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 거리를 걷다, 『경성기담』의 전봉관 교수
“『경성기담』은 인간적인 느낌이 나도록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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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기묘함에 있어서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소설과 달리 현실은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연의 남발도 용서가 되고, 뻔한 설정도 용납이 된다. 『황금광 시대』를 쓴 전봉관 교수의 두 번째 저작 『경성기담』에 실린 사건들은 웬만한 소설보다 기묘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근대 조선을 뒤흔들었지만 역사책에서는 한 줄 이상 다루지 않은 사건과 스캔들을 통해 바라본 30년대는 소설보다 신문이 재미있는 시대다. 그 사실은 우리가 통과해야했던 시간들이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보다 신문이 재미있는 시대, 1930년대
전봉관 교수는 현대시를 전공한 국문학자다. 그가 1930년대의 사건과 스캔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백석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그의 시가 발표된 잡지를 읽다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할 엽기적인 사건 기사들을 발견하게 된 것. 그때는 그냥 혼자 웃고 넘어갔다고 했다. 진지한 문학 연구와는 상관없는 자료라고 생각해 연구 자료로 생각하진 않았다고 한다.
“백석이 요즘으로 말하면 ‘여성~’ 류의 여성지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자기 시를 여성지에 실었어요. 여성잡지라는 것이 오늘날도 그렇지만 고상한 이야기만을 다루진 않거든요. 요즘 여성잡지에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이 실리는 것처럼, 그때에는 박희도 사건이니, 박인덕 사건이니 하는 것이 잡지에 실렸던 거죠.”
시가 실려 있는 뒷장에는 혼자 보기 아까운 1930년대의 스캔들과 사건들이 펼쳐졌다. 조선인 가정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도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일본인 여성, 재산을 둘러싼 부부싸움을 전 조선에 생중계했던 이인용 남작 부부, 여 제자와 키스내기 화투를 친 교장 선생님…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면 시만 보고 잡지를 덮었겠지만 그는 옆길로 새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현대시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금점판에서 대역전을 꿈꾼 한국인들의 이야기 『황금광 시대』를 썼고, 30년대 경성의 사건과 스캔들을 다룬 『경성기담』을 썼다.
8년 정도 꾸준히 30년대에 대한 자료들과 그 시대에 발행된 잡지들을 열심히 읽다보니 1930년대 전반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생겼다. 그러자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역사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특히, 20년대와 30년대는 근대의 문물들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과 갈등이 표면화되던 시대이므로 이야깃거리는 더욱 넘쳐났다.
살인사건, 스캔들에 드러난 조선의 근대
단두 유아(斷頭乳兒) 사건, 일본인 순사 살인 사건에서 독립운동가의 성희롱 스캔들, 시대를 잘못 타고나 콩나물 장수로 생애를 마감한 여성 경제학자,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한 여성운동가.『경성기담』의 이야기들은 과격한 헤드라인 몇 줄만으로도 손을 뻗게 되는 가판의 스포츠 신문처럼 자못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눈을 홀리기만 하는 알맹이 없는 선정성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경성기담』의 이야기들은 몇 가지 기준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다. 첫 번째는 30년대의 대표적인 사생활을 보여주는 것, 두 번째는 기존의 역사에서 다루지 않는 문화를 보여주는 것, 세 번째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문제제기를 하는 이야기들이다. “소재가 자극적이어서 『경성기담』이 새롭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어요. 예를 들어, 전 조선을 경악하게 한 백백교 사건에서 몇 백 명이 살해당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사회가 혼란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러한 종교에 왜 마음을 빼앗기는지,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거죠.”
지금까지 선정적인 살인 사건이나 스캔들은 인문학의 연구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역사책에서 한 줄 이상 씌어지지 않은 이런 사건들도 인문학적으로 분명 의미가 있다. 지금 우리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라고 하면 독립운동가나 조선 사람을 탄압하는 순사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시대에도 분명 오늘날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있었습니다. 다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요. 미신에 의한 범죄가 저질러지고, 무전유죄 유전무죄인 현실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고, 집나간 아내, 집나간 남편, 돈 떼먹고 도망가는 사람도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있잖아요.”
