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소설 집필하느라 5년 동안 단 한 번도 퇴근한 적 없다”
소설가 은희경이 5년 만에 신작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를 펴냈다. 한국에서 작가라는 기득권층으로 지내면서, 스스로 경직되는 것이 두려워 미국으로 갔다는 은희경 작가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래도록 눈물을 쏟았다.
글ㆍ사진 김수영
201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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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희경이 5년 만에 신작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를 펴냈다. 은희경은 『새의 선물』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독을 넣은 예방주사같은 소설이었다면, 『소년을 위로해줘』는 근육이완제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열일곱 평범한 소년 연우가, 힙합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성장소설이다. 경직된 가치관, 상투성에서 벗어난 유연한 삶의 모습을 다루고자 했다. 이에 맞추어 작가 본인이 먼저 유연해지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치밀한 구성, 완벽한 문장 등 전격 소설에 대한 강박이 많았어요. 이 소설에서는 구성이나 문장이 나를 제약하지 않도록, 자유롭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유연해질 수 있을까 싶어 많은 부분을 이야기 흐름에 맡겼어요.”

한국에서 작가라는 기득권층으로 지내면서, 스스로 경직되는 것이 두려워 미국으로 갔다는 은희경 작가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래도록 눈물을 쏟았다. “지금까지 의무적으로, 나를 존재증명하기 위해 겪어낸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은 작가로서의 나를 포함해 나의 많은 것들과 결별이었어요.”

“결국 나도 보수적이고 기성화 된 기득권을 휘둘렀던 어른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에 그녀는 이렇게 느낀 것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 이 작품 집필에 착수했다. 문제의식만 가지고 어떻게 풀어낼지 막막한 순간에 실마리를 제시해 준 것이 힙합 가수 키비의 노래 「소년을 위로해줘」였다.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에 난 또 놀라.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 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 우리는 진짜보다 더 강한 척해야 하므로” - 「소년을 위로해줘」 가사

“노래를 듣자, 이 세계를 생각하며 쓰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이 음악은 헤드폰으로 들어야 해요. 제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음악은 실내에서 편안하게 듣는 음악이었는데, 헤드폰으로 힙합을 듣자 1대 1로 나에게 말을 걸더라고요.” 이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소년의 불안, 힙합이 가지고 있는 마이너 정서가 소설의 길을 열어주었다.

“힙합이 대중음악 속에서도 마이너의 세계이고, 일종의 혁명성을 갖고 있잖아요. 사회 속에서의 혁명이 아니라, 못나고 평범한 자기 세계 속에서 혁명을 발견하는 소년의 이야기에요. 기존 성장 소설에서처럼, 노력해서 자기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소년이 ‘나는 나다’ ‘나인 채로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어요.”

소년이 가진 서툴고 불안한 정서, 경직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힙합이 갖고 있는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다. “경직된 17살을 보낸 제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닮지 않은 이야기에요. 하지만 정서는 지금의 저와 같다고 생각해요. 이 소년이 아이, 고등학생이라는 사회적인 신분을 떠나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은희경은 “우리 모두가 낯선 우주를 떠도는 고독한 소년”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1대 1로 대응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위로받아야 할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세상에 숨어 있고 싶고, 튀지 않는 중간에 머물고 싶어 하는 소년 연우가 내면의 혁명을 이루고 세상으로 나갈 때 지닌 무기는 두 가지다. 힙합과 달리기.

“저도 이 소설을 쓰면서 많이 달렸어요. 본질적인 나 자신과의 싸움을 상투적이지 않게 실감하고 싶어서요. 저도 힘이 필요할 때마다 힙합을 듣고, 달렸어요. 하프 마라톤에 나가서 3등을 한 적도 있어요.(웃음) 저는 이제 시속 10킬로입니다. 달리고 나면, 이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게 됐어요.” 자신의 좌표로 세상을 살아가는 소년과 정서적으로 동화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은희경은 작가의 말에, ‘사랑이 식는 힘’으로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책이 출간되는 순간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작가의 말’을 쓰는 마지막 순간이 되자 마음이 싸늘히 식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야 할 말이 떠올랐어요.” 거기서 한 수 배웠다고 은희경은 덧붙였다.

“세상은 이렇게 식는 힘으로 사는구나. 후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냉정한 마음이 든 것 같아요.” 소설을 집필한 5년 동안 “단 한번도 퇴근한 적이 없었다”고 심정을 밝힐 만큼, 공을 들여 쓴 작품이다.

“이제 (소년을) 키워놨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내겠지 싶다”고 출간 소감을 밝힌 작가는 다음번에 지독한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 소설 속에서 다 풀어내지 못한 정서를 성인버전으로 써볼 계획이다.


#은희경 #소년 #위로 #집필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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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8509

2013.02.06

저도 그렇게 열정을 기울여 뭔가를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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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k1226

2012.06.05

이대로도 괜찮다..! 살다보면 정말 이 말은 까마득히 잊게되죠ㅠㅜ 소설을 통해 다시 충전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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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rtex42

2012.03.12

세상을 식는 힘으로 산다, 말했던 작가의 말.
결국 소설은 과정과 선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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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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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은희경은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희경 소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것과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뒤에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다. 은희경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서사 진행 과정중 독자들 옆구리를 치듯 불쑥 생에 대한 단상을 날리는 데 있다. 그녀의 소설을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희경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동창생 네 친구의 얽히고 설킨 25년 여 인생을 추적하면서 '마이너리그'란 상징어로 한국사회의 '비주류',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해당될 수밖에 없는 '2류인생'의 흔들리는 역정을 경쾌한 터치로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갖가지 허위의식, 즉 패거리주의 학벌주의 지역연고주의 남성우월주의 등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마이너 인생을 애증으로 포옹한다. 작가는 권두의 '작가의 말'에서 "내게 주어진 여성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한때 나로 하여금 남성성에 대한 신랄함을 갖게 했다. 이제 나를 세상의 남성과 화해하게 만든 것은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불완전한 도중(道中)에 있다"라고 말한다. 저서로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비밀과 거짓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태연한 인생』, 『소년을 위로해줘』, 『빛의 과거』가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