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연회] 조정래 “한국 경제발전, 박정희 대통령 혼자의 공 아니다” - 『허수아비춤』 조정래
M경제신문 홈페이지의 Top에 게재됐던 기사였습니다.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에 나온 제목을 보고, 그만 어이가 없어 클릭했습니다.
201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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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살이 근성? 혹은 트렌드 세터?
M경제신문 홈페이지의 Top에 게재됐던 기사였습니다.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에 나온 제목을 보고, 그만 어이가 없어 클릭했습니다. (더 어이없는 건, 해당 신문사는 포털의 메인페이지에 이 기사를 사흘 동안 올려놓더군요.) 제목은 이랬어요. <이건희 회장 부부의 럭셔리 공항패션 ‘눈길’ 카멜과 블랙으로 고급스런 부부패션 완성…제일모직에서 별도로 맞춰 입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연예인 스타들의 공항패션 못지않게 이건희 삼성 회장 부부의 공항패션도 이슈다.…” 아니, 대체 누구에게 이슈? 누구를 위한 이슈? 뜨악했습니다. 국내 유수의 경제신문 맞나요? 혹시 트렌드 세터를 다룬 건가, 싶어 사진도 유심히 봤습니다만, 개뿔. 평민 눈에 비친 회장님 부부의 ‘빠숑’은 옷걸이 탓인가, 그닥 럭셔리하거나 고급스럽게 보이지도 않더군요.
평민의 눈이라 그러겠거니 했지만, 그것보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는 생각, 들었습니다. 회장님 패션까지 감탄해주는 센스(?)라니. 그것도 자신의 회사도 아니요, 다른 회사 회장을! 아니, 최대 광고주니까, 그들에겐 ‘실질적’ 회장님, 최고 상전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참으로, 뇌꼴스러웠습니다. 보기에 아니꼽고 얄미우며 못마땅한 데가 있더군요.
“국회의원이나 다른 직업들 앞에서는 대단할지 모르나 우리 같은 대기업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왜 그런지 모르겠어? 광고 때문이야, 광고. 우리 그룹이 무슨 일로 어느 한 신문에 괘씸죄를 씌워 1년 동안 광고를 중단시켜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대충 아시지? 어느 신문이고 휘청휘청 난리나 버려.”(p.189~190)
단독자로 존재하고, 권력(혹은 자본)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고 알았건만, 이게 뭔가요. 퍼뜩 든 생각이 ‘종살이 근성’ 혹은 ‘종살이 DNA’. 그 옛날 노예처럼, 혹은 여느 월급쟁이마냥 종살이 하는 언론사라. 비슷한 시기, 회장의 아들이 그룹 전면에 나서는 인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세대교체’라는 말을 쓰던데, 이것 하나는 분명히 했으면 싶더군요. 이건 세대교체가 아니다, ‘세습’이다!
돈만 엄청나게 많은 회장의 아들은, 알려진 것만 해도, 몇몇 계열을 세웠다 말아먹은 장본인이었죠. 경영능력? 글쎄, 그런 건 부각된 적도, 잘 한다고 들은 적도 없건만, 아버지 잘 둔 덕일까요. 그런 자가 냉큼 후계자랍시고 올라서려는데, 대부분 언론들은 종살이하는 탓인지, 세습이라고 탓하기보다 황태자의 새 시대를 조망하기에 바쁘네요. 다른 나라 일에는 그리 핏대를 올리더니. 종살이도 세습될 텐데, 그래도 좋나 봐요. 잘은 모르지만, 충직한 노예에겐 떡고물이 꽤 많이 떨어져서 그런가 봐요.
“회장님……, 사원들에게 그 존재는 어떠했던가. 살아 있는 임금,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살아 있는 황제가 바로 회장님 아니었던가.”(p.7)
# “장남도 실력 없으면 잘라야지.”
비자금 문제로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그룹의 보스가 한 말이에요. 스물아홉에 그룹 보스에 올라, 아들들의 폭행질에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늘 참견질 하시는 분입니다. 얼마 전 호들갑을 떨어댔던 ‘G20’의 비즈니스 서밋에 꼭 장남을 대동하고선, 한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실력이 없으면 잘라버리지 뭐, 아들이 셋인데…. 나는 저 나이 때 그룹을 이끌었는데 못할 것도 없지.”라고 말씀하셨더군요.
물론 아들 셋, 좋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실력이 안 되는 것으로 판가름 나서 장남을 잘라버리면, 나머지 두 아들. 내 회사도 아닌데, 심히 걱정됩디다. 아마, 잘 아는 아들들일 겁니다. 좋지 않은 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양반들이니까. 돈만 많은 보스를 둔 덕에, 혹은 해결사 아버지를 둔 덕에 그냥 유야무야 묻히긴 했지만.
둘째 아들, 룸살롱에서 조폭들에게 손찌검 당하고선, 꼴에 자존심 상했다고 아버지에게 징징거렸다죠. 그 유명한 ‘부자 보복 폭행’의 지질한 주인공이죠. 셋째 아들,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9월이었던가요. 호텔 종업원을 성추행하고 폭행했는데, 역시 아버지의 힘이었을까요. 최근 아시안게임 한국 승마대표로 참가했어요.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비난이 쏟아졌죠. 성추행범이 아시안게임 한국대표로 나갈 수 있었다니, 경악, 뜨악.
아, 저리 지질해 봬도 한국 승마의 기대주랍니다. 몇 년 전 쌍꺼풀 수술했다고 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를 대표에서 탈락시켰던 일과 비교하면, 허허, 유전무죄, 무전유죄, 맞네요. 비자금 의혹, 그거 뭔가 한참 구리네요. 뭐, 비자금이란 게 정치, 법조, 정부, 언론, 학자 등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가 봐요. 아직 의혹이래니, 좀 더 수사결과를 봐야겠지만, 아참, 깜빡했습니다. 비자금 의혹 조사. 검찰, 법조계에서 하는 거잖아요. 얼마 전에 본 <부당거래>, 생각나네요.
“비자금, 쉽게 말해 기업들이 온갖 탈법 위범 범법을 저질러 뒤로 빼돌려 감춘 돈이다.… 그들은 그 탈세한 검은 돈을 이 나라의 모든 권력 기관에 다 뿌렸다. 정치인, 법조인, 정부 관료들은 물론이고 언론인, 학자들까지도 그 돈을 받아먹었다.”(p.324)
참, 보스라고 지칭한 건, 조폭들 용어라서 그렇고요. 그 보스를 와이드 인터뷰로 다룬 F경제신문의 행태를 보자니, 소설 속 한 내용이 그대로 오버랩 됐습니다. 조정래 선생의 『허수아비춤』. 이 소설 속에는 일광그룹 남 회장의 똥구멍을 알아서 핥는 Y신문의 행태가 나오는데요, 왜 겹쳐 보였을까요. 허구가 현실에선 뉴스로 전달되는 현실이라니, 거참.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고 무관의 제왕이다’ 라는 주입 때문에 신문에 실리는 모든 기사를 진실이라고 믿는 무조건 따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함께.”(p.189)
우리는 진정, 이 나라의 주인 맞나?
조정래 선생이 ‘경제민주화’의 기치를 내건 장편소설 『허수아비춤』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 책은 재벌의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 등을 놓고 벌이는 복마전을 다뤘지요. 그리고 무뎌진 우리의 경제 정의에 대한 회복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질 것을. “우리는 흔히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지난 10월26일, 서울 청량리의 롯데시네마에서 ‘아름다운 책 인터뷰’ 작가와의 만남에 조정래 선생이 초대됐습니다. 주제는 ‘삶, 경제, 문학’.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은 조 선생은 『허수아비춤』에 이어 다시 기업소설을 구상 중입니다. 무대는 더 커진 중국. 중국 대륙을 삼키려는 미국?중국?한국의 기업가들 이야기라네요. 소설 제재를 취재하면서 중국 여행기도 쓰고 싶고, 50주년이 되는 남은 10년 동안 기행문, 산문, 소설 등 12권을 내놓을 생각이라는 조 선생의 작품 인생에서 변곡점이 될지도 모를 『허수아비춤』에 얽힌 이야길 들었습니다.
