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잔치, 주식회사 대한민국를 비판한다- 한국학 교수 박노자
우리는 그의 글을 읽으면 몇 번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저 사람은 우리의 일에 저토록 관심이 있는 것일까? 땅도 낯설고, 사람도 낯설고, 언어도 낯선 이 곳을 찾아와 우리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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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최초로 조선을 알린 하멜을 비롯, 개화기 조선의 모습을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으로 남긴 이사벨라 버드 비숍, 식민지 시대의 풍경을 채색 목판화로 담은 엘리자베스 키스에 이르기까지 파란 눈의 이방인들은 심심치 않게 우리를 방문했고, 그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블라디미르 티호노프가 있다. ‘박노자’로 알려진 파란 눈의 한국인이.

앞서 언급한 사람들이 한국을 지켜보는 구경꾼들이었다면, 박노자는 우리 안을 사정없이 파헤치고, 논쟁을 벌이고, 신랄하기 그지없는 글을 쓴다. 그는 군대문제를, 자본의 지배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을, 비정규직의 문제를, 세계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이야기한다. 그는 펜으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나라, 한국을 ‘당신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들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는 그의 글을 읽으면 몇 번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저 사람은 우리의 일에 저토록 관심이 있는 것일까? 땅도 낯설고, 사람도 낯설고, 언어도 낯선 이 곳을 찾아와 우리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인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가요?

글쎄, 저는 만날 똑같이 지냅니다. 그냥 수업을 하고 써야 할 글을 쓸 뿐입니다.

이번에 내신 『당신들의 대한민국 2』에 실린 것은 기고하신 글들을 다시 엮으신 건가요?

네, 한겨레신문 등 기타 매체에 기고한 글을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엮은 것입니다.

2001년에 낸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이번 책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으셨는지요.

제가 1권에 묶여진 글들을 썼을 때 한국에서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진보 정당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2권의 글들 중 일부는 민주노동당의 기관지 『진보정치』에 기고했던 글들입니다. 진보 정당의 기관지에 기고한 만큼 이념적 성향이 조금 더 뚜렷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외에도 상황의 변화는 많았습니다. 예컨대 1권을 썼던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교회 계통의 자선 단체들이 노력하는 정도였지 외국인 노동자의 자체적 투쟁이란 일부 있었다 해도 자주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끔찍한 탄압을 받고 있는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힘찬 투쟁을 벌입니다. 그러니까 그 분들에 대한 글을 쓰면 다르게 쓸 수 있는 것이지요.

진보 정당의 기관지에 기고한 만큼 이념적 성향이 뚜렷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선생님의 이념 내지 정치적 신념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지금의 세계 체제가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바뀌어나가기를 원합니다. 물론 사회주의로의 전환은 당장 이루어질 것도 아니고 긴 세월을 차지하겠지만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환경 파괴 상황으로 보거나 끝없는 전쟁으로 보거나 지구는 결국 멸망으로 갈 것임에 틀림없을 듯합니다.

지금 세계 체제가 국민국가 단위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회주의로의 전환은 비록 세계적/국제적인 운동이지만 결국 국가별로(내지 유럽 연합 같은 준 연방국가 범위 내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지 사정대로 국가마다 그 내용이 단계적으로 서로 다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국주의 중심 국가에서는 전쟁 금지와 군산복합체 해체는 당연히 핵심적 의제가 될 것입니다. 한국처럼 외국 자본에 예속된 나라의 경우에는 외국 투기 자본을 배격하고(즉, 공익성이 결여된 투자에 대한 거부권 행사), 전반적인 자본 투기를 강력하게 억제하고, 일체 노동 계급의 조합화를 장려하며, 노동조합들이 기업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등입니다.

‘일체 조합화’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조합을 만들고, 이 조합들이 점차 기업 활동에 대한 일부분의 통제 기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국내적인 상황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는데, 위의 내용 상당 부분(노조의 경영 참여 등)은 이미 유럽 복지 국가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슬로 국립대학의 한국학과에서 노르웨이 학생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무척 먼 나라로 느껴지는 노르웨이에 한국에 대해 배우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집니다.

