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반찬 해서 누구랑 먹을꼬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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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쌓이는 아궁이의 재들은 어디로 갈까. 첫째는 헛간, 둘째는 측간, 셋째는 솔밭이다. 부추를 우린 ‘솔’이라 했다. 그 생긴 모양이 꼭 소나무의 솔잎 같아 솔이라 했을 것 같다. 도회지 사람들은 솔을 한사코 부추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대번에 또박또박 야물게도 가르쳐준다.
“아니어라우, 이것은 솔이어라우.”
우리 동네 가시내들은 참 똑똑도 했다. 아니어라우, 그것은 그것이 아니고 이것이어라우. 머시기가 아니고 거시기어라우. 나중에야 솔을 부추라고도 하고 경상도 어디서는 정구지라고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치도 도시에 와서야 알게 된 말이다. 우린 ‘짐치’ 혹은 그냥 ‘지’라고 했다. 그러니 부추김치도 우리게에서는 그냥 ‘솔지’다. 배추지, 무시지(*무김치.), 싱건지, 솔지…….

나는 누구 옆에 있으면 더 예쁠까

솔은 한번 심어놓으면 그 자리에서 계속 난다. 번식도 한다. 어느 정도 자라면 이발해주듯이 잘라준다. 그래서 솔지를 담가먹는다. 그 솔지가 떨어질 때쯤 솔은 또 소복이 자라나 있다. 어느 집이나 솔밭을, 이녁 식구들 먹을 만큼씩 가지고 있다. 패밭(*파밭.)과 솔밭은 꼭 애들 손바닥만 하다. 정말 귀여울 정도로 조그만 밭이다. 밭이 없으면 이녁 밭 둔덕에 솔밭을 만들고 뽕밭 옆에도 조그만 자투리를 만들어 솔밭으로 지정한다. 솔은 조금씩 베어 먹는 것이라서 텃밭에 있을 성도 싶은데 우리게에서는 안 그랬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간격으로 그 솔밭에 재를 뿌리러 간다. 솔은 아무것도 안 먹고 그저 빗물과 재만 먹고 자란다. 꼭 콩나물 같다. 콩나물이 물과 재만 뿌려주면 자라듯이 솔이 그렇다.

저물 무렵 바구니 하나 끼고 솔밭에 가서 솔잎 베는 맛은 참 기가 막히게 좋다. 솔 향은 향긋하고 싹둑싹둑 솔이 잘리는 맛은 그렇게도 정갈하다. 오월의 솔은 특히나 부드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솔 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찔레꽃 향기다. 그래서 밭둑가에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곳에 있는 솔밭의 솔이 맛있다. 아, 이제야 알겠다. 왜 텃밭에 솔을 안 심었는지 그 이유를. 그것은 집 안에 찔레가 있지 않으므로. 그런 예는 또 있다. 그냥 열무밭의 열무보다 콩밭의 열무가 훨씬 맛있다. 그냥 파밭의 파보다 메밀밭의 파가 훨씬 맛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누구 옆에 있으면 더 예쁠까? 내가 누구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이 더 예뻐질까? 찔레꽃과 솔, 콩과 열무, 메밀과 파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그런 물음이 저절로 물어진다.

내가 솔을 먹으면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별의 소곤거림까지를 먹는 것


찔레꽃은 꼭 뻐꾸기 때문에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뻐꾸기가 안 울면 찔레꽃은 절대로 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뻐꾸기가 울어야 찔레꽃이 피고 찔레꽃이 피면 솔이 맛있다. 물론 다른 때도 솔을 먹기는 먹지마는 뻐꾸기 울고 찔레꽃 피는 그때가 솔이 가장 맛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 기억에는 그렇다. 이건 제철음식이 맛있다는 차원이 아니다. 솔이야 봄부터 가을까지 먹으니 딱히 제철이 어느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 그러니 이런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찔레는 뻐꾸기를 좋아한다, 솔은 찔레를 좋아한다, 고로 솔은 뻐꾸기도 좋아한다. 그런 논리로 솔에는 이미 뻐꾸기 소리가 들어가 있다.