조 선생이 이번 소설을 쓴 계기는 어떤 위기감이었습니다. 돈에 의한 노예적 근성, 종살이 DNA를 체화하고 있는 우리네 시대에 대한 염려. 당나라 때 사마천의 이말. “돈이 나보다 만 배가 많으면 노예가 된다.” 그래서 돈의 마력과 횡포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해보고 싶었답니다. 취재를 하고 소설을 쓰면서 생각보다 정도가 심함을 알았습니다. 이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그 위기감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자본주의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저 까마득한 2천여 년 전에 사마천이 《사기》에서 말했었지.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p.73)
물론, 그라고 이 소설로 사회를 정화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다만, 인간의 편에 서는 게 문학의 소임이며, 문학은 인간에 천착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삶, 경제, 문학이 이날의 주제가 된 것은 의당, 당연한 일입니다. 그의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한광수 문학평론가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죠.
“이런 소설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소망하면서 이번 소설을 썼다. 그러나 이런 소설이 완전히 필요 없게 될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임도 잘 알고 있다. 그 도정이 인간의 삶이고, 우리네 인생 아닐까.”(p.7)
한광수 문학평론가, 조정래 문학을 논하다
조정래 선생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도전정신과 헐벗은 이웃에 대한 연민을 쏟아 부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좋아했고, 한 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타고난 기억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이런 것에 탐구정신이 덧붙여져 조정래의 문학세계가 이뤄졌습니다.
조 선생도 우익단체들의 협박을 받는 등 가족들에게 유서를 2통이나 쓴 적도 있습니다. 작가로서 살아온 조정래 40년 생애는 생과 사의 벼랑, 글 감옥을 관통해온 세월이었습니다. 2002년 1월, 『한강』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가 생활 33년이 되었다. 등단 작품부터 『불놀이』까지 전집으로 묶인 것이 8권이다. 이것이 전반기 문학이다.
그리고 『태백산맥』부터 『한강』까지 중반. 지금까지 쓴 것이 마흔 권입니다. 대하소설 세 편을 조정래 선생 말씀으론 중기문학이라고 했는데, 이후 8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강』 이후 8년 동안 조 선생은 공산권 몰락이라는 세계사를 다룬 중단편 소설 등을 발표했고, 그리고 오늘 『허수아비춤』을 출간했습니다.
조 선생의 초기작품은 2편 장편소설과 49편의 중단편으로, 초기 작품 세계 인물은, 우리 사회가 부당한 권력에 지배되고 있음을 다룹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기가 어려웠던. 그래서 작가적 관심은 왜곡된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역사적 연원을 밝히는 쪽으로 가 있었습니다. 식민지 시대로부터 왜곡돼 온 그런 역사적 연원을.
『태백산맥』은 1948~1953년까지 좌우익 이념갈등과 한국전쟁의 실상을 파헤쳤습니다. 이에 통일운동은 민중생활상의 요구부터 비롯돼야 한다는 것을 내비쳤습니다. 역사적 탐구정신은 이 지점에서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잉태된 것이 『아리랑』 12권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에 진출한 1904년부터 1945년까지. 왕족이 무너지고 우리 민족이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면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체화해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이 시간대는 제국주의 각축전이 펼쳐졌고, 이 소설의 사건 역시 국내외로 폭넓게 산재해 있고,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독립투쟁 뿐 아니라 민중들의 삶의 결과 미세하게 닿아 있습니다.
『한강』 10권은 태백산맥의 뒷자리입니다. 이 작품은 분단 독재정권의 폭압과 가난 속에서 민주화 경제발전을 이뤄낸 한국 민중의 피어린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한 세기라는 장대한 시간대 속에서 근대를 관통해온 우리 민족의 역사를 세 편의 소설에서 다뤘고, 이후 두 편의 장편소설을 통해 역사 속 개인의 비극을 조명했다. 『인간연습』, 『오 하느님』이 그렇습니다.
조 선생은 한국 민중의 삶 속에는 세계사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터넷에 연재했던 『허수아비춤』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한국 경제의 조건이 어떻게 왜곡되고 천민화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감각해져버린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실에 감각적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무감각을 일깨우는 소설입니다.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 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p.5, ‘작가의 말’ 중에서)
분단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극장에서 하는 강연이 처음이라는 조정래 선생은, 한국문학의 원류에 대한 말을 먼저 꺼냈다. 그가 말하는 한국문학의 원류는 바로, 분단 현실. “문학평론가들은 물론, 작가들, 시인들은 다 동의합니다. 분단은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원이고 비원이라는 것이 문학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0% 이상을 분단을 소재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작가들은 그렇게 관심을 쏟을까요. 세계 문화사가들에 의하면, 두 개의 세력이 충돌하면서 야기된 문제점은 그들 자력에 의해 해결될 수 없습니다. 꼭 필요한 여과과정이 있는데, 그것이 문화입니다. 문화라는 커다란 포괄 속에 문학 역시 당연히 포함되고요. 고로, 조 선생은 이렇게 확신합니다. “남북한 문제가, 분단이 해결되려면 문학, 연극 등 모든 문화 매체가 총동원돼야 합니다.”
그러니, 한국 문학도 자연 분단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조 선생은 평론가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합니다. “평론가들은 분단을 소재로 쓰되 분단 극복 문학을 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분단 상황을 다룬 법이 국가보안법인데, 국가보안법이 제재하고 억압하고 있는 것을 넘어가라는 소리에요. 평론가들은 문제 제시만 하는 사람들이고, 분단 극복 문학이라고 할 때 작가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요. 평론가들이 빠지면, 작가들이 알아서 해봐. 불구덩이에 휘발유 쥐고 가봐, 그 얘기 아니겠어요. (웃음)”
『태백산맥』을 쓰기 전, 선생의 작품 60%가 분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분단을 소재로 쓴 것은, 그것의 중요성뿐 아니라 먹을거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를 파도 끝없이 나오는. 그 정도로 분단은, 비극의 깊이가 깊습니다. “그런 소설들이 분단 극복 소설이 아니라 분단 소설이었어요. 분단 소설은 국가보안법이 허용한 범위에만 있어요. 분단에 기여할 뿐이죠. 그래서 나도 그 전에 쓴 것은 쓰레기라고 자학했습니다. 37~38살에만 해도요.”
『태백산맥』은 그런 자학(?)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마흔의 나이, 나도 뭔가 해야겠다. 선생은 『아리랑』, 『한강』도 함께 구상했고, 우리가 아는 세 편의 대하소설이 탄생했습니다. 이것들 쓸 때, 조 선생은 작은 것 하나에도 꼼꼼하고 치열했습니다. 하나의 예라면, 각 대하소설 중요 등장인물의 성이 겹치지 않습니다. 그에겐, ‘내가 쓰는 오늘의 소설? 내일 쓸 소설의 적’이었습니다. 즉, 『태백산맥』은 『아리랑』의 적이었고, 『한강』의 적은 『태백산맥』과 『아리랑』이었습니다. “인물 배치도 전혀 겹치지 않도록 인물 분배를 하고, 한꺼번에 구상하면서 오는 고통이 엄청 났습니다.”
해방, 자유는 싸워서 이뤄낸 것!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 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시)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p.7~8)
조 선생은 『태백산맥』에 얽힌 이야기를 좀 더 풀어냅니다. 이 소설 역시, 분단 상황을 다뤘는데, 마냥 빨치산을 나쁜 놈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소설은 한때 불온서적 등으로 권력자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십 수 년 전 만해도 빨치산은 악마, 흡혈귀 등으로 인식됐어요. 나도 초등학교 때, ‘김일성을 때려 부수자’고 독후감을 써서 상도 받았어요. 그런데 작가가 돼 보니 아니더라고요. 평화통일을 한다는 것은 대화해야 한다는 건데, 상대를 흡혈귀, 악마라고 불렀다면 대화되겠어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죠. 북한도 우리를 괴뢰 집단, 미 제국주의 꼭두각시라고 했죠. 말로만 통일을 부르짖으면서 최대한 분단을 악용하고 독재를 장기화했습니다. 군부독재 30년, 김일성 3대 세습이 이뤄진 겁니다.”
조 선생이 말하는 『태백산맥』은 간단합니다. “악마라고 하는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그거에요. 인간선언. 인간으로 인정해야 대화가 되는 거에요.”
