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여자와 남자가 뒤바뀐다면 어떨까. 『이갈리아의 딸들』은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평등주의와 유토피아의 합성어, 그 땅의 이름은 이갈리아다. 여자는 ‘woman’이 아닌 ‘움wom’으로 불린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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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뒤바뀐다면 어떨까. 『이갈리아의 딸들』은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평등주의와 유토피아의 합성어, 그 땅의 이름은 이갈리아다. 여자는 ‘woman’이 아닌 ‘움wom’으로 불린다. 남자는 ‘man’이 아닌 ‘맨움manwom’으로 불린다. 이갈리아의 세계는 가모장제를 기반으로 한다. 기존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들의 역할을 여자가 대신하며, 남자들은 여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남자들은 집에서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고, 여자들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성에 대한 이미지와 관념까지도 뒤바뀌게 된다. 이갈리아의 남자들은 기존 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들, 즉 연약함, 보호본능, 내향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이에 반해 여자들은 강건하고 거칠고 외향적인 특질을 갖게 된다.

책은 재미있다. 남자와 여자가 뒤바뀐다는 가정도 그렇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기발함을 보여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페호라고 불리는 기구인데, 페호는 맨움들이 페니스를 받치기 위해 입는 옷이란다. 꽉 낀다, 이음매 부분이 아프다 등등, 페호에 관해 이갈리아의 맨움들이 수다 떠는 부분에 이르면 웃음을 참으려야 참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단발성 유머들로만 책이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갈리아의 가능성, 즉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뒤바뀌어 맨움과 움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부터가 현재 지배적인 가부장제에서 남자들이 누리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권력의 필연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책의 저자 게르드 브란튼베르그는 책의 많은 부분에서 이갈리아의 가능성을 논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부장제의 필연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 가장 큰 논거는, “아이는 여자가 낳는다”라는 것이다. 임신 중 상당한 기간 동안 그녀의 노동력은 무용의 상태가 되며, 아이를 낳고서도 한동안은 경제?사회적인 경쟁 권역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부에서는 가부장제의 필연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브란튼베르그는 이러한 관념마저도 비판한다. 이갈리아에서는, 남성은 경제 문제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 수유는 남성들의 몫으로 정해져 있으며(어떻게 수유하는지는 찾아서 읽어보시기를), 육아도 그렇다. 부분적으로 소개하기는 했지만, 책 전체에 걸쳐 작가는 가부장제의 필연성은 허구라고 외친다.

한 이동통신 회사의 광고가 기억난다. 군복을 입고, 차렷 자세를 한 여자가 거수경례를 하던 장면, 그리고 자막. ‘차이는 인정한다, 하지만 차별엔 도전한다.’ 과연 이갈리아는 존재할 수 있는 땅일까. 근본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같을 수 있을까.

둘은 같을 수 없고, 같아져서도 안 된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여자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전근대적인 발언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신체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속속들이 밝혀지는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사회문화적인 가치 주입과는 별개로 정신 능력에 있어 남녀는 차이가 있다. 남자와 여자는, 같지 않다. 그리고 그에 바탕하여 각각의 성에 더 잘 맞는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브란튼베르그는 이갈리아의 가모장적 사회제도 역시 생물학적 체계에 기반한다고 말하지만, 설득력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600만 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다시 한 번 시간을 되감는다 해도 이갈리아가 나타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나는 회의적이다. 현재의 모습과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비슷하게, 가부장적인 사회가 형성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브란튼베르그의 대담한 가정은, 가정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을 뒤집음으로써 은폐되고, 일견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차별들을, 그는 날카롭게 집어낸다. 이갈리아의 맨움, 그리고 현대 사회의 여성은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관통하는 암묵적이고 포괄적인 동의에 의해 그들은 자신의 꿈을 희생하기를 강요당하며,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할 때가 있다. 배를 타서 훌륭한 어부가 되고 싶었던 맨움, 다리를 설계하고 싶었던 맨움들은 꿈을 포기하고 결국 한 가정의 육아와 가사에 치여 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인 미덕이며 의무다.

여성 상위적인 사회 체제가 나타나는 이갈리아건, 남성 상위적인 사룈 체제가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현대사회건 간에 대립은 필연적으로 한쪽의 희생을 요구한다. 성과 성 간의 무리 짓기가 도대체 무엇을 보장하는가. 상대 집단과 내 집단 간의 분열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패거리화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벽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벽은 바로 성性의 벽이 아닐까. 개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 사랑만이 그 굳건한 벽을 허물 유일한 계책일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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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han

2009.05.19

개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 사랑은 가부장제의 벽을 허물 충분한 대안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 논쟁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머리 중 하나는, "나도 딸 가진 아빠인데 내가 보기에..."입니다. 그러나 딸을 가진 마초, 딸을 가진 성폭행범도 많지요. 딸에 대한 이해와 존중과 사랑은 여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과 사랑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필요한 것은 현 상황에 대한 이해, 문제의식, 자기반성, 대안에 대한 고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 상황이 극히 남성중심적이라는 것, 그것이 남성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남성이 군대를 가야한다거나, 남성이 간호사 등이 되려면 힘든일이 많다거나 등등 남자라는 이유로 강요받는/거부당하는 많은 것들이 있겠죠), 남성과 여성의 평등이 이루어진다면 현재 기득권자인 남성이 당장은 손해를 많이 보게 되겠지만, 그것은 노예제가 폐지될 때 귀족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처럼 당장은 열 받겠지만 전 인류를 기준으로 옳은 일이라는 인식......
단지 노예에 대한 이해와 존중, 사랑만으로는 노예제가 폐지될 수 없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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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for10

2009.05.19

역지사지란 말처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진화심리학에 의하면 인류 초기엔 여성 중심의 공동체 였는데, 농경 사회에 접어 들면서 노동력의 우위로 가부장제로 변화했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이미 여성상위로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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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맘

2007.11.17

이갈리아에서의 여자들이 상위사회라면 결국 그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속될까요?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의 모습이지만 결국 아이을 낳고 한동안 일없이 있을때나 산후조리는 어찌되나요? 육아를 책임지는 남자들이 너무도 쉽게 사는 곳 같아요. 결국은 이갈리아의 세상보다 지금의 세상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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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드 브란튼베르그

1941년 10월 2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1970년 오슬로 대학을 졸업한 뒤 1982년까지 코펜하겐과 오슬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을 하였다. 1970년대 초반부터는 여성해방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해, '오슬로 여성의 집'과 '매맞는 아내들을 위한 쉼터'에서 일해오고 있다. 노르웨이 작가연맹 위원이기도 하다. 이런 경험을 한 그녀이기에 『이갈리아의 딸들』은 작가가 지속해온 여성해방운동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저서로 『전 세계의 동성애자여, 일어나라』『그래, 이제 그만』『성 크로와에게 바치는 노래』등이 있다. 작품마다 수개국어로 번역되어 나올 정도로 유럽에서 상당한 독자층을 갖고 있다. 특히 『이갈리아의 딸들』은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큰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유럽에서는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오랫동안 국내에서도 인기를 크게 모은 작품으로 여성의 사회지배라는 가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녀의 성역할을 들여다보게 해주면서 여성과 출산, 직장 내 남녀차별 등 여성학 이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을 제시하고 있어서 여성학 교재로도 즐겨 쓰인다. 또한 여성, 남성 어느 누가 주도하는 사회이든지간에 피지배 계층의 성(性)은 언제나 부당한 권리와 억압에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어떤 성별에도 국한하지 않는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