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耳順)에 『유림』 출간한 작가 최인호
문단의 2대 매력남인 작가는(한 사람은 소설가 황석영.) 쇼핑백 두 서너 개를 들고, 시가를 피우며 작업실로 들어왔다. 할아버지라곤 생각 못할 정도로 젊고 쾌활한 옷차림에, “어, 나 늦었어요? 아니지?” 하는 격의없는 말투.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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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2대 매력남인 작가는(한 사람은 소설가 황석영.) 쇼핑백 두 서너 개를 들고, 시가를 피우며 작업실로 들어왔다. 할아버지라곤 생각 못할 정도로 젊고 쾌활한 옷차림에, “어, 나 늦었어요? 아니지?” 하는 격의없는 말투. 2천 5백년 유교의 역사를 글로 써낸 이가 바로 이 사람일까 싶었다. 그만치 나이도, 고루함도 느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고, 왜 고리타분한 유교냐… 여자들한테 어제 3번 들었죠. 여자들이 유교에 감정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새 책에 대한 반응이 의외였다고 그는 말했다. 라면이나 식품에는 유효기간이 있어도 세계 3대 성인인 공자?석가?예수의 말에는 그런 게 없고, 오히려 지금이 공자가 말한 효(孝), 경(敬), 예의(禮儀)로 돌아갈 호기(好期)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다소 섭섭했나 보다.

“알다시피 유교는 공자부터 시작해요. 공자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세계적인 사상가를 낳거든요. 그게 이퇴계, 우리나라 천원짜리에 있죠. 또 하나는 오천원짜리에 있는 이율곡.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왜 위대한가. 왜 세계적 사상가인가. 또 왜 우리가 아시아의 변방국이지만은 세계적인 문화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걸 써보자는 게 이 소설의 주제죠.”

『유림』은 전체 2부 6권 중 1부 3권이 먼저 출간되었다. 1권은 조광조를 다룬다. 조광조는 유교를 내세운 공자를 본받아 왕도정치를 실천하려다 현실정치에 부딪혀 사약을 받고 죽는 비극적 인물. 2권은 공자가 이상(異想)을 실현하고자 70개국을 주유하는 내용을, 3권은 퇴계가 어떻게 공자의 학문에 깊이 빠지게 되었는가를 그렸다. 4권은 유교를 발전시킨 맹자?순자?왕양명?묵자 등을 소개하며, 5권은 이율곡과 이퇴계의 만남을 통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 어떻게 무르익었는가를 설명한다. 마지막 6권은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가 자기 사상을 정립하는 과정을 담았다.

조광조를 첫 권에 다룬 이유를 묻자, “공자의 세계를 둘로 나누면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전반기와 고향에 돌아와 공부만 한 후반기로 볼 수 있어요. 조광조는 정치가로 공자의 전반부 흉내낸 사람이고, 이퇴계는 학자로서 후반기에 집중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당연히 유림의 문을 여는 사람으로 조광조를 생각한 거죠.”하고 막힘없이 답한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해신』도 역사적 인물 장보고 이야긴데, 또 역사 인물이라니. 아무래도 작가는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과 무슨 인연이 있는가 보다. “87년에 가톨릭에 귀의했는데 그때 가장 신기했던 건 이천년 전에 죽은 목수 하나를 내가 믿고 있다는 거. 내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내가 예수를 믿어요. 그 사람의 가르침 때문에. 그 때가 나에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죠. 천 오백년 전에 죽은 광개토대왕도, 이천년 전에 죽은 예수도, 이천 오백년 전에 죽은 공자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으니까 소설을 씁니다. 2~3년 뒤에는 소위 말하는 진검승부를 해보고 싶죠. 지저스 크러스트. 나만이 보는 독특한 시각의 그를 써보고 싶어요.”

예전만 해도 작가는 유교보다는 기독교나 불교과였다. 그러나 이 책을 쓰면서 인간 공자를 발견했다. 맹자 순자 묵자… 동양의 사상을 다 훑어야 하는 만큼 작업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공부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도 모른단다. 게다가 동양사상의 골수를 글로 써서 국민들에게 알려줄 만큼 자신의 소설세계가 완연해진 데 대해서도 한없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한화갑, 박찬종 같은 정치인들로부터 수인사도 받았다.