조 선생이 『태백산맥』 때문에 당한 고초도 엄청 났습니다. “국가가 (북한을) 빨갱이, 흡혈귀라고 포스터에 쓰게 하던 시대에 고발당했어요. 10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인터뷰할 때도 많이 묻는데, 그리 대답합니다. 분단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당연히 겪어야 할 고통을 겪었을 뿐이다. 그들(고발하거나 고문을 했던)을 용서할 수 있나. 용서는 못하나, 이해할 수는 있다. 나도 사람이다. (박수) 박수를 치려면 세게 쳐라. 피돌기에 도움이 된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손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막 박수를 치면 뇌세포를 굉장히 자극한다.”
그리고 묻습니다. 『태백산맥』의 첫 장면(사건),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을 나누는데, 왜 사랑이야기로 처음을 썼을까. 조 선생이 말해줍니다. “남로당 중간 간부, 정하섭도 소화와 사랑을 하는 인간이라는, ‘인간선언’이에요. 작가가 괄호 열고 인간선언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소설의 상징과 생략 속에서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가장 잘하는 독서는, 안광이 지배를 하도록 읽는 것이라네요. 눈빛이 종이를 뚫도록 읽는 것. 그리하여, 문장 뒤에 숨은 뜻까지 파악한다면, 그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조 선생은 말씀하십니다. “모르는 책일수록 많이 읽고, 100번을 읽으면 뜻이 안 통하는 것이 없다고 공자가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태백산맥』을 다시 읽으세요. (웃음)”
『태백산맥』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묻는단다. ‘주인공이 대체 누구냐?’ 혹시, 당신은 말할 수 있나요? 280?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조 선생의 답은 역시나 간결합니다. “어떤 영화에서든 주인공 죽는 거 봤어요? (웃음) 파란만장해도 마지막까지 버티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누굽니까. 하대치와 외서댁이에요. 왜 남자 1명, 여자 1명일까요.?”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건 남녀가 함께 역사를 짊어지고 간다는 의미죠. 격랑의 역사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함께 떠받쳐요. 마지막 장면이 제일 고통스러웠습니다. 주인공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이 사회주의 부활이냐고 묻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인간다운 세상의 추구지. 인류는 문명과 문화를 창조해냈고, 인권을 위해 수 천 년을 싸우면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었어요. 그들도 인간다운 세상을 향해 가는 겁니다.”
이어 『아리랑』을 쓴 이유도 언급되는데, 조 선생은 먼저 묻습니다. “청산리전투(1920년)를 승리로 이끈 자는 누구일까요?” 청산리전투하면 떠오르는 이름, 김좌진 장군, 이라는 답이 나오자, 그는 “50점”이랍니다. 나머지 50점, 즉 또 한 명의 인물이 홍범도 장군입니다. 하지만, 홍 장군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지워졌습니다. 북한은 김좌진 장군을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지웠다 하네요. “역사의 기록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분단된 정치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민족수난의 역사인 식민지 역사까지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러니 그 시대를 작가가 알면서도 안 쓸 수 있겠어요.”
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권합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 유관순 누나, 상해임시정부, 그 정도밖에 안 배웠어요. 36년을 일본에게 핍박 받으면서 이 정도 기록밖에 없을까, 질문했어야 했어요. 나는 초등6학년 때부터 그 질문을 했습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어요. 독학으로 찾았고. 그래서 『아리랑』을 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리랑』을 읽어보면, 해방이 나라를 잃어버린 시절부터 혁혁하게 싸워서 이겨내고 얻어낸 것임을 명백히 알 겁니다.”
경제발전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강』은 또한 묻습니다. 박정희 씨가 경제발전을 이뤘다는데, 1961년부터 경제발전5개년 계획 등을 만들어서 지금 2만 달러 수준까지 왔다는데, 그건 박정희 씨 혼자의 공이냐. 조 선생은 확고하게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가혹한 노동을 견디면서 이룩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3편의 대하장편소설이 묻는 것은 두 가지랍니다. 하나는, 분단을 이용한 세력은 이 분단을 어떻게 획책했나. 또 하나는, 경제발전의 주인은 누구인가. “마흔에 시작한 일이 육십에나 마무리됐다. 이 머리 빠진 것 봐라. (웃음) 소설이 내 흡혈귀다. 내게도 청춘이 있었다. (웃음)”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가 이번 『허수아비춤』을 쓴 이유가, 자본주의의 가장 큰 권력인 경제 권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작가적 소명 때문입니다. 작가는 한 시대의 산소이며, 부패한 것을 깨끗하고 맑게 거르고 청산하는 작용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경제 왜곡, 천민자본주의라고 생각했고,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 이야기 속의 현실은 결코 황당무계하지 않다. 그것은 허황되어 보이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우리들 세계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아니, 이 세계를 바꾸어야 한다.”(p.435~436)
백성을 배고프게 하는 임금은 반드시 갈아치워야 한다고 조 선생은 강조합니다. 5,000년 역사에서 왕가가 바뀐 이유도 그랬고, 세계 역사에서도 국민을 배 곪게 한 왕조는 바뀌었습니다. “한 설문조사를 봤는데, 국민의 85%가 서민이라고 생각한다고 결과가 나왔어요. 2만 달러 국가에서 이게 말이 됩니까. 재벌의 비리, 불법상속, 비자금 등이 얼마나 우리를 절망케 합니까. 그렇게 탈세한 돈으로 정치, 법조, 고위공무원, 국정원, 국세청, 등 국가권력을 한 손에 넣고 흔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황당무계한 불법 범죄 행위가 무죄가 될 수 있는가. 국민인 당신들이 노예이고 싶지 않다면 이 점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당신들 모르게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아야 한다.”(p.324)
소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진실의 기록
이와 같은 천민자본주의의 창궐을 소설 쓰는 조정래 선생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를 고민한다면 가만있을 순 없었죠. “소설이 역사와 어떻게 다릅니까. 역사는 인간의 삶의 기록이에요. 거르고 간추린 기록. 소설은 이와 같으나,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세세한 것까지 진실을 밝히는 기록이에요. 어디가 범위가 넓습니까? 소설이에요. 고로, 문학은 역사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임머신에 하나를 넣으라면, 소설을 넣어야 한답니다. 역사, 철학, 풍습, 종교 등 모든 것을 포괄한 것이 소설이니까. 그것이 모든 소설가들이 그런 소설을 쓰려고 매달리는 이유랍니다. 또한 문학하는 사람의 자존심이자, 문학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OECD 국가 중에 행복지수(삶의 만족도)가 대한민국이 꼴찌에요. 이 불행의 원인은 뭘까요. 맞아요. 재벌들의 횡포로 골고루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다른 선진국들은 2만 달러 때, 이러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때부터, 민족자본 보호?축적 시기지, 분배 시기가 아니다, 이랬어요. 그건 언젠가 분배하겠다는 건데, 역대 정권 어느 때도 분배해주지 않았습니다. 재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분배’에요. 이말 꺼냈다가 얼마나 당합니까.”
“…OECD 30개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11위에서 9위까지 뛰어올랐으면서도 행복지수(삶의 만족도)는 꼴찌이고, 자살률은 1위이다. 국민소득 2만 불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이 비극은 국민소득 4만 불 이상의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끝없는 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p.6)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축적의 시기다.’ 1970년대 초에 정부가 국민을 향해 으름장을 놓듯이 한 말이었다. 그러나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 자그마치 네 배가 되도록 흘러갔건만 정부는 ‘이제부터는 분배의 시기다’ 하는 말을 할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 보호막 뒤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기에 혈안이 되어 왔던 것이다.”(p.251)
지금의 식민지배와 분단 때문에 초토화됐던 대한민국이 지금 여기까지 온 것, 재벌과 정치 리더들의 공, 조 선생은 인정한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랍니다. “노동자들이 생산했고, 그것을 산 소비자들이 있었어요. 도둑놈 빼고 오늘날까지 축적된 국부를 고루 나눌 권한이 있습니다.”
