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가볍고 장난스럽고 명랑한 노래들이 판치는 가운데 서울전자음악단의, 종이 다른 강력하고도 몽롱한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는 마치 현재 음악계와 청취 풍토를 응징하는 것 같다. 록의 분노라고 할까. 2005년 데뷔작에 이어 4년 만에 2집
신보에서 그들은 「종소리」「섬」「서로 다른」「꿈속에서」와 같은 곡을 통해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듯 연신 록 사운드를 퍼붓는다. 강성의 굉음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유난히도 후련하다.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기타), 신석철(드럼), 김정욱(베이스)을 홍대 KT&G 상상마당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들은 “우리들이 하고 싶은, 그대로의 욕구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기분 좋은 대화의 시간. 웅크린 듯하지만 어쩔 수 없이 비집고 나온 록에 대한 고집과 수절의 공기가 인터뷰 공간을 휘감았다.
광주 가정집을 개조해서 신보를 녹음했다던데.
(신윤철) 경기도 광주의 퇴촌이에요. 임대를 했어요. 천정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녹음을 하면 소리가 괜찮더라고요. 개조한 건 아니에요. 기타 앰프들은 따로 방에다 놓고, 저희가 다 직접 마이크 대고 세팅하고, 아날로그 테이프 녹음기로 했어요. 믹싱할 때는 컴퓨터로 옮겨서 하구요.
앨범을 듣고 첫 느낌은 공연을 전제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본인들도 “우리는 라이브가 더 좋다”고 말하기도 해왔고.
(신윤철) 그래요. 음반은 공연을 위한 사전 작업이죠. 녹음도 라이브로 했죠. 「종소리」라는 곡하고 「따라가면 좋겠네」란 곡은 노래까지 다 라이브로 동시에 했습니다. 나머지는 노래만 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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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은 이렇게 가자’라는 컨셉이 있었는지.
(신석철) 저 같은 경우는 아날로그 맛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라이브와 아날로그가 신보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김정욱) 아날로그를 하는 게 요즘에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걸 노린 거죠.
(신윤철) 1집 때 공연을 해보니 좀 느린 곡들이 많아서 관객들이 앉아서 듣더라구요. 2집에는 좀 신나고 관객들도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는, 라이브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윤철 씨가 대부분의 곡을 쓰지만 「서울의 봄」은 김정욱 씨의 작품인데 멜로디가 잘 들려서 만들 때 기분이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김정욱) 만들 당시에 과거 형 아버님(신중현)이 김정미 씨에게 준 곡들이 있잖아요. 음악을 만들 때 그걸 많이 들었어요. 제가 하나에 꽂히면 오래 듣고 또 하나 꽂히면 오래 듣고 그러거든요. (웃으며) 가사도 한 구절 베꼈어요.
앨범 속지의 크레딧이 이상하던데 윤철 씨가 쓴 곡이 아닌 게 정확하게 뭔가.
(신윤철) 「서울의 봄」하고 「중독」 이렇게 두 곡을 정욱이가 썼구요. 「꿈속에서」는 석철이 곡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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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록이 모던 록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사이키델릭이란 개념이 퇴조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전자음악단은 1집 때도 그렇고, 항상 사이키델릭을 고집한다. 신보에서도 첫 곡 「고양이의 고향노래」는 전형적인 로큰롤이라서 이제는 다르게 가나보다 싶었지만 두 번째 곡 「종소리」부터 여지없이 사이키델릭 본색을 드러낸다. 사이키델릭으로 가는 이유는.
(신윤철) 그냥 그런 게 좋으니까요. 웃음. 저는 사실 그렇게 저의 음악을 사이키델릭하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하지만 일단은 제가 곡 작업을 할 때나 녹음 작업을 할 때 뭔가 어느 정도는 약간이라도 사이키델릭한 요소가 있질 않으면 제가 만족을 못하더라고요. 제 생각으로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집에서 막 들으시던 음악들이 사이키델릭이 많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진모 씨가 말하는 ‘모태 록 신앙’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신석철) 세 명 다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많이 들어왔고요, 자연스럽게 그냥 묻어나오는 거죠. 그냥, 딱 마디가 주어지고, 그 마디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이키델릭은 이상하게 펼칠 수가 있잖아요. 그런 음악들이 좋은 거죠. 라이브에서 진가를 발휘하기도 하구요.
서울전자음악단의 앨범은 어찌되었든 록 전형의 앨범이다. 록의 매력은 뭔가.
(신석철) ‘록은 이거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전 드럼을 치니까, 이렇게 치면 록이 되고, 이렇게 치면 재즈가 되고, 그렇게 생각지 않고요, 그냥 느낌에 의존하는 것 같아요. 생각을 안 합니다.
신 씨 형제 사이에서, 자기만의 역할이 있을 것 같다.
(김정욱) 따로 없고요, 월세 같은 것 제가 걷어서 내고. (웃음) 총무죠. (그러자 신윤철은 ‘이 친구가 그런 문제에 대해선 불안해한다.’고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이번에 윤철 씨 기타가 광채를 발하던데. 스타일도 다양하고. 마지막에 이어지는 긴 세 곡 「섬」「서로 다른」「꿈속에서」는 연작 같기도 하다.