그래서 제목부터 고민했다. 1910년에서 45년까지를 지칭하는 용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왜정, 식민지 시대, 일제 시대, 일제강점기, 항일 시대 등등. 정치적 느낌이 강한 이런 용어 말고 이 시대를 가리킬 수 있는 단어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찾아낸 것이 바로 ‘경성’이었다.
스캔들, 숨어있는 역사의 1인치를 찾아내다
인물에 대한 글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스캔들은 더욱더 이야기하기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한 인간을 전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합쳐진 것이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음악가로서 안기영은 서양 음악과 한국적인 정서를 결합시키는 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생활로만 보자면 이 사람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아내가 둘째를 낳자마자 바로 유학을 떠나버리죠. 아내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아이들을 키웠어요. 유학을 갔다 와서 이화여전 교수로 좀 살 만해지니까 젊은 제자와 바람을 피웠죠. 아내는 젊어서 한 고생이 원인이 되어 병까지 얻은 상태였어요. 안기영의 손자들은 아직도 이 사람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한답니다. 손자면 벌써 대가 하나 건너뛴 것인데도 아직까지 상처로 여긴다는 거죠. 그런데 안기영을 새롭게 조명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는 하지 않죠.”
인간으로 안기영이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할 때 그의 천재적인 음악 감각만큼이나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못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그의 모습까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적인 생활 때문에 공적인 평가가 바뀌어서는 안 되지만, 사생활의 문란함을 공적인 업적으로 덮어버리거나 생략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누구나 사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을 지닌다. 이 중 어느 한 부분을 꾸며내거나 덮어버리려 할 때 삶은 왜곡된다. 삶만 왜곡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몸담았던 시대도 은폐된다.
“제가 볼 땐, 미국 사람들이 이런 것을 잘하는 것 같아요. 클린턴의 사생활, 그러니까 르윈스키와의 혼외정사 부분에 대해서는 SOB, Son of bitch라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으로는 미국을 이끌고 갈 만한 지도자로 생각했거든요.” 마르크스의 예도 들었다. 마르크스가 가정부를 착취했다는 이유로 『자본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시대가 외면한 특별한 여자 - 박인덕, 최영숙
『경성기담』에서는 두 명의 특별한 여자가 등장한다. 조선의 노라 박인덕과 조선 최초의 스웨덴 경제학자인 최영숙이 바로 그들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일방적인 ‘남성에 의한 여성의 학대’로 규정하는 전봉관 교수는 최영숙과 박인덕이 살았던 1930년대와 지금 사이에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여성들이 투표도 하고, 자기 일도 하고, 그때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지 않느냐고 반문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도의 문제는 인문학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착취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먼저, 박인숙. 근대 교육과 자유연애의 세례를 받은 신여성 박인덕은 자신의 배우자를 스스로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전 세대 보다 진일보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배우자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경제력’이었고, 여성에게 결혼은 여전히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경제적인 조건만을 보고 청년 부호와 결혼한 박인덕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고서.
“박인덕은 개인적으로 한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은 가정을 벗어난 후에 행복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더 사회생활에 매몰되었죠. 곁에서 보면 심하게 나선다고 할 정도로. 박인덕의 이야기가 단지 결혼에서 경제적인 조건만을 따지는 세태를 보여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양립문제나, 가정이 본질적으로 여성을 착취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는, 오늘날의 여성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죠.”