빙고. 누구 하나, 재벌 하나가 잘 나서 된 것 없습니다. 사회가 그렇다면 그건 ‘사회’가 아니죠. 그저 제국일 뿐이고, 왕국이어야죠. 어떤 잘 나가는 상품도, 그것을 산 소비자들이 있기에 돈도 벌고, 회사가 커진 것입니다. 왜 지금-여기의 공룡화 된 기업들은 생각지 못할까요. ‘사회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것을요. 아니, 생각하기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 보았던 한 TV프로그램. 오래된 맛집이 소개되고, 오랫동안 그 집을 지키고 요리를 만들어온 할머니의 말씀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손님들이 와서 팔아주니까, 내가 돈도 벌고, 이렇게 살아 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정말, 고맙습니다.” 그 마음, 손님들이 그대로 받아, 할머니의 요리를 먹고 팔아주는 선순환 구조. 할머니가 그것을 의도했거나 학습된 것은 아닐 겁니다. 일상에서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체득한 경지겠지요. 그 어떤 체계화된 연구나 논리 정연한 글보다 더욱 깊이 와 닿았던 할머니의 말씀이었습니다.
월급쟁이여, 궐기하라!
조 선생의 말씀도 간결합니다. 사회는 그렇게 얽혀 있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연결돼 있다. 제가 마음에 품고 있는 말 중의 하나인,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곧 ‘공동체’입니다. “국민은 오늘의 부에 대해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배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뭐? 과잉복지? 그들이 일군 나라인데, 노인을 공짜로 전철을 태워주는 게 과잉복지? 지금 정권의 총리들은 어찌된 것이, 대학 총장까지 지낸 양반이 마루타 부대도 모르더니, 맥락에도 맞지 않는 과잉복지라는 말을 꺼내, 국민 알기를 개코로 아는 그들의 인식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흔히 분노와 증오를 감정적인 것, 또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값싸게 취급하거나, 경멸적으로 비웃는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른 것들을 보고도 아무런 분노나 증오도 안 느낀다면 그것이 옳은 것인가.… 그러므로 그 분노와 증오는 일시적 감정이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인 것이다.”(p.234~235)
“보세요. 양심적으로 투명하게 경영하라, 세금 철저히 내라, 국가는 그것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라. 그게 잘못된 요구에요? 지금 태광산업 보세요. 재계 40위권의 기업이 그 정도인데, 그 위에 있는 재벌들 말해 뭣하겠어요. 내가 그렇게 하소연한 것이 『허수아비춤』이에요. 기업들이 그렇게 세금 내서 기업 못하겠다는 건 탈세하겠다는 얘기에요. 월급쟁이들 보세요. 얼마나 불쌍해요. 이번 소설, 월급쟁이들이 읽고 궐기해야 해요. (박수)”
그러니까, 늘 유리알처럼 속속들이 긁히면 아픈 월급쟁이들. 그러면서도 자포자기하고서 그저 회사의 충견으로 꼬리를 내리고야마는 월급쟁이. 일한만큼 더 많은 분배가 받아야 함에도 그저 잘릴 것이나 걱정해야 하는 고개 숙인 회사원들을 향한 대작가의 일성.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정당한 이유를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월급쟁이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월급쟁이의 한계고, 비애였다.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면 그것이 곧 목숨 줄이 끊기는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그게 법에도 뭐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월급쟁이의 차디찬 현실이었다.”(p.187)
조 선생은 한 마디 더, 아프게 찌릅니다. “국민의 0.1%도 안 되는 권력이 0.001%도 안 되는 재벌과 결탁해서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영원히 노예입니다. 가장 비참한 건, 노예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노예에요. 작가는 진실을 말하되, 선동가적인 역할도 하는데요, 나는 우리 사회가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을 하길 바랍니다. 그 혁명의 결과는, 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천 여부에 달린 거죠.”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의 이중 노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p.322)
“긴 인류는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의 우리들 자신이었다.”(p.325~326)
‘혁명’이라는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일전에 우석훈 2.1연구소장은, 인생 더러운 사람은 ‘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심장이 뛴다고 했거늘, 나는 여전히 혁명을 담을 때마다 피가 불끈합니다.
조 선생은 소설을 꼼꼼히 읽어줄 것을 권합니다. “소설이 어떤 것이다, 정의하지 말고 소설에서도 배울 것이 많?니다. 발가락으로 읽지 말고, 눈으로 읽어주세요. 작가는 이를 갈면서 씁니다.” 아울러, 내 삶, 주인으로 살기. “우리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주인으로 살아야죠. 여러분도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잖아요. 경제 모순, 천민자본주의에 예속된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주세요.”
“누구든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질 수밖에 없다. 그 무게를 결정짓는 것도 오로지 자기 자신이다. 요령껏 가볍게 질 수도 있고, 우직하게 무겁게 질 수도 있다. 그 선택 또한 오로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무거운 인생의 무게도 못 견딜 무게는 없다. 그것이 스스로 선택해서 오는 무게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그 무게에 익숙해지고, 이겨 내는 과정에서 닥치는 고통과 괴로움이 외로울 뿐이다. 그 외로움은 혼자 견디어 내는 수밖에 없다. 그 쓰라린 인내는 육체와 영혼을 동시에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p.365~366)
조 선생은 지금 경제 모순과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대안 중의 하나로 ‘시민단체’를 들었습니다. 투표장에서만 국민이 주인인 한계를 넘어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제대로 감시하기 위한 조직으로 꼽은 것이죠. 한 사람이 1000원씩 5개 시민단체만 후원해도 사회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요.
불매운동과 같은 실천적 행동도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문득 떠올랐습니다. 화폐 권력을 기반으로 사회를 장악하려는, 지금 아들에게 회장 자리 세습을 작당하고 있는 어떤 재벌. 분명 ‘생각해볼 이유’가 있는 그들. 그들의 반도체 공장에선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어가건만, 문제없다고만 앵무새처럼 외치는 그들.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들. 그들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나는 지지합니다. 휴대폰, 컴퓨터 등 내 일상에서 ‘S’로 시작하는 제품 브랜드를 지우고 있습니다. 물론, 개념 갖춘 시민단체를 선택하는 센스도!
“그 끝도 한도 없는 부자들의 탐욕을 방치하면 결국 이 사회는 망할 것이다. 그들의 탐욕을 막아야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일반 대중인 우리들이다. 그런 경제 범죄를 저지른 기업들의 상품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야 하고, 그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여러분들은 시민단체로 모여들어야 한다.”(p.396)
※ 아울러, 『허수아비춤』과 함께 접하면 좋은 영화와 책을 추천합니다. 우선, 영화 <부당거래>. 『허수아비춤』에서 벌어지는 작태 일부와 함께 권력들이 어떻게 카르텔을 형성하는지도 스크린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책과 스크린이 흥미롭게 얽힙니다.
이어, 『자본주의』(홍기빈 지음|책세상 펴냄). 『허수아비춤』이 드러내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사회)기계로서, 생산-화폐-권력의 관계에서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허수아비춤』에 나온 구조가 어떻게 인간을 배제하고 기계로서 작동하는지, 생산-화폐-권력이 만들어놓은 감옥에서 인간을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도움이 될 겁니다.
조정래 선생이 독자 질문에 답하다
쓰는 동안 우울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요원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에서 발견되는 의문은 반드시 소설 속에 답이 있습니다. 지금 질문도 답이 나와 있습니다. 세계 모든 정권은 돈과 결탁돼 있어요.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어요. 우리는 더 썩었습니다. 증류수에서는 고기가 못 삽니다. 우리가 석가모니나 예수가 아닌 한 더러울 수 있어요. 그걸 최소화하는데 우리 삶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전주에서 왔습니다. 『태백산맥』을 원작으로 한 영화(<태백산맥>)가 많이 달라서 보는 입장에서 화도 났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셨으면, 선생님 작품이 영상화 된다면 시나리오 작업할 생각도 있으신지요.
“<태백산맥>은 임권택 감독님이 가? 고생하셨습니다. 시나리오가 두 권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영화의) 수난을 알려줍니다. 그 분의 고뇌를 함께 짊어지면서 임 감독님을 계속 옹호했어요. 안성기 씨는 시사회 때 코가 땅에 닿도록 사과하더라고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춘향전』처럼 계속 영화로 만들면 된다고. (박수) 『아리랑』을 드라마 계약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기회가 되면 광주(민주화 항쟁)에 대한 글을 쓸 의향도 있으신지요.
“나는 컴퓨터를 안 씁니다. 컴퓨터가 속도감은 좋으나 작품 밀도감은 떨어져요. 밀도감이 떨어지면 왜 쓰나. 소설 쓰고 나서 제일 짜증나는 사람이 (다음에) 뭐 쓸 거냐고 묻는 사람이에요. (웃음) 겁나게 피곤하고, 대하장편 소설들을 쓰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졌는데, 격려?기대인 것을 알면서도 포기를 선언했어요. (광주는) 후배들이 쓰고 쓸 의미가 있고, 써야 합니다. 그런데, 10년이 다 흘러가는데 지원자가 없어요.”
