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변함없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특별한 책
각설하고 단언컨대, “책은 지금까지 변함없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라고 말하겠다. 특별히 몇 권의 책만이 아니라 삼십 년의 지난날, 쪽마다 어떤 형태든 글자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200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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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특별한 책>란에 글을 쓰게 되었다고 내심 뿌듯해하고 나니 며칠째 한숨만 난다. 지금이 한 스물 두엇쯤 되었더라면 네 장이고 다섯 장이고 기고만장하게 써 내려갈 텐데,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편식 같은 독서를 반복하는 초라한 실정을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다간 중간고사 문제도 못 내게 생겨서 얼른 다잡아 용기를 내어본다.
각설하고 단언컨대, “책은 지금까지 변함없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라고 말하겠다. 특별히 몇 권의 책만이 아니라 삼십 년의 지난날, 쪽마다 어떤 형태든 글자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아무리 놀 사람이 없어도 책은 군말 없이 나랑 놀아주었고, 때론 인형놀이의 집터를 마련해 주기도 했으며, 라면받침이거나 베개이기도 했고, 나를 키워준 자양분이기도 했다.
그 중 무엇보다 가장 ‘낭만적’인 내 인생의 책은 무척이나 유명한 몽고메리 아줌마의 『빨강머리 앤』이다. 보통 형편의 시골집 넷째인 내 취미는 글자 읽기였다. 동성 또래가 없어 내내 야구나 논두렁 탐험을 하며 지냈던 어린 시절,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거였나 보다. 다행히 핏줄의 문자 흡착 유전자가 강해서인지, 묶어서 다락방에 놓아둔 언니, 오빠의 각종 교과서나 일기장, 여기저기서 주워 들인 소설책을 마시듯 시간을 보내었고, 덕분에 무엇이든 주워 읽는 습관은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아 어느새 밥 벌어먹는 일도 그와는 멀지 않은 곳에 주저앉았지 싶다.
다시 ‘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연인진 몰라도, 앤과 나는 무척 많이 닮았다. 나도 다이나의, 눈처럼 흰 피부와 비단결 같은 검은 머리를 원했고, 또래 아이들처럼 유행에 맞는 옷을 입고 싶었다. 지금은 영화배우 ‘명계남’ 덕에 많이 알려진 이름이지만 좀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내 이름 대신 세련되고 예쁜 이름을 갖고 싶었다. 앤처럼 날마다 일기를 적어 나갔고 나무와 숲에 이름을 붙이는 일까진 하지 못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혼자 노래를 불렀다.
기하학을 비롯한 수학을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고 이성을 자각할 무렵쯤엔 ‘길버트’ 같은 놈과의 연애를 꿈꾸기도 한 것 같다. 철없고 못생긴 말라깽이 소녀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럴 듯한 로맨스에 적당히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며 ‘곱슬머리에 이름이 불만인 시골뜨기’의 미래도 매직 스트레이트처럼 죽죽 펴지길 기대했다. 그 또래 소녀가 다 그런 건진 몰라도 『소공녀』나 『비밀의 화원』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공상이었기에 더 애착했고 덕분에 앤은 내가 철이 들어 세상 찬 맛을 좀 알 때까지 나를 마시멜로우 같은 폭신한 공상으로 안심시켜 주곤 했다.
검붉은 빛 양장본 표지에, 멋진 금박의 영어 필기체 제목, 타자기 글씨체 10포인트 정도의 12권(으로 기억한다. 11, 12권이 다른 사람들의 얘기였던)짜리 전질이라…. 어쩌면 그 외양만으로도 나를 흥분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두 번째 특별한 책 역시 많이 알려진 시집 기형도의 『입 속의 푸른 잎』이다. 기형도의 시집은 ‘詩’가 독특한 언어로 내면을 이야기하는 정말 특별한 장르라는 매력을 실제로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그간 읽어왔던 스토리의 흡인력 대신 강렬한 비유의 힘으로 무장한 그의 시집은 한 편도 빠짐없이 나를 매료했고, 심지어 나를 거침없고 유치한 습작의 세계로 내몰기도 했다. 내가 ‘시’ 쓰기에 재주가 정말 없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습작한 네댓 권의 노트가 모두 그 시절의 것이니, 그가 사춘기 한 소녀를 지배했던 울림은 꽤 컸던 모양이다.
끝없이 서늘하기만 한 젊은 시인의 내면을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비유로 표현할 수가 있는지. 마지막 시였던 ‘엄마 걱정’은 시어 하나하나가 모두 보석 같았다. 단어마다 물씬 풍기는 어둠의 냄새를 맡으며 오히려 나는 희망을 배웠다. 그의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쓰러진 약병 같은 아버지’는 마침 내 생일을 맞아 거친 수술대 위에서 절름발이가 되어버린 내 아버지였고, 나는 울음 대신 어쭙잖은 시어로 내 상황을 객관화했다.
