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을 알고 싶어’ 노래하는 정신과 의사가 말해주마! - 『위험한 심리학』 송형석
지난 18일, 멀티플레이어로 활동하는 송형석 원장을 찾았다. 혹시 당신, 사랑하는 연인의 속마음을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훑어봐도 좋겠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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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송형석은 정신과 의사다. 천형처럼, 환자를 꼭 낫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천생 의사다. 환자를 보면서 곧 자신을 보고, 환자는 의사만큼 좋아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좋은 의사가 되고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의사라고 의학 공부만 한다고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잖나. 더구나 그는 사람과의 교감이 최우선인 정신과 의사!

이 남자, 송형석은 뮤지션이다. 만나자마자, 음악 얘길 꺼냈더니,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표정도 화사해진다. 진료실에 드럼이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그는 ‘간지’ 나는 드럼을 친다. 오는 28일 예정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타루와 함께하는 북 콘서트, 침 튀긴다. 불쏘클과 타루, 그 실력파 뮤지션들에 전혀 밀리지 않을 기세다. 의사밴드 ‘Aside’, 기대된다.

이 남자, 송형석은 만화 작가다. 블로그 ‘PAPA TROMM의 잡기’(
http://blog.naver.com/drmad)에 심리 장애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카툰을 그렸고, 기어코 순정 만화가로 ‘데뷔’도 했다. <윙크> 신년호부터 ‘순정의(純情醫), Dr.mad!’라는 만화 연재를 감행한 것. 만화에 대한 끓어오르는 창작욕(!)인지는 모르겠으나, 만화가 좋다!

그렇다. 이 남자 송형석, 위험한 남자다. 지난 2월 <무한도전>에 출연(‘정신감정편’)해 무한도전 멤버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행동 패턴까지 예측하는 ‘족집게 의사’로 큰 호응을 얻더니,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갈 기세다. 음악과 만화까지 동원해서. 정신과, 음악, 만화. 연결 고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야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 꺼풀만 뒤집어 보라. 다들 우리네 마음이나 정서와 관련된다. 그러니까, ‘문어발 확장’ 아닌, ‘핵심 역량 강화’가 되겠다.

그 와중에 책도 펴냈다.
『위험한 심리학』(송형석 지음/청림출판 펴냄). 부제를 보자니, ‘앗, 뜨거워’다. ‘천 가지 표정 뒤에 숨은 만 가지 본심 읽기’. 우리 표정 뒤에 숨은 본심이 읽힌다니. 물론 그는 말한다. “사람 마음을 아는 데 왕도는 없다.”(p.68)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사람을 만나 판단하고 있으며, 그 마음을 알고 싶다. 그 마음을 아는 것, 중요하다. 그것이 곧 나를 알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타인은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한 거울 같은 존재들이다.”(p.9)


혹시 당신, 사랑하는 연인의 속마음을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훑어봐도 좋겠다. 연애 기술을 알려주는 비법이 담긴 책은 물론 아니다. 그래도 아주 작고 사소한 단서를 통해 연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팁은 있다. 얼굴, 말투, 고갯짓, 손짓 등 겉에 드러난 모습만 세심하게 관찰해도, 거기에 묻은 마음 조각을 읽어낼 수 있다.

지난 18일, 멀티플레이어로 활동하는 송형석 원장을 찾았다. 책이고 방송이고 정신과 병원이고 뭐고, 뇌 속에는 음악 한 번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70%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를, 나름 음악성 있는 인터뷰로 진행하고 싶었다만, 그것까지는 무리. 인터뷰의 목적은 저자로서의 그를 아는 것이지, 뮤지션으로서의 그가 아니니까.

상대의 마음 조각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팁을 건네고 들어가자.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인간이든 간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호감을 표시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욾간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인간적인 유대감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늘게 되어 있다. 꾸준하게 감정을 학습시키고 의미를 설명하다 보면 결국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pp.187~188)

아, 송 원장이 자신이 속한 밴드와 함께 28일, 홍대 부근에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타루와 함께 펼치는 북 콘서트, 아마 죽일 거다.