지금 젊은이나 청소년의 역사의식이 과거에 비해 덜 한 것 같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이 없었으면 인류 문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물론 교육을 한다고 모든 사람이 깨닫는 건 아니죠. 학생들이 싫어하는 과목을 강압적으로 교육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은 지금, 전국민의 영어교육화로 난리가 났어요. 최근 한 설문을 보니, 중고교생의 70%가 영어교육이 싫다고 나왔어요.
교육은 꼭 필요하되, 자율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영어하고 싶어 환장한 아이들만 영어공부를 하게 만들고, 나머지는 무식함만 면하게 하면 됩니다. 역사교육은 시켜야 해요. 그래야 사람이 됩니다.”
M경제신문 홈페이지의 Top에 게재됐던 기사였습니다.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에 나온 제목을 보고, 그만 어이가 없어 클릭했습니다. (더 어이없는 건, 해당 신문사는 포털의 메인페이지에 이 기사를 사흘 동안 올려놓더군요.) 제목은 이랬어요. <이건희 회장 부부의 럭셔리 공항패션 ‘눈길’ 카멜과 블랙으로 고급스런 부부패션 완성…제일모직에서 별도로 맞춰 입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연예인 스타들의 공항패션 못지않게 이건희 삼성 회장 부부의 공항패션도 이슈다.…” 아니, 대체 누구에게 이슈? 누구를 위한 이슈? 뜨악했습니다. 국내 유수의 경제신문 맞나요? 혹시 트렌드 세터를 다룬 건가, 싶어 사진도 유심히 봤습니다만, 개뿔. 평민 눈에 비친 회장님 부부의 ‘빠숑’은 옷걸이 탓인가, 그닥 럭셔리하거나 고급스럽게 보이지도 않더군요.
평민의 눈이라 그러겠거니 했지만, 그것보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는 생각, 들었습니다. 회장님 패션까지 감탄해주는 센스(?)라니. 그것도 자신의 회사도 아니요, 다른 회사 회장을! 아니, 최대 광고주니까, 그들에겐 ‘실질적’ 회장님, 최고 상전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참으로, 뇌꼴스러웠습니다. 보기에 아니꼽고 얄미우며 못마땅한 데가 있더군요.
“국회의원이나 다른 직업들 앞에서는 대단할지 모르나 우리 같은 대기업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왜 그런지 모르겠어? 광고 때문이야, 광고. 우리 그룹이 무슨 일로 어느 한 신문에 괘씸죄를 씌워 1년 동안 광고를 중단시켜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대충 아시지? 어느 신문이고 휘청휘청 난리나 버려.”(p.189~190)
단독자로 존재하고, 권력(혹은 자본)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고 알았건만, 이게 뭔가요. 퍼뜩 든 생각이 ‘종살이 근성’ 혹은 ‘종살이 DNA’. 그 옛날 노예처럼, 혹은 여느 월급쟁이마냥 종살이 하는 언론사라. 비슷한 시기, 회장의 아들이 그룹 전면에 나서는 인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세대교체’라는 말을 쓰던데, 이것 하나는 분명히 했으면 싶더군요. 이건 세대교체가 아니다, ‘세습’이다!
돈만 엄청나게 많은 회장의 아들은, 알려진 것만 해도, 몇몇 계열을 세웠다 말아먹은 장본인이었죠. 경영능력? 글쎄, 그런 건 부각된 적도, 잘 한다고 들은 적도 없건만, 아버지 잘 둔 덕일까요. 그런 자가 냉큼 후계자랍시고 올라서려는데, 대부분 언론들은 종살이하는 탓인지, 세습이라고 탓하기보다 황태자의 새 시대를 조망하기에 바쁘네요. 다른 나라 일에는 그리 핏대를 올리더니. 종살이도 세습될 텐데, 그래도 좋나 봐요. 잘은 모르지만, 충직한 노예에겐 떡고물이 꽤 많이 떨어져서 그런가 봐요.
“회장님……, 사원들에게 그 존재는 어떠했던가. 살아 있는 임금,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살아 있는 황제가 바로 회장님 아니었던가.”(p.7)
# “장남도 실력 없으면 잘라야지.”
비자금 문제로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그룹의 보스가 한 말이에요. 스물아홉에 그룹 보스에 올라, 아들들의 폭행질에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늘 참견질 하시는 분입니다. 얼마 전 호들갑을 떨어댔던 ‘G20’의 비즈니스 서밋에 꼭 장남을 대동하고선, 한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실력이 없으면 잘라버리지 뭐, 아들이 셋인데…. 나는 저 나이 때 그룹을 이끌었는데 못할 것도 없지.”라고 말씀하셨더군요.
물론 아들 셋, 좋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실력이 안 되는 것으로 판가름 나서 장남을 잘라버리면, 나머지 두 아들. 내 회사도 아닌데, 심히 걱정됩디다. 아마, 잘 아는 아들들일 겁니다. 좋지 않은 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양반들이니까. 돈만 많은 보스를 둔 덕에, 혹은 해결사 아버지를 둔 덕에 그냥 유야무야 묻히긴 했지만.
둘째 아들, 룸살롱에서 조폭들에게 손찌검 당하고선, 꼴에 자존심 상했다고 아버지에게 징징거렸다죠. 그 유명한 ‘부자 보복 폭행’의 지질한 주인공이죠. 셋째 아들,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9월이었던가요. 호텔 종업원을 성추행하고 폭행했는데, 역시 아버지의 힘이었을까요. 최근 아시안게임 한국 승마대표로 참가했어요.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비난이 쏟아졌죠. 성추행범이 아시안게임 한국대표로 나갈 수 있었다니, 경악, 뜨악.
아, 저리 지질해 봬도 한국 승마의 기대주랍니다. 몇 년 전 쌍꺼풀 수술했다고 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를 대표에서 탈락시켰던 일과 비교하면, 허허, 유전무죄, 무전유죄, 맞네요. 비자금 의혹, 그거 뭔가 한참 구리네요. 뭐, 비자금이란 게 정치, 법조, 정부, 언론, 학자 등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가 봐요. 아직 의혹이래니, 좀 더 수사결과를 봐야겠지만, 아참, 깜빡했습니다. 비자금 의혹 조사. 검찰, 법조계에서 하는 거잖아요. 얼마 전에 본 <부당거래>, 생각나네요.
“비자금, 쉽게 말해 기업들이 온갖 탈법 위범 범법을 저질러 뒤로 빼돌려 감춘 돈이다.… 그들은 그 탈세한 검은 돈을 이 나라의 모든 권력 기관에 다 뿌렸다. 정치인, 법조인, 정부 관료들은 물론이고 언론인, 학자들까지도 그 돈을 받아먹었다.”(p.324)
참, 보스라고 지칭한 건, 조폭들 용어라서 그렇고요. 그 보스를 와이드 인터뷰로 다룬 F경제신문의 행태를 보자니, 소설 속 한 내용이 그대로 오버랩 됐습니다. 조정래 선생의 『허수아비춤』. 이 소설 속에는 일광그룹 남 회장의 똥구멍을 알아서 핥는 Y신문의 행태가 나오는데요, 왜 겹쳐 보였을까요. 허구가 현실에선 뉴스로 전달되는 현실이라니, 거참.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고 무관의 제왕이다’ 라는 주입 때문에 신문에 실리는 모든 기사를 진실이라고 믿는 무조건 따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함께.”(p.189)
우리는 진정, 이 나라의 주인 맞나?
지난 10월26일, 서울 청량리의 롯데시네마에서 ‘아름다운 책 인터뷰’ 작가와의 만남에 조정래 선생이 초대됐습니다. 주제는 ‘삶, 경제, 문학’.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은 조 선생은 『허수아비춤』에 이어 다시 기업소설을 구상 중입니다. 무대는 더 커진 중국. 중국 대륙을 삼키려는 미국?중국?한국의 기업가들 이야기라네요. 소설 제재를 취재하면서 중국 여행기도 쓰고 싶고, 50주년이 되는 남은 10년 동안 기행문, 산문, 소설 등 12권을 내놓을 생각이라는 조 선생의 작품 인생에서 변곡점이 될지도 모를 『허수아비춤』에 얽힌 이야길 들었습니다.
