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人터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신경숙 작가는 이 작품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다. 그 오래전이 언제냐 하면 작가가 되기도 전이란다. 그때부터 이미 엄마에 관한 글을 써보리라 기획을 했던 것이다.
200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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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풍금이 있던 자리』였다. 아주 오래전, 책이라곤 베스트셀러만 찾아 읽던 시절이었다. 뭐랄까? 그때의 느낌이란, ‘이렇게 감성적인 문체를 가진 소설가가 있었다니!’ 문득 생각이 나서 그 책을 펴보니 노랗게 색 바랜 책의 뒷장엔 절망에 찬 글이 적혀있었다. 그 당시 나는 사랑에 빠져 있었나 보다. 그래서 더더욱 신경숙 작가의 문체에 빠져 들었나 보다. 그렇게 『깊은 슬픔』『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까지 열심히 그의 작품을 읽었고, 잠시 떠났다가 지난해에 다시 그의 작품을 만났다. 그러곤 또 다시 ‘신경숙‘이란 작가의 문체에 빠졌다.
엄마에게 주는 헌사와 같은 작품!
이번 만남은 『엄마를 부탁해』를 출간하고 독자와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백가흠 작가가 사회자로 나와 자리를 같이했다. 또한 중간에 연극배우인 이해성 님이 낭독을 해주었고 신경숙 작가의 낭독 시간도 있었다. 강연회라기보다는 간담회 형식의 자리였는데 시간이 짧아 아쉬운 점이 많은 시간이었으나 책을 출간 후 처음으로 만난 자리였던 만큼 알찬 시간이었다.
책을 읽은 백가흠 작가는 동료 작가인 박상우 작가와 사석에서 ‘어느 부분에서, 누가 더 많이 울었나’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며 처음 소설을 집필할 때 엄마의 이야기를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물었다.
신경숙 작가는 이 작품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다. 그 오래전이 언제냐 하면 작가가 되기도 전이란다. 그때부터 이미 엄마에 관한 글을 써보리라 기획을 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떤 거창한 꿈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인생에서 많은 기회를 준 엄마에 대한 헌사와 같은 꿈에서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끈질기게도 안 풀리던 소설이었다. 『리진』을 쓰기 전에 구상을 하고도 풀어내지 못했고 『리진』을 만나서 리진과 씨름을 하느라 다시 한 번 기회를 놓쳤다. 『리진』을 쓰는 동안도 『엄마를 부탁해』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또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작품이 술술 풀리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라고 쓰던 것을 ‘엄마’라고 호칭을 바꾸면서라고 한다. “문을 딱 닫아놓고 문 뒤에는 엄청난 물이 있다가 문을 열면 마구 쏟아져 들어오듯이 그렇게 마구마구 솟아나왔다.” 그렇게 엄마라는 말에 의지해서 쓴 소설이 바로 『엄마를 부탁해』다. 늦어도 많이 늦은 삼이다.
『엄뚸를 부탁해』는 모두 4장으로 나뉘어 있다. 이 소설은 계간지인 『창작과비평』에 연재하던 것으로 연재할 때는 4장에서 끝이 났지만 연재를 끝낸 후 에필로그 부분을 다시 썼다. 구성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첫 문장이 탄생하고 난 다음에 한 사람씩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엄마를 회상하며 엄마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화자에 대해서는, 엄마는 늘 가까이에 있는 존재이기에 약간의 거리감이 필요했다. 그래서 딸의 시선인 ‘너’, 큰 아들의 입장인 ‘그’, 그리고 남편인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마지막에 엄마만은 ‘나’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처음 의도는 그냥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왜 내가 엄마에게만 ’나‘라는 시선을 주었을까?’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그건 그동안 엄마라는 존재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나’라는 존재로 살았던 시기가 적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만 ‘나’라는 시선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에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돌아가서 “나에게도 엄마가 평생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하는 장면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이렇게 화자의 위치가 다른 것은 신선했다며, 쓰면서 누구의 입장에서 글을 쓸 때가 가장 힘들었느냐고 백가흠 작가가 묻자 신경숙 작가는, 같은 여자이고 딸인 ‘너’의 입장에서 쓸 때가 제일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힘이 들었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흡족하고 집중해서 쓴 글은 2장으로, 엄마에게 첫 아이인 큰 아들의 입장에서 쓸 때다. 쓰면서 이상하게 딸의 입장에서 쓸 때보다 2장의 큰아들 시선으로 엄마를 볼 때가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백가흠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 엄마에게 자꾸 전화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단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매번 엄마가 전화해주기만을 기다리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는 괜히 다정한 척 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난 이 책에서 ‘너’라는 화자가 등장하는 딸의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찌나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 나오는지 꼭 작가가 나에게 ‘너’라고 말하며 나를 지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점에 대해 신경숙 작가는 그 시점을 생각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가까운 듯하여 거리감을 주기 위해 ‘너’라는 시점을 사용한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엄마한테 나를 ‘나’라고 하기가 이상해서 ‘너’라는 시점을 썼다고 한다. 그는 책 속에 나오는 ‘너’를 ’너‘로 이해하며 읽었는데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너’를 ‘나’라고 바꾸어 읽는 것 같다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 좋은 전환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해성 배우가 낭독하는 것을 듣고 나니 ‘너’가 ‘나’로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
(…)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