타인의 마음을 읽으면 내가 보인다

<무한도전>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 출연 소감과 에피소드가 있다면.

우연이 겹쳐서 출연하게 됐다. 3년 전에 첫 제안이 왔다. 방송 나가길 원하지 않는 친구한테 제안이 왔는데, 나한테 넘겼다가 사정이 생겨서 취소됐다. 일산으로 이사 오면서 우연하게 또 연락이 왔다. 두 번이 겹치니까 출연해야겠다 싶더라. 평소에 준비를 많이 해서 먹혀들었다.(웃음) 촬영하면서 내내 재미있었다. 실제로 무한도전 멤버들이 라이브로 하는 것을 보니까, 정말 잘하더라. 반응 속도를 뛰어넘어서 애드립을 하는데……. 9시간 내내 황홀하게 지냈다.

책을 쓴 동기나 계기가 있다면.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쌓인 한(恨),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글을 썼다고도 했는데.

책을 쓴 동기는, 제안이 와서다.(웃음) 출판사에서는 쉽게 쓰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무한도전>에서의 이미지도 있으니까. 정신과 의사들이 상대편 마음을 알아보는 것에 대해 책을 쓰지 않는 이유가 있다. (정신과 의사 사이에선) 일종의 금기가 있다. ‘상대편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하지 마라.’ 그런데, 내가 생각을 바꾼 이유가 있다. 어차피 사람 마음을 알 순 없는데도, 그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거잖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과에 대해 무지를 넘어서 공포에 가까운 감각을 갖고 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든 거다. 그래서 좋은 책을 쓰고, TV에 나가서 얘기해주는 게 편할 것 같더라.

정신과’ 하면 거부감이 있고, ‘심리학’ 하면 거부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사실, 정신과는 이용만 할 수 있으면 다 이용해 먹으면 된다. 심리학은 심리 일반에 대한 이론이고, 정신과는 환자의 병리를 보는 것이다. 정신과는 필요하면 심리학, 약물학, 뇌 과학도 끌어들이고 무엇이든 한다.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다. ‘정신과 하다 보면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보인다면서요?’ 진짜 그렇다. 직업병이다. 지금은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는데, 그래도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예를 들어 보자. 소아과에 가서 세 살짜리한테 약을 준다고 해서, 약을 먹여도 되느냐는 말은 안 한다. 우리가 준다고 하면 얼굴색이 달라진다. 물론 세 살짜리에게는 안 주고, 대여섯 살에게 주지만. (정신과에서 약을 준다고 하면) 머리서 온갖 의심이 일어나는 것 같더라. 얼마 전에 찾아온 환자는 오기 전에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정신이 없다고 하더라. 보니까 80%는 헛소문이거나 과장된 정보였다. 그렇게 의심의 눈으로 본다. 약 먹고 적당하게 대처하면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포심을 갖고 있다.


책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팁을 제공하는 한편 성찰, 곧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파악할 수 있는 계기도 제공한다.

그런 목적도 있다. 다른 사람 마음을 파악하는 척하면서, ‘네가 보이지 않디?’ 그런 것. 책에 열네 가지 유형이 있는데, 대개는 두세 가지 정도에서 왔다 갔다 할 거다.

책은 관계, 인간을 대하는 일에 대한 가이드 노릇도 한다. 사람을 대할 때, 어떤 기본 원칙을 갖고 있나.

원칙이라면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한다. 관계를 잘 맞추려면 상대방 말을 얼마나 긍정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하는 말에 ‘네, 네.’만 하면 줏대 없고 의견이 없는 거고. 부정하는 말도 긍정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가령, 뚱뚱한 사람이, ‘나 진짜 날씬하지 않니?’라고 물을 때, ‘그렇지, 너만 한 사람 없어.’라고 말하는. 긍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부정하는 거잖나. 직접적으로 부정하려면 ‘너 뚱뚱하잖아.’ 이렇게 말하는데, 이렇게 하면 재미없고 따분하다.