조 선생이 이번 소설을 쓴 계기는 어떤 위기감이었습니다. 돈에 의한 노예적 근성, 종살이 DNA를 체화하고 있는 우리네 시대에 대한 염려. 당나라 때 사마천의 이말. “돈이 나보다 만 배가 많으면 노예가 된다.” 그래서 돈의 마력과 횡포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해보고 싶었답니다. 취재를 하고 소설을 쓰면서 생각보다 정도가 심함을 알았습니다. 이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그 위기감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자본주의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저 까마득한 2천여 년 전에 사마천이 《사기》에서 말했었지.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p.73)
물론, 그라고 이 소설로 사회를 정화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다만, 인간의 편에 서는 게 문학의 소임이며, 문학은 인간에 천착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삶, 경제, 문학이 이날의 주제가 된 것은 의당, 당연한 일입니다. 그의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한광수 문학평론가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죠.
“이런 소설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소망하면서 이번 소설을 썼다. 그러나 이런 소설이 완전히 필요 없게 될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임도 잘 알고 있다. 그 도정이 인간의 삶이고, 우리네 인생 아닐까.”(p.7)
한광수 문학평론가, 조정래 문학을 논하다
조정래 선생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도전정신과 헐벗은 이웃에 대한 연민을 쏟아 부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좋아했고, 한 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타고난 기억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이런 것에 탐구정신이 덧붙여져 조정래의 문학세계가 이뤄졌습니다.
조 선생도 우익단체들의 협박을 받는 등 가족들에게 유서를 2통이나 쓴 적도 있습니다. 작가로서 살아온 조정래 40년 생애는 생과 사의 벼랑, 글 감옥을 관통해온 세월이었습니다. 2002년 1월, 『한강』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가 생활 33년이 되었다. 등단 작품부터 『불놀이』까지 전집으로 묶인 것이 8권이다. 이것이 전반기 문학이다.
그리고 『태백산맥』부터 『한강』까지 중반. 지금까지 쓴 것이 마흔 권입니다. 대하소설 세 편을 조정래 선생 말씀으론 중기문학이라고 했는데, 이후 8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강』 이후 8년 동안 조 선생은 공산권 몰락이라는 세계사를 다룬 중단편 소설 등을 발표했고, 그리고 오늘 『허수아비춤』을 출간했습니다.
조 선생의 초기작품은 2편 장편소설과 49편의 중단편으로, 초기 작품 세계 인물은, 우리 사회가 부당한 권력에 지배되고 있음을 다룹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기가 어려웠던. 그래서 작가적 관심은 왜곡된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역사적 연원을 밝히는 쪽으로 가 있었습니다. 식민지 시대로부터 왜곡돼 온 그런 역사적 연원을.
『태백산맥』은 1948~1953년까지 좌우익 이념갈등과 한국전쟁의 실상을 파헤쳤습니다. 이에 통일운동은 민중생활상의 요구부터 비롯돼야 한다는 것을 내비쳤습니다. 역사적 탐구정신은 이 지점에서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잉태된 것이 『아리랑』 12권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에 진출한 1904년부터 1945년까지. 왕족이 무너지고 우리 민족이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면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체화해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이 시간대는 제국주의 각축전이 펼쳐졌고, 이 소설의 사건 역시 국내외로 폭넓게 산재해 있고,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독립투쟁 뿐 아니라 민중들의 삶의 결과 미세하게 닿아 있습니다.
조 선생은 한국 민중의 삶 속에는 세계사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터넷에 연재했던 『허수아비춤』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한국 경제의 조건이 어떻게 왜곡되고 천민화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감각해져버린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실에 감각적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무감각을 일깨우는 소설입니다.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 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p.5, ‘작가의 말’ 중에서)
분단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극장에서 하는 강연이 처음이라는 조정래 선생은, 한국문학의 원류에 대한 말을 먼저 꺼냈다. 그가 말하는 한국문학의 원류는 바로, 분단 현실. “문학평론가들은 물론, 작가들, 시인들은 다 동의합니다. 분단은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원이고 비원이라는 것이 문학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0% 이상을 분단을 소재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작가들은 그렇게 관심을 쏟을까요. 세계 문화사가들에 의하면, 두 개의 세력이 충돌하면서 야기된 문제점은 그들 자력에 의해 해결될 수 없습니다. 꼭 필요한 여과과정이 있는데, 그것이 문화입니다. 문화라는 커다란 포괄 속에 문학 역시 당연히 포함되고요. 고로, 조 선생은 이렇게 확신합니다. “남북한 문제가, 분단이 해결되려면 문학, 연극 등 모든 문화 매체가 총동원돼야 합니다.”
그러니, 한국 문학도 자연 분단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조 선생은 평론가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합니다. “평론가들은 분단을 소재로 쓰되 분단 극복 문학을 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분단 상황을 다룬 법이 국가보안법인데, 국가보안법이 제재하고 억압하고 있는 것을 넘어가라는 소리에요. 평론가들은 문제 제시만 하는 사람들이고, 분단 극복 문학이라고 할 때 작가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요. 평론가들이 빠지면, 작가들이 알아서 해봐. 불구덩이에 휘발유 쥐고 가봐, 그 얘기 아니겠어요. (웃음)”
『태백산맥』은 그런 자학(?)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마흔의 나이, 나도 뭔가 해야겠다. 선생은 『아리랑』, 『한강』도 함께 구상했고, 우리가 아는 세 편의 대하소설이 탄생했습니다. 이것들 쓸 때, 조 선생은 작은 것 하나에도 꼼꼼하고 치열했습니다. 하나의 예라면, 각 대하소설 중요 등장인물의 성이 겹치지 않습니다. 그에겐, ‘내가 쓰는 오늘의 소설? 내일 쓸 소설의 적’이었습니다. 즉, 『태백산맥』은 『아리랑』의 적이었고, 『한강』의 적은 『태백산맥』과 『아리랑』이었습니다. “인물 배치도 전혀 겹치지 않도록 인물 분배를 하고, 한꺼번에 구상하면서 오는 고통이 엄청 났습니다.”
해방, 자유는 싸워서 이뤄낸 것!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 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시)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p.7~8)
조 선생은 『태백산맥』에 얽힌 이야기를 좀 더 풀어냅니다. 이 소설 역시, 분단 상황을 다뤘는데, 마냥 빨치산을 나쁜 놈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소설은 한때 불온서적 등으로 권력자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십 수 년 전 만해도 빨치산은 악마, 흡혈귀 등으로 인식됐어요. 나도 초등학교 때, ‘김일성을 때려 부수자’고 독후감을 써서 상도 받았어요. 그런데 작가가 돼 보니 아니더라고요. 평화통일을 한다는 것은 대화해야 한다는 건데, 상대를 흡혈귀, 악마라고 불렀다면 대화되겠어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죠. 북한도 우리를 괴뢰 집단, 미 제국주의 꼭두각시라고 했죠. 말로만 통일을 부르짖으면서 최대한 분단을 악용하고 독재를 장기화했습니다. 군부독재 30년, 김일성 3대 세습이 이뤄진 겁니다.”
조 선생이 말하는 『태백산맥』은 간단합니다. “악마라고 하는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그거에요. 인간선언. 인간으로 인정해야 대화가 되는 거에요.”
조 선생이 『태백산맥』 때문에 당한 고초도 엄청 났습니다. “국가가 (북한을) 빨갱이, 흡혈귀라고 포스터에 쓰게 하던 시대에 고발당했어요. 10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인터뷰할 때도 많이 묻는데, 그리 대답합니다. 분단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당연히 겪어야 할 고통을 겪었을 뿐이다. 그들(고발하거나 고문을 했던)을 용서할 수 있나. 용서는 못하나, 이해할 수는 있다. 나도 사람이다. (박수) 박수를 치려면 세게 쳐라. 피돌기에 도움이 된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손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막 박수를 치면 뇌세포를 굉장히 자극한다.”
