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에게 꼭 알려야 할 것 - 미 대륙 LA
하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이 사람들에게만은 꼭 알려야 한다. 바로 젊은이들. “모든 젊음은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2008.08.29
진실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이 사람들에게만은 꼭 알려야 한다. 바로 젊은이들.
“모든 젊음은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입 밖으로 내놓고 보니 좀 거창한 것도 같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게 우리의 변함없는 신념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독도를 바로 알리는 활동을 계획했었다. 우리는 ‘남 캘리포니아 총 대학 연합(이하 남가주 총대)’ 회장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남가주 총대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남가주 총대 회장이 간단히 우리를 소개하며 앞으로 불러냈다. 얼결에 단상까지 걸어 나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지금 이 순간 40여 회장단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만 쏠려 있는 것이다.
대부분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여,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횡단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자 여기저기서 나지막이 탄성이 나왔다. 뒤이어 “여러분, 독도를 아세요?” 하고 물어보자 이번에는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맙소사. 한숨이 푹 나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있다. “벌써 다 아는 얘기를 뭘 또 새삼스럽게 꺼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곳의 학생들은 모두 독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렇다고 이곳 한인 2세들이 자기 뿌리에 관심이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독도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자 다들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꼭 처음 한글을 배우는 유치원생들처럼 열심이다. 모국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은 욕구는 있으나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의 학생들이 기본적인 한국말은 할 수 있지만 한자 어휘는 거의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토’라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니지만 이곳 학생들에게는 화학 기호만큼이나 어려운 단어였다. 덕분에 진짜 유치원생들을 놓고 수업을 하듯이 가능한 쉬운 말들을 쓰고 어려운 말은 한자어 대신 영어 단어를 사용하며 설명해 주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War 중에 East Sea의 가운데에 있는 독도가 Significant하기 때문에 일본은 독도에 Keep an eye on Russian Vessels하기 위해서 watch tower를 지었다.” 영어보다 콩글리시가 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 시간이었다.
다소 부족하고 어설펐던 설명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우리가 오늘 회의 시간을 전부 사용해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정도의 질문밖에 못 받는 게 안타까웠다. 이곳에서 정식으로 독도 세미나를 할 테니 참여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나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막내 승일이가 오늘부터 형을 존경하게 될 것 같다며 그 큰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와락 감싸 쥐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네가 내 더듬거리는 콩글리시를 다 알아들었으면 절대 그런 소리 못했을 거다, 인마.
세미나는 UCLA에서 하기로 했다. 세미나의 주요 대상은 한인 2세 학생들로 삼았다. 한인이 많은 LA에서는 이들에게 충분히 독도 문제를 알려 그들이 자체 세미나를 하고 주변의 외국인에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에게 하나하나 독도를 설명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독도에 관한 진실을 계속해서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사소한 일들이 겹쳐서 이번에도 프레젠테이션 준비는 충분치 못했다. 지난 일 년간 한국에서 준비를 하면서 독도에 관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쌓았던 내공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미 말문을 트고 난 뒤여서 그런지 총대 회의 때만큼 긴장되지는 않는다. 사실 한 번 더 그만큼 긴장하면 그렇지 않아도 콩알만 한 심장이 그만 터져버릴 거다.
그리고 드디어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사물놀이 공연이다. 한국에 있을 때 완전 쫃짜 주제에 속성으로 이걸 배우겠다고 전통예술원에 재학 중인 민영이를 귀찮도록 졸라 댔었다. 사실 아직도 많이 서툴지만 오늘은 이곳 UCLA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한울림’이라는 단체와 함께하는 공연이라 훨씬 부담이 덜하다. 약간의 실수는 슬쩍 다른 사람 소리에 묻어버릴 수 있다고나 할까.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이번 세미나의 핵심인 프레젠테이션을 할 차례이다. 프레젠테이션의 포인트는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이다. 우선 독도에 관한 현 상황을 설명하고 어려운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는 중요 사항만 간결하게 훑고 넘어갔다. 그러나 한일 양측 주장의 주요 배경은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영어로 옮기기 난해한 한자어들이 가득한 덕분에 수없이 더듬거리는 했지만.
“독도 문제는 단순히 한일 간의 영토분쟁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과 거짓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마지막 말과 함께 프레젠테이션은 끝이 났다. 과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와 열기를 느끼며 한참이나 먹먹한 기분으로 서 있었다. 미리 펴놓은 의자가 모자라 서 있거나 의자를 더 가져와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주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이 나를 향해 말없이 웃어 보이고 있었다. 그제야 내 얼굴에도 슬며시 웃음이 퍼졌다. 나쁘지 않았구나. 우리 잘 해냈구나.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독도에 영유권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국제사법재판소가 있지만, 사실 국내와 다르게 양측의 동의가 있어야 재판을 받을 수 있기에 영유권을 결정지을 수 있는 대상이란 없습니다.”
상균 형의 대답에 나도 한마디 보탰다.
“결국 이 문제는 전 세계의 여론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중에서 미국의 여론이 가지는 영향력이 제일 클 겁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대답은 이거였다.
“독도의 영유권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누구냐는 질문에 가장 간단히 대답을 해드린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래. 그것은 우리가 이 여행을 계획한 가장 큰 동기이기도 했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를 어떤 사회로 만들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전 세계가 어떤 세상이 되는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기적, 멋지지 않은가. 돈 있고 권력이 있으면 뭐든지 정당화 되는 세상을 더럽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면 세상은 영영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한 혁명은 필요 없다. 다만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부당한 일을 눈감고 넘어가지 않을 때 세상은 변하리라 믿는다.