책에 나온 사례들은 실제 상담을 바탕으로 쓰인 건가?

상담하면서 느낀 것, 속에 품어둔 얘기가 많다. 처음엔 더 세게 쓸 생각이었다. 초고 때 너무 거칠게 나온 게 있어서 다듬고 순화했다. 제목에는 좀 불만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만든 제목인데, 그래야 팔린다니까.(웃음) 받아들인 이유는 첫째로 상대방 마음을 알려고 하는 자체가 위험하고, 둘째는 책을 읽어 보면 시니컬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을 신용하지 못하는 듯한 색채가 깔렸다. 출판사와 그 느낌을 얘기하면서 위험하다고 붙이는 게 낫겠다고 얘기했다. 후속작이 나오면, ‘덜 위험한 심리학’으로 하자고 얘기도 했다.(웃음)”

요즘 심리학 책이 일종의 유행 같은데…….

좋은 심리학 책도 많다. 다만 다른 책을 보고 느낀 게 있는데, 이 책은 무엇보다 얘기하는 분위기로 가자고 했다. 환자 앞에서 ‘썰’을 푸는 느낌이랄까. 다른 책들은 가르치려고 들거나 재미있는 상식 같은 느낌으로 배열이 됐더라. 그건 마음에 안 들었다. 심리학은 사람들한테 감정을 일으키는 게 중요하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자기모순을 느끼게 되면 성공했다고 본다. 어느 정도 그런 반응이 오는 것 같다.


정신과 의사로 산다는 것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것은, 다른 과 의사의 것과는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같겠지만, 차이가 있다면.

음 뭐랄까, 직종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 있다. 다른 과 의사들은 환자에 대해 병이 뭐고, 증세가 어떻다고 분석하는 지적 정신노동에 가까운데, 정신과는 감정 노동에 가깝다. 의사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에게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속뜻도 숨겨야 한다. 머리를 써서 진단하거나, 우울증이니 강박증이니 따지는 게 중요하진 않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빨리 파악해서 거기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감정 소모가 굉장히 크다. 끝나고 나면 기를 빨린 느낌도 있고. 그게 다른 과와 다르다. 좋은 것이라면, 환자에게 야단을 쳐도 괜찮다는 것, 인간적인 관계가 되니까 농담도 하면서 밀접해진다.(웃음)

정신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잘 들어야 하는 직업일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겠지?

맞다. 그런데, 나는 그쪽에 재주가 없다. 예전에 남 말을 잘 안 들었다.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웃음) 내 주장만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환자 치료가 안 되잖나. 그러니 알아듣는 척도 해주는데, 기본적인 성격은 다르다. 내가 아마 다른 정신과 의사보다 말은 많을 거다. 그게 장점도 있다. 치료가 잘 안 되고, 사람에 따라서는 깊이 파고들어 가야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겐 (말 많은 것이) 맞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주도권을 뺏기고 마음을 넘겨주는 일도 있고, 가운을 입을 때와 벗을 때가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있더라. 타인의 정신질환을 마주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 같다. 정신과 의사로 산다는 것, 어떤가.

거의 도 닦는 느낌이다.(웃음) 선배가 한 말인데, 환자를 보면서 내 모습을 본다. 그러면 치료 자체의 의미가 생긴다. 내 모습을 보는데, 왜 치료를 한다고 앉아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를 치료하는 게, 곧 상대방을 치료하는 게 된다. 이런 말도 있다. 환자는 의사만큼 좋아진다. 내 자신을 냉혹하게 보면서, 내 인성을 깊게 하고 경험을 많이 할수록 환자를 보는 것도 점점 더 달라진다. 사실 의사도 꼼짝 못하는 환자들이 있다. 미모의 환자 같은 건 아니고.(웃음) 돈 안 내고, 시간 약속 안 지키고, 말 지지리도 안 듣는 환자는 (의사에게) 배신감을 안겨줘서 치료를 못 한다.