‘한국학과’는 없고 저희 문화연구 및 동방언어과에서 한국학 전공이 있을 뿐이지요. 한국어 공부(2년)에다가 한국 종교-철학, 한국 사회-정치, 동아시아 종교-철학 등 여러 과목들을 이수합니다. 스칸디나비아 전역에 약 만 명에 가까운 한국계 입양인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는 뿌리의식을 가지고 공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래요. 노르웨이가 멀어도 생각보다 그렇게 먼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불교에 매력을 느껴 열심히 동아시아, 한국 불교를 공부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 사회문제 중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 듯 합니다. 이 문제에 천착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도 노르웨이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네요. 어느 사회에서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리한 경제적 위치에다가 신분적 불이익이 있어서 이중적 착취, 억압을 받게 돼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그 형태가 또 유별나게 가혹한 부분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외국 인력이 ‘불법 체류자’로 분류돼 거의 일체 인권을 박탈당하는 경우를 다른 곳에서 보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안 고치면 아시아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아시아와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이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생활에서 해야 할 일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차적으로는, 시민들이 정부에게 압력을 넣어서 노동 허가제의 도입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노동 허가제란, 국내 기업에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국내에 와서 직장 이동과 조합 가입 등 노동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가지고 차별 받지 않으면서 일하고, 몇 년 후에 영주권과 궁극적으로 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제도를 이야기합니다. 유럽의 노동 비자에 해당되는 것이죠. 그러한 제도가 있어야 한국도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보장되는 다민족 이민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겁니다.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니까요.

외국인 노동자 문제 외에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계신 주제들이 있으신가요?

한국에서 ‘남자 만들기’의 기본적 통과의례 중의 하나는 군대인데, 군대가 과연 어떤 남자를 만드는지, 군대가 만들어준 남성들의 대(對)사회 인식이나 대(對)여성 인식 등이 어떻게 되는지 늘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 (65%)이 높은데, 한국 자본가계급이 하필이면 ‘비정규직’이라는 착취 형태를 선호하는지, 우리가 그들의 의도에 맞서 어떻게 투쟁할 수 있는지에 대해 글들을 많이 썼습니다.

앞서 말씀하신대로 군대 문제를 책에서 많이 논하셨습니다. 책에서는 주로 남성과 군대의 문제를 다루셨는데, 여성과 군대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군대의 공식 담론에서는 여성이란 보호와 섬김의 대상인 ‘어머니’ 아니면 남자를 챙겨주고 기다려주고 성적으로 즐겁게 해주어야 할 ‘여자 친구’이지요.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은 그 ‘여자 친구’가 ‘부인’이 된다면 역시 양육과 가사를 전담할 것으로 대개 기대를 합니다. 선민의식을 갖춘 남성만의 집단인 군대의 담론에서는, 여성이 부속적이고 ‘협력자’ 정도의 존재가 됩니다. 그게 한국적 근대 가부장주의의 거의 원류인 듯합니다.

그럼 한국 군대가 모병제 등으로 전환되고, 대체복무제가 인정되면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크게 바뀌리라 생각하십니까? 바뀐다면 어떤 식으로 바뀔까요?

군대에 안 갔다 온 세대가 나오기 시작하면 가정 폭력부터 줄어들 것 같습니다. 군대 안에서의 폭력이 나중에 가정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보호자, 여자는 피보호자’라는 등식이 무너지면, 여러 분야에서의 여성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남성들이 훨씬 더 쉽게 당연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화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논쟁거리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진정한 '세계화'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 해 12월, 중국 정권이 광동성에서 자본에 의한 토지의 약탈을 규탄하고 저지하려 했던 한 마을의 농민 약 20명을 학살했습니다. 만약 이 학살에 대해 한국 국민들도 같이 규탄하고, 데모하고, 중국 정부에 압력을 넣으려 노력했다면 그게 진정한 세계화였을 것입니다. 자본은 이미 다 세계화됐지만 그 희생자들은 아직도 국가별로 묶여져 있는 게 문제입니다.