최영숙은 『경성기담』에서 그가 가장 애정을 가진 인물이다. 스웨덴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영어와 독일어, 스웨덴어, 중국어, 일본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당대의 둘도 없는 인텔리 여성이었지만 조국은 그녀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최영숙은 스웨덴에 있었으면 대단한 인물이 되었겠죠. 후에 국왕이 된 아돌프 황태자가 총애하던 여비서였고, 유럽과 인도의 지식인들과 교류할 만큼 뛰어난 여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약속된 모든 것을 뿌리치고 조선에 돌아왔어요. 조선에 돌아오고 그녀는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콩나물 장사를 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조선 최초의 여성 경제학자가 콩나물 장사를 하다가 죽어버리다, 생애 자체가 기담이죠.”
그녀는 여성운동에 품었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인텔리 여성이 살기 힘든 조선이라고 토로할 만큼 조선에서의 삶은 혹독했다. “최영숙은 사회민주주의의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조선에 와서 사회운동, 특히 여성 운동을 하고 싶어 했어요. 스웨덴에 있을 때, 여공들도 휴일이면 귀부인처럼 수영도 하고 스키를 타러 다닌 것이 신기하고 부러웠대요. 그래서 조선으로 돌아가 근로 여성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귀국 후 넉 달 만에 죽었어요.”
최영숙은 펼치지 못한 꿈도 인문학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새롭게 알게 해 준 인물이었다. “역사는 대부분 무엇인가를 이룩한 사람에 대한 기록만을 남겨두죠. 역사는 이미 이루어진 것만을 다루잖아요. 그렇지만 꿈만 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요? 저는 최영숙을 연구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죠. 실패한 혁명가의 꿈도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이야기를 제공하는 첨단 학문이다
전봉관 교수는 전공은 현대시이지만, 현재 카이스트에서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편집’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영화나 게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편집 기술이거든요.”
영화와 게임과 같은 문화산업이 발달하면서 이야기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인문학은 그러한 이야기에 원천을 제공한다. “『경성기담』만 해도 문화 콘텐츠로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최영숙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영화나 소설의 소재가 될 만하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인문학의 영역이고, 그런 것을 제공하는 것도 인문학인 것이죠. 지금까지는 그러한 콘텐츠들을 주로 저널리스트들이 발굴해왔는데, 저는 원래는 인문학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인문학은 다른 학문들처럼 전문화의 길을 가고 있다. “바로 옆방에 있는 분들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도 잘 몰라요. 고전문학을 전공하시는 분이 현대문학 전공하시는 분의 논문을 읽으면, 왜 이런 연구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할 때가 많을 정도죠. 이렇게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인문학이 점점 더 고립되게 되었죠. 그러면서 인문학이 점점 시큰둥해지는 것 같아요.”
인문학자가 마주하는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내는 것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재미있게 풀어주는 글쓰기가 중요해졌다. “옛날에 역사학 공부하시던 분들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을 읽으면서 카드를 만들었어요. 그 카드를 얼마만큼 충실하게 만들었나에 따라 연구 실적이 판가름 났죠. 그런데 요즘은 그런 카드를 만드는 분이 없어요. 검색하면 되니까요.” 가지고 있는 자료는 대동소이하다. 자료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보고 알고 있는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나갈 것인가,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의 문제로 돌아가는 거죠.”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고 했다. “첫 줄에는 둘째 줄을 읽어야 할 이유가 명확하게 있어야 하고, 첫 단락에는 두 번째 단락을 읽어야 할 이유가, 첫 번째 장은 두 번째 장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첫 줄에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으면 독자는 읽지 않습니다. 독서 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대부분의 독자들은 한 번 읽어서 이해 못하면 더 이상 읽지 않습니다.”