“맹자가 제발 군주는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의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논리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해요.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하잖아요. 근데 이건 제도의 문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고. 뭐냐면, 인의를 바로잡으면 돼요. IMF도 다 부도덕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경제학자라든가, 정치가든가… 좀 읽고 모범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유림』을 낸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가장 좋아하는 공자님 말씀을 물었더니 “이런 말이 있어요. 네가 모르는 걸 아는 게 진짜 아는 거다. 이게 참 나한테는 벼락같아.” 하고 웃는다. 조금만 알아도 식자행세하며 나서는 세상이 작가는 싫다. 유교의 역사를 소설로 쓴 것도 지식자랑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로서의 다짐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대와 함께 가는 작가가 되겠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돌이켜보면, 그때그때 생각한 걸 토해낼 수 있는 힘과 그런 기회와 능력을 주신 하느님이 감사할 뿐이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뒤로 예순이 되는 올해까지 『깊고 푸른 밤』, 『별들의 고향』 등이 영화화 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고, 근래에는 TV 드라마 『상도』, 『해신』의 원작자로 베스트셀러 행진을 계속했다. 하도 피임을 안 해서 자식이 몇인지 모른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는 다작가(多作家)인데 놀랍게도 그는 만년필만 고집한다. “나는 아직도 원고지에 또박또박 한 걸음씩 걸어가는 그 과정이 좋아요. 컴퓨터로 ‘차라락~’ 속도감있게 나가는 게 싫고. 또 한가지는 가끔 젊은 사람들 글을 읽으면 컴퓨터 냄새가 나요. 그게 뭐냐면 매끈매끈하지만 성형수술한 것 같은, 화장한 것 같은. 왠지 독창성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소설가로서 그의 남다른 점은 이뿐이 아니다. 벌써 몇 십년째 월간 『샘터』에 가족소설을 기고하고 있는 것. 집식구들을 소재로 하여 웬만한 사람은 그의 아들 딸인 “다혜”와 “도단”이를 알고 있다. 시시콜콜 집안 이야기를 늘어놓는 통에 시집간 딸에게 된통 혼난 일도 있건만 그는 앞으로도 가족소설을 계속 쓸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생활 한지 2-3년만 되면 자기 가족을 속 다 파먹은 김장김치처럼 생각하는데, 내게 있어서 가정은 항상 새롭고 퍼도 퍼도 매마르지 않는 샘 같아요. 가족이야말로 가장 감동적인 기적의 현장이잖아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 사소한 기적의 현장을 언제나 새로운 눈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그 소설을 쓰고 있어요.” 아주 당연한 얘기 같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자화상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가는 『유림』덕분에 매일 가는 청계산 등산도 며칠 걸렀다. 인터뷰 하는 중에도 ‘TV, 책을 말하다’ 방송 준비상황을 체크하느라 분주했다. 공자님 말씀에 귀가 듣는 대로 순조롭게 이해하는 나이라던 이순(耳順)에도 그는 이렇게 바쁘다. 마지막으로 ‘문단 후배들에게 한마디’를 주문하자, 분신인형을 만들어 괴롭히고 싶을 만큼 질투나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쩌면 겉모습은커녕 마음 속까지 늙지 않는 걸까. ‘만년청년작가’라는 별칭 그대로다.

요새 사람들 눈에 유교가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사를 지내고,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이처럼 유교는 사라졌지만 우리민족의 무의식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미실』이나 『달의 제단』 같은 소설이 나오고, 그에 대한 상찬과 비난이 동시에 쏟아지는 현실이 이를 반증하지 않는가. 여전히 유교는 힘이 세고, 그만큼 미움도 많이 받고 있는데 작가는 담담하게 말한다. “어쨌든 간에 사람 아니요.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옳을 것인가. 그리고 왜 사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좀 깊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나”.

