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미국 자전거 횡단 여행을 다녀오다, 홍은택
2005년 5월 26일. 홍은택 씨는 몰튼 자전거에 40킬로그램의 짐을 싣고 미국의 동쪽 끝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에서 80일간의 미국 횡단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목적지는 서쪽 끝 오리건 주 플로렌스, 경로는 6400킬로미터의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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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6일. 홍은택 씨는 몰튼 자전거에 40킬로그램의 짐을 싣고 미국의 동쪽 끝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에서 80일간의 미국 횡단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목적지는 서쪽 끝 오리건 주 플로렌스, 경로는 6400킬로미터의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이다. 80일간의 여행 도중에 쓴 여행기는 신문에 연재되었고, 그 글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바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이다.

80일간의 미국 자전거 횡단 여행

「펑크는 열한 번 났고, 나를 추격해온 개는 100마리쯤 되는 것 같고, 여름철이었지만 영하 1도에서 영상 43도까지의 온도와 해발고도 0미터에서 3463미터까지의 높이를 체험했다. 열 개 주를 건넜고, 대륙분기선을 열네 번 통과했고, 시간대가 다섯 번 바뀌었다. 페달은 한 150만 번쯤 돌렸고, 하루 5000칼로리 이상 섭취한 것 같고, 결과적으로 몸무게는 3킬로그램 정도 빠졌다. 체중 감량보다 중요한 것은 욕심 감량이다.」(‘책머리에’ 중에서)


14년간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2년간 학업과 일을 병행한 후, ‘당당히’ 백수 대열에 합류한 홍은택 씨가 졸업 기념 여행으로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은 ‘자기 학대에서 쾌감을 느끼는 피학적 발상이다’, ‘트럭 운전사들이 얼마나 거친 줄 아느냐’라고 하면서 반대했다.

여기서 한풀 꺾인 그는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의외로 시도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고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가 택한 경로는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멀리 돌아가는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 총 길이는 6400킬로미터 정도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두 번 정도 왕복해야 하는 거리다. 이 길은 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레그 시플과 그의 부인 준, 친구 부부인 댄과 리즈 버든이 개척한 길로 기존의 도로들을 이어 지도를 만들었다. 홍은택 씨는 여행의 끄트머리에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만든 그레그 시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미국을 횡단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국립 자전거 여행 초상 컬렉션’에 사진을 올렸다. 이 컬렉션에는 약 2000여 명의 라이더 사진이 실려 있다고 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돈 것을 축하하며 여행을 떠나다

왜 그 힘든 길을 떠난 것일까? 그냥 원했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해보고 싶었어요.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를 쓰기 위해 로키 산맥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을 보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이렇게 멀리, 이렇게 높은 곳에도 갈 수 있구나, 멋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해보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또,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과 떨어져보고 싶다는 동기도 있었다. “그즈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해 돌아보고 어떤 각성 같은 것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지 말자,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목적론적으로 살지 말자, 과정에 집착하지 말자, 그런 것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목표에의 집착은 자기 자신에의 집착임을 마흔에 깨달았다. 그 후, 그는 ‘돌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돈’이었다. 여행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80일 동안의 여행 중 34일 동안은 낮에는 달리고 밤에는 번역을 하는 ‘주주야역(晝走夜譯)’을 했고 여행기도 쓰고 사진도 찍어서 신문사에 보내야 했다. 번역과 연재 때문에 가지고 다녀야 하는 노트북과 사진기의 무게는 40킬로그램 되는 짐 무게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가장 많은 돈을 쓰게 한 것은 여관비. “전체 일정의 1/3 정도를 여관에서 묵었어요. 보통 1박에 30에서 40불 정도 하니까 만만치 않죠.”

일상의 무게, 집착의 무게 40킬로그램을 지고 여행을 하다

여행 시작, 처음 그를 반겼던 곳은 경사도가 높고 길이 험한 애팔래치아 산맥. “자전거 연습을 하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일주일은 자전거 타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여행 내내 노트북과 사진기의 부피와 무게 때문에 고생을 했죠. 보통 노트북은 3킬로그램 정도인데, 제 노트북은 10킬로그램 정도였거든요.”

처음 짐을 쌌을 때 무게가 무려 40킬로그램이었단다. “여행 못하는 사람들이 짐이 많다잖아요. 그거 정말 맞는 말이에요. 제가 그렇거든요. 짐을 싸다보면 다 필요한 것 같아서 하나도 빼놓을 수가 없어요.” 덕분에 항공기에 짐을 실을 때 초과요금 때문에 항공사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항공권 요금보다 짐 때문에 내야하는 초과 요금이 더 많았다), 여행 중반쯤 짐의 반 정도를 정리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지요, 그때는 정말…”이라고 말하고 웃었다.