신경숙 작가는 엄마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나의 엄마로 존재했기 때문에 엄마는 엄마일 뿐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엄마도 나와 다를 바 없이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있다가 울음을 터트리며 나오고, 작은 신발과 작은 옷을 입고 성장하여, 소녀 시대를 거치고, 처녀 시대를 거쳐 나의 엄마가 되었던 것인데 우린 그걸 잊고 사는 것 같다고 한다. 알고 보면 엄마는 연약한 존재고 그 세대의 엄마들은 사회적 상황이나 역사에 있어 엄마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지 않았기에 엄마라는 존재는 인간으로서 따뜻한 대우 한번 받지 못하고 아주 강인하거나 희생이라는 말로 상징되어 왔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만은 그걸 해체시켰다고 한다. 사실은,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존재였으며, 엄마도 꿈이 있고, 많은 것을 욕망하는 존재라는 것을, 가족들이 엄마를 잃어버린 후에야 회상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런 이유로 보자면 한국에서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한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런 희생은 진행되고 있다. 소설 속 에필로그에 젊은 엄마로 나오는 둘째 딸이 ‘너’로 불리는 언니에게 쓴 편지가 나오는데 그 속에 나오는 현대 엄마의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젊은 엄마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도만큼의 엄마를 두기 위해 이전의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 생각 속에서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소설 속 엄마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엄마의 마음에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가 있었던 거다. 그 놀라운 일에 대해 백가흠 작가? 물었더니 신경숙 작가는 엄마에게 어떤 비밀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정적인 엄마에서 살아 움직이는 엄마를 만들어야 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가 다는 아니라는 것, 엄마는 엄마만이 아니라 엄마한테 흐르고 있는 많은 욕망을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분들이 이 소설에 나오는 엄마는 어떤 상황이 닥치면 선택할 틈도 없이 맞서서 나가야만 하는 엄마인데 언제 그런 마음을 품을 시간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무한하며 엄마라고 왜 비밀이 없었겠느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번 간담회에선 신경숙 작가의 낭독도 있었다. 독자인 나도 책을 읽을 때 수없이 눈물을 참았는데 글을 쓴 작가 입장에선 얼마나 짠한 마음이었을까? 만약 신경숙 작가가 낭독을 한다면 울 사람들이 많겠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경숙 작가는 자신이 가장 집중하고 편하게 썼다는 2장의 한 부분을 낭독하면서 몇 번이나 멈칫거렸다. 나 역시 읽으면서 울음을 참지 못한 부분이었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가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그렇게나 작은 손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하나하나 펴주면 방싯방싯 웃는 것이…… 하두 작아 자꾸 만지면 없어질 것 같구. 내가 뭘 알았어야 말이지. 열일곱에 시집와 열아홉이 되도록 애가 안 들어서니 니 고모가 애도 못 낳을 모양이라 해쌓서 널 가진 걸 알았을 때 맨 첨에 든 생각이 이제 니 고모한티 그 소리 안 들어도 되네, 그게 젤 좋았다니깐. 난중엔 나날이 니 손가락이 커지고 발가락이 커지는디 참 기뻤어야.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는 어디다 비교하겄니. 어서어서 자라라 내 새끼야, 매일 노랠 불렀데. 그러다 언제 보니 이젠 니가 나보다 더 크더구나. (…)
눈물을 참으며 낭독을 끝낸 신경숙 작가는 이럴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앞으로 있을 낭독회가 걱정이라고 했다. 아마도 낭독회에 가실 분들은 손수건은 필수 지참하여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작가들은 유독 어릴 때의 기억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신경숙 작가 역시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이 많은데 그토록 기억력이 좋은 이유를 백가흠 작가가 묻자 신경숙 작가는 “우리 엄마와 같은 말을 하네요.” 하며 웃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많은 이야길 들으며 자랐다. 엄마는 그가 모르는 이야기, 혹은 그가 알고 있는 이야기조차도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낯설게 말해주는 재능이 있었단다. 엄마가 이야길 할 때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귀를 기울이게 하고 마음을 벅차게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가 아니라 엄마가 하셨어야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어법과 문체가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바람이 있다면 어느 구석에 제목도 안 보이고 앞부분도 찢어져서 제목도 저자도 모르지만 글을 몇 줄 읽었을 때 ‘어? 이 책은 신경숙 작가의 책이잖아.’ 하고 누구나 읽어도 그의 문체를 알아보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한다.
독자의 질문 시간에서 한 독자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작품 속에 음악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문장 속에 음악이 살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떤 글은 노래의 의미를 가지고 쓰기도 하는데,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경우 그리몽 민요를 듣고 그때의 감흥을 그대로 작품에 담은 경우며, 『외딴방』을 쓸 때도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하 연주곡’을 끊임없이 들었다. 이 책 『엄마를 부탁해』를 들을 땐 엄마가 즐겨 듣던 노래를 들었단다. 또 다른 독자는 신경숙 작가의 작품은 읽고 나면 우울해지고 슬퍼진다며 왜 그런 슬픈 작품을 쓰느냐고 하자 작가는 슬프라고 쓴 작품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슬픔을 느끼게 하듯 슬프다는 느낌 역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하여 독자들이 읽었을 때 슬픔을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켜 주지 못하니 앞으로 아름다운 글이 되도록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신경숙 작가는 『리진』과 『엄마를 부탁해』를 쓰면서 너무 힘이 들었단다. 그래서 다음 책으론 너무나 아름다워서 미칠 것만 같은 사랑 소설을 쓰고 싶기도 하고, 『깊은 슬픔』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론적 사랑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써볼까도 생각 중이란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쓸 생각이라고 한다. 그렇게 소설가의 마음엔 매일매일 새로운 소설이 탄생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본 신경숙 작가였다. 오랜만에 본 것도 반가웠는데 ‘우리 엄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어서 고마웠다. 독자들은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엄마가 그의 엄마이고 나의 엄마이며 또한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엄마라는 걸 알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와의 만남이, ‘우리 엄마’와의 만남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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