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로마인 이야기』, 나는 이렇게 읽었다
『로마인 이야기』가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으로 완결되었다.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1992년에 출간된 후, 해마다 한 권씩 발표된 셈이니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2007.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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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일본 <주간 독서인>(2007년 1월 5일호)에 실린 시오노 나나미 특집기사 일부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로마인 이야기』가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으로 완결되었다.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1992년에 출간된 후, 해마다 한 권씩 발표된 셈이니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세계 역사상 로마 건국부터 서로마 제국의 쇠망에 이르는 1,200년이 넘는 역사만큼 화려하고 흥미를 돋우는 주제는 없다. 그러니 그 성쇠 가운데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을 그려내면서 흥망의 메커니즘을 부각시킨 시오노의 작업 역시 역사에 남는 위업이 아닐까.
처음 출간이 되고 조금 지났을 무렵, 가스야 가즈키(粕谷一希) 씨의 제의로 지인들과 함께 일본에 머물던 시오노 나나미와 만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회상하면 시오노의 예사롭지 않은 의욕을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지금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는 수많은 문헌을 섭렵하고 있으며, 자기가 로마사를 써버리면 그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 비슷한 말을 했다.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그저 그렇구나 생각만 했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고대 중국의 흥망사를 우리에게 남겼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나라가 어지러워져서 혁명이 일어나면 반드시 새로 천명을 받은 황제가 즉위한다. 이는 한 나라가 정치형태를 변화시켜도 영속했던 로마와는 크게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사기』는 역사 속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열전」으로서 따로 기록하였다. 그런 방법은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완전히 극복되어, 역할을 완수한, 또는 완수하지 못한 사람들이 역사의 큰 흐름 속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록자와 역사가들이 로마 역사와 씨름했던가. 그토록 긴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의 흥망은 장대하고 드라마틱하며, 그 속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역사가는 잇따른 통치형태의 변화와 암살, 싸움과 침략에만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시오노의 로마사는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이, ‘로마의 역사’가 아니라 피가 통하는 ‘로마인의 이야기’이다. 다른 작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특히, 그 중심이 되는 것으로는 제4권과 제5권에 걸쳐 쓴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야기다. 카이사르 자신의 캐릭터와 그가 로마 정치의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는 숨 가쁜 과정 자체가 훌륭한 스토리인 동시에, 손수 저술한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 등 일급 사료를 오늘날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제1권 참고문헌에서 이렇게 썼다. “자신의 탁월한 행동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간결하고 명쾌하고 단아한 문체로 서술해버린 역사상 보기 드문 인물. 처칠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처칠보다 먼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는 인물.” 『갈리아 전쟁기』에 대해 말하면, 싸움터에서 본국 로마에 보내는 보고로서 구술된 것으로 전해지며, 다소 과장과 자기변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로 하여금 문학이라고 말하게 할 만큼 완성도가 높으며, 그 속의 기술은 카이사르의 지성과 교양을 충분히 표출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는 마치 카이사르를 축으로 해서 쓴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카이사르가 단순한 무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폭이 넓고 깊었기 때문이며, 그를 그림으로써 그 후 로마의 번영과 영속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의 역사관은 비정하고 냉철하게 여겨지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를 짊어진 사람들을 보는 눈이 따뜻하고 동정적이라는 것이 한 가닥의 굵은 밧줄처럼 엮어져 있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전 15권 가운데 첫 다섯 권은 로마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에서 카이사르의 대개혁에 이르기까지 할애되고, 그 결과로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실질적인 제정에 이르러 ‘로마에 의한 평화’의 시대가 구축된다. 팍스 로마나 이후의 황제들이 모두 다 명군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로마의 번영은 마치 이와는 무관한 듯 지속된다. 악명을 남긴 네로의 시대에도 어째서 로마의 질서가 유지되고 평화가 계속되었는가에 대한 시오노의 분석은, 지금까지 사가들이 주목하지 못한 점이 있어 『로마인 이야기』만의 진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현제(五賢帝)라 일컬어지는 로마의 최전성기가 지나면, 그토록 길었던 로마의 정체(政體)는 쇠망으로 향한다. 그것이 제11권 『종말의 시작』에서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에 이르는데, 이 다섯 권에서 다루어지는 로마의 역사는 족히 3백 년이 넘는다.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차면 이지러지는 것이 세상 이치라는 점에서 로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로마의 역사는 단순히 쇠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피로’가 있기는 해도 오랜 번영을 누리고 인류 역사에 자랑할 만한 문화를 구축하여 2천 년 후 현대문명의 큰 뿌리가 되었다. 또한 로마가 쇠망으로 향했을 때에도 뛰어난 인재를 얻지 못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고 시오노는 말한다.
이리하여 서로마 제국은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의 퇴위 후 후계자 없이 멸망하고, 동로마 제국도 그 후에 멸망한다. 시오노는 ‘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쇠망했는가를 쓰고 있다. 더욱이 위정자와 재상, 장군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았는가를 이야기한다. 로마의 역사는 그저 ‘이야기’로서 자칫 무미해지기 쉬운 사실(史實)에 그것을 짊어진 사람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생기를 불어넣었다.
