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그녀가 지리산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 - 머묾이 때론 여행이 되는 이유 『지리산』 김영주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여행자라면, 어느 길이라고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발자국에 각인된 머묾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다. 여행이라고 치고 빠지는 것만이 아님을, 스쳐 지나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준 사람이 있다.
201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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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 8백 리길.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
숲 속 오솔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마을과 사람을 만나는 길.
들녘을 따라 삶을 배우고. 강 건너 물결에 일렁이는 바람을 따라.
자기를 만나고 돌아오는 순례의 길.
국내 첫 장거리 보도 트레일, 지리산길.
(지라산길 안내센터 벽 한편에 붙여진 글)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여행자라면, 어느 길이라고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발자국에 각인된 머묾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다. 여행이라고 치고 빠지는 것만이 아님을, 스쳐 지나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준 사람이 있다. 김영주. 그녀는 머묾을 여행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어느 길이라고 허투루 대하지 않기 위해서였을지 모르겠다.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토스카나』 『뉴욕』 『프로방스』를 머묾의 여행으로 장식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지리산』을 택했다. 지구별 여행자의 전혀 예측하지 못한 행보였다. 우연 섞인 필연의 행보였다. “비행기나 배를 탈 필요도 없었다. 어설픈 외국어를 연습할 일도, 비상용 연락처를 수소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자동차를 빌리거나 현지에서 사용할 전화번호를 미리 구해 놓을 이유도 없었다. 짐 가방의 무게가 초과될까 봐, 갑자기 환율이 오를까 봐 전전긍긍할 것도 없었다. 이 모든 수고를 덜어 줄 수 있는 간편한 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년 동안 내 나라 지리산에 갈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작가의 글’ 중에서)
지리산에 머무는 여행, 지리산은 그녀에게 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르쳐 줬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엮고, 그 책을 통해 또 다른 관계를 맺었다. 지난 8월31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북스’. 길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만났다. 『지리산』(김영주 지음|컬처그라퍼 펴냄) 출간기념 작가와의 만남. 머묾과 여행의 교차점이 궁금해서였을까. ‘머무는 여행’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으로 돌아온 김영주 작가와 열다섯 안짝의 독자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지리산 어느 산장에서 만났다면 완전 좋았겠지만, 에둘러 가는 길이 지리산 길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원나잇 스탠드를 그린 <비포 선라이즈>의 후속편, <비포 선셋>. 어느덧 30대가 된 제시(에단 호크)는 작가가 됐고, 파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가 독자들과 만난 장소는, ‘셰익스피어&컴퍼니’. 바닥에 앉아서 독자와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김영주는 그것을 바랐다. 소담하면서도 편안한 자리.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그 현장을 둘러보자.
‘머무는 여행’이라는 시리즈로 5년 동안 5권의 책을 냈다. 시리즈가 이렇게 지속될 거라 생각했었나.
“생각 못했다. (첫 책인) 『캘리포니아』를 읽은 분이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첫 여행을 했고 첫 책을 냈는지 알 거다. 그 당시, 타이틀 하나를 생각해놓고 얼마나 좋아하고 흥분했는지.(웃음) 5년간 (책을) 낼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지금도 5년 전 책을 보면 얼굴이 빨개진다. 글도 못 썼고. 『캘리포니아』가 주는 묘한 감정이 있다. 첫 책이 준 어설픔? 그게 좋다는 분도 있지만, 그 어설픔이 나한텐 버거울 때가 있다.(웃음)”
머무는 여행의 기준이 있을 텐데, 설명해 준다면.
“글쎄, 최근에 한 잡지와 인터뷰할 때, 그 기간을 물어보더라.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 평소 독자들의 리뷰나 블로그를 안 찾아보는데 우연히 한 서평을 봤다. 그 서평에 “1년을 살아야 ‘머무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하고 써 놨는데, 연락을 하려다…(웃음)
나는 1년을 살면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래 있을수록 더 좋은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머무는 여행’은 ‘머문다’와 ‘여행’이라는 상반된 의미가 합쳐진 거다. 나는 3개월을 잡았다. 3개월을 넘으면 (여행지가) 익숙해지더라. 그 아슬아슬한 경계가 뉴욕에서 왔다.”