도 닦는 느낌이라고 얘기한 것은, 이런 거다. 더 깊게 들어가면 ‘도 정신의학’이라고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치료 체계가 있다. 인간관계 내에서 상념을 관찰하는 거다. 불교에서 명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불교의 명상은, 잡념을 제거하면 그다음 레벨로 가는데, 우리는 그 레벨까지는 안 간다. 숨어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까지만.


온?오프라인 상에서 간극이 큰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반드시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내 속엔 내가 많으니까. 정신과 의사로서 온?오프의 간극, 어떻게 보나.

간극이 너무 크면 문제가 많은 사람이지. 여기서는 하이드인데 저기선 지킬인 사람도 많잖나. 난 오프라인에서도 느낌이 다르다. 진료실에서는 말도 많고 까불까불하고 독설도 잘 날리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수줍음 타고 조용하다. 내 머리에는 정신과와 음악에 대한 생각이 많아서 다른 친구들과 대화가 잘 안 된다. 자식 얘기 등 공통된 게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주눅이 드는 거지. 내가 잘 알아야 탁 터뜨리는데, 모르면 위축되는 거지. 인터넷상에서는 아는 게 많고 정보량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만만하다. 글도 화려하게 쓰고. 밖에서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닌. 속에 내용 없는 사람들은 사진만 열심히 올리거나 잡다한 감상적인 얘기로 끝내고.(웃음)


별나고 독특한 괴짜이고 싶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밴드와 카툰을 그리는 것?

내 꿈은 세 가지였다. 어릴 때는 음악가였고, 만화가는 잠깐 꿈꿨다. 세 번째가 정신과 의사였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물론 지금 다 하고는 있는데, 잘해야지.(웃음) 만약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면, 의대를 그만두고 가수의 길로 나섰을 거다. 내 성격이, 확실하지 않으면 돈을 안 거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나이 마흔이 다 돼서 동시에 다 터지고 있다. 운이 좋은 거지.(웃음) 밴드를 만든 건, 1년 반이 됐다. 혼자 음악을 하는데, 의욕도 안 생기던 차에 앨범을 낸 후배들과 공연 때 만나, 한번 해 보자고 불을 질렀더니 지금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6개월 만에 터지고 있다. 운 때가 이때가 아닌가 싶다. 잡아야지. 하하. 밴드는 다 의사들이고, 5명으로 구성됐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요소를 ‘나 잘난 맛’이라고 했다. ‘나 잘난 맛’이나 ‘나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나, 괜찮지.(웃음)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남자고. 이거 괜찮다는 감각 자체가 사실은 착각이다. 착각인데, 적어도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 어릴 때, ‘넌 괜찮다’고 말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으면 그렇게 되고, 종교도 그렇게 움직인다. 나도 잡다한 기술이나 재주가 있는데, 예전에는 잘난 거로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희박해지고 있다. 뭔가 노력을 해서 결과물을 만들고 인정을 받으면 잘났다는 생각도 하겠지만, 사실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사람이다. 물론 정신과 치료하면서 환자들이 남아 있고, 열심히 번 돈이 남아 있고, 책이 남아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 지금 1집으로 내놓은 책은 너무 상업적인 느낌이 있어서, 다음에는 음악성을 살린 책을 내고 싶다.

온라인 아이디가 ‘Doctor MAD’라고 했다. 괴짜이고 싶다, 위악적이다, 어딘가 삐뚤어진 천재와 동일시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 괴짜이고 싶은가.

지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심이 있는 것은 다 건드려 보고 결과물도 내놓고.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브람스를 좋아해서 브람스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고,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을 섞어서 만드는. 이질적인 요소의 뒤에 있는 공통점을 찾아 연결하는 걸 좋아하는 거지.