찔레꽃을 통하여 솔에게까지 뻐꾸기 소리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시골 아이들은 그것을 안다. 시골에서 일하면서 큰 아이들은 그것을 안다. 솔이 맛있는 것은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소리가 들어가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안다. 요리한 사람이 정성을 들여서 맛있게 요리하기 이전에 이미 솔은 맛있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 맛의 비밀을 나 같은 촌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뿐인가. 그리고 솔뿐인가. 밤의 내밀한 소란스러움, 낮의 적막, 비, 바람, 달, 별빛들이 들려주는 소곤거림 같은 것들이 밭에서, 산에서, 들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키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솔을 먹으면 나는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바람과 비와 달과 별의 소곤거림까지를 먹게 되는 것임을 촌아이들은 콩만 할 때부터 알게 되는 것이다.

시장에서 솔을 사왔는데 솔 내가 안 난다. 솔은 솔인데 모양만 솔이다. 아니, 모양도 솔이 아니라 거의 파다. 파처럼 길다. 옛날 솔은 검지 손가락만 한 길이고 향기는 상긋하고 고소했다. 향기 짙은 솔을 썰어 넣고 매운(그냥 매운 게 아니고 그 또한 향기롭게 매운) 풋고추 좀 썰어 넣고 방애잎 좀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해서 적(*전, 부침개 따위.)을 부쳐서 채반에 널어 꾸득꾸득 말려놓으면 물에 만 밥에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되었다. 그럴 때 먹는 솔적에서 나는 고소한 향기는 사람을 행복하풰 한다. 시장에서 사온 솔은 아무 향기가 안 난다. 그래서 먹어도 내 마음에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시장에서 살 때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게으르게 살아도 먹고 살 만한 사람의 손가락같이 길쭉한 솔을 집어들면서 나는 서글펐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지금은 솔을 말하고 있으니 솔을 예로 들자면, 내가 이제 다시는 솔지를 담그려고 솔밭에 가서 솔을 베는 기쁨에 취할 수 없다는 것, 솔을 베면서, 혹은 솔밭을 가꾸면서 솔밭 주변의 것들에 내가 귀 기울이며 찔레꽃 향기라든가, 뻐꾸기 울음소리라든가 하는 것들 때문에 행복감을 맛볼 수 없다는 것. 그러는 대신에 나는 어디서 왔는지, 그것이 내 손에 오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으로 기르고 운반했는지 모를 솔을 그 어떠한 심미적 감각 없이 그저 돈을 주고 사왔다는 것. 그것을 텔레비전 요리 프로라든가 요리책에서 ‘부추김치 맛있게 담그는 법’에 따르는 방식으로 솔지를, 아니 이때는 이미 솔지가 아니라 부추김치가 된다, 하여간 그 부추김치를 ‘몸에 좋은 부추김치’라고 인식하며 먹고 있다는 것. 그 부추가 부추김치가 되기까지 나는 그 부추와 어떤 교감도 나누지 못했다는 것, 내가 부추를 보고 생의 아름다움에 들뜨는 그런 과정 없이 부추김치가 내 밥상 위에 당당한 부추김치로서 턱 놓여 있는 것.

그러나 그것을 먹지 않을 수 없는 그 명명백백한 ‘써늘한 현실’ 앞에서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이따금 맥이 탁 풀린다. 나의 솔지를 위하여 나는 세상의 모든 부추김치들에게 저항을 해야 쓰겠는가. 알고 보면 지가 좋아하는 찔레꽃도, 뻐꾸기도 울어주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느라 저도 힘들었을 부추이니, 그저 내 밥상에 올라와준 것만도 감사할밖에 다른 수는 정녕 없는 것인가?