『뉴욕』을 보면 나온다. 3개월이 지나니까 익숙해지고, 눈감고도 지하철을 타고 흥분이 줄어든다. 그래서 3개월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물론, 한 달은 넘어야겠지. 그래서 부엌이 있는 숙소를 찾는다. 어디 가든, 마트를 먼저 찾고 장을 보고 숙소로 오면, 꼭 거주자 같은 느낌이 든다. 장을 보고 움직이다보면 살짝 거주민이 된 느낌?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45세를 넘어가니, 죽음에 대한 상상도 하고 인생의 섭리 같은 죽음을 생각하게 되더라. 한 번 사는 삶인데, 한 번쯤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여행은 휙 갔다 오는 건데, 머무는 여행을 하면 현지인과 비슷해질 수도 있잖나. 착각일 수 있으나, 다른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 컸다.”
김영주에게 여행이란? 머무는 여행 말고 다른 여행도 가나.
“잡지 기자가 제목을 잘 뽑았더라. ‘책 쓰는 여행, 책 읽는 여행’이라고. 1년에 한 번 원고를 털고 책이 나오기 직전에 ‘책 읽는 여행’을 간다. 그때는 발리, 사이판 등 별로 볼 것이 없는 곳을 간다. 숙제도 안 하고 내 몸 쉬고 싶은 그런 곳.(웃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힘들거나 좋았던 점은 뭔가.
“음, 나도 인간인지라, 마음을 비우고 자기성찰 어쩌고 해도, 지치고 외롭고 힘들 때가 있다. 수 십 만부 나가는 책도 아니고.(웃음) 그냥 나와 속싸움을 하는 느낌도 든다. 작년이었던가. 지쳐있었을 때다. 『지리산』 안 낼 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메일이 왔다. 독자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를 앞둔 열아홉이 보냈는데, 굉장히 뭉클하더라. 인생의 조언을 얻는 구절을 봤다고, 힘이 됐다고, 군대 갈 때 꼭 챙겨갈 거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1만부, 2만부 팔린 적은 없지만,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단 한 명의 독자가 한 마디 해 주면, 나는 1년을 살 수 있다. 나는 카페나 블로그도 없다. 독자가 유일하게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독자가) 감동을 받은 나머지 출판사로 전화해서 담당자를 찾아, 내 핸드폰은 못 가르쳐주니까, 이메일을 가르쳐주면 그 마음을 적어 보내는 건데, 그렇게 한 거지.
그렇게 한 독자가 5년 동안 20~30명이 된다. 그 사람들, 다 기록해 놨다.(웃음) 정말 고마워서. 1~2명의 독자가 정독해주고 한 구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면, 눈물 나도록 고맙다.”
시리즈를 돌아보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과 장면은?
“나쁜 것만 기억이…(웃음)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은 것, 뉴욕 지하철이 너무 더웠던 것, 지리산 종주할 때 죽을 뻔 했던 거… 많다. 물론, 당연히 좋았던 것들 때문에 산다. 동행자도 있었던 때도 있었고, 이전에 알던 사람을 만난 적도 있으나,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기억이 난다. 토스카나의 숙소 아줌마, 뉴욕 술집에서 만났던 옆에 앉은 아줌마…”
조만간 뉴욕을 간다. 뉴욕을 혼자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 달라.
“뉴욕은 싱글들의 천국이다. 캘리포니아에 처음 가서 처음 밥을 먹을 때 두 바퀴를 왔다 갔다 했다. 왜 그리 혼자 먹는 게 쑥스러운지.(웃음) 그런데 뉴욕에서는 혼자 100끼를 먹었다.(웃음) 그러니 혼자 지내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페라, 뮤지컬 보러 가도, 대부분 혼자 온다. 브루클린 다리를 혼자 건너보라. 옆에 누가 있으면 그 사람과 대화하게 된다. 동행해보니 안 좋은 점은, 앞에 있는 것에 집중이 안 되고 옆 사람과 친구, 가족, 뉴스 등 한국 이야길 하게 된다. 혼자 있으면 외롭긴 하나 앞에 있는 대상에 집중하게 되더라.”
애초 하지 않으려고 했던 『지리산』을 하게 된 심경의 변화는 무엇이었나.
“원래 1년을 쉬려다 시작을 했다. 왔다 갔다 하다가 지리산이 낙찰됐는데, 외국에 가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의 추천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그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생각이 안 나더라. 창피하기도 하고.