덕분에 그해 여름 시화전엔 내 가정사를 투영한 한 편의 시를 내걸었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던 언니는 웬일인지 아무 말 없이 돌아가 버렸다. 그래도 나는 엉킨 시어를 바라보며 자신을 위무했고, 어느새 부쩍 자라 있었다.
마지막으로 꼽을 책도 역시 시집인데, 박용하라는(탤런트 말고) 시인의 『바다로 가는 서른세 번째 길』이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만난 박용하는 이전까지 알던 시인들과 많이 달랐다. 모습은 왠지 어눌하고 고집스러워 보였지만, 글맛만은 전통적인 서정시도, 기형도도 아닌 신선한 날것이었다. 나희덕이나 장석남처럼 나긋나긋한 시어를 쓰지도 않았고, 이시영이나 박노해의 노선도 아니었다.
그는 알래스카의 막다른 벼랑에서라도 불꽃을 피울 사람이었다. 첫 시가 펼쳐지기도 전 “나는 나의 미래와 모험에 적금을 붓는다”라는 건방진 그의 서문은 내게 치기 어린 용기를 듬뿍 전해주었다. 그의 시 중 지금도 아무 데서나 잘 써먹고 잘 외우는 시가 ‘적설(積雪)’이다.
「겨울 자작나무 숲에서 너, 견디고 있구나. 천국엔, 세금과 고통이 없어 싫다는 이 한 몸 끝까지 견뎌야 사랑이다. 검은 기중기의 눈발이 쏟아진다.」(시 전문)
눈밭에서 끝없이 떨며 무거운 눈발을 감당하는 자작나무 한 그루. 그 와중에도 따뜻한 천국은 재미가 없다는 그의 호언장담은, 마침 덜컥 입학한 사범대에서 조금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게 등교의 이유를 조금은 마련해준 것 같다.
그의 시 속에서 사람은 태어난 게 아니라 던져졌다. 어쩔 수 없이 떨어진 것에 대해 빠르게 체념하고 대신 지구라는 썩은 땅덩이에서 살아남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다잡는다. 세상을 견뎌냄. ‘계속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하여’ 등의 제목으로 이어지는 반복된 외침은 나의 심장을 좀 더 단단하게 했고, 대신 근원의 모성을 노래한 ‘연어川’이나 한 편의 판타지 같은 표제시 ‘바다로 가는 서른세 번째 길’은 내 안에 남아있는 따뜻한 꿈의 기억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그리고 문학이 사람을 어떤 형태로든 행복하게 만드는 기제란 걸 인정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나라는 사람은 책 자체에 대한 호불호보다 그 책을 읽을 당시의 정황과 흡인 정도에 따라서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소개하는 책은 정말 내 인생‘만’의 특별한 책인 셈이다. 그래도 오르고 내리는 경계의 시점마다, 다른 게 아닌 책이 나와 함께 있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잘(?) 자라주었으니 말이다.
이제 교직 7년차에 접어든 나는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주저 없이 나의 별명을 소개한다. “나는 닭샘이다. 닭 계(鷄) 자에 사내 남(男) 자를 쓴다. (실제는 계수나무 계(桂) 자를 쓴다. 오해 없으시길)” 웃긴다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눈에서 간혹 나를 볼 때가 있다. 그 아이가 겪는 어둡고 긴 터널도 보이는 것 같다. 그 속에 손을 내밀고 싶다가도 정말 이것이 그 아이를 위하는 일일까 되짚어보곤 한다.
다만 내게 긴 시절을 함께 할 친구가 있었듯 그 아이에게도 책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선생으로서의 전통적인 바람이라기보다는 순수한 내 경험의 발로로써 말이다. 혹은 그 아이의 불행 중 하나가 책에서 멀어진 환경 자체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했던 수많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필자 주: 안도현의 시집 제목) 생각 중의 대개는 한 권의 책과 함께 사그라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책은, ‘내 아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이름 붙여진 그것… 오랜 나의 친구였다.
----------------------------------
달걀처럼 동글동글하다가도, 고추장 먹인 싸움닭처럼 표독하기도 하다. 한 둥우리에 달걀 몇 개씩 잘 품어 깨워주는 직업인 교사지만 해마다 깨뜨리는 달걀도 몇 개씩 있어 도대체 나라는 인간이 좋은 선생이 되려면 얼마나 더 갈고 닦아야 하나 고민 중인 닭샘.