여행을 하면서 연재를 하는 것도 힘들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기록을 하면 더 많이 느낄 수 있거든요. 매일 자기 전에 짧게 그날의 기록을 메모해두고, 그것을 다시 원고로 옮기는 작업을 여행 내내 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하고 있는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포충망처럼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애팔래치아 종주기 『나를 부르는 숲』의 역자이기도 하다. 애팔래치아 종주를 하고 싶어서 책을 찾아 읽다가 무척 재미있어서 번역까지 하게 된 것. 『나를 부르는 숲』을 영어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판권이 안 팔렸더라고요. 꽤 유명한 책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제가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에요. 빌 브라이슨의 유머감각은 천재적이죠.”

철저히 혼자였던 6400킬로미터의 여정

여행을 다녀온 지 1년, 가끔 ‘참 먼 곳을 다녀왔구나’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여행 내내 혼자였기 때문에 너무 외로웠어요. 혼자서 여행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여행 내내 철저히 혼자였던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 제가 여행을 할 때 유난히 사람이 없었거든요. 사람이 참 그리웠어요.”

여행을 시작하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어쩌면 중도에 포기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고비는 버지니아 국도 80번, 켄터키로 들어갈 즈음이었다. “너무 힘들고 심심해서 이렇게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자꾸 회의적인 생각만 들었습니다.” 하루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간다. 보통 여행을 가면 저녁땐 책을 읽던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이번 여행은 너무 힘들어서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렇다고 바로 곯아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시간이 제일 심심해서 힘들었다고. 그래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길에서 스쳐 지나갔던 동료 라이더들과 낯선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미국인들 덕이었다.

익숙한 곳에서 떨어져 나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면서 진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전거로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프레임 안에 사람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자전거는 360도 펼쳐진 공간을 접하죠. 자동차는 경치를 스쳐 지나가지만 자전거는 경치의 일부가 되죠. 반복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내 힘으로 가는 거죠. 자전거는 오랜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이동 수단이기도 합니다.”


자전거, 일상을 혁명시킬, 작지만 무서운 운송수단

자전거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낯선 곳에서 마주친 사람에게는 일단 경계를 하고 보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치 물속으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가듯, 친근감 있게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게 돼요. 자전거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에 친화적인 운송수단입니다.” 자전거는 자연스럽게 자연 속으로,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자동차처럼 화석 연료를 써버리는 것도 아니고, 매연을 뿜어대는 것도 아니고, 인간을 고립시키는 것도 아니다. 주차 문제도 간단하다.

자전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 어린 시절 타고 놀던 자전거를 떠올린 사람이라면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것 빼고 자전거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존 라이언의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다.

여기서 퀴즈 하나. 4만 명의 인간을 1시간 이내에 다리를 건너게 할 때 필요한 다리의 수가 가장 적은 운송수단은 어느 것일까? 답은 바로 ‘자전거’다. 전차를 사용하면 세 개, 버스를 사용하면 네 개, 자가용 자동차라면 열두 개가 필요하다. 자전거는 단 ‘두 개’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반 일리치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자동차와 자전거의 대결을 비교하는데 ‘다윗과 골리앗’만큼 잘 어울리는 비유는 없다. 자전거는 우리 삶의 속도를 ‘제정신’으로 돌려준다.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 소비적인 사회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것이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자전거 타기는 그래서 자신의 주장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바라는 사회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홍은택 씨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의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준다. 자전거로 6400킬로미터라는 긴 거리를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며, 자전거가 얼마나 자연과 인간이 친해질 수 있는 운송수단인지를 알려준다. 자동차가 갈 수 없는 곳, 인간이 걸어가기 어려운 곳도 자전거는 척척 움직여간다. 그 동력원은 인간이다. 인간이 먹은 물과 음식을 에너지로 해 목적지로 가는 것이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는 다리의 연장일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다. 안장 위에서 보는 세상은 차 안에서 보는 네모 속 세상과 다르다. 미국을 횡단하는 동반자로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거가 지향하는 가치로 미국을, 그리고 나 자신을 보고자 한다.」

자의식이 적어지고 자유로워지다

매일 혼자서 자전거 페달만을 반복적으로 밟다 보면 머릿속이 텅 비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잡념은 사라지고 자기 자신만 오롯이 남게 된다.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여행을 통해 자신이 꽤 성실하지만, 조바심을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여행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더군요. 자신의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좀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은 여행 도중에 깨달은 것이 아니라고, 여행을 돌아와서 자신이 여행 중에 ‘자의식이 적어지고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재미있는 버릇도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제가 ‘혼잣말’을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는데, ‘저기서 쉬어야지’, ‘이쪽으로 갈까’ 일일이 말을 하면서 행동을 하더군요.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인간인 거죠.(웃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발견한 세계화의 그늘

오리건, 아이다호, 와이오밍, 콜로라도, 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 켄터키. 그가 여행을 하면서 거쳐 온 미국 중서부 지역은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안 감독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아름다운 배경이 그가 지나쳐간 곳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목가적이지 않다.