지리산 이전에 국내 여행을 한 번도 안 해봤다. 출장은 가 봤지만.(웃음) 굉장히 창피한 일이지. 한국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리산이라는 어감이 주는 로망 같은 것도 있었다. 다 쓰고 나니 정말 후회 없는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웃음) 다른 책과는 조금 다르다. 뭣보다 힘들게 종주를 해서 알려드리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산길 종주를 한 거라서 느낀 것이 무척 많았다. 지리산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여행하면서 힘들 때 스스로를 북돋는 방법은 뭔가?
“낙관론자는 아니지만, 속된 말로, ‘에이 썅~ 싫으면 말고’라고 한다.(웃음) 어떤 생각이냐면, 난 20년을 죽어라 일했다.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진짜 힘들면, 어느 순간에 최면을 건다. ‘에이, 죽는 일 아닌데 뭐’라면서, 손을 놔 버린다. 여행지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힘들면 관두자. 싫음 말자. 내가 뭐 독립 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최면을 걸다보면 편해진다. 적은 자기 안에 있다고 하지 않나.”
여행 준비는 어떻게 하나.
“잡지를 오래 하다 보니 사람이 잡스럽다.(웃음) 지식의 깊이는 없는데 호기심이 많고 문화 전반에 걸쳐 훑어본다. 내 나이쯤 되면, 재능이라기보다 오랜 세월을 접하면서 누적된 것들이 있다.
만약, ‘프로방스’에 간다고 하면, 가기 전에 데이터 작업을 한다. 여행 자체는 우연에 맡기고 싶지만, 성격상 굉장히 타이트하게 준비를 한다. 한 지역을 정하면 (준비하는) 노트가 2~3권 된다. 실제로 갖고 다니는 노트는 여행 가서 기록하고, 1~2권은 가기 전까지 계속 업데이트를 한다. 책도 밑줄 긋고 꼼꼼히. 영화도 프로방스에 관련된 거라면, 외장하드에 저장해놓고 계속 본다. 영화, 음악, 책 세 가지를 함께 한다. 남과 다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자, 좋아하는 작업이다. 세 가지가 없으면 책에 살이 안 붙을 것이다. 그 준비과정이라는 것이 정말 심란하다.(웃음)”
여행에 대해 한 마디 해 달라.
“여행지는 사실 별 중요하지 않다.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늘 혼자 하는 말이 있다. 『캘리포니아』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안 나온다. 다른 책들은 나와도. 왜냐면, 20년을 다시 뼈 빠지게 일해야 하거든.(웃음) 숨이 꽉 차야하고, 도망가고 싶어야 하고, 겁이 나야 한다. 이젠, 그거 안 오지. 그렇듯이 지금 어디를 가고 싶은가는 다 다를 것이다. 내가 해 줄 말은 이거다. 마음을 비우고 가라.”
국내 여행과 외국 여행의 다른 점이 있다면.
“지리산을 가서, 섬진강을 걸을 때와 19번 국도(하동-구례)를 밤에 운행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구나 조금씩 애국자인데, 그걸 잊고 살았는데, 외국 가서는 그런 감정이 든 적이 없었다. 아무리 멋있는 곳을 봐도 그랬다. 그러나, 아우 미안해라, 지금 왔네, 이제야 왔네, 싶다. 이렇게 예쁘고 따뜻한 곳을 이제 와서 느껴서 미안하다는 생각. 부러운 시선이 아니고 내 것이라는 시선 때문에 뭉클해지더라. 외국 가서 좋을 때는 부럽다, 는 감정이지만, 우리나라 좋을 때는 뿌듯하다, 그 정도의 차이?”
『지리산』에 남편이 등장하던데, 결혼은 언제 했나.
“개인적인 얘기는 정말 잘 안 한다.(웃음) 책에 얼굴 사진을 안 넣는데, 싫다기보다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주기 싫었다. 지리산을 끝으로, 그 다음으로도 남편은 등장 안 할 거다.(웃음) 이 분께서 지리산만 등장하셨다. 그가 지리산에 대해서만 의견을 내놨기 때문에 출연한 것도 있다. 내가 일 하는데 있어 찬성도 반대도 안 한다. 일하는 사람에겐 이런 남편이 제일 고맙다. 힘들어 일 못 하겠다 하면, 하지마, 하고 싶어 하면, 해, 그런다.(웃음) 결혼한 지 20년이 됐다.”
여행 작가로 전업했는데, 어떤 삶이 더 행복한가?