요즘엔 지속적으로 아줌마와 애 엄마라는 호칭이 추가되어 좀 더 뻔뻔해지고 노글노글해졌다. 나름 1인 3역을 해대느라 맥주 마시며 블로그질에 매진하지 못하는 요즘이 조금 불만이나 <내 인생의 특별한 책> 청탁을 받곤 기고만장한 상태기도 하다.
각설하고 단언컨대, “책은 지금까지 변함없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라고 말하겠다. 특별히 몇 권의 책만이 아니라 삼십 년의 지난날, 쪽마다 어떤 형태든 글자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아무리 놀 사람이 없어도 책은 군말 없이 나랑 놀아주었고, 때론 인형놀이의 집터를 마련해 주기도 했으며, 라면받침이거나 베개이기도 했고, 나를 키워준 자양분이기도 했다.
그 중 무엇보다 가장 ‘낭만적’인 내 인생의 책은 무척이나 유명한 몽고메리 아줌마의 『빨강머리 앤』이다. 보통 형편의 시골집 넷째인 내 취미는 글자 읽기였다. 동성 또래가 없어 내내 야구나 논두렁 탐험을 하며 지냈던 어린 시절,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거였나 보다. 다행히 핏줄의 문자 흡착 유전자가 강해서인지, 묶어서 다락방에 놓아둔 언니, 오빠의 각종 교과서나 일기장, 여기저기서 주워 들인 소설책을 마시듯 시간을 보내었고, 덕분에 무엇이든 주워 읽는 습관은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아 어느새 밥 벌어먹는 일도 그와는 멀지 않은 곳에 주저앉았지 싶다.
다시 ‘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연인진 몰라도, 앤과 나는 무척 많이 닮았다. 나도 다이나의, 눈처럼 흰 피부와 비단결 같은 검은 머리를 원했고, 또래 아이들처럼 유행에 맞는 옷을 입고 싶었다. 지금은 영화배우 ‘명계남’ 덕에 많이 알려진 이름이지만 좀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내 이름 대신 세련되고 예쁜 이름을 갖고 싶었다. 앤처럼 날마다 일기를 적어 나갔고 나무와 숲에 이름을 붙이는 일까진 하지 못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혼자 노래를 불렀다.
기하학을 비롯한 수학을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고 이성을 자각할 무렵쯤엔 ‘길버트’ 같은 놈과의 연애를 꿈꾸기도 한 것 같다. 철없고 못생긴 말라깽이 소녀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럴 듯한 로맨스에 적당히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며 ‘곱슬머리에 이름이 불만인 시골뜨기’의 미래도 매직 스트레이트처럼 죽죽 펴지길 기대했다. 그 또래 소녀가 다 그런 건진 몰라도 『소공녀』나 『비밀의 화원』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공상이었기에 더 애착했고 덕분에 앤은 내가 철이 들어 세상 찬 맛을 좀 알 때까지 나를 마시멜로우 같은 폭신한 공상으로 안심시켜 주곤 했다.
검붉은 빛 양장본 표지에, 멋진 금박의 영어 필기체 제목, 타자기 글씨체 10포인트 정도의 12권(으로 기억한다. 11, 12권이 다른 사람들의 얘기였던)짜리 전질이라…. 어쩌면 그 외양만으로도 나를 흥분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두 번째 특별한 책 역시 많이 알려진 시집 기형도의 『입 속의 푸른 잎』이다. 기형도의 시집은 ‘詩’가 독특한 언어로 내면을 이야기하는 정말 특별한 장르라는 매력을 실제로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그간 읽어왔던 스토리의 흡인력 대신 강렬한 비유의 힘으로 무장한 그의 시집은 한 편도 빠짐없이 나를 매료했고, 심지어 나를 거침없고 유치한 습작의 세계로 내몰기도 했다. 내가 ‘시’ 쓰기에 재주가 정말 없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습작한 네댓 권의 노트가 모두 그 시절의 것이니, 그가 사춘기 한 소녀를 지배했던 울림은 꽤 컸던 모양이다.
끝없이 서늘하기만 한 젊은 시인의 내면을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비유로 표현할 수가 있는지. 마지막 시였던 ‘엄마 걱정’은 시어 하나하나가 모두 보석 같았다. 단어마다 물씬 풍기는 어둠의 냄새를 맡으며 오히려 나는 희망을 배웠다. 그의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쓰러진 약병 같은 아버지’는 마침 내 생일을 맞아 거친 수술대 위에서 절름발이가 되어버린 내 아버지였고, 나는 울음 대신 어쭙잖은 시어로 내 상황을 객관화했다.