오늘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우리였다.
“모든 젊음은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
입 밖으로 내놓고 보니 좀 거창한 것도 같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게 우리의 변함없는 신념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독도를 바로 알리는 활동을 계획했었다. 우리는 ‘남 캘리포니아 총 대학 연합(이하 남가주 총대)’ 회장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남가주 총대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남가주 총대 회장이 간단히 우리를 소개하며 앞으로 불러냈다. 얼결에 단상까지 걸어 나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지금 이 순간 40여 회장단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만 쏠려 있는 것이다.
대부분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여,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횡단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자 여기저기서 나지막이 탄성이 나왔다. 뒤이어 “여러분, 독도를 아세요?” 하고 물어보자 이번에는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맙소사. 한숨이 푹 나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있다. “벌써 다 아는 얘기를 뭘 또 새삼스럽게 꺼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곳의 학생들은 모두 독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렇다고 이곳 한인 2세들이 자기 뿌리에 관심이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독도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자 다들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꼭 처음 한글을 배우는 유치원생들처럼 열심이다. 모국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은 욕구는 있으나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의 학생들이 기본적인 한국말은 할 수 있지만 한자 어휘는 거의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토’라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니지만 이곳 학생들에게는 화학 기호만큼이나 어려운 단어였다. 덕분에 진짜 유치원생들을 놓고 수업을 하듯이 가능한 쉬운 말들을 쓰고 어려운 말은 한자어 대신 영어 단어를 사용하며 설명해 주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War 중에 East Sea의 가운데에 있는 독도가 Significant하기 때문에 일본은 독도에 Keep an eye on Russian Vessels하기 위해서 watch tower를 지었다.” 영어보다 콩글리시가 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 시간이었다.
다소 부족하고 어설펐던 설명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우리가 오늘 회의 시간을 전부 사용해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정도의 질문밖에 못 받는 게 안타까웠다. 이곳에서 정식으로 독도 세미나를 할 테니 참여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나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막내 승일이가 오늘부터 형을 존경하게 될 것 같다며 그 큰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와락 감싸 쥐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네가 내 더듬거리는 콩글리시를 다 알아들었으면 절대 그런 소리 못했을 거다, 인마.
|
세미나는 UCLA에서 하기로 했다. 세미나의 주요 대상은 한인 2세 학생들로 삼았다. 한인이 많은 LA에서는 이들에게 충분히 독도 문제를 알려 그들이 자체 세미나를 하고 주변의 외국인에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에게 하나하나 독도를 설명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독도에 관한 진실을 계속해서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사소한 일들이 겹쳐서 이번에도 프레젠테이션 준비는 충분치 못했다. 지난 일 년간 한국에서 준비를 하면서 독도에 관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쌓았던 내공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미 말문을 트고 난 뒤여서 그런지 총대 회의 때만큼 긴장되지는 않는다. 사실 한 번 더 그만큼 긴장하면 그렇지 않아도 콩알만 한 심장이 그만 터져버릴 거다.
그리고 드디어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사물놀이 공연이다. 한국에 있을 때 완전 쫃짜 주제에 속성으로 이걸 배우겠다고 전통예술원에 재학 중인 민영이를 귀찮도록 졸라 댔었다. 사실 아직도 많이 서툴지만 오늘은 이곳 UCLA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한울림’이라는 단체와 함께하는 공연이라 훨씬 부담이 덜하다. 약간의 실수는 슬쩍 다른 사람 소리에 묻어버릴 수 있다고나 할까.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이번 세미나의 핵심인 프레젠테이션을 할 차례이다. 프레젠테이션의 포인트는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이다. 우선 독도에 관한 현 상황을 설명하고 어려운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는 중요 사항만 간결하게 훑고 넘어갔다. 그러나 한일 양측 주장의 주요 배경은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영어로 옮기기 난해한 한자어들이 가득한 덕분에 수없이 더듬거리는 했지만.
“독도 문제는 단순히 한일 간의 영토분쟁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과 거짓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마지막 말과 함께 프레젠테이션은 끝이 났다. 과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와 열기를 느끼며 한참이나 먹먹한 기분으로 서 있었다. 미리 펴놓은 의자가 모자라 서 있거나 의자를 더 가져와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주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이 나를 향해 말없이 웃어 보이고 있었다. 그제야 내 얼굴에도 슬며시 웃음이 퍼졌다. 나쁘지 않았구나. 우리 잘 해냈구나.
|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독도에 영유권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국제사법재판소가 있지만, 사실 국내와 다르게 양측의 동의가 있어야 재판을 받을 수 있기에 영유권을 결정지을 수 있는 대상이란 없습니다.”
상균 형의 대답에 나도 한마디 보탰다.
“결국 이 문제는 전 세계의 여론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중에서 미국의 여론이 가지는 영향력이 제일 클 겁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대답은 이거였다.
“독도의 영유권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누구냐는 질문에 가장 간단히 대답을 해드린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래. 그것은 우리가 이 여행을 계획한 가장 큰 동기이기도 했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를 어떤 사회로 만들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전 세계가 어떤 세상이 되는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기적, 멋지지 않은가. 돈 있고 권력이 있으면 뭐든지 정당화 되는 세상을 더럽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면 세상은 영영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한 혁명은 필요 없다. 다만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부당한 일을 눈감고 넘어가지 않을 때 세상은 변하리라 믿는다.
오늘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우리였다.
16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prognose
2012.04.07
앙ㅋ
2012.04.01
미르비
2008.09.03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