“행복에 대한 얘기하면 워크숍 가서 7박8일을 해야 하는데…(웃음) 답은, 둘 다 좋다. 전에 했던 일이 싫었으면 어떻게 20년을 했겠나. 흥분된다고 해야 하나. 잡지를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런 건데, 잡지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마약쟁이 같다고 얘기한다.(웃음) 그만 두겠다, 하루에 10번 얘기하면서 절대 그만 안 둔다. 나는 2년에 한 번 꼴로 옮겨 다녔고, 그때도 행복했다. 그럼 왜 그만뒀나. 그만 둘 때가 돼서 그만뒀다.
언덕을 넘어서 그 다음 기쁨이 있어야 참고 간다. 후배들이 언제쯤 그만 둘까요, 라고 묻는데, 그건 자신만이 안다. 넘어갈 언덕이 아니고 그만둬야 할 언덕이구나, 하는 순간이 온다. 언덕을 접하곤 처음에 주저앉진 마라. 10년 이상 해 본 사람이 그 다음 일을 할 때 내성이 생긴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에게 호기심도 안 생기고,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아서 그만 뒀다.”
만약 20~30대라도 이렇게 떠났을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나이에 직업을 바꾸고 여행 작가가 된 게 고맙다. 그게, 마흔 다섯이었다. 마흔 초반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처음에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닌 회사일하고 팀워크로 일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자기 것하고 싶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은 경험치를 갖고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20대, 여행은 가고 싶었지만 전업 여행 작가가 되고픈 생각은 없었다. 왜냐. 경험이 너무 부족해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전업 여행 작가가 되려면, 인생을 겪어보고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책을 내기 전의 여행과 책을 내기로 결심한 이후의 여행은 어떻게 다른가.
“불행히도 책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여행을 해 본적이 없다.(웃음) 여행할 시간이 없었다. 1년에 4박5일 발리나 사이판에 가기 정도? 불행한 일이었다. 정말 여행할 시간이 없었다. 요즘에 많이 받는 질문인데, 여행이 축제같이 되지 않냐, 고 묻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노력을 한다. 내버려 두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면 여행은 우연성이라 뭐가 나오지 않겠냐. 그 자연스러움이 독자에게 공감대를 갖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여행 작가를 꿈꾸는 독자에게. 또 아이 엄마도 여행 작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이 엄마는 하나의 현실적인 차이지, 근본을 바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행 작가를 하면 힘든 면이 있겠지만, 자신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자신의 숙제다. 싱글은 그렇다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나? 아니잖나.(웃음)”
이 자리가, 다른 독자만남과 달리 독특했던 점이 있다. 질문을 쏘는 건 독자요, 답변을 던지는 것이 작가, 라는 틀은 안녕. 김영주 작가는 독자들을 향해 질문을 쏘고, 독자들은 답을 던진다. 캐치볼을 하는 셈이다.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작가라니. 그거 조금 바꾸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물론 애초 소수의 독자를 초대한 소담한 자리였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한 번 사는 삶, 한 번쯤은 다르게 살고 싶”은 작가의 취향과 미세한 결이 묻어난다.
떨면서도 할 말은 다하고, 작가를 향한 무한애정을 고백하는 청춘부터, 『프로방스』를 읽고 달달 외워서 떠난 50대의 독자도 있다. ‘김영주빠’를 자처하는 독자도 있으며, 멕시코를 김 작가의 여행길로 추천하는 사람도 있다. 집에 김 작가의 책을 놓으면 좋아서 결혼선물로 아내에게 줬다는 남편도 있다. 김영주는, 길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머무는 여행, 김영주는 이미 김영?만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김영주는 다시 길을 나선다. 머무는 여행에 다시 발을 내딛느냐. 아니. 고개를 젓는다. 머무는 여행 ‘시즌1’은 끝났다. 이젠 ‘길 위의 여행’이다. 지금, 그녀는 예정대로라면, 미국 사우스웨스트 6개주를 관통하는 길 위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길 위에 서기 전, “무지하게 두렵고 떨리고 마음이 오락가락한”다던 그녀였지만, 아마도 지금은 길 위에 적응해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 지역이냐고? 그녀의 출사표(?)로 이 글도 길 위에 설 것이다. 당신 마음의 길 위에. 아, 손발 오그라들었다면 미안하다.