그리고 묻습니다. 『태백산맥』의 첫 장면(사건),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을 나누는데, 왜 사랑이야기로 처음을 썼을까. 조 선생이 말해줍니다. “남로당 중간 간부, 정하섭도 소화와 사랑을 하는 인간이라는, ‘인간선언’이에요. 작가가 괄호 열고 인간선언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소설의 상징과 생략 속에서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가장 잘하는 독서는, 안광이 지배를 하도록 읽는 것이라네요. 눈빛이 종이를 뚫도록 읽는 것. 그리하여, 문장 뒤에 숨은 뜻까지 파악한다면, 그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조 선생은 말씀하십니다. “모르는 책일수록 많이 읽고, 100번을 읽으면 뜻이 안 통하는 것이 없다고 공자가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태백산맥』을 다시 읽으세요. (웃음)”
『태백산맥』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묻는단다. ‘주인공이 대체 누구냐?’ 혹시, 당신은 말할 수 있나요? 280?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조 선생의 답은 역시나 간결합니다. “어떤 영화에서든 주인공 죽는 거 봤어요? (웃음) 파란만장해도 마지막까지 버티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누굽니까. 하대치와 외서댁이에요. 왜 남자 1명, 여자 1명일까요.?”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건 남녀가 함께 역사를 짊어지고 간다는 의미죠. 격랑의 역사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함께 떠받쳐요. 마지막 장면이 제일 고통스러웠습니다. 주인공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이 사회주의 부활이냐고 묻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인간다운 세상의 추구지. 인류는 문명과 문화를 창조해냈고, 인권을 위해 수 천 년을 싸우면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었어요. 그들도 인간다운 세상을 향해 가는 겁니다.”
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권합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 유관순 누나, 상해임시정부, 그 정도밖에 안 배웠어요. 36년을 일본에게 핍박 받으면서 이 정도 기록밖에 없을까, 질문했어야 했어요. 나는 초등6학년 때부터 그 질문을 했습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어요. 독학으로 찾았고. 그래서 『아리랑』을 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리랑』을 읽어보면, 해방이 나라를 잃어버린 시절부터 혁혁하게 싸워서 이겨내고 얻어낸 것임을 명백히 알 겁니다.”
경제발전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강』은 또한 묻습니다. 박정희 씨가 경제발전을 이뤘다는데, 1961년부터 경제발전5개년 계획 등을 만들어서 지금 2만 달러 수준까지 왔다는데, 그건 박정희 씨 혼자의 공이냐. 조 선생은 확고하게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가혹한 노동을 견디면서 이룩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3편의 대하장편소설이 묻는 것은 두 가지랍니다. 하나는, 분단을 이용한 세력은 이 분단을 어떻게 획책했나. 또 하나는, 경제발전의 주인은 누구인가. “마흔에 시작한 일이 육십에나 마무리됐다. 이 머리 빠진 것 봐라. (웃음) 소설이 내 흡혈귀다. 내게도 청춘이 있었다. (웃음)”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가 이번 『허수아비춤』을 쓴 이유가, 자본주의의 가장 큰 권력인 경제 권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작가적 소명 때문입니다. 작가는 한 시대의 산소이며, 부패한 것을 깨끗하고 맑게 거르고 청산하는 작용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경제 왜곡, 천민자본주의라고 생각했고,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 이야기 속의 현실은 결코 황당무계하지 않다. 그것은 허황되어 보이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우리들 세계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아니, 이 세계를 바꾸어야 한다.”(p.435~436)
백성을 배고프게 하는 임금은 반드시 갈아치워야 한다고 조 선생은 강조합니다. 5,000년 역사에서 왕가가 바뀐 이유도 그랬고, 세계 역사에서도 국민을 배 곪게 한 왕조는 바뀌었습니다. “한 설문조사를 봤는데, 국민의 85%가 서민이라고 생각한다고 결과가 나왔어요. 2만 달러 국가에서 이게 말이 됩니까. 재벌의 비리, 불법상속, 비자금 등이 얼마나 우리를 절망케 합니까. 그렇게 탈세한 돈으로 정치, 법조, 고위공무원, 국정원, 국세청, 등 국가권력을 한 손에 넣고 흔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황당무계한 불법 범죄 행위가 무죄가 될 수 있는가. 국민인 당신들이 노예이고 싶지 않다면 이 점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당신들 모르게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아야 한다.”(p.324)
소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진실의 기록
이와 같은 천민자본주의의 창궐을 소설 쓰는 조정래 선생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를 고민한다면 가만있을 순 없었죠. “소설이 역사와 어떻게 다릅니까. 역사는 인간의 삶의 기록이에요. 거르고 간추린 기록. 소설은 이와 같으나,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세세한 것까지 진실을 밝히는 기록이에요. 어디가 범위가 넓습니까? 소설이에요. 고로, 문학은 역사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임머신에 하나를 넣으라면, 소설을 넣어야 한답니다. 역사, 철학, 풍습, 종교 등 모든 것을 포괄한 것이 소설이니까. 그것이 모든 소설가들이 그런 소설을 쓰려고 매달리는 이유랍니다. 또한 문학하는 사람의 자존심이자, 문학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OECD 국가 중에 행복지수(삶의 만족도)가 대한민국이 꼴찌에요. 이 불행의 원인은 뭘까요. 맞아요. 재벌들의 횡포로 골고루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다른 선진국들은 2만 달러 때, 이러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때부터, 민족자본 보호?축적 시기지, 분배 시기가 아니다, 이랬어요. 그건 언젠가 분배하겠다는 건데, 역대 정권 어느 때도 분배해주지 않았습니다. 재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분배’에요. 이말 꺼냈다가 얼마나 당합니까.”
“…OECD 30개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11위에서 9위까지 뛰어올랐으면서도 행복지수(삶의 만족도)는 꼴찌이고, 자살률은 1위이다. 국민소득 2만 불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이 비극은 국민소득 4만 불 이상의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끝없는 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p.6)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축적의 시기다.’ 1970년대 초에 정부가 국민을 향해 으름장을 놓듯이 한 말이었다. 그러나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 자그마치 네 배가 되도록 흘러갔건만 정부는 ‘이제부터는 분배의 시기다’ 하는 말을 할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 보호막 뒤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기에 혈안이 되어 왔던 것이다.”(p.251)
지금의 식민지배와 분단 때문에 초토화됐던 대한민국이 지금 여기까지 온 것, 재벌과 정치 리더들의 공, 조 선생은 인정한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랍니다. “노동자들이 생산했고, 그것을 산 소비자들이 있었어요. 도둑놈 빼고 오늘날까지 축적된 국부를 고루 나눌 권한이 있습니다.”
빙고. 누구 하나, 재벌 하나가 잘 나서 된 것 없습니다. 사회가 그렇다면 그건 ‘사회’가 아니죠. 그저 제국일 뿐이고, 왕국이어야죠. 어떤 잘 나가는 상품도, 그것을 산 소비자들이 있기에 돈도 벌고, 회사가 커진 것입니다. 왜 지금-여기의 공룡화 된 기업들은 생각지 못할까요. ‘사회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것을요. 아니, 생각하기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 보았던 한 TV프로그램. 오래된 맛집이 소개되고, 오랫동안 그 집을 지키고 요리를 만들어온 할머니의 말씀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손님들이 와서 팔아주니까, 내가 돈도 벌고, 이렇게 살아 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정말, 고맙습니다.” 그 마음, 손님들이 그대로 받아, 할머니의 요리를 먹고 팔아주는 선순환 구조. 할머니가 그것을 의도했거나 학습된 것은 아닐 겁니다. 일상에서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체득한 경지겠지요. 그 어떤 체계화된 연구나 논리 정연한 글보다 더욱 깊이 와 닿았던 할머니의 말씀이었습니다.
월급쟁이여, 궐기하라!