영화를 봐도 그렇다. 심각한 영화를 분석해서 작가의 의도를 알려는 건 재미없다. 별생각 없이 찍은 액션영화를 보면서, ‘내가 왜 저 액션을 좋아할까?’ ‘내가 왜 이상하게 생긴 저 여자를 좋아할까?’ ‘괜찮은 등장인물인데 나는 왜 싫을까?’와 같은. 한마디로 별나고 독특하고 사고방식이 개성적이라는 얘기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실하고 할 도리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정신과를 하면서 후천적으로 든 생각이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집이고 뭐고 다 버리고 만날 기타치고 놀러 다녀야 하는 건데, 그런 사람의 말로를 많이 봤더니.(웃음)



상대방의 마음 조각을 알아내는 팁

상대의 특성을 잡아내는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로 어딘가 모순이 된다고 느끼는 점을 공략하라고 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책에도 선입견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적었듯이, 선입견을 많이 알면 알수록 풍부해진다. 얄팍한 선입견으로 보면 얄팍해지는 거고. 다른 심리학 책을 많이 읽어도 선입견이 많이 생긴다. 즉, 이미지가 떠오른 것을 조립하라는 거다. 예를 들어 보자. 머리가 큰 사람을 딱 봤다. 머리가 크면, 이런 생각들이 들겠지. 공부를 잘 할까, 이성에게 인기가 없겠지, 대두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겠지. 거기서 붙는 또 다른 이미지들도 있다. 상처가 많을 거야, 인생 외롭게 살았을 거야.

거기다 반론을 다는 과정이 있다. 얼굴 표정을 봤는데 자신만만한 거다. 그러면 가설이 틀린 거잖나.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만만하다면, 좋을 만한 걸 찾아내야지. 이럴 때 기초상식이 많아야 한다. 공부를 잘하나, 부모님이 안정적으로 키웠나, 잘은 모르지만 클래식 기타 선수인가, 집에 돈이 많나, 인성이 좋아서 핸디캡을 딛고 일어섰나. 하나하나 그런 가설들을 다시 확인해 본다. 그렇게 이미지를 하나씩 조립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에 대해서도 다시 통합을 시킨다. 20~30개를 조립하면 그림이 그려진다. 연결시킬 수 있게 되는 거지.



상대를 파악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본능에 휘말리지 말고, 경험과 이성을 중요시하라고 했다. 그만큼 사람을 파악하는 것도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얘긴데.

사람을 자꾸 만나고 책을 읽어야 한다. 많이 안다고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하면서 생각을 해야지. 이 책은 그러니까, 내가 저런 식으로 사람을 파악하고 있구나 하면서 정의해본 것이다. 아쉬운 건, 좀 더 길게 썼다면 좋았을 텐데, 책 쓰면서 너무 힘들어서…….(웃음)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를 갖고 있지만, 운 좋게도 애정이 넘치고 부드럽지만 강한 사람들을 만나, 괜찮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바뀐다. 『슬램덩크』 예찬 혹은 또 다른 좋은 심리학 콘텐츠를 추천한다면.

『슬램덩크』는 예찬이 따로 필요 없다. 워낙 괜찮은 책이니까. 다른 만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컷을 나누는 데 있다. 동작 하나하나를 잡는다. 이게 아름다움인데, 다른 작가들은 힘들어서 안 하지만, 『슬램덩크』 작가는 집착을 한다. 감동을 많이 받았다. 강백호 스타일은 좋아하지 않는데, 읽고 보니, 강백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생각을 많이 해서 짠 것 같더라. 병적으로 클 가능성이 많은 친구가 스포츠맨으로 변신하는데, 정말 잘 만들었다 싶다.