“모두가 말린다. 한국사람 아무도 관심이 없고, 위험하다, 힘들다, 볼 게 없다, 고. 그런데 나는 갈 것이다. 그 지역을 택한 이유는, 20년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장면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부터 항상 그 지역이 있었다. 텍사스부터 시작해서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을 돌아다니며 산타모니카의 모텔에서 끝을 낼 계획이다. 총 4000km 여정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오픈으로 했다. 초반 일주일만 동행자를 구했다. 일주일만 같이 있고 숱한 날을 누빌 것이다. 사막 위주로 돌아다닐 것 같다. 인생이 그렇듯, 긴장이 되는 만큼 설렌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해보려고 한다. 여행 마무리하고 내년에 책으로 만나자.”
숲 속 오솔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마을과 사람을 만나는 길.
들녘을 따라 삶을 배우고. 강 건너 물결에 일렁이는 바람을 따라.
자기를 만나고 돌아오는 순례의 길.
국내 첫 장거리 보도 트레일, 지리산길.
(지라산길 안내센터 벽 한편에 붙여진 글)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여행자라면, 어느 길이라고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발자국에 각인된 머묾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다. 여행이라고 치고 빠지는 것만이 아님을, 스쳐 지나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준 사람이 있다. 김영주. 그녀는 머묾을 여행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어느 길이라고 허투루 대하지 않기 위해서였을지 모르겠다.
지리산에 머무는 여행, 지리산은 그녀에게 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르쳐 줬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엮고, 그 책을 통해 또 다른 관계를 맺었다. 지난 8월31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북스’. 길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만났다. 『지리산』(김영주 지음|컬처그라퍼 펴냄) 출간기념 작가와의 만남. 머묾과 여행의 교차점이 궁금해서였을까. ‘머무는 여행’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으로 돌아온 김영주 작가와 열다섯 안짝의 독자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지리산 어느 산장에서 만났다면 완전 좋았겠지만, 에둘러 가는 길이 지리산 길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원나잇 스탠드를 그린 <비포 선라이즈>의 후속편, <비포 선셋>. 어느덧 30대가 된 제시(에단 호크)는 작가가 됐고, 파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가 독자들과 만난 장소는, ‘셰익스피어&컴퍼니’. 바닥에 앉아서 독자와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김영주는 그것을 바랐다. 소담하면서도 편안한 자리.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그 현장을 둘러보자.
‘머무는 여행’이라는 시리즈로 5년 동안 5권의 책을 냈다. 시리즈가 이렇게 지속될 거라 생각했었나.
“생각 못했다. (첫 책인) 『캘리포니아』를 읽은 분이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첫 여행을 했고 첫 책을 냈는지 알 거다. 그 당시, 타이틀 하나를 생각해놓고 얼마나 좋아하고 흥분했는지.(웃음) 5년간 (책을) 낼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지금도 5년 전 책을 보면 얼굴이 빨개진다. 글도 못 썼고. 『캘리포니아』가 주는 묘한 감정이 있다. 첫 책이 준 어설픔? 그게 좋다는 분도 있지만, 그 어설픔이 나한텐 버거울 때가 있다.(웃음)”
머무는 여행의 기준이 있을 텐데, 설명해 준다면.
“글쎄, 최근에 한 잡지와 인터뷰할 때, 그 기간을 물어보더라.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 평소 독자들의 리뷰나 블로그를 안 찾아보는데 우연히 한 서평을 봤다. 그 서평에 “1년을 살아야 ‘머무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하고 써 놨는데, 연락을 하려다…(웃음)
나는 1년을 살면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래 있을수록 더 좋은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머무는 여행’은 ‘머문다’와 ‘여행’이라는 상반된 의미가 합쳐진 거다. 나는 3개월을 잡았다. 3개월을 넘으면 (여행지가) 익숙해지더라. 그 아슬아슬한 경계가 뉴욕에서 왔다.”
『뉴욕』을 보면 나온다. 3개월이 지나니까 익숙해지고, 눈감고도 지하철을 타고 흥분이 줄어든다. 그래서 3개월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물론, 한 달은 넘어야겠지. 그래서 부엌이 있는 숙소를 찾는다. 어디 가든, 마트를 먼저 찾고 장을 보고 숙소로 오면, 꼭 거주자 같은 느낌이 든다. 장을 보고 움직이다보면 살짝 거주민이 된 느낌?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45세를 넘어가니, 죽음에 대한 상상도 하고 인생의 섭리 같은 죽음을 생각하게 되더라. 한 번 사는 삶인데, 한 번쯤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여행은 휙 갔다 오는 건데, 머무는 여행을 하면 현지인과 비슷해질 수도 있잖나. 착각일 수 있으나, 다른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 컸다.”
