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이 사랑한 사람은 신민아가 아니었나?
이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면서 생각하였습니다. ‘르네 지라르와 조명이 만든 영화군.’ 지라르의 짝패 이론 속에 ‘선우(이병헌)’와 ‘보스(김영철)’가 있고, 이 둘의 모방 욕망의 빠른 교환 속에 ‘희수(신민아)’가 있습니다. 희수라는 여자 자체가 어떠해서가 아니라, 먼저 보스가 그녀를 욕망했기 때문에 선우도 그녀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01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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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김지운 감독, 2005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울음은 달콤한 꿈과, 단지 그것이 꿈일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터집니다. 그래서 무서운 꿈보다, 슬픈 꿈보다, 달콤한 꿈이 더 아픈 것입니다.
때로 꿈속에서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 때가 있습니다. 그런 꿈을 자각몽lucid dream이라 하더군요. 사랑해도 진짜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꿈. 아파도 진짜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아픔을 준 자신의 사랑까지도 의심하게 되는 꿈.
자각몽은 그래서 그 내용이 아무리 따뜻해도 그 따뜻함의 허무함 때문에 더 외로워지는 꿈입니다. 그 외로움을 상쇄하기 위해 꿈은 또 다른 꿈을 만듭니다. 꿈속의 꿈이 꿈이니, 꿈밖의 꿈으로 그 허구의 꿈을 온전히 꿈의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꿈속의 꿈은 밝기만 한데, 그 밝음을 싸고 있는 꿈밖의 꿈은 어둠입니다. 꿈속 어디 즈음에서 생각합니다. 밝은 조명의 꿈보다 차라리 어두운 꿈이 더 편하다고.
꿈속의 꿈은 이러하였습니다.
당신이 제 몸을 묶었다 풀었다 할 때 저는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몸속의 에너지는 모두 방전되었고 겨우 손가락 끝은 당신 무릎을 민달팽이처럼 기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은 민달팽이의 그것처럼 차갑고 축축합니다. 당신의 무릎은 딱딱하나 섬세합니다. 청바지 위로 느껴지는 당신의 살갗이 아프게, 제 손가락에, 스며듭니다. 저는 천천히 글자를 쓰듯, 훑는 듯, 멈추는 듯, 머뭇거리는 듯 당신의 무릎을 만집니다. 제가 만들어내는 그 암호 같은 동선動線을, 당신이 해독하기를, 감히 바라지 못합니다. 당신의 무릎 위에 제 손가락이 얹혀 있다는 것, 제가 당신을 향한 어떤 의지를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지 못하기를, 저는 바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기억을 조심스럽게 더듬듯, 기억 속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기억과 인식 사이에 점근선을 그리듯, 제 손가락은 당신의 얼굴에 가 닿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당신의 기억도 상처도 아니지만, 저는 당신 얼굴을 보며 당신의 기억과 상처가 다시 쓰일 거라는 예감을 갖게 됩니다. 손가락 사이에 옅은 공기가 흩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제 손가락에 당신의 숨결이 닿을 때마다 저는 마치 당신의 손길을 받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어떤 흐름이 조심스럽게 휘돌아 가고 있어서 저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은 눈을 감지 않고 있으나 무언가를 보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눈에 유래를 알 수 없는 빛이 오래 머뭅니다. 그것은 당신의 슬픔일지 모릅니다. 저는 당신과 저를 담고 있는 이 역사驛舍가 세계의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저는 당신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이었는지, 나는 나였는지.
그렇게 꿈은 꿈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간이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태엽을 감지 않은 인형처럼 기차에서 내립니다. 하늘은 뜨겁고 땅은 침묵의 힘으로 꿈틀거립니다. 시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당신은 피곤합니다. 기차는 언제나 시간보다 늦고 운명보다 빨라서 제 앞의 당신은 항상 과거의 당신이거나 미래의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의 사소한 찰과상처럼 잠시 성가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완강한 당신의 무기력이 저를 패자로 몰아붙입니다. 그날 끝맺지 못한 저의 잔반처럼 당신은 서둘러 식어서 제가 고개를 올렸을 때에 당신, 이미 길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멀리서 제가 말했던가요. “길이 없어요.” 끊어진 길만큼 암담한 눈으로 올려다본 곳에 당신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깨면 꿈밖의 꿈이 꿈속의 꿈을 냉소하고, 저는 그 환상과 냉소 사이에서, 이상도 하지요, 힘이 났습니다. 그 힘으로 다시 영화의 아픔을 냉정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이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면서 생각하였습니다. ‘르네 지라르와 조명이 만든 영화군.’ 지라르의 짝패 이론 속에 ‘선우(이병헌)’와 ‘보스(김영철)’가 있고, 이 둘의 모방 욕망의 빠른 교환 속에 ‘희수(신민아)’가 있습니다. 희수라는 여자 자체가 어떠해서가 아니라, 먼저 보스가 그녀를 욕망했기 때문에 선우도 그녀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스가 희수를 욕망한 이유는, 그녀가 보스를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스가 말하죠. “내가 널 왜 좋아하는지 아니? 남 신경 안 쓰잖아. 나를 찾아오게 만들잖아. 어린 것도 잘난 거지.” 그리고 선우에게도 말하죠. “(그녀는) 나하고 종이 달라.” 순간, 선우에게 희수는 자신과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표상됩니다. 그만큼 그녀는 숭고해집니다.