내가 나의 솔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부지런히 나의 솔지를 증언하는 일이다. 나의 솔지들이 있었던, 그 자리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나,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솔지의 찔레꽃, 솔지의 뻐꾸기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고, 다만 찔레꽃이니 뻐꾸기니 우리는 알 바 없고, 간장이 몇 스푼, 설탕이 몇 스푼, 고춧가루 몇 스푼을 넣어야 ‘맛있는 부추김치’가 되는지만 말하는 사람들만 있을 테니까.


쓰르라미 소리 안 듣고도 속이 노란 봄배추

동네에 시집온 새댁들은 한복에 하얀 에이프런(구식 엄마들의 넓은 광목 앞치마가 아니라, 그야말로 끝단에 바이어스를 댄 에이프런)을 두르고 예쁜 바구니 들고 솔밭으로 갔다. 엄마들은 낫으로 자르기도 하는 솔을 새댁들은 꼭 가위로 잘랐다. 그 옆 밭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담배 한 대 피우던 과부 할미가 새댁에게 묻는다.
“솔 반찬 해서 누구랑 묵으까?”
새댁이 대답 없이 웃는다.
“님허고 묵제 누구랑 묵어 잉? 아이고 이녀러 님은 콩을 팔러 갔는가, 퐅(*팥.)을 사러 갔는가, 한번 가서 오지를 않네.”

나도 이담에 커서 꼭 녹색 바이어스 댄 에이프런을 두르고 석양의 솔밭에 나와 솔을 베리라. 새댁들이 솔밭에서 솔을 베는 동안 신랑들은 고운 새색시하고 부자로 살고 싶어서 ‘특용작물’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동네에 그런 집들이 부쩍 많아졌다. 배추를 밭이 아니라 논에 심는 집이 생기고부터 봄배추라는 게 생겼다. 가을배추같이 속이 노란 봄배추가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저 배추는 쓰르라미 소리를 안 듣고도 저렇게 속이 노랄 수가 있을까, 하구서.

우리 엄마가 말하길, 왜 가을배추속이 노란고 하니 쓰르라미 소리를 하도 들어 쓴물이 차서 그렇다고 했다. 쓴물인데 왜 다냐고 하니 엄마는 쓴 것이 달다고 했다. 그럼 단것은 어떠냐 했더니 단것은 쓰다고 했다. 엄마는 짠 것은 시고 신 것은 짜다 했다. 차가운 것은 뜨겁다 하고 뜨거운 것은 ‘션하다’ 했다. 우리 엄마가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젊어서 한 소리를 나는 살아생전 우리 엄마보다 더 나이 먹은 지금도 요령부득이다.

하여간, 쓰르라미 소리도 안 듣고 산국 냄새도 안 맡고 물비린내만 나는 논에서 자란 봄배추가 낯설어 나는 한동안 힘이 들었었다. 힘든 내 마음을 귀여운 솔밭이 위로해줬다. 집집마다 조그만 솔밭이 있다는 게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부추 하우스’는 있어도 ‘솔밭’은 없다. 어스름녘 빨간 다홍치마에 노랑 저고리 입고 하얀 에이프런을 두르고 솔밭에 나와 싹둑싹둑 솔을 자르던 새댁도 없다. 그런 새댁을 한번 하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는 나에게 오지도 않고 세월이 가버렸다. 새댁 할 나이는 지난 지 오래여도, 지금이라도 어디 조그만 솔밭 하나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 그 솔밭에다 나는 나의 정을 담뿍 주리라. 그래서 상긋하고 고소한 나의 솔들을 베어다 나의 정다운 ‘님’에게 주고파라. 님은 솔 향기 속에서 찔레꽃 향기가 난다고 좋아하려나. 그런데 그 님은 지금 어디 있는가? 말 그대로 콩 팔러 갔는가, 팥 사러 갔는가?