김영주에게 여행이란? 머무는 여행 말고 다른 여행도 가나.
“잡지 기자가 제목을 잘 뽑았더라. ‘책 쓰는 여행, 책 읽는 여행’이라고. 1년에 한 번 원고를 털고 책이 나오기 직전에 ‘책 읽는 여행’을 간다. 그때는 발리, 사이판 등 별로 볼 것이 없는 곳을 간다. 숙제도 안 하고 내 몸 쉬고 싶은 그런 곳.(웃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힘들거나 좋았던 점은 뭔가.
“음, 나도 인간인지라, 마음을 비우고 자기성찰 어쩌고 해도, 지치고 외롭고 힘들 때가 있다. 수 십 만부 나가는 책도 아니고.(웃음) 그냥 나와 속싸움을 하는 느낌도 든다. 작년이었던가. 지쳐있었을 때다. 『지리산』 안 낼 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메일이 왔다. 독자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를 앞둔 열아홉이 보냈는데, 굉장히 뭉클하더라. 인생의 조언을 얻는 구절을 봤다고, 힘이 됐다고, 군대 갈 때 꼭 챙겨갈 거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1만부, 2만부 팔린 적은 없지만,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단 한 명의 독자가 한 마디 해 주면, 나는 1년을 살 수 있다. 나는 카페나 블로그도 없다. 독자가 유일하게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독자가) 감동을 받은 나머지 출판사로 전화해서 담당자를 찾아, 내 핸드폰은 못 가르쳐주니까, 이메일을 가르쳐주면 그 마음을 적어 보내는 건데, 그렇게 한 거지.
그렇게 한 독자가 5년 동안 20~30명이 된다. 그 사람들, 다 기록해 놨다.(웃음) 정말 고마워서. 1~2명의 독자가 정독해주고 한 구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면, 눈물 나도록 고맙다.”
시리즈를 돌아보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과 장면은?
“나쁜 것만 기억이…(웃음)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은 것, 뉴욕 지하철이 너무 더웠던 것, 지리산 종주할 때 죽을 뻔 했던 거… 많다. 물론, 당연히 좋았던 것들 때문에 산다. 동행자도 있었던 때도 있었고, 이전에 알던 사람을 만난 적도 있으나,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기억이 난다. 토스카나의 숙소 아줌마, 뉴욕 술집에서 만났던 옆에 앉은 아줌마…”
조만간 뉴욕을 간다. 뉴욕을 혼자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 달라.
“뉴욕은 싱글들의 천국이다. 캘리포니아에 처음 가서 처음 밥을 먹을 때 두 바퀴를 왔다 갔다 했다. 왜 그리 혼자 먹는 게 쑥스러운지.(웃음) 그런데 뉴욕에서는 혼자 100끼를 먹었다.(웃음) 그러니 혼자 지내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페라, 뮤지컬 보러 가도, 대부분 혼자 온다. 브루클린 다리를 혼자 건너보라. 옆에 누가 있으면 그 사람과 대화하게 된다. 동행해보니 안 좋은 점은, 앞에 있는 것에 집중이 안 되고 옆 사람과 친구, 가족, 뉴스 등 한국 이야길 하게 된다. 혼자 있으면 외롭긴 하나 앞에 있는 대상에 집중하게 되더라.”
애초 하지 않으려고 했던 『지리산』을 하게 된 심경의 변화는 무엇이었나.
“원래 1년을 쉬려다 시작을 했다. 왔다 갔다 하다가 지리산이 낙찰됐는데, 외국에 가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의 추천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그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생각이 안 나더라. 창피하기도 하고.
지리산 이전에 국내 여행을 한 번도 안 해봤다. 출장은 가 봤지만.(웃음) 굉장히 창피한 일이지. 한국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리산이라는 어감이 주는 로망 같은 것도 있었다. 다 쓰고 나니 정말 후회 없는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웃음) 다른 책과는 조금 다르다. 뭣보다 힘들게 종주를 해서 알려드리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산길 종주를 한 거라서 느낀 것이 무척 많았다. 지리산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여행하면서 힘들 때 스스로를 북돋는 방법은 뭔가?