희수가 선우에게 묻습니다. “해결사죠?” 선우가 당황하면서 대답합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자기를 부정하고 싶어지는 순간, 자신의 세계조차도 벗어버리고 싶은 순간, 자존감이 훼손되어도 오히려 그 상처만큼 욕망 혹은 사랑이 증식되는 순간, 그 시간은 고통이자 환희입니다.
희수는 보스에게도, 선우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만 선우가 자신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신의 몸을 전시합니다. 선우는 희수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미지는 점멸하듯이 안타깝고 아스라합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이마, 둥글고 좁은 어깨.
희수의 비밀을 덮어주고, 보스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보스가 묻습니다.
“나한테 왜 그랬지?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
보스는 선우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립니다. 기어이 선우는 보스에게 찾아가서 묻습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아니 그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보스와 선우가 같은 말을 상대에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은 운명적인 짝패였던 것입니다.
지라르의 짝패는 섬세하게 조정된 조도照度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산합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빛과 그늘이, 원색과 무채색이 빠르게 교차됩니다. 그 교차가 만드는 날선 각도에서는 긴장과 슬픔이 비어져 나옵니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밝음 끝에는 깊고 거친 어둠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 선우가 욕망한 것은 희수도 아니고, 희수를 사랑하고 있는 자기 자신도 아니고, 보스의 욕망은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뭇사람들이 욕망하는 것도, 지라르의 이론에 포획될 수밖에 없는, 어리석지만 치명적인 어떤 것은 아닐까요? 제가 욕망한 것도, 애초에 남의 것이 아니었을까요? 타인의 욕망을 제 사랑의 일용할 양식으로 알고 거식증의 여자가 어느날 미친 듯 폭식을 하듯이 당신을 욕심낸 것이 아닐까요?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울음은 달콤한 꿈과, 단지 그것이 꿈일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터집니다. 그래서 무서운 꿈보다, 슬픈 꿈보다, 달콤한 꿈이 더 아픈 것입니다.
때로 꿈속에서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 때가 있습니다. 그런 꿈을 자각몽lucid dream이라 하더군요. 사랑해도 진짜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꿈. 아파도 진짜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아픔을 준 자신의 사랑까지도 의심하게 되는 꿈.
자각몽은 그래서 그 내용이 아무리 따뜻해도 그 따뜻함의 허무함 때문에 더 외로워지는 꿈입니다. 그 외로움을 상쇄하기 위해 꿈은 또 다른 꿈을 만듭니다. 꿈속의 꿈이 꿈이니, 꿈밖의 꿈으로 그 허구의 꿈을 온전히 꿈의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꿈속의 꿈은 밝기만 한데, 그 밝음을 싸고 있는 꿈밖의 꿈은 어둠입니다. 꿈속 어디 즈음에서 생각합니다. 밝은 조명의 꿈보다 차라리 어두운 꿈이 더 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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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꿈은 이러하였습니다.