문사철(文史哲)과 상상력이 함께하는 인문학을 꿈꾸며
두 번째 책을 내면서 글쓰기도 많이 달라졌다. “『황금광 시대』는 논문을 쓰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사람들 이야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데 치우쳤다면, 『경성기담』은 인간적인 느낌이 나도록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대중을 위한 교양서를 쓰게 된 계기는 자신의 말을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논문’을 언제 읽느냐하면 자신의 ‘논문’을 쓸 때밖에 읽지 않거든요. 저는 그 점이 안타까웠어요. 사람들이 제가 쓴 글을 많이 읽어줬으면 했어요. 학자로서 대중이 목말라하는 부분을 채워줄 의무가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대중적인 교양서를 쓰는 것과 논문을 쓰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다. 그가 꿈꾸는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이 어우러진 인문학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역사서이지만, 동시에 문장이 빼어나고, 글 속에 철학이 담겨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그는 상상력을 더한다. “상상력은 매너리즘에 빠진 인문학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를 매료시키는 것은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이야기성이 강한 인문서를 쓸 예정이다.
다음 책은 1930년대 잡지의 청춘 고민상담 코너 ‘가정문제 애정문제 어찌 하오리까’를 소재로 쓰여 질 예정이다. 『경성기담』만큼이나 색다른 인문서가 될 예감이다.
소설보다 신문이 재미있는 시대, 19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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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이 요즘으로 말하면 ‘여성~’ 류의 여성지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자기 시를 여성지에 실었어요. 여성잡지라는 것이 오늘날도 그렇지만 고상한 이야기만을 다루진 않거든요. 요즘 여성잡지에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이 실리는 것처럼, 그때에는 박희도 사건이니, 박인덕 사건이니 하는 것이 잡지에 실렸던 거죠.”
시가 실려 있는 뒷장에는 혼자 보기 아까운 1930년대의 스캔들과 사건들이 펼쳐졌다. 조선인 가정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도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일본인 여성, 재산을 둘러싼 부부싸움을 전 조선에 생중계했던 이인용 남작 부부, 여 제자와 키스내기 화투를 친 교장 선생님…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면 시만 보고 잡지를 덮었겠지만 그는 옆길로 새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현대시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금점판에서 대역전을 꿈꾼 한국인들의 이야기 『황금광 시대』를 썼고, 30년대 경성의 사건과 스캔들을 다룬 『경성기담』을 썼다.
8년 정도 꾸준히 30년대에 대한 자료들과 그 시대에 발행된 잡지들을 열심히 읽다보니 1930년대 전반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생겼다. 그러자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역사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특히, 20년대와 30년대는 근대의 문물들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과 갈등이 표면화되던 시대이므로 이야깃거리는 더욱 넘쳐났다.
살인사건, 스캔들에 드러난 조선의 근대
『경성기담』의 이야기들은 몇 가지 기준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다. 첫 번째는 30년대의 대표적인 사생활을 보여주는 것, 두 번째는 기존의 역사에서 다루지 않는 문화를 보여주는 것, 세 번째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문제제기를 하는 이야기들이다. “소재가 자극적이어서 『경성기담』이 새롭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어요. 예를 들어, 전 조선을 경악하게 한 백백교 사건에서 몇 백 명이 살해당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사회가 혼란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러한 종교에 왜 마음을 빼앗기는지,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거죠.”
지금까지 선정적인 살인 사건이나 스캔들은 인문학의 연구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역사책에서 한 줄 이상 씌어지지 않은 이런 사건들도 인문학적으로 분명 의미가 있다. 지금 우리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라고 하면 독립운동가나 조선 사람을 탄압하는 순사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시대에도 분명 오늘날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있었습니다. 다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요. 미신에 의한 범죄가 저질러지고, 무전유죄 유전무죄인 현실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고, 집나간 아내, 집나간 남편, 돈 떼먹고 도망가는 사람도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있잖아요.”
그래서 제목부터 고민했다. 1910년에서 45년까지를 지칭하는 용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왜정, 식민지 시대, 일제 시대, 일제강점기, 항일 시대 등등. 정치적 느낌이 강한 이런 용어 말고 이 시대를 가리킬 수 있는 단어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찾아낸 것이 바로 ‘경성’이었다.