“낙관론자는 아니지만, 속된 말로, ‘에이 썅~ 싫으면 말고’라고 한다.(웃음) 어떤 생각이냐면, 난 20년을 죽어라 일했다.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진짜 힘들면, 어느 순간에 최면을 건다. ‘에이, 죽는 일 아닌데 뭐’라면서, 손을 놔 버린다. 여행지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힘들면 관두자. 싫음 말자. 내가 뭐 독립 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최면을 걸다보면 편해진다. 적은 자기 안에 있다고 하지 않나.”
여행 준비는 어떻게 하나.
“잡지를 오래 하다 보니 사람이 잡스럽다.(웃음) 지식의 깊이는 없는데 호기심이 많고 문화 전반에 걸쳐 훑어본다. 내 나이쯤 되면, 재능이라기보다 오랜 세월을 접하면서 누적된 것들이 있다.
만약, ‘프로방스’에 간다고 하면, 가기 전에 데이터 작업을 한다. 여행 자체는 우연에 맡기고 싶지만, 성격상 굉장히 타이트하게 준비를 한다. 한 지역을 정하면 (준비하는) 노트가 2~3권 된다. 실제로 갖고 다니는 노트는 여행 가서 기록하고, 1~2권은 가기 전까지 계속 업데이트를 한다. 책도 밑줄 긋고 꼼꼼히. 영화도 프로방스에 관련된 거라면, 외장하드에 저장해놓고 계속 본다. 영화, 음악, 책 세 가지를 함께 한다. 남과 다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자, 좋아하는 작업이다. 세 가지가 없으면 책에 살이 안 붙을 것이다. 그 준비과정이라는 것이 정말 심란하다.(웃음)”
여행에 대해 한 마디 해 달라.
“여행지는 사실 별 중요하지 않다.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늘 혼자 하는 말이 있다. 『캘리포니아』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안 나온다. 다른 책들은 나와도. 왜냐면, 20년을 다시 뼈 빠지게 일해야 하거든.(웃음) 숨이 꽉 차야하고, 도망가고 싶어야 하고, 겁이 나야 한다. 이젠, 그거 안 오지. 그렇듯이 지금 어디를 가고 싶은가는 다 다를 것이다. 내가 해 줄 말은 이거다. 마음을 비우고 가라.”
국내 여행과 외국 여행의 다른 점이 있다면.
“지리산을 가서, 섬진강을 걸을 때와 19번 국도(하동-구례)를 밤에 운행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구나 조금씩 애국자인데, 그걸 잊고 살았는데, 외국 가서는 그런 감정이 든 적이 없었다. 아무리 멋있는 곳을 봐도 그랬다. 그러나, 아우 미안해라, 지금 왔네, 이제야 왔네, 싶다. 이렇게 예쁘고 따뜻한 곳을 이제 와서 느껴서 미안하다는 생각. 부러운 시선이 아니고 내 것이라는 시선 때문에 뭉클해지더라. 외국 가서 좋을 때는 부럽다, 는 감정이지만, 우리나라 좋을 때는 뿌듯하다, 그 정도의 차이?”
『지리산』에 남편이 등장하던데, 결혼은 언제 했나.
“개인적인 얘기는 정말 잘 안 한다.(웃음) 책에 얼굴 사진을 안 넣는데, 싫다기보다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주기 싫었다. 지리산을 끝으로, 그 다음으로도 남편은 등장 안 할 거다.(웃음) 이 분께서 지리산만 등장하셨다. 그가 지리산에 대해서만 의견을 내놨기 때문에 출연한 것도 있다. 내가 일 하는데 있어 찬성도 반대도 안 한다. 일하는 사람에겐 이런 남편이 제일 고맙다. 힘들어 일 못 하겠다 하면, 하지마, 하고 싶어 하면, 해, 그런다.(웃음) 결혼한 지 20년이 됐다.”
여행 작가로 전업했는데, 어떤 삶이 더 행복한가?
“행복에 대한 얘기하면 워크숍 가서 7박8일을 해야 하는데…(웃음) 답은, 둘 다 좋다. 전에 했던 일이 싫었으면 어떻게 20년을 했겠나. 흥분된다고 해야 하나. 잡지를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런 건데, 잡지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마약쟁이 같다고 얘기한다.(웃음) 그만 두겠다, 하루에 10번 얘기하면서 절대 그만 안 둔다. 나는 2년에 한 번 꼴로 옮겨 다녔고, 그때도 행복했다. 그럼 왜 그만뒀나. 그만 둘 때가 돼서 그만뒀다.
