축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펠레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좋은 책입니다. 두 번째로는 유럽의 유소년팀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들의 자서전입니다. 대표적으로 베컴 자서전이 있는데 그의 개인적인 면보다는 유럽 클럽축구와 선수 육성 과정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차범근 에세이 : 슈팅 메시지』나 『히딩크 자서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세준 군은 월드컵 열기 속에서 축구에 대해 좀 더 호기심을 가지는 초보자라면 에두아르노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라는 책이 적당하다고 추천한다.
“저자인 에두아르노 갈레아노가 참 박학다식한 사람인데 아쉽게도 이 책에는 번역에 빈틈이 많습니다. 올해 개정판이 나왔는데 그 책에서는 이 부분이 좀 수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마니아용으로는 『2006 월드컵 스카우팅 리포트』가 있습니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 선수들에 관한 개인적인 기록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월드컵 경기를 좀 더 분석적으로 관람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한마디로 월드컵을 위한 책이지요. 또 <베스트 일레븐> 같은 잡지도 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참고할 만한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이세준 군이 축구에 관한 가장 재미있는 책으로 꼽은 것은 단연 닉 혼비가 쓴 『피버 피치』였다. 의역하면 만화 제목 같은 ‘불타는 그라운드’쯤이 될 거라고 하는 『피버 피치』는 닉 혼비의 축구 사랑에 관한 연대기쯤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이 책은 축구에 관한 기술이나 분석처럼 축구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축구를 소비하는 팬에 입장에서 쓴 책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축구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심리적인 상태를 아주 위트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닉 혼비가 아스날 팬이라고 해서 이 책의 독자도 꼭 아스날 팬이나 프리미어리그 팬일 필요는 없습니다. 축구팬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거든요.”
이세준 군의 『피버 피치』에 대한 찬사를 듣고 있으려니 은근히 닉 혼비와 이세준 군의 유사점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아스날 팬이라는 점, 축구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상대편 선수에게 저주를 퍼부을 만한 외모는 절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래 희망이 소설가인 이세준 군과 이미 소설가인 닉 혼비의 문학적 재능에 관해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이과를 지망했던 이세준 군은 뒤늦게 자신의 적성에 따라 진로를 변경, 올해 국문과에 입학했다.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고3 교실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학교대사전』을 기록해 나간 것을 보면 아무래도 닉 혼비보다 더 유쾌한 축구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된다.
열성 축구팬에게 월드컵 시즌인 요즘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는 계절이다. 2002년에 비해서 기량이 많이 향상된 김남일 선수를 좋아한다는 이세준 군은 오늘도 경기 분석에 여념이 없다.
“잉글랜드는 8강을 갈 것 같고 독일은 예전의 스타일하고 무척 많이 달라졌어요. 훨씬 세련되었다고나 할까요. 4강까지는 갈 것 같아요. 우리요? 우리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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