『유림』은 호(好), 불호(不好)가 분명한 소설이다. 이럴 때는 작가도 내심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할 것 같다. 이미 열렬한 반응을 보여준 독자도 있고,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낸 독자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알고 있다. 과거의 베스트셀러만 믿고 지금 쓰지 않는다면, 독자들에게서 영영 잊혀지고 말 것임을. 이순의 나이에도 파이팅하는 그가 그래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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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인호는 1970년대 청년 문화의 중심에 선 작가다. 세련된 문체로 '도시 문학'의 지평을 넓히며 그 가능성을 탐색한 그는 황석영, 조세희와는 또다른 측면에서 1970년대를 자신의 연대로 평정했다. 1973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은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모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일간지와 여성지 등을 통해 『적도의 꽃』, 『고래 사냥』, 『물 위의 사막』, 『겨울 나그네』, 『잃어버린 왕국』, 『불새』, 『왕도의 비밀』, 『길 없는 길』등을 선보이며 지칠줄 모르는 생산력과 대중장악력을 보여주었으며, 2001년 『상도』에 이어 최근에는 『해신』이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최인호 #성석제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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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bock

2005.08.07

아 정말 멋진 작가시네요. 고등학교시절 교과서로만 몇번 작가분 글을 접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시간을 내서라도 작품들 읽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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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최인호는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문학으로서, 청년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해 왔다. 19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소설 『가족』을 연재하여 자신의 로마 가톨릭 교회 신앙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가족』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연작소설이지만 우리 인생의 길고 긴 사연들이 켜켜이 녹아있는 한국의 ‘현대생활사’이다. 1990년대 들어서부터는 우리의 역사에 천착하며 한민족의 원대한 이상에 접목하는 날카로운 상상력과 탐구로 풍성한 이야기 잔치를 열어왔다. 1973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조선일보에 소설 『별들의 고향』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화제가 되더니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또 얼마 뒤에는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인기를 모은다. 이후 「술꾼」, 「모범동화」, 「타인의 방」, 「병정놀이」, 「죽은 사람」 등을 통해 산업화의 과정에 접어들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왜곡된 개인의 삶을 묘사한 최인호는 "1960년대에 김승옥이 시도했던 ‘감수성의 혁명’을 더욱 더 과감하게 밀고 나간 끝에 가장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보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 ‘상업주의 작가’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일간지와 여성지 등을 통해 『적도의 꽃』, 『고래 사냥』, 『물 위의 사막』, 『겨울 나그네』, 『잃어버린 왕국』, 『불새』, 『왕도의 비밀』, 『길 없는 길』과 같은 장편을 선보이며 지칠 줄 모르는 생산력과 대중적인 장악력을 보여준 최인호는 2001년 『상도』의 대성공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며 거듭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197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장르인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가져 『바보들의 행진』『병태와 영자』『고래 사냥』 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만의 독특한 시나리오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꾸준한 관심의 결실로 1986년엔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분야들의 벽을 허물고 다양한 길을 보여주었다. [샘터]지에 34년 6개월 간 연재한 '가족'을 건강상의 이유(2008년 발병한 침샘암 투병중)로 2010년 2월을 기해 연재중단을 선언하였다. 2010년 1월에는 죽음과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을 담은 에세이집 『인연』을 출간하였고, 2010년 2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투병 중 집필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하며 등단 이후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제1기의 문학’과, 종교·역사소설에 천착했던 ‘제2기의 문학’을 넘어, ‘제3기의 문학’으로 귀착되는 시작을 알렸다. 이 소설로 2011년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암 투병 중에 병세가 악화되어 2013년 9월 25일 오후 7시 10분에 향년 68세로 사망하였다. 최인호는 1970년대 청년 문화의 중심에 선 작가다. 세련된 문체로 ‘도시 문학’의 지평을 넓히며 그 가능성을 탐색한 그는 황석영, 조세희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1970년대를 자신의 연대로 평정했다.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청년 문학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책 표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신 시거를 피웠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청계산에 오르는 생활 습관이 있었으며 컴퓨터로 작업한 글은 "마치 기계로 만든 칼국수" 같고 왠지 "정형 수술한 느낌"이 들어 지금도 원고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겼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있으며,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의 인생』 등이 있다. 작고 이후 유고집 『눈물』, 1주기 추모집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세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네 번째의 유고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와 5주기 추모작 『고래사냥』이 재간행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출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아름다운 예술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