언덕을 넘어서 그 다음 기쁨이 있어야 참고 간다. 후배들이 언제쯤 그만 둘까요, 라고 묻는데, 그건 자신만이 안다. 넘어갈 언덕이 아니고 그만둬야 할 언덕이구나, 하는 순간이 온다. 언덕을 접하곤 처음에 주저앉진 마라. 10년 이상 해 본 사람이 그 다음 일을 할 때 내성이 생긴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에게 호기심도 안 생기고,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아서 그만 뒀다.”
만약 20~30대라도 이렇게 떠났을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나이에 직업을 바꾸고 여행 작가가 된 게 고맙다. 그게, 마흔 다섯이었다. 마흔 초반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처음에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닌 회사일하고 팀워크로 일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자기 것하고 싶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은 경험치를 갖고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20대, 여행은 가고 싶었지만 전업 여행 작가가 되고픈 생각은 없었다. 왜냐. 경험이 너무 부족해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전업 여행 작가가 되려면, 인생을 겪어보고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책을 내기 전의 여행과 책을 내기로 결심한 이후의 여행은 어떻게 다른가.
“불행히도 책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여행을 해 본적이 없다.(웃음) 여행할 시간이 없었다. 1년에 4박5일 발리나 사이판에 가기 정도? 불행한 일이었다. 정말 여행할 시간이 없었다. 요즘에 많이 받는 질문인데, 여행이 축제같이 되지 않냐, 고 묻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노력을 한다. 내버려 두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면 여행은 우연성이라 뭐가 나오지 않겠냐. 그 자연스러움이 독자에게 공감대를 갖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여행 작가를 꿈꾸는 독자에게. 또 아이 엄마도 여행 작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이 엄마는 하나의 현실적인 차이지, 근본을 바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행 작가를 하면 힘든 면이 있겠지만, 자신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자신의 숙제다. 싱글은 그렇다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나? 아니잖나.(웃음)”
이 자리가, 다른 독자만남과 달리 독특했던 점이 있다. 질문을 쏘는 건 독자요, 답변을 던지는 것이 작가, 라는 틀은 안녕. 김영주 작가는 독자들을 향해 질문을 쏘고, 독자들은 답을 던진다. 캐치볼을 하는 셈이다.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작가라니. 그거 조금 바꾸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물론 애초 소수의 독자를 초대한 소담한 자리였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한 번 사는 삶, 한 번쯤은 다르게 살고 싶”은 작가의 취향과 미세한 결이 묻어난다.
떨면서도 할 말은 다하고, 작가를 향한 무한애정을 고백하는 청춘부터, 『프로방스』를 읽고 달달 외워서 떠난 50대의 독자도 있다. ‘김영주빠’를 자처하는 독자도 있으며, 멕시코를 김 작가의 여행길로 추천하는 사람도 있다. 집에 김 작가의 책을 놓으면 좋아서 결혼선물로 아내에게 줬다는 남편도 있다. 김영주는, 길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머무는 여행, 김영주는 이미 김영?만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김영주는 다시 길을 나선다. 머무는 여행에 다시 발을 내딛느냐. 아니. 고개를 젓는다. 머무는 여행 ‘시즌1’은 끝났다. 이젠 ‘길 위의 여행’이다. 지금, 그녀는 예정대로라면, 미국 사우스웨스트 6개주를 관통하는 길 위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길 위에 서기 전, “무지하게 두렵고 떨리고 마음이 오락가락한”다던 그녀였지만, 아마도 지금은 길 위에 적응해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 지역이냐고? 그녀의 출사표(?)로 이 글도 길 위에 설 것이다. 당신 마음의 길 위에. 아, 손발 오그라들었다면 미안하다.
“모두가 말린다. 한국사람 아무도 관심이 없고, 위험하다, 힘들다, 볼 게 없다, 고. 그런데 나는 갈 것이다. 그 지역을 택한 이유는, 20년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장면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부터 항상 그 지역이 있었다. 텍사스부터 시작해서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을 돌아다니며 산타모니카의 모텔에서 끝을 낼 계획이다. 총 4000km 여정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오픈으로 했다. 초반 일주일만 동행자를 구했다. 일주일만 같이 있고 숱한 날을 누빌 것이다. 사막 위주로 돌아다닐 것 같다. 인생이 그렇듯, 긴장이 되는 만큼 설렌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해보려고 한다. 여행 마무리하고 내년에 책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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