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죽은 척 하는 것은, 곰이 배가 부르지 않은 이상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 때론 배가 불러도, 당신을 장난감처럼 툭툭 치며 장난칠 수도 있다. 그 순간 뼈는 부러지고, 내장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다반사다. 그러니 나라면, 도망치겠다. 곰이 엄청나게 빠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무에 오르기보다는, 죽은 척 하기보다는 ‘꼴이 좀 우스워도’ 무조건 도망칠 것이다. 그러다 산에서 비명횡사한다 해도.
물론 당신이 세상에서 만나는 것은 대체로, 회색곰보다는 시스템이다. 당신이 아무리 덤비고, 싸움을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는 벽, 같은 사회의 시스템. 말로는 개인을,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가진 자들의 이권만을 위해 돌아가는 시스템. 그게 화가 나서 목숨을 걸 정도로 싸운다 해도, 대개 시스템에는 별다른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 무력한 개인의 힘은 그 정도다. 2미터가 넘는 회색곰과 싸우는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힘들다.
게다가 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제대로 만져지지도 않는다.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거대한 구렁텅이에 떨어졌음을 깨닫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때 당신이 택할 방법은?
90년대 초반까지의 무라카미 하루키였다면, 춤을 추라고 말했을 것이다. 머리를 비우고, 몸의 리듬에 모든 것을 맡기고 경쾌하게 춤을 추라고. 하지만 하루키조차도 지금은, 찾아 나서라고 말한다. 도망쳐서, 살아남아서, 그게 무엇인지 들여다보라고.
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국가란 국민의 생활을 지키기 위한 기관이 아니래요…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 곳까지 도망치는 거. 그거밖에 없잖아요. 국가나 권력을 적으로 삼고 있다면, 가능한 것은 도망치는 것뿐.
지금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하나인 이사카 코타로도 그 방법을 권한다. ‘도망쳐. 꼴이 좀 우스워도 괜찮으니까, 좌우간 도망쳐서 살아.’ 해일이 밀어닥쳤던 센다이에 살며, 센다이를 배경으로 수많은 소설을 써 왔던 이사카는 지금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일단 살고, 그 다음에 뭔가를 해 보자고. 아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 도망치자고.
이사카 코타로의 세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경쾌하다. 하지만 절박함의 정도는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적인 설정과 캐릭터를 휙휙 소설 속에 던져 넣는 이사카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조건은 정말로 처절하고, 숨 막힌다. ‘깜짝 놀랄 만큼 하늘이 파랄 때면, 이 땅이 쭈욱 이어진 어딘가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든가. 사람이 죽고.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이 다 거짓말 같아요.’
이 거짓말 같은 세상에서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록커』의 이방인이 그렇듯이 때로는 복수를 유일한 목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경쾌해져야 한다. 이사카는 언제나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생존을 위한 현란한 풋워크를 보여준다.
『골든 슬럼버』는 케네디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쿀본을 무대로 한 암살 음모론을 펼친다. 센다이에서 퍼레이드를 하던 중 수상이 암살당했다. 용의자로 떠오른 사람은, 택배회사 직원인 아오야기 마사하루.
한때 폭죽을 만드는 공장에서 폭약 기술을 익혔고, 암살 도구인 RC헬기를 조종하는 모습이 목격된 적이 있다. 파렴치하게 치한 혐의로 체포된 적도 있었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음모다. 그럴듯한, 대중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범인을 제시하고 조작된 증거로 몰아붙이는 ?. 이렇듯 모든 사람이 적인 상황에서, 어떤 시스템도 그를 돕지 않는 상황에서 아오야기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골든 슬럼버』는 사건의 시작, 사건의 시청자, 사건의 20년 후를 각각 들려준 후 4부에 가서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즉 매스미디어나 소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상 암살사건의 전말을 먼저 들려준 후에, 아오야기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케네디 암살사건의 음모론도 그렇다. 케네디가 달라스에서 죽은 상황도, 오스왈드가 범인이라는 것도, 그가 재판을 받기 전에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도 그럴까? 올리버 스톤은
정작 범인으로 지목된 아오야기 마사하루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대학동창을 만나, 수상의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대로 뒤편 골목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이상한 소리를 하며 도망치라고 한다. 폭발음이 들려 나가보니 경찰이 총을 쏘려고 한다. 도망치다가 TV를 보니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CCTV에 찍힌 모습과 과거의 사진들이 속속 공개된다. 기껏해야 밭다리후리기 정도나 잘 할 수 있는 아오야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야. 이제 남은 무기는 사람을 믿는 것뿐이야.’
아오야기는 성실하고 착한 남자다. 동거하던 연인에게 차인 이유도 너무 성실하고 착해서였다. 별다른 꿈도 없이,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좀 하거나 행실이 좋아서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는 정도의 삶. 하지만 그런 정도의 착함과 성실함으로 성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아오야기의 힘이다.
자신이 지켜왔던 것, 즉 습관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 어떤 상황에 몰려도, 착함과 성실함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믿어야 할 사람들을 믿는 것. 부모도, 대학 시절의 친구들도, 택배회사의 선배도, 우연히 만난 칼잡이도 그를 믿는다. 믿는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자신에게 남자보는 눈이, 아니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지만, 자신과 사귄 아오야기가 무엇을 하며 무엇을 하지 않는지 정도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텔레비전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저 녀석들보다는 더 잘 안다고 믿었다.
정부를 신뢰할 수는 없다. ‘정치가들은 핑계를 만들어내는 데만큼은 천재니까. 무슨 일이든, 유대인 학살이든 전쟁이든 이대로는 다 위험하다 하고 선동하면 뭐든 다 가능해.’
매스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매스컴은 결코 무리한 짓은 안 해요. 분위기에 따라 확 지르기도 하지만, 점프는 언제나 안전지대 안에서만. 떠들어대는 건 항상, 떠들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선 뒤에.’ 그러니까 ‘잘난 놈들이 만든 거대한 부조리에 쫓기게 되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도망치는 것뿐’이다.
아오야기도 습관과 신뢰만을 무기로, 도망친다. 사람들이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얻은 정보만으로 아오야기를 욕하지만, 아오야기는 안다. 그 사람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믿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은 아오야기를 만났고, 함께 생활을 했고, 서로 위로해주고 다독여주는 시간을 지내왔기 때문에 서로를 믿는 것이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시스템의 상층으로 잠입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러기 싫다면, 도망치는 것이다. 대신 꼴이 좀 우스워지는 것 정도는 감수하고.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ths0901
2012.09.18
prognose
2011.12.22
앙ㅋ
2011.11.13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