자본은 이미 세계화됐지만 그 희생자들이 아직도 국가별로 묶여져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무슨 뜻인가 하면, 자본의 이동은 아주 쉬운 것입니다. 미국 자본이 한국에서 투자하고, 한국 자본이 중국에서 투자하는 것은 그들에게 잉여 가치의 중대한 수취 방법이 됐습니다. 그런데 중국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한국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상승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본의 이동은 쉬워도 노동의 이동은 국민국가의 이민법에 구속 받기 때문입니다. 이 측면에서는 자본이 노동에 대한 우월한 권력을 갖고 있지요. 거기에다가 자본들이 한국의 IMF 사태와 같은 위기를 조장하고 그 위기를 십분 이용하기 위해 IMF 등의 국제 조직을 가동시키고 서로 협동적으로 행동하지만 (IMF 환란 초기에 미국 자본이 불을 당긴 뒤에 일본 자본이 국내에서 철수하기 시작했고, IMF 이후 자본 이동 억제의 해제 조치를 미국 자본뿐만 아니라 유럽 자본도 많이 활용했지요), 한국 자본이 중국에서 현지 노동자들을 학대한다 해도 한국 노동자들이 신경이라도 씁니까? 세계 자본은 어떤 차원에서 한 조직체가 되어가지만, 세계 노동자들이 아직 단결을 못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작년 프랑스에서 인종갈등으로 인한 폭동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한국 역시 동남아시아인과의 국제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늘어나고 있고,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인, 조선족과 고려인들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는 한국에서 향후 10년 후 이런 일이 벌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위안이 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적어도 10년 간 그러한 일이 없을 것으로 내다봅니다. 유럽의 평균 이주민 인구는 약 5-6%이지만 일본은 지금 (재일 한국인을 포함해서) 약 1% 정도고, 한국은 1%도 안 됩니다. 아직도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시장은 훨씬 폐쇄적입니다. 거기에다 ‘단일민족’의 신화가 사회에 거의 체질화되어 있고 외국인의 합법적인 이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극소수만이 귀화할 수 있고 노동 이민과 노동 이민에 의한 영주권 취득의 절차는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외국인들이 결국 무력한 극소수가 되는 것이고, 무력한 극소수인 만큼 ‘반란’을 일으킬 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파 쪽에서 소요 사태 이후에 “가담자들을 본국에 강제 송환하라”는 목소리가 나돌았는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목소리가 나돌 정도도 아니고 정부에서 바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에는 러시아에서 생활하셨고, 그리고 2001년부터는 복지국가라고 알려진 노르웨이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러시아, 한국, 노르웨이 중에서 어느 곳에 계실 때 가장 편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글쎄, 계량화시켜 우열을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대인 관계는 어쩌면 한국에서 더 따뜻한 편이었고, 직장 관계는 노르웨이 국립대학이 훨씬 나은 편이지요. 한국 대학들을 모두 국공립으로 전환시켜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운영한다면 물론 똑같이 편하게 될 것입니다.

직장 관계에서 노르웨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나은 편인가요?

저희 학교에서는 총장, 학장, 학과장 등은 교직원과 학생 대표의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발되고, 그들 스스로 ‘다른 사람에 비해 높은 사람’이라는 의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수들 사이에서 연령 서열이 거의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훨씬 살기가 편하지요.

한국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노르웨이로 떠나신 것은 한국 교수사회의 일원이 되기가 싫으셨기 때문인가요?

불교에서도 늘 하는 이야기지만, 공부의 목적은 ‘요익중생(饒益衆生 : 중생을 이익 되게 한다)’ 즉 본인이 배운 만큼 남에게 뭔가를 해주고 자신도 아집에서 벗어나 겸손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한국 교수 사회는 역대 정권의 정책에 힘입어 귀족화됐습니다. 소수의 귀족들은 고급 관료들의 흉내를 내며 실제로 고급관료로 출세하기도 하고,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 (시간 강사, 비정규 트랙 교수)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그 밑의 뒷받침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출세주의와 교만의 분위기가 지배적이 됐는데, 그건 원래 ‘배움’의 반대입니다.

책이나 칼럼에서 노르웨이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언급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노르웨이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니 문제가 없을 수 없겠지요. 노르웨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민자나 외국인에 대한 우월 의식이 아주 강해서 문제이고, 수많은 노르웨이인들이 나머지 세계에 대한 책임 의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은 어디까지 가져야 할까요?

노르웨이 노조가 노르웨이에 들어온 외국 노동자들이 자국의 노동자와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투쟁을 하고 있고, 그들을 같은 노조에 가입시킵니다. 그게 한국 노조에 본보기가 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노르웨이 기업이 투자하고 활동하는 제3세계 국가에서 노르웨이 기업 활동이 가져다주는 자원 고갈, 환경 파괴, 인권 침해에 대한 관심은 저조합니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 석유 회사가 지금 앙골라, 아제르바이잔, 이란 등지에서 자원을 이용하고 그 나라 독재 정권들과 유착하고 있지만 노르웨이 국내에서는 그걸 기정사실로 인정합니다. 그건 세계적 민주 시민의 태도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국적과 애국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가까이 사는 이웃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나라 사랑’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국가 사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본계급의 착취 기구인 국가를 북유럽형 복지 기구로 전환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우리만의 복지 기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사실 배타적인 감정일 뿐일 것입니다.