“미국은 굉장히 양극화된 사회입니다. 세계화의 빛과 그늘이 뚜렷하죠. 미국 중서부는 그늘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가장 먼저 자본을 축적해 세계화를 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화의 부정적이고 원초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책을 통해 배웠던 세계화를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만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 자본이 전 지구적으로 자유로운 이동을 하고 있는 지금, 미국 중서부의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한국 안의 문제가 한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니까요.” 자본이 변화시키는 것은 단순히 노동시장이나 주식시장만은 아니다. 자본은 문화와 삶의 방식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월마트의 성공으로 도시에서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시골의 작은 식료품점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회사들이 소량배달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일이어도 이윤이 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가게가 없어진 마을 사람들은 멀리 있는 월마트에서 장을 한꺼번에 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동차와 커다란 냉장고가 필요하게 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가 다니기 위해서는 깊은 산골까지도 도로를 깔아야 한다.

한국의 문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의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지역의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저널리스트인 그는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기자로서의 소통 대상이 한국인에서 전 세계인으로 넓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른네 살 때 처음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한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에서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지금은 그럭저럭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만, 현장에서 바로바로 쓰는 것은 여전히 힘들어요.”

길에서 만난 미국, 미국인

미국을 횡단하면서 다양한 미국인을 만났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무척 친절하면서도 자기 프라이버시는 엄격하게 지키죠. 미국인들에게 프라이버시는 삶의 최고 가치처럼 보여요. 개인주의죠. 땅이 넓어서이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미국은 마을이 별로 발달하지 않는지도 모르죠. 미국은 집이 우주에요. 집이 마을의 기능을 다 하죠. 미국 사람들은 ‘가족’이 중요하다는 말을 참 많이 하는데, 여기서 가족은 개인을 의미해요. 우리는 가족이라면 친가, 외가, 처가, 일가친척을 다 포함하는 공동체적인 개념이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안 그래요.”

개인주의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바로 이 개인주의에서 나온다. “미국 사람들은 개인을 중요시하는 만큼, 사회에 기대려고 하지 않아요. 독립심이 대단하죠. 뭐든 혼자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어떻게 해서든 기여를 하려고 노력하죠. 우리는 정반대죠. 독립적인 개인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함께 사고하죠. 반반씩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시 누룽지 같은 일상으로,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누룽지 같은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짧은 백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재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의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경험을 연재하고 있다.

“집이 수서 근처입니다. 그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탄천, 한강, 청담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 잠수교를 거쳐 회사가 있는 광화문에 도착합니다.” 서울은 생각보다 ‘자전거’를 타기 괜찮은 곳이다. “운전자들이 경적을 빵빵거리긴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자전거를 보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적어도 사고는 나지 않아요.” 지하철 몇 량을 이어놓은 듯한 커다란 몸집의 트럭들이 백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질주하는 미국의 도로를 자전거로 이동했던 그에게 서울의 도로는 평화로운 곳일지도 모른다. 또, 의외로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배려해 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몸을 움직이는 사람으로 그의 경력은 달리기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지금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에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계기는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었다.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일했을 때 매일 새벽 3시에 퇴근해서 9시에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죠. 그때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한바탕 달리고 나면 기분 좋게 잠을 잘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해 하프 마라톤과 풀코스 마라톤에도 도전해 완주했다.

그 다음에 도전한 것은 ‘수영’이었다. “사실 수영을 못한다는 것은 저한테 30년 가까이 콤플렉스였어요.” 철인 삼종 경기에도 흥미를 갖게 되어 자전거도 타게 되었다. 철인 삼종 경기는 2002년에 도전해서 성공했다고. 달리기에서 자전거로 움직이는 것을 바꾸게 된 것은 마흔이라는 나이였다. “지구력은 보통 삼십대 후반까지는 계속 지속적으로 나아진다고 해요. 그 다음부터는 몸은 ‘더 빨리 달리는’ 것은 할 수 없어져요. 점점 속도가 느려지게 되죠. 인생이 반환점을 돌면 육체 역시 반환점을 돌게 되죠. 그전처럼 같은 속도로 오래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자전거를 타게 되었어요.”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다음 여행도 자전거와 함께 해보고 싶다고 말하며, 그는 자신의 책을 읽고 미국이든 한국이든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 사람에게 이런 조언을 전했다. “짐을 적게 하시고(웃음), 자전거가 고장 났을 때 응급처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전거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준비가 다 된 후 떠나는 여행이 있을까요? 일단 떠나고 보면 길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짐을 줄이는 것도, 자전거를 고치는 것도.” 80일간의 여행을 통해 그 역시 자전거를 수리하는 솜씨가 많이 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전거여행 #홍은택 #미국여행
1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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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23

우와 넘 멋져요. 지구력의 최대치가 올라갔다가 다시 속도가 느려지는 시기가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이라는 말씀 같은 속도로 오래도록 즐길수 있는 운동이 자전거! 동네 한바퀴 도는것도 불안한데 미국을 80일간 도셨다는게 그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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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y27

2008.04.05

한겨레 36.5에서 홍은택 기자님의 연재글을 읽었던 팬입니다. 멋진 활동과 문장들을 접할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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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Mr. Lee)

2007.03.10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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