당신이 제 몸을 묶었다 풀었다 할 때 저는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몸속의 에너지는 모두 방전되었고 겨우 손가락 끝은 당신 무릎을 민달팽이처럼 기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은 민달팽이의 그것처럼 차갑고 축축합니다. 당신의 무릎은 딱딱하나 섬세합니다. 청바지 위로 느껴지는 당신의 살갗이 아프게, 제 손가락에, 스며듭니다. 저는 천천히 글자를 쓰듯, 훑는 듯, 멈추는 듯, 머뭇거리는 듯 당신의 무릎을 만집니다. 제가 만들어내는 그 암호 같은 동선動線을, 당신이 해독하기를, 감히 바라지 못합니다. 당신의 무릎 위에 제 손가락이 얹혀 있다는 것, 제가 당신을 향한 어떤 의지를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지 못하기를, 저는 바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기억을 조심스럽게 더듬듯, 기억 속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기억과 인식 사이에 점근선을 그리듯, 제 손가락은 당신의 얼굴에 가 닿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당신의 기억도 상처도 아니지만, 저는 당신 얼굴을 보며 당신의 기억과 상처가 다시 쓰일 거라는 예감을 갖게 됩니다. 손가락 사이에 옅은 공기가 흩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제 손가락에 당신의 숨결이 닿을 때마다 저는 마치 당신의 손길을 받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어떤 흐름이 조심스럽게 휘돌아 가고 있어서 저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은 눈을 감지 않고 있으나 무언가를 보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눈에 유래를 알 수 없는 빛이 오래 머뭅니다. 그것은 당신의 슬픔일지 모릅니다. 저는 당신과 저를 담고 있는 이 역사驛舍가 세계의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저는 당신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이었는지, 나는 나였는지.
그렇게 꿈은 꿈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간이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태엽을 감지 않은 인형처럼 기차에서 내립니다. 하늘은 뜨겁고 땅은 침묵의 힘으로 꿈틀거립니다. 시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당신은 피곤합니다. 기차는 언제나 시간보다 늦고 운명보다 빨라서 제 앞의 당신은 항상 과거의 당신이거나 미래의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의 사소한 찰과상처럼 잠시 성가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완강한 당신의 무기력이 저를 패자로 몰아붙입니다. 그날 끝맺지 못한 저의 잔반처럼 당신은 서둘러 식어서 제가 고개를 올렸을 때에 당신, 이미 길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멀리서 제가 말했던가요. “길이 없어요.” 끊어진 길만큼 암담한 눈으로 올려다본 곳에 당신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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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꿈을 깨면 꿈밖의 꿈이 꿈속의 꿈을 냉소하고, 저는 그 환상과 냉소 사이에서, 이상도 하지요, 힘이 났습니다. 그 힘으로 다시 영화의 아픔을 냉정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이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면서 생각하였습니다. ‘르네 지라르와 조명이 만든 영화군.’ 지라르의 짝패 이론 속에 ‘선우(이병헌)’와 ‘보스(김영철)’가 있고, 이 둘의 모방 욕망의 빠른 교환 속에 ‘희수(신민아)’가 있습니다. 희수라는 여자 자체가 어떠해서가 아니라, 먼저 보스가 그녀를 욕망했기 때문에 선우도 그녀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스가 희수를 욕망한 이유는, 그녀가 보스를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스가 말하죠. “내가 널 왜 좋아하는지 아니? 남 신경 안 쓰잖아. 나를 찾아오게 만들잖아. 어린 것도 잘난 거지.” 그리고 선우에게도 말하죠. “(그녀는) 나하고 종이 달라.” 순간, 선우에게 희수는 자신과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표상됩니다. 그만큼 그녀는 숭고해집니다.
희수가 선우에게 묻습니다. “해결사죠?” 선우가 당황하면서 대답합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자기를 부정하고 싶어지는 순간, 자신의 세계조차도 벗어버리고 싶은 순간, 자존감이 훼손되어도 오히려 그 상처만큼 욕망 혹은 사랑이 증식되는 순간, 그 시간은 고통이자 환희입니다.
희수는 보스에게도, 선우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만 선우가 자신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신의 몸을 전시합니다. 선우는 희수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미지는 점멸하듯이 안타깝고 아스라합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이마, 둥글고 좁은 어깨.
희수의 비밀을 덮어주고, 보스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보스가 묻습니다.
“나한테 왜 그랬지?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
보스는 선우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립니다. 기어이 선우는 보스에게 찾아가서 묻습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아니 그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보스와 선우가 같은 말을 상대에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은 운명적인 짝패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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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르의 짝패는 섬세하게 조정된 조도照度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산합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빛과 그늘이, 원색과 무채색이 빠르게 교차됩니다. 그 교차가 만드는 날선 각도에서는 긴장과 슬픔이 비어져 나옵니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밝음 끝에는 깊고 거친 어둠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 선우가 욕망한 것은 희수도 아니고, 희수를 사랑하고 있는 자기 자신도 아니고, 보스의 욕망은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뭇사람들이 욕망하는 것도, 지라르의 이론에 포획될 수밖에 없는, 어리석지만 치명적인 어떤 것은 아닐까요? 제가 욕망한 것도, 애초에 남의 것이 아니었을까요? 타인의 욕망을 제 사랑의 일용할 양식으로 알고 거식증의 여자가 어느날 미친 듯 폭식을 하듯이 당신을 욕심낸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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