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윤 작가의 작업실 - 『꽤 낙천적인 아이』
지금 한국에서 가장 힙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의 『꽤 낙천적인 아이』 작업 이야기.
글 : 박소미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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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700만을 기록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원소윤을 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원소윤의 첫 번째 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의 마지막 문장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은 “알잖아, 전부 농담인 거.”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꽤 낙천적인 아이』가 할아버지 치릴로의 죽음으로 시작한 뒤 장난처럼 미리 써본 스스로의 유서로 끝난다는 점, 즉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죽음을 배치했다는 점을 떠올렸을 때,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은 문장이다. 책의 앞뒤를 덮개처럼 싸고 있는 죽음을 떠올릴 때 “알잖아 전부 농담인 거.”라는 말은 농담의 효능보다 농담의 무능을 드러내는 말처럼 보인다. 자연스럽게 책 속에서 차마 농담이 되지 못한 것들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실루엣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담하는 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것이 ‘낙천적인 아이’와 ‘꽤 낙천적인 아이’를 가르는 차이일지도 모른다. 농담의 무능을 이해하면서 농담하기. 농담을 무능하게 만드는 세계로부터 눈 돌리지 않으면서 농담하기. 원소윤이 구사하는 꽤 낙천적인 농담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꽤 낙천적인 아이』 작업을 마친 후기를 들려주세요.

지인분들께 책을 나눠주느라 한참 분주했어요. 우리 ‘아이’가 정말 예뻐서 자랑하듯이 짜잔, 하고 꺼내게 되더라고요. 뒤통수(뒤표지)까지 얼마나 잘났게요? 네, 보시다시피 팔불출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원고는 원체 오래전부터 모아왔던 터라 기억도 잘 안 납니다. 가톨릭 전통 가문, 뭐 대충 그런 내용이라던데 참 희한하죠? 여러분, “Please, Judge a book by its cover!”입니다.
 

자전적인 소재를 다룰 때,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나 캐릭터가 오히려 글을 쓰고 난 뒤 생경하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혹시 그런 장면이 있으셨을까요?

온갖 신성, 예컨대 하느님이나 부처님 등을 향한 불평불만이 이 소설을 쓸 때 좋은 동력이 되어주었는데요. 거듭 읽다 보니 화자가 툴툴대면서도 결국 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더라고요, 당신들을 완전히 믿게 만들어달라고 애걸하고 있더라고요.


화자가 하느님과 부처님의 자애와 자비를 믿고 있어서, 신성모독에 가까운 농담을 해댄 거라는 사실도 차차 알게 됐어요. 우리가 왜, 옹졸한 사람한테는 싫은 소리를 안 하게 되잖아요. 뒤끝이 무서워서. 하지만 하느님과 부처님이라면 고작 이런 걸로 나를 징벌하지는 않을 거라는 전제가 있었기에 놀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화자 안에 돋아 있던 믿음의 새순을 발견한 것이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분위기 너무 성스럽나요?)

 

소설 속에서 ‘소윤’이 할아버지 ‘치릴로’나 아빠 ‘로무알도’의 어린시절에 관해 말할 때 배어나는 애틋함이 있습니다. '소윤'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해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시선의 온도입니다. 이 온도차가 '소윤'을 조금 외롭게 보이게도 하고, 동시에 그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소윤이가요, 아니 ‘소윤’이가요. 저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그런 사람 아니니 오해 말아주세요. ‘소윤’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건조하게 얘기하고, 치릴로와 로무알도에 대해서는 애틋하게 말한다는 걸 질문을 듣고 알아차렸습니다! 아,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이 아이가 좀 징그럽게 느껴져요. 사랑받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요? 타인에게 관대하고 그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에게 호감이 가잖아요. ‘소윤’이의 순정을 지금 의심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치릴로’와 ‘로무알도’의 유년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봐준 사람이 그간 없었을 거라는 점에서 관점의 소유욕이 생긴 것도 같아요. “세상 사람들아, 당신들은 이 사람들 유년이 얼마나 가엾고 사랑스러운지 몰랐지? 그렇지만 이 봐, 이 귀여움을 봐, 이 총명함과 무력함을 봐!”


 

예수와 붓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너무 재밌고 적절한 펀치라 독자분들이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특정 종교가 아니라 세계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죠. 성별과 계급처럼요. 사실 종교를 농담의 자리에 가져오는 게 부담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종교를 농담의 자리에 가져오는 건 그다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신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거나 있다면 아주 아량이 넓을 것이기 때문이죠. 사실 종교는 굉장히 편리한 소재이기까지 해요. 대중적인 소재니까요. 예수, 붓다는 역대급 인플루언서잖아요. 게다가 정말 비범한, 달리 말해 정말 이상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안 놀리기가 어렵기도 해요.


