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길을 걷는 여성 음악인들의 ‘꿈’ 박선주 & 장윤주
2006년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에 시상자로 나섰다가 “내년엔 이 상을 꼭 받고 싶다”던 박선주는 으로 바로 다음해에 ‘올해의 여자 가수’와 ‘올해의 팝 앨범’을 수상한다. 모든 곡의 작사, 작곡을 도맡은 싱어송라이터 박선주는 (2007)에도 음악인으로서의 욕심과 자신감을 담아낸다.
201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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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보통’이어서일까. 박선주의 새 앨범에 관한 기사와 인터뷰는 대개 노래 선생님 박선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가 가르친 스타들과의 뒷얘기들을 들려주다 마무리되곤 한다. 그런데 만약 무려 11년 만에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감행한
때론 가족이 스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아이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이나 가족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좋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간증’하는 경우가 있다. 맞는 말처럼 들린다. 모호하게 범주화된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좋은 대중음악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럴 듯하다. 그런데 상상력과 표현력을 제한하거나 잘못된 판단의 근거가 되어버리기도 하지 않았는가. 외부에 설정해놓은 누군가에게 맞추려는 순간 생각과 음악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이른바 ‘프로들’의 문제였다. 물론 박선주는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이 분명한 정공법을 택했고, 그 자신부터가 가요계에서 여러모로 귀한 존재이다. 하지만 노련한 선생님의 교본과 같은
같은 길을 가더라도 눈을 감고 걸음과 뜨고 걸음은 다르다. 음악이든 시든 창작의 행위는 그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가며 자신의 발자국과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며 공감하고, 그 이상을 보게 될 때 감동한다. 나란히 누워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다른 꿈을 꾸는 것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분명
욕심쟁이에서 요술쟁이로, 거울에 비친 모습은 뮤지션
조금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 먼저 이름을 얻었다는 이유로 진지한 태도와 가능성을 보여준 레코드를 외면할 수는 없다. 화려한 덧칠과 계산된 전략을 세련됨과 영리함으로 오해하는 (뮤직)패션 감각 빵점짜리들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둔다. 과한 욕심 대신 소박한 비워냄으로 진짜 세련됨과 따스함에 다가섰다. 그 반대였다면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장윤주를 두고 하는 얘기다.
바야흐로 연예인 또는 예능인의 시대다. 아니, 단어의 본 의미를 생각하면 유명인celebrity의 시대라 해야겠다. 사람들은 그들을 아는 사람으로 느끼다 못해 꿈에까지 불러낸다. 사람은 명예를 위해서라면 단두대도 마다치 않는다고 스페인의 어느 학자가 말했을 정도? 이름을 알리고 남기려는 건 본능적인 욕망이다. 음악인도 배역 하나씩은 맡아야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하느라 바쁘기도 하다. 신인들은 성공한 후에 예술을 하라는, 성공한 적 없는 요구에 시달리거나 스스로 합리화해야 한다. 아프리카에 가면 출근해서 옷을 벗고 알몸을 드러낸 채 부족 생활을 재연하다가 태연스럽게 옷을 입고 퇴근하며 생계를 잇는 원주민들도 있지 않다던가. 그런데 키 큰 아가씨가 음악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누구는 괜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고, 누구는 예전부터 그를 알아왔던 듯한 착각에 빠질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음악인으로 인정받은 경우도 있고, 자기 이름의 크기만큼 웃음거리가 된 경우도 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모두가 안다. 그래서 상대 평가와 절대 평가의 예리한 날 위를 오가는 비평에서 무슨 장르를 하고 어디 출신인가에 따라 가산점을 주거나 반대로 평가절하하고 싶은 심리, 즉 선입견에 의한 역차별은 위험하다. 자기 귀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니까. 이 사이를 비집고 장윤주가 무대에 오른다. 패션과 음악을 연결 짓는 기획과 만났고, 또 스스로 애착을 가지고 공을 들였다. 음악 작업에는 다양한 역할이 있기에 작사와 작곡을 해야 아티스트가 되는 건 아닌지라 재능이 없으면 남에게 맡기는 편이 낫지만, 장윤주는 욕심을 부린다. 여가 시간에 벽지 무늬를 보며 매직아이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유명인에 무심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장윤주, 꾹꾹 눌러 담지 않음으로 채우다
솔직함으로 자연스러움을 만든 「옥탑방」은 귀엽고, 연주자들의 손길이 보태진「April」과 「파리에 부친 편지」는 일상을 둘러보는 시선과 산뜻한 연주가 서로에게 스며들며 소박한 풍경을 그려낸다. 편곡과 연주가 음악을 어떻게 살찌우는지 보여주는 트랙들이다. 괜한 기대를 품고 누군가의 창문을 바라본 적 없는 이 있는가. “마음의 소리”를 따라 “내 맘에 남겨진 그대”를 노래하는 「Dream」은 꿈과 사랑에 대한 중의적 표현이다. 특히 다시 열한 달을 기다려야 돌아올 이맘때를 적적하게 스케치한 「11월」은 장윤주가 좋은 숨소리의 소유자임을 전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Fly Away」에 그려지듯 도시 생활과 개인주의의 결과인 ‘외로운 자유’가 밑바탕에 흐른다. 이사라도 하게 되면 버려야 할 물건들로 가득한 방과 시시한 화제로 지샜던 시시했던 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렇게 거울에 자신의 음악 취향과 속내를 차분히 비추고 있다. 욕심을 버릴 정도로 현명한 욕심쟁이였던 것이다.
격을 부여하기도 하는 연주곡들이 한편으론 장식처럼 보이고, 너무 미끄러운 「Love Song」에 드러나듯 일상 너머 앞에서 주춤거리다 사랑 이야기로 환원되는 건 아쉽다. 하지만 멋진 글이나 노래를 위해 과거를 굳이 남루하게 치장할 필요는 없다. 이론이나 공식 따위에 함몰되어 재미도 감동도 못주는 음악들과 거리를 두면서 너무 공을 들이다 불필요한 잔선들만 많아진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기대는 낭설이 아니었다. 목적을 위한 가공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 산들바람처럼 숨쉬는 이 앨범은 잘 성장하도록 지켜봐줄 만한 신인 음악인 장윤주의 등장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스스로 만든 거울 속에 전혀 새로운 자신을 창조해내는 요술쟁이가 될지도 모른다. 수동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보다는 낫겠지만 도전적인 젊은이의 성공 신화라는 허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갈림길을 만나지 못해 가던 길로만 가야 하는 “아직도 문밖에서 서성이는 그대”들에게 힘을 주길 바란다.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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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나도원
음악 웹진 《100 beat》 편집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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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