스캔들, 숨어있는 역사의 1인치를 찾아내다
인물에 대한 글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스캔들은 더욱더 이야기하기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한 인간을 전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합쳐진 것이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음악가로서 안기영은 서양 음악과 한국적인 정서를 결합시키는 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생활로만 보자면 이 사람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아내가 둘째를 낳자마자 바로 유학을 떠나버리죠. 아내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아이들을 키웠어요. 유학을 갔다 와서 이화여전 교수로 좀 살 만해지니까 젊은 제자와 바람을 피웠죠. 아내는 젊어서 한 고생이 원인이 되어 병까지 얻은 상태였어요. 안기영의 손자들은 아직도 이 사람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한답니다. 손자면 벌써 대가 하나 건너뛴 것인데도 아직까지 상처로 여긴다는 거죠. 그런데 안기영을 새롭게 조명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는 하지 않죠.”
인간으로 안기영이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할 때 그의 천재적인 음악 감각만큼이나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못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그의 모습까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적인 생활 때문에 공적인 평가가 바뀌어서는 안 되지만, 사생활의 문란함을 공적인 업적으로 덮어버리거나 생략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누구나 사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을 지닌다. 이 중 어느 한 부분을 꾸며내거나 덮어버리려 할 때 삶은 왜곡된다. 삶만 왜곡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몸담았던 시대도 은폐된다.
“제가 볼 땐, 미국 사람들이 이런 것을 잘하는 것 같아요. 클린턴의 사생활, 그러니까 르윈스키와의 혼외정사 부분에 대해서는 SOB, Son of bitch라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으로는 미국을 이끌고 갈 만한 지도자로 생각했거든요.” 마르크스의 예도 들었다. 마르크스가 가정부를 착취했다는 이유로 『자본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시대가 외면한 특별한 여자 - 박인덕, 최영숙
『경성기담』에서는 두 명의 특별한 여자가 등장한다. 조선의 노라 박인덕과 조선 최초의 스웨덴 경제학자인 최영숙이 바로 그들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일방적인 ‘남성에 의한 여성의 학대’로 규정하는 전봉관 교수는 최영숙과 박인덕이 살았던 1930년대와 지금 사이에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여성들이 투표도 하고, 자기 일도 하고, 그때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지 않느냐고 반문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도의 문제는 인문학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착취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먼저, 박인숙. 근대 교육과 자유연애의 세례를 받은 신여성 박인덕은 자신의 배우자를 스스로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전 세대 보다 진일보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배우자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경제력’이었고, 여성에게 결혼은 여전히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경제적인 조건만을 보고 청년 부호와 결혼한 박인덕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고서.
“박인덕은 개인적으로 한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은 가정을 벗어난 후에 행복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더 사회생활에 매몰되었죠. 곁에서 보면 심하게 나선다고 할 정도로. 박인덕의 이야기가 단지 결혼에서 경제적인 조건만을 따지는 세태를 보여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양립문제나, 가정이 본질적으로 여성을 착취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는, 오늘날의 여성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죠.”
최영숙은 『경성기담』에서 그가 가장 애정을 가진 인물이다. 스웨덴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영어와 독일어, 스웨덴어, 중국어, 일본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당대의 둘도 없는 인텔리 여성이었지만 조국은 그녀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최영숙은 스웨덴에 있었으면 대단한 인물이 되었겠죠. 후에 국왕이 된 아돌프 황태자가 총애하던 여비서였고, 유럽과 인도의 지식인들과 교류할 만큼 뛰어난 여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약속된 모든 것을 뿌리치고 조선에 돌아왔어요. 조선에 돌아오고 그녀는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콩나물 장사를 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조선 최초의 여성 경제학자가 콩나물 장사를 하다가 죽어버리다, 생애 자체가 기담이죠.”