덕분에 그해 여름 시화전엔 내 가정사를 투영한 한 편의 시를 내걸었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던 언니는 웬일인지 아무 말 없이 돌아가 버렸다. 그래도 나는 엉킨 시어를 바라보며 자신을 위무했고, 어느새 부쩍 자라 있었다.
마지막으로 꼽을 책도 역시 시집인데, 박용하라는(탤런트 말고) 시인의 『바다로 가는 서른세 번째 길』이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만난 박용하는 이전까지 알던 시인들과 많이 달랐다. 모습은 왠지 어눌하고 고집스러워 보였지만, 글맛만은 전통적인 서정시도, 기형도도 아닌 신선한 날것이었다. 나희덕이나 장석남처럼 나긋나긋한 시어를 쓰지도 않았고, 이시영이나 박노해의 노선도 아니었다.
그는 알래스카의 막다른 벼랑에서라도 불꽃을 피울 사람이었다. 첫 시가 펼쳐지기도 전 “나는 나의 미래와 모험에 적금을 붓는다”라는 건방진 그의 서문은 내게 치기 어린 용기를 듬뿍 전해주었다. 그의 시 중 지금도 아무 데서나 잘 써먹고 잘 외우는 시가 ‘적설(積雪)’이다.
「겨울 자작나무 숲에서 너, 견디고 있구나. 천국엔, 세금과 고통이 없어 싫다는 이 한 몸 끝까지 견뎌야 사랑이다. 검은 기중기의 눈발이 쏟아진다.」(시 전문)
눈밭에서 끝없이 떨며 무거운 눈발을 감당하는 자작나무 한 그루. 그 와중에도 따뜻한 천국은 재미가 없다는 그의 호언장담은, 마침 덜컥 입학한 사범대에서 조금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게 등교의 이유를 조금은 마련해준 것 같다.
그의 시 속에서 사람은 태어난 게 아니라 던져졌다. 어쩔 수 없이 떨어진 것에 대해 빠르게 체념하고 대신 지구라는 썩은 땅덩이에서 살아남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다잡는다. 세상을 견뎌냄. ‘계속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하여’ 등의 제목으로 이어지는 반복된 외침은 나의 심장을 좀 더 단단하게 했고, 대신 근원의 모성을 노래한 ‘연어川’이나 한 편의 판타지 같은 표제시 ‘바다로 가는 서른세 번째 길’은 내 안에 남아있는 따뜻한 꿈의 기억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그리고 문학이 사람을 어떤 형태로든 행복하게 만드는 기제란 걸 인정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나라는 사람은 책 자체에 대한 호불호보다 그 책을 읽을 당시의 정황과 흡인 정도에 따라서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소개하는 책은 정말 내 인생‘만’의 특별한 책인 셈이다. 그래도 오르고 내리는 경계의 시점마다, 다른 게 아닌 책이 나와 함께 있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잘(?) 자라주었으니 말이다.
이제 교직 7년차에 접어든 나는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주저 없이 나의 별명을 소개한다. “나는 닭샘이다. 닭 계(鷄) 자에 사내 남(男) 자를 쓴다. (실제는 계수나무 계(桂) 자를 쓴다. 오해 없으시길)” 웃긴다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눈에서 간혹 나를 볼 때가 있다. 그 아이가 겪는 어둡고 긴 터널도 보이는 것 같다. 그 속에 손을 내밀고 싶다가도 정말 이것이 그 아이를 위하는 일일까 되짚어보곤 한다.
다만 내게 긴 시절을 함께 할 친구가 있었듯 그 아이에게도 책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선생으로서의 전통적인 바람이라기보다는 순수한 내 경험의 발로로써 말이다. 혹은 그 아이의 불행 중 하나가 책에서 멀어진 환경 자체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했던 수많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필자 주: 안도현의 시집 제목) 생각 중의 대개는 한 권의 책과 함께 사그라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책은, ‘내 아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이름 붙여진 그것… 오랜 나의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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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처럼 동글동글하다가도, 고추장 먹인 싸움닭처럼 표독하기도 하다. 한 둥우리에 달걀 몇 개씩 잘 품어 깨워주는 직업인 교사지만 해마다 깨뜨리는 달걀도 몇 개씩 있어 도대체 나라는 인간이 좋은 선생이 되려면 얼마나 더 갈고 닦아야 하나 고민 중인 닭샘.
요즘엔 지속적으로 아줌마와 애 엄마라는 호칭이 추가되어 좀 더 뻔뻔해지고 노글노글해졌다. 나름 1인 3역을 해대느라 맥주 마시며 블로그질에 매진하지 못하는 요즘이 조금 불만이나 <내 인생의 특별한 책> 청탁을 받곤 기고만장한 상태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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