권위의 옷을 막 벗기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옷의 성분에 딴지를 거는데 가깝달까요. “아니, 아까부터 자꾸 울 100프로라고 하시는데 솔직히 폴리 좀 섞였잖아요.” 이런 식으로요. 잠깐 상상을 해봤는데, 제 농담으로 권위의 옷이 벗겨진다면 너무 당황스러울 것 같아요. 그럼 난 이제 무얼 가지고 농담하지...? 저희를 위해서라도, 저희가 계속 개길 수 있도록 부디 무궁히 권위 있으소서, 방금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농담을 해도 되는 거겠죠. 아무리 농담해 봤자 고통을 감히 가볍게 만들 수 없으니까.”(254쪽)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체념 이후에 비로소 입장이 가능해지는 어떤 농담의 세계를 떠올려 보며, 작가님이 농담에 매혹되는 이유에 관해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어떤 소재의 농담은 지양해야 한다’는 단속에 저항하고 싶었어요. 무엇을 다루느냐보다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잖아요. 특정 소재를 유독 조심히 대하는 것, 유독 겸허히 대하는 게 더 비윤리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런 온정적 태도야말로 그 사안을, 관련자를 더 소외시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현실 감각에 기대어 쓴 문장이기도 해요. 정말 다종다양한 농담을 해왔고 또 들어왔지만, 몇 개 농담으로 고통이 치유되지도 더 끔찍해지지도 않더라고요.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 운운하는 분들이 고통을 과소평가하지 말길 바라요. 고통이 쉽습니까? 고통은 끝내 고통이잖아요. 농담으로 고통이 치유됐다면 제가 ‘농담교’를 창설했겠죠. 농담으로 고통이 더 끔찍해졌다면 몸서리치다 이 일을 일찍이 그만뒀을 거고요.


농담의 영양가 없음, 영향력 없음이 제게는 무척 편안해요. 들어도 들어도 피로하지가 않달까. 여러분도 농담의 효능을 체념해 보시길 권장합니다. 설령 버섯들깨탕에 효능이 없다고 해도, 들깨탕은 참 맛있잖아요.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반려 하천, 홍제천 덕을 많이 봤습니다. 막연한 고립감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 밖으로 나가 홍제천을 걷고 있노라면, 농구 코트를 누비는 젊은이와 아장아장 걸어가는 개를 보고 있노라면, 에어로빅에 열심인 어르신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즐겁고 애틋하더라고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한낮에 조금 울적한 마음으로 천을 걷고 있었는데요. 저기 맞은편에서 딱 보기에 처량해 보이는 청년이 걸어오는 거예요. 사정도 모르면서 ‘너도 참 딱하다’ 이런 마음이 치밀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이런, 돈도 많고 인기도 많은 유명 락스타더라고요. 언젠가 친해지면 그에게 이 일화를 꼭 들려주려고요. 내가 당신을 잠시 동정했노라고.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제가 사는 원룸이 저의 작업실입니다. 바닥에 연두색 요를 깔아놨고요. 다리 하나가 까딱거리는, 갈색 접이식 탁자를 써요. 베개를 한 세 개 정도 쌓아서 등을 받치고 LG그램을 켜서 한글 문서로 작업합니다. 저기 뭐냐, 인형들은 제가 인형 뽑기를 좀 잘해서 많은 거예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바로 아랫집이 삼겹살집이에요. 삼겹살 냄새가 올라오는데요. 몇 개월 사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채식주의자인 제게는 하루하루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4D)나 다름없습니다. 루틴은 따로 없어요. 커피 혹은 박카스를 넉넉히 마신다는 것 정도?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단독 스페셜쇼를 열고 싶었어요. 책이 유명해져서 스페셜쇼도 전석 매진시키고 그런 미래를 꿈꾸었죠.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8월 말에 하는 스페셜쇼가 2회 모두 매진됐거든요. 대박이죠? 으하하하! 8월 한 달은 좋은 농담에만 매진할 거예요.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작업 중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스탠드업 코미디언 조 리스트(Joe List)한테 빠져 있어요. 조 리스트의 스페셜쇼 <Enough For Everybody>(2023) 정말 재밌어요. 가장 최신작 <Small Ball>(2025)도요. 어떻게 이렇게 갈수록 재밌는지? Ari Shaffir의 <JEW>(2022)은 레전드 명작입니다. 90분 내내 유대교 얘기를 해요. 제 기준 지구상 가장 섹시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아리 샤피르예요. DM도 보냈어요. 내용은 비밀입니다. 앞서 추천한 스페셜쇼들은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온답니다. 번역 기능 켜놓고 보시면 돼요.



세상의 고통에 농담이 대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어요. 적어도 제 삶의 고통은 농담으로 치유되지도, 훼손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요, 농담의 기능에 어떤 기대도 품지 않고 그냥 다 포기하고 웃을 수 있을 때 웃어 두는 거, 저는 이 방식이 좋아요. (『꽤 낙천적인 아이』, 254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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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ju5700

2025.08.06

꽤 낙천적인 아이 지금 읽고있는중인데 너무 재밌어요. 스탠드업코미디도 좋아하고 본인의 삶을 풀어낸듯한 글도 좋아하는 저에겐 너무 취향 저격인 책입니다. 책 계속 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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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