현재의 인류 문명이 연속하는 한, 『로마인 이야기』라는 작품과 그것이 전하는 인간의 정신 및 작업은, 언제까지나 사람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줄 것이다. 그만큼 이 대작은 상찬을 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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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가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으로 완결되었다.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1992년에 출간된 후, 해마다 한 권씩 발표된 셈이니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세계 역사상 로마 건국부터 서로마 제국의 쇠망에 이르는 1,200년이 넘는 역사만큼 화려하고 흥미를 돋우는 주제는 없다. 그러니 그 성쇠 가운데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을 그려내면서 흥망의 메커니즘을 부각시킨 시오노의 작업 역시 역사에 남는 위업이 아닐까.
처음 출간이 되고 조금 지났을 무렵, 가스야 가즈키(粕谷一希) 씨의 제의로 지인들과 함께 일본에 머물던 시오노 나나미와 만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회상하면 시오노의 예사롭지 않은 의욕을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지금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는 수많은 문헌을 섭렵하고 있으며, 자기가 로마사를 써버리면 그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 비슷한 말을 했다.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그저 그렇구나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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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록자와 역사가들이 로마 역사와 씨름했던가. 그토록 긴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의 흥망은 장대하고 드라마틱하며, 그 속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역사가는 잇따른 통치형태의 변화와 암살, 싸움과 침략에만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시오노의 로마사는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이, ‘로마의 역사’가 아니라 피가 통하는 ‘로마인의 이야기’이다. 다른 작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특히, 그 중심이 되는 것으로는 제4권과 제5권에 걸쳐 쓴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야기다. 카이사르 자신의 캐릭터와 그가 로마 정치의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는 숨 가쁜 과정 자체가 훌륭한 스토리인 동시에, 손수 저술한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 등 일급 사료를 오늘날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제1권 참고문헌에서 이렇게 썼다. “자신의 탁월한 행동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간결하고 명쾌하고 단아한 문체로 서술해버린 역사상 보기 드문 인물. 처칠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처칠보다 먼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는 인물.” 『갈리아 전쟁기』에 대해 말하면, 싸움터에서 본국 로마에 보내는 보고로서 구술된 것으로 전해지며, 다소 과장과 자기변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로 하여금 문학이라고 말하게 할 만큼 완성도가 높으며, 그 속의 기술은 카이사르의 지성과 교양을 충분히 표출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는 마치 카이사르를 축으로 해서 쓴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카이사르가 단순한 무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폭이 넓고 깊었기 때문이며, 그를 그림으로써 그 후 로마의 번영과 영속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의 역사관은 비정하고 냉철하게 여겨지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를 짊어진 사람들을 보는 눈이 따뜻하고 동정적이라는 것이 한 가닥의 굵은 밧줄처럼 엮어져 있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전 15권 가운데 첫 다섯 권은 로마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에서 카이사르의 대개혁에 이르기까지 할애되고, 그 결과로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실질적인 제정에 이르러 ‘로마에 의한 평화’의 시대가 구축된다. 팍스 로마나 이후의 황제들이 모두 다 명군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로마의 번영은 마치 이와는 무관한 듯 지속된다. 악명을 남긴 네로의 시대에도 어째서 로마의 질서가 유지되고 평화가 계속되었는가에 대한 시오노의 분석은, 지금까지 사가들이 주목하지 못한 점이 있어 『로마인 이야기』만의 진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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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제(五賢帝)라 일컬어지는 로마의 최전성기가 지나면, 그토록 길었던 로마의 정체(政體)는 쇠망으로 향한다. 그것이 제11권 『종말의 시작』에서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에 이르는데, 이 다섯 권에서 다루어지는 로마의 역사는 족히 3백 년이 넘는다.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차면 이지러지는 것이 세상 이치라는 점에서 로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로마의 역사는 단순히 쇠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피로’가 있기는 해도 오랜 번영을 누리고 인류 역사에 자랑할 만한 문화를 구축하여 2천 년 후 현대문명의 큰 뿌리가 되었다. 또한 로마가 쇠망으로 향했을 때에도 뛰어난 인재를 얻지 못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고 시오노는 말한다.
이리하여 서로마 제국은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의 퇴위 후 후계자 없이 멸망하고, 동로마 제국도 그 후에 멸망한다. 시오노는 ‘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쇠망했는가를 쓰고 있다. 더욱이 위정자와 재상, 장군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았는가를 이야기한다. 로마의 역사는 그저 ‘이야기’로서 자칫 무미해지기 쉬운 사실(史實)에 그것을 짊어진 사람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생기를 불어넣었다.
현재의 인류 문명이 연속하는 한, 『로마인 이야기』라는 작품과 그것이 전하는 인간의 정신 및 작업은, 언제까지나 사람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줄 것이다. 그만큼 이 대작은 상찬을 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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