어떤 사회든 갈등과 모순,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주로 억압과 폭력이 해결도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모순과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철도공사에서 고속철을 만들었을 때 여승무원의 모집과 관리 등을 외부 업체에 맡기고 그 여승무원들을 사실상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여승무원들이 조합을 만들고 계속 행동을 취했는데, 공사 쪽의 대응은 적대적일 뿐이었습니다. 시민을 위한 공익 기업인 공사가 같은 시민인 여승무원들을 이렇게 대하는 게 말이 안 되지만,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를 ‘시민’으로 안 보려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만약 우리 시민사회가 철도공사에 대한 집단행동을 취하고 압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었다면 그 태도도 대화 쪽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선생님이 특별히 존경하는 한국 사람이 있다면 어떤 분인지 알려주세요.

한용운 스님은 어려운 시절에 원칙을 굽히지 않으시면서 계속 중생들을 위해 일할 줄 알았으며, 근대적인 분이면서도 배타적인 민족주의자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이면서도 속인이셨고요. 그 분을 가장 존경합니다.

집안일은 분담하고 계신지요? 아니면 도와주시는 선에 머무르시는지 궁금합니다.

분담하려 노력해도 아직은 태부족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시고, 어떤 작가의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러시아 작가 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사회학 관련 서적을 많이 읽고 국내 저자 중에서는 김동춘, 김왕배, 신광영, 김세균 등 여러 필자의 책을 탐독해왔지요. 그리고 교포 학자이신데, 미국 Vassar 대학의 문승숙 교수의 한국 군대와 그 군대가 남성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논저를 애독했습니다. 문학에서는 김남주, 김용택의 시를 좋아하고, 멀리에서는 김수영을 매우 좋아합니다. 요즘 손창섭의 소설을 감동 깊이 읽고 있습니다. 그 전에 황석영, 김승옥을 많이 좋아했고요. 러시아 작가 중에서는 Andrei Platonov(안드레이 플라토노프: 1899-1951)라는 혁명 이후의 소설가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 소설들이 거의 한글로 번역이 안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떠오른 것은 『오만과 편견』이라는 대담집에 나온 사카이 나오키 교수의 말이었다. “나의 충성 대상은 국민도, 민족도 아닙니다. 내가 동포가 아닌 친구를 택한다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왜냐하면 이 길만이 과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줄 단 하나의 길이며, 나는 그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지역과 국가, 민족이라는 좁디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진정한 세계인, 지구인이 되는 길, 그것은 우리가 신앙처럼 떠받들고 있는 애국애족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그 시점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박노자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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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21

언급하신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이 제인오스틴의 작품인줄 알았어요. 정치계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시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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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s

2006.02.21

인터뷰 자체가 감동이군요. 한분의 훌륭한 학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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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겨울

2006.02.10

대학에 입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노자씨가 쓴 글을 보았답니다. 첨에 그 글을 보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어느 대학의 여자 교수님이시구나..(순전히, 이름 때문이었겠지요)''하고 생각했더랬지요~^^; 이후에 박노자씨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우리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외국인, 게다가 (잘생긴) 남성분이라니..ㅎ 자주는 아니지만, 이후 박노자씨의 칼럼이나 글을 접할 때마다 그의 통찰과 설득력있는 논조에 늘 압도당해왔답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그의 노력이 아름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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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박노자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난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날카로운 논리로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세계사를 보는 거시적인 혜안 속에서 치열하게 인문학적 성찰의 삶을 살아온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의 저서를 통해 '토종' 한국인보다 진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보다는 러시아를, 또 세계를 잘 아는 한국인에 가까운 그는 한국 사회를 그 주춧돌부터 다시 살펴본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고 살던 권위주의의 서까래며 집단이기주의의 기둥이 그 앞에서는 대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폐품이 되고 만다. 이제까지 나왔던 많은 한국인 비평, 비판보다 서너 길은 더 깊은 통찰이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애정이 든든하다. 두 번째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는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의 이모 저모를 소개하고 있다. 상하의 질서와 복종을 강조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와 달리, 다양성의 존중과 소박한 삶을 생활의 주요 철칙으로 여기고 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평등한 인간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박노자는 북유럽 사회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외견상 선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 인종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젖은 그들보다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동양을 타자화하여 비화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과 서양을 정형화·범주화하는 '서양/비서양'식의 이분법적 인식 속에 좀 더 원어에 가까운 영어 발음을 위해 아이의 혀에 가위를 들이대는 부모들이나 '영어공용화'가 식자층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의되는 사회는 오리엔탈리즘이 지배하는 곳이다. 또한, 후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미국과 유럽을 아무런 비판 없이 모범으로 삼을만한 미래로 여기는 자세에 대해서도 '맹목적'이라 일갈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 시선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 시선을 만들어낸 곳이 어디인지, 우리 안에 있는 서구제국주의의 시각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근작으로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리얼 진보』(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