1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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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밍

2008.07.29

나의 솔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작가님을 글을 읽으며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 음식에 담긴 추억을 간직하고픈 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저는 서울토박이라서 처음부터 부추라고 불러서 제목을 읽고 솔을 솔잎으로 착각하고 솔잎으로 반찬을 하나?하는 생각했답니다. 저희 집엔 솔밭은 없지만 솔화분은 있답니다. 조그만 화단에 취미로 야채들을 조금씩 심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시골에서 가지고 오셨다면 나눠주신 부추씨를 뿌려놓았더니 어느새 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랐더군요. 부추김치를 담을 수 있는 량은 안되어서 부추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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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e

2008.07.28

'솔'이란 이름에서 주는 착각처럼 사진속 부추의 모습이 정말 소나무의 솔잎을 닮았네요. '이발'하듯 잘라도 나중에 또 자라주는 고마운 솔^^ 공선옥님이 말처럼 요즘엔 어떤 농산물이고 그것을 키우고 가꾸는 우리 스스로의 '정성'이 결핍되어 있는듯해요. 우리 어른신들은 단순히 음식물 그자체를 내 가족과 먹고 또 이웃과 함께 나눈 것이 아니라, 사람 향내나는 그 진한 '정'을 담고 또 담아냈던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언젠가 사람사는 내음 풀풀나는 음식을 먹고 또 이웃들에게 대접할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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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enkind

2008.07.28

제목만 보고 소나무를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솔잎으로 송편 말고 다른 것도 해먹나 싶었는데. 훗날 제 아이(들)은 남편에게서 약간의 사투리를 배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투리들은 언젠가 사라지고 문학 작품에서나 보게될런지도 모르겠네요. 말이 사라져 추억이 사라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추억이 사라져 말도 또한 따라 사라지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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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1963년 전라남도 곡성 출생.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중퇴하고 1991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중편 '씨앗불'을 발표하며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2년 여성신문학상, 1995년 제13회 신동엽창작기금수여, 2004년 제36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5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부문 올해의 예술상, 만해문학상,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의 모습과 가난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뤄온 작가 공선옥. 특히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모성을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표현해 내는 소설가이다. "근대에 태어났지만 전근대적인 삶을 살았다"고 전하는 작가의 음성은 유년시절 아버지는 밖으로 나돌고, 세 자매가 생존을 위해 뛰어야 했던 상황에서 둘째 딸의 책무를 지닌 채 "같은 연배 또래들이라고 해서 같은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참외 파는 소녀이기도 했으며, 입학만 한 상태에서 무학점 학생으로 남아야 했고, 빚에 쫓겨 다니는 아버지,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병간호가 작가 공선옥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었다. 공장을 떠돌며 위장 취업자가 아닌, 대학생 출신 생계 취업자였으며, 나중에는 고속버스, 관광버스, 직행버스를 전전하며 안내양을 하던 어느 날 “나의 궁핍한 시절이 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소설가 공선옥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목마른 계절」 「우리 생애의 꽃」 등 개성있는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며 가진 자에게는 눈물의 슬픔을, 없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기쁨을 안겨 주는 작가이다. 화려한 정원에서 보호받고 주목받는 꽃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람 부는 길가에서 피었다 지는 작은 꽃들에게 눈길을 보내온 작가는 작품 속에서 주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의 삶, 특히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모성을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 2002년 『멋진 한세상』이후 5년만에 내놓은 소설집 『명랑한 밤길』역시 그녀의 작품 경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집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버둥거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국내 최초로 온라인 독자 커뮤니티 문학동네에 일일연재되어, 화제를 모았으며, 가장 아픈 시대를 가장 예쁘게 살아내야 했던 젊은이들의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스무 살 시기의, ‘사람들이 많이 죽어간 한 도시’에서의 쓸쓸함과 달콤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란』에서는 가족의 빈자리를 견디며 꿋꿋이 살아가야 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일궈낼 수 있는 삶의 행복한 순간을 유려하고 따뜻하게 그려냈으며, 『꽃 같은 시절』은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사람들, 철저하게 이 사회의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꽃 같은 싸움을 담고 있다.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소설 『유랑가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영란』, 『꽃 같은 시절』,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