최고의 콘텐츠라면, 3년 내 읽은 것 중에는
『호문쿨루스』가 있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만화는 아니고(웃음), 정신과와 관련이 돼 있다. 내용을 보면, 주인공이 실험으로 머리에 구멍을 뚫는데, 인간들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보면, 개 머리를 한 사람, 허리에서 칼이 돌아가는 사람 등등 기기묘묘한 상태로 보인다. 대화를 하고 얽히다 보니, 이 사람이 가진 갈등 같은 게 형상화된다. 주인공이 이를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그 사람이 가진 증상이 옮는다. 내가 왜 감동을 받았냐면, 다른 사람의 문제를 분석하는 게, 결국은 자기 문제를 분석하는 건데, 그걸 제대로 상징화했다. 심리 상담과도 비슷한데, 이를 판타지로 풀었다. 최근에 본 것 중에 사람의 심리적 풍경과 비슷하다고 봤다. 그런데 기괴하고 성적인 문제도 있어서 청소년한테 권하고 싶진 않다.(웃음)

책에서 지목했듯,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최고인 나라다. 항우울제 복용이 지금 자살률을 반으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했는데.

국가적인 문제다. 과장하자면, 지금 우리는 가족끼리 앉으면 엄마, 아빠, 애들 다 힘들고 지쳐서 싸우고, 옆집, 주위에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라 구조가 정말 그렇게 심각하다. 모든 사람들이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단계랄까. 그러다 보니 뇌가 오버 부팅되는데, 항우울제는 그럴 때 먹으면, 짜증이 덜 난다. 뇌에 쿨링을 해 주거나 세로토닌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약만 먹으면 된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위험한 수준에 와 있는 나라에서 약(항우울제) 사용을 견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장담하건대, 아무 얘기도 않고 항우울제만 줘도,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10명 중 3~4명은 살릴 거다. 그러면 그 집 가족이 좋아지고 파급효과로 다른 힘든 가족을 도와줄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곧잘 던지는 나만의 질문이라고 했던, ‘당신에게 꼭 이뤄졌으면 하는 꿈’을 말해달라.

빌보드 진입이다. 그런데 원더걸스가 이미 했고.(웃음)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생뚱맞지만 좋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 앨범을 내서 소수의 사람들이 괜찮다고 해주는. 약간 매니악하면서도 대중들이 음악성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을만한 사람. 가사를 쓰면서 느끼는 건데,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쓴다면 (형식은) 댄스든 뽕짝이든, 상관이 없다.

정신과 의사는 꿈이라기보다 주어진 형벌 같은 거다. 건방진 말 같지만, 내겐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일이다. ‘돈도 벌면서, 웬 싸가지 없는 소리냐?’라면 할 말 없지만, 나는 환자를 볼 때, ‘꼭 구원해야 돼.’ 하면서 집착한다. 정신과 의사가 감정에 빠지는 거라 안 좋은 건데, 그냥 잘 이용하기로 했다. 남들이 잘 치료하지 못하는 환자를 문제없도록 만들겠다는 의무감이 있다. 그래서 꿈은 아니지만, 이루지 못하면 괴로워할 거다. 일종의 콤플렉스지.

그런 면에서, 책을 쓰는 것은 두 번째에 종속돼 있다. 내 음악을 보면, 가사는 침울하고 잔인하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세지 않냐고 얘기할 정도다. 그러니까 내게 음악은 사람을 도와주는 게 아니고, 속에 있는 걸 표현하고 각성시키는 존재다. 의무감은 나를 희생해서라도 해야 한다는 거고. 만화나 책에 미학적인 욕심은 없다.(웃음)


#송형석 #위험한 심리학 #심리학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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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3.28

그렇지요. 아직 우리나라의 실정으로는 주변 사람중에 누가 '정신과'에 다닌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약간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선도 남아 있는 편이지요.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긴 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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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꽃

2010.01.05

지난 한해 너무도 힘들었는데 정신과를 방문한다는 것이 그리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길인데 한번 방문하고 싶네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책 먼저 꼭 읽고 싶어서 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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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

2010.01.05

아 ㅠㅠ진짜 상담받고싶다...알바해서 돈벌면 꼭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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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