(신윤철) 2년여 오랫동안 녹음을 해서요. 이렇게 저렇게 다 해봤죠. 후반에 배치된 곡들은 딱히 연작을 의식한 것 아니고요. 나중에 가서 연결을 한 거죠. 「서로 다른」 같은 경우는 제가 1994년에 냈던 솔로 앨범에 있던 곡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따라가면 좋겠네」의 경우도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솔로 3집의 수록곡이죠. 그 곡을 한영애 누나가 리메이크해 불렀어요. (* 신윤철은 서울전자음악단 이전에 솔로로 3장의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기존 곡을 넣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나.
(김정욱) 이번 경우엔 오히려 찬성이고요. 왜냐면 너무 좋은 곡들이 묻히는 경우기 때문에요. 많이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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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히든 트랙처럼 6~7분 지나가다가 「따라가면 좋겠네」가 이어진다. 그런데 레게다. 레게는 처음 아닌가.
(신윤철) 그런 식으론 처음이었죠. 4번 수록곡, 그 곡을 원래 레게로 하려고 했어요. 제 개인적으론 히든 트랙에 있는 버전이 좀 연주가 길어서요. 그게 거의 7분 그 정도될 거예요. 그래서 그걸 앞(4번 곡)으로 넣기가, 앞에 넣으려면 뒤를 잘라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곡 길이 때문에 짧은 버전을 앞에 넣었어요. 공연할 때는 레게 버전으로 합니다.
솔직히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뭔가 이 음악 현실에 반(反)하고 나름의 카운터펀치를 가한다는 생각은 없었나. 하도 요새 음악이 그러니까.
(신윤철) 사실 제가 20대 같았으면 진짜 세상에 린치를 가해보자 그러고서 했을 텐데요,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자, 그런 생각뿐이죠. 저희 음악을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사실 별로……. (이 대목에서 김정욱은 “솔직히 그런 마음이야 있죠. 좀 요즘 것들과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요즘 대세랑은.”이라고 답했다)
이번 앨범에서 마음에 드는 곡은?
(신석철) 「섬」이란 노래가 제일 좋았어요.
(김정욱) 「종소리」요. 속이 시원해지고요, 가사가 좋아요. 가사가 엑기스만……. (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단순하면서 엑기스만 있는 걸 좋아해요. (신윤철) 마지막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같은 곡이, 노래가 없는 게…… (웃음) 「서울의 봄」이랑, 「꿈속에서」도 좋고요. 사실 앨범을 만들 때 제가 만든 곡들을 많이 넣고, 다른 멤버 곡은 조금 넣고 하는 것보다 곡을 아예 만들 때부터 같이 만든다든지, 다같이 합주를 하면? 잼을 해서 한다든가 하고 싶었는데, 그런 게 없어서요. 그런 건 좀 아쉬웠어요. 공동 작곡을 해보고 싶었는데, 하다보니까 또 어떻게…….
아버지인 신중현 선생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석철) 좋죠. (웃음) 그런 음악이 있었다는 게, 그 시대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할까요. 록의 대부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봄」이 김정미 음악의 영향이라고 했는데, 김정욱도 마찬가지인가.
(김정욱) 옛날에 처음 들었을 때요, 어릴 때는 서양에 대한 열등감이라고 해야 되나? 우리는 그냥 서양 음악 따라 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 들으면서 그게 없어졌어요. 이건 우리 음악을 한 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서울전자음악단 하면서 어떤 즐거움이 가장 큰가.
(김정욱) 저는 밴드를 한다는 것 자체죠. 밴드를 하려고 어릴 때 음악을 시작하잖아요. 지금 하고 있으니까 즐겁습니다.
개인적으로 음악적 스승이 있을 것 같은데. 아버지 빼고.
(신윤철) 많죠.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으니까요.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등등……. 그런 음악이 제 스승이죠.
(김정욱) 비슷해요. 너무 많아서.
(신석철) 저희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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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를 어떻게 들어주었으면 하길 바라는지.
(신윤철) 지금 다 좋게 생각을 해주셔서, 저희도 고맙고요. 그냥 음악을 너무 분석하지 말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음악을 그냥 즐기는 마음으로……, 그냥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우리 음악이 전부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요.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음악도 마찬가지잖아요. 여러 가지 다양한 음악이 같이 공존하는 거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경우는 뭐가 대세다고 하면 그것만 다 따라가고,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 그렇죠, 그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 의도에서 이번에 「서로 다른」이란 기존 곡을 넣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전자음악이 아닌데도 그룹명이 서울전자음악단이라서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신석철) 어떤 분들은 음악 안 들어보시고 팀 이름이 뭐냐고 했을 때 서울전자음악단이라고 하면 전자음악을 하는 그룹으로 생각을 하세요. 아닌데, 이름 때문에 조금 걸리지만 이제 2집까지 나와서. 오해하는 것이 꼭 나쁜 건 아닌 것도 같고요.
인터뷰: 임진모, 이대화
사진: 조나영
정리: 임진모
2009/05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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