조 선생의 말씀도 간결합니다. 사회는 그렇게 얽혀 있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연결돼 있다. 제가 마음에 품고 있는 말 중의 하나인,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곧 ‘공동체’입니다. “국민은 오늘의 부에 대해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배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뭐? 과잉복지? 그들이 일군 나라인데, 노인을 공짜로 전철을 태워주는 게 과잉복지? 지금 정권의 총리들은 어찌된 것이, 대학 총장까지 지낸 양반이 마루타 부대도 모르더니, 맥락에도 맞지 않는 과잉복지라는 말을 꺼내, 국민 알기를 개코로 아는 그들의 인식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흔히 분노와 증오를 감정적인 것, 또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값싸게 취급하거나, 경멸적으로 비웃는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른 것들을 보고도 아무런 분노나 증오도 안 느낀다면 그것이 옳은 것인가.… 그러므로 그 분노와 증오는 일시적 감정이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인 것이다.”(p.234~235)
“보세요. 양심적으로 투명하게 경영하라, 세금 철저히 내라, 국가는 그것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라. 그게 잘못된 요구에요? 지금 태광산업 보세요. 재계 40위권의 기업이 그 정도인데, 그 위에 있는 재벌들 말해 뭣하겠어요. 내가 그렇게 하소연한 것이 『허수아비춤』이에요. 기업들이 그렇게 세금 내서 기업 못하겠다는 건 탈세하겠다는 얘기에요. 월급쟁이들 보세요. 얼마나 불쌍해요. 이번 소설, 월급쟁이들이 읽고 궐기해야 해요. (박수)”
그러니까, 늘 유리알처럼 속속들이 긁히면 아픈 월급쟁이들. 그러면서도 자포자기하고서 그저 회사의 충견으로 꼬리를 내리고야마는 월급쟁이. 일한만큼 더 많은 분배가 받아야 함에도 그저 잘릴 것이나 걱정해야 하는 고개 숙인 회사원들을 향한 대작가의 일성.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정당한 이유를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월급쟁이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월급쟁이의 한계고, 비애였다.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면 그것이 곧 목숨 줄이 끊기는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그게 법에도 뭐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월급쟁이의 차디찬 현실이었다.”(p.187)
조 선생은 한 마디 더, 아프게 찌릅니다. “국민의 0.1%도 안 되는 권력이 0.001%도 안 되는 재벌과 결탁해서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영원히 노예입니다. 가장 비참한 건, 노예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노예에요. 작가는 진실을 말하되, 선동가적인 역할도 하는데요, 나는 우리 사회가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을 하길 바랍니다. 그 혁명의 결과는, 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천 여부에 달린 거죠.”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의 이중 노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p.322)
“긴 인류는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의 우리들 자신이었다.”(p.325~326)
‘혁명’이라는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일전에 우석훈 2.1연구소장은, 인생 더러운 사람은 ‘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심장이 뛴다고 했거늘, 나는 여전히 혁명을 담을 때마다 피가 불끈합니다.
조 선생은 소설을 꼼꼼히 읽어줄 것을 권합니다. “소설이 어떤 것이다, 정의하지 말고 소설에서도 배울 것이 많?니다. 발가락으로 읽지 말고, 눈으로 읽어주세요. 작가는 이를 갈면서 씁니다.” 아울러, 내 삶, 주인으로 살기. “우리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주인으로 살아야죠. 여러분도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잖아요. 경제 모순, 천민자본주의에 예속된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주세요.”
“누구든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질 수밖에 없다. 그 무게를 결정짓는 것도 오로지 자기 자신이다. 요령껏 가볍게 질 수도 있고, 우직하게 무겁게 질 수도 있다. 그 선택 또한 오로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무거운 인생의 무게도 못 견딜 무게는 없다. 그것이 스스로 선택해서 오는 무게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그 무게에 익숙해지고, 이겨 내는 과정에서 닥치는 고통과 괴로움이 외로울 뿐이다. 그 외로움은 혼자 견디어 내는 수밖에 없다. 그 쓰라린 인내는 육체와 영혼을 동시에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p.365~366)
조 선생은 지금 경제 모순과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대안 중의 하나로 ‘시민단체’를 들었습니다. 투표장에서만 국민이 주인인 한계를 넘어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제대로 감시하기 위한 조직으로 꼽은 것이죠. 한 사람이 1000원씩 5개 시민단체만 후원해도 사회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요.
불매운동과 같은 실천적 행동도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문득 떠올랐습니다. 화폐 권력을 기반으로 사회를 장악하려는, 지금 아들에게 회장 자리 세습을 작당하고 있는 어떤 재벌. 분명 ‘생각해볼 이유’가 있는 그들. 그들의 반도체 공장에선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어가건만, 문제없다고만 앵무새처럼 외치는 그들.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들. 그들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나는 지지합니다. 휴대폰, 컴퓨터 등 내 일상에서 ‘S’로 시작하는 제품 브랜드를 지우고 있습니다. 물론, 개념 갖춘 시민단체를 선택하는 센스도!
“그 끝도 한도 없는 부자들의 탐욕을 방치하면 결국 이 사회는 망할 것이다. 그들의 탐욕을 막아야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일반 대중인 우리들이다. 그런 경제 범죄를 저지른 기업들의 상품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야 하고, 그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여러분들은 시민단체로 모여들어야 한다.”(p.396)
※ 아울러, 『허수아비춤』과 함께 접하면 좋은 영화와 책을 추천합니다. 우선, 영화 <부당거래>. 『허수아비춤』에서 벌어지는 작태 일부와 함께 권력들이 어떻게 카르텔을 형성하는지도 스크린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책과 스크린이 흥미롭게 얽힙니다.
이어, 『자본주의』(홍기빈 지음|책세상 펴냄). 『허수아비춤』이 드러내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사회)기계로서, 생산-화폐-권력의 관계에서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허수아비춤』에 나온 구조가 어떻게 인간을 배제하고 기계로서 작동하는지, 생산-화폐-권력이 만들어놓은 감옥에서 인간을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도움이 될 겁니다.
조정래 선생이 독자 질문에 답하다
쓰는 동안 우울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요원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에서 발견되는 의문은 반드시 소설 속에 답이 있습니다. 지금 질문도 답이 나와 있습니다. 세계 모든 정권은 돈과 결탁돼 있어요.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어요. 우리는 더 썩었습니다. 증류수에서는 고기가 못 삽니다. 우리가 석가모니나 예수가 아닌 한 더러울 수 있어요. 그걸 최소화하는데 우리 삶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전주에서 왔습니다. 『태백산맥』을 원작으로 한 영화(<태백산맥>)가 많이 달라서 보는 입장에서 화도 났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셨으면, 선생님 작품이 영상화 된다면 시나리오 작업할 생각도 있으신지요.
“<태백산맥>은 임권택 감독님이 가? 고생하셨습니다. 시나리오가 두 권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영화의) 수난을 알려줍니다. 그 분의 고뇌를 함께 짊어지면서 임 감독님을 계속 옹호했어요. 안성기 씨는 시사회 때 코가 땅에 닿도록 사과하더라고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춘향전』처럼 계속 영화로 만들면 된다고. (박수) 『아리랑』을 드라마 계약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기회가 되면 광주(민주화 항쟁)에 대한 글을 쓸 의향도 있으신지요.
“나는 컴퓨터를 안 씁니다. 컴퓨터가 속도감은 좋으나 작품 밀도감은 떨어져요. 밀도감이 떨어지면 왜 쓰나. 소설 쓰고 나서 제일 짜증나는 사람이 (다음에) 뭐 쓸 거냐고 묻는 사람이에요. (웃음) 겁나게 피곤하고, 대하장편 소설들을 쓰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졌는데, 격려?기대인 것을 알면서도 포기를 선언했어요. (광주는) 후배들이 쓰고 쓸 의미가 있고, 써야 합니다. 그런데, 10년이 다 흘러가는데 지원자가 없어요.”
지금 젊은이나 청소년의 역사의식이 과거에 비해 덜 한 것 같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이 없었으면 인류 문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물론 교육을 한다고 모든 사람이 깨닫는 건 아니죠. 학생들이 싫어하는 과목을 강압적으로 교육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은 지금, 전국민의 영어교육화로 난리가 났어요. 최근 한 설문을 보니, 중고교생의 70%가 영어교육이 싫다고 나왔어요.
교육은 꼭 필요하되, 자율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영어하고 싶어 환장한 아이들만 영어공부를 하게 만들고, 나머지는 무식함만 면하게 하면 됩니다. 역사교육은 시켜야 해요. 그래야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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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 통일로 가려는 커다란 그림을 짠 게 지난 정권이었죠. 그 때 얼마나 대북관계를 잘 관리했는지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kimluke님이 지칭하는 '좌파정권', 그거 뜻이나 알고 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마르크스의 마, 자도 모르고 마오주의의 마, 자도 모르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마, 자도 모르는 거 같습니다. 민주당이나 열우당 모두 좌파였던 적이 한번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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