그녀는 여성운동에 품었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인텔리 여성이 살기 힘든 조선이라고 토로할 만큼 조선에서의 삶은 혹독했다. “최영숙은 사회민주주의의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조선에 와서 사회운동, 특히 여성 운동을 하고 싶어 했어요. 스웨덴에 있을 때, 여공들도 휴일이면 귀부인처럼 수영도 하고 스키를 타러 다닌 것이 신기하고 부러웠대요. 그래서 조선으로 돌아가 근로 여성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귀국 후 넉 달 만에 죽었어요.”
최영숙은 펼치지 못한 꿈도 인문학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새롭게 알게 해 준 인물이었다. “역사는 대부분 무엇인가를 이룩한 사람에 대한 기록만을 남겨두죠. 역사는 이미 이루어진 것만을 다루잖아요. 그렇지만 꿈만 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요? 저는 최영숙을 연구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죠. 실패한 혁명가의 꿈도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이야기를 제공하는 첨단 학문이다
전봉관 교수는 전공은 현대시이지만, 현재 카이스트에서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편집’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영화나 게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편집 기술이거든요.”
영화와 게임과 같은 문화산업이 발달하면서 이야기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인문학은 그러한 이야기에 원천을 제공한다. “『경성기담』만 해도 문화 콘텐츠로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최영숙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영화나 소설의 소재가 될 만하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인문학의 영역이고, 그런 것을 제공하는 것도 인문학인 것이죠. 지금까지는 그러한 콘텐츠들을 주로 저널리스트들이 발굴해왔는데, 저는 원래는 인문학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인문학은 다른 학문들처럼 전문화의 길을 가고 있다. “바로 옆방에 있는 분들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도 잘 몰라요. 고전문학을 전공하시는 분이 현대문학 전공하시는 분의 논문을 읽으면, 왜 이런 연구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할 때가 많을 정도죠. 이렇게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인문학이 점점 더 고립되게 되었죠. 그러면서 인문학이 점점 시큰둥해지는 것 같아요.”
인문학자가 마주하는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내는 것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재미있게 풀어주는 글쓰기가 중요해졌다. “옛날에 역사학 공부하시던 분들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을 읽으면서 카드를 만들었어요. 그 카드를 얼마만큼 충실하게 만들었나에 따라 연구 실적이 판가름 났죠. 그런데 요즘은 그런 카드를 만드는 분이 없어요. 검색하면 되니까요.” 가지고 있는 자료는 대동소이하다. 자료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보고 알고 있는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나갈 것인가,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의 문제로 돌아가는 거죠.”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고 했다. “첫 줄에는 둘째 줄을 읽어야 할 이유가 명확하게 있어야 하고, 첫 단락에는 두 번째 단락을 읽어야 할 이유가, 첫 번째 장은 두 번째 장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첫 줄에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으면 독자는 읽지 않습니다. 독서 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대부분의 독자들은 한 번 읽어서 이해 못하면 더 이상 읽지 않습니다.”
문사철(文史哲)과 상상력이 함께하는 인문학을 꿈꾸며
대중을 위한 교양서를 쓰게 된 계기는 자신의 말을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논문’을 언제 읽느냐하면 자신의 ‘논문’을 쓸 때밖에 읽지 않거든요. 저는 그 점이 안타까웠어요. 사람들이 제가 쓴 글을 많이 읽어줬으면 했어요. 학자로서 대중이 목말라하는 부분을 채워줄 의무가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대중적인 교양서를 쓰는 것과 논문을 쓰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다. 그가 꿈꾸는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이 어우러진 인문학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역사서이지만, 동시에 문장이 빼어나고, 글 속에 철학이 담겨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그는 상상력을 더한다. “상상력은 매너리즘에 빠진 인문학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를 매료시키는 것은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이야기성이 강한 인문서를 쓸 예정이다.
다음 책은 1930년대 잡지의 청춘 고민상담 코너 ‘가정문제 애정문제 어찌 하오리까’를 소재로 쓰여 질 예정이다. 『경성기담』만큼이나 색다른 인문서가 될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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