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대책]“인간의 모든 행동은 예측 가능할까?” - 소셜이냐 소설이냐? 『사회적 원자』 VS 『버스트』
한 권의 책을 내용 중심으로 소개하던 일반적인 서평에서 벗어나 과학의 역사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거나 과학을 대중화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책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이론 대 현실(혹은 상상),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 분석하는 <책 대 책>. 그 첫 번째 대담이 APCTP(아태이론물리센터)와 사이언스북스, 채널예스 공동 기획·주관으로 지난 9월 20일(화) 저녁 7시 문화공간 숨도에서 열렸다.
201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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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 책> 첫 대담은 최근 과학계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전반에서 뜨거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회물리학과 복잡계 과학을 중점적으로 파헤쳐 보고자, 특히 분야를 넘어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회적 원자』와 『버스트』 두 권의 도서를 선정, 북 배틀(Book Battle)을 진행하였다. 부의 불평등 문제에서부터 집단 행동의 수수께끼, 역사 변동까지 인간 사회의 문제를 사회물리학의 최신 이론을 통해 설명한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는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의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자신의 가계를 모티브로 허구와 역사와 과학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네트워크 과학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알버트 바라바시의 『버스트』 는 삼성경제연구소 윤영수 연구원이 각각 대변자를 맡아, 경원대학교 물리학과의 국형태 교수의 진행 아래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자인 국형태 교수의 두 대담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 후, 본격적인 대담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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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형태(사회자): 먼저 오늘 두 분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두 책의 소개를 한번 듣고 싶은데요. 책 제목에는 언제나 책 내용을 한 단어에 담아내려는 그런 의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원자, 그리고 버스트.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소개를 각각 하시고,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정리해 주시고 시작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김범준(사회적 원자): 『사회적 원자』에서 저자의 주장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을 원자처럼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리학에서 말하는 보통의 원자는 아닙니다. 즉 사람을 물질의 원자처럼 보되, 물질적인 속성에 ?해서 다른 다양한 사회적인 속성이 있다는 거지요. 이것이 사회 현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화한 구성요소로 취급함으로써 잃어버리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원자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내용도 많다는 겁니다. 제목만 이해하면 책을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아주 함축적인 제목이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주 좋았습니다.
윤영수(버스트): 『버스트』 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요. 오늘 제 일정이 그야말로 살인적이었습니다. 쉴 시간이 거의 없는, 전자메일 체크할 짬 하나도 없는 일정이었거든요. 어제도 비슷했고요. 그러면 한 달 내내 그랬냐? 아닙니다. 온종일 뉴스를 본 날도, 이메일 누가 오나 하고 기다린 적도 있고, 그냥 텅 빈 날이 더 많았습니다. 바라바시가 이야기하는 버스트는 이처럼 시간적 의미로 보았을 때 특정 시점에 무엇인가가 폭발하고 몰리는 걸 뜻합니다. 그가 이런 시간의 폭발성을 이야기한 이유는 ‘과연 인간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를 꺼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이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서 다양한 이론적 사례와 실증적 사례를 들었고, 결국 결론은 ‘예측 가능하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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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형태(사회자): 김범준 선생님이 서평을 쓰실 때 작가의 시각이 새롭다, 낯설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사람을 원자로 보는 것. 사람을 원자로 보니까 낯선가요? 그런데도 왜 쓸모가 있는 건가요?
김범준(사회적 원자): 제가 사회적 원자를 낯선 시점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일단 낯설잖아요. 통계물리학을 하는 저에게는 낯설지는 않지만. 많은 분들이 낯설게 느끼실 수밖에 없거든요. 사람이 어떻게 원자겠어요. 우리의 자유 의지라든가 적응 능력이라든가 협동 능력을 죄다 무시하고, 사람을 원자로 보겠다. 일종의 선언이죠.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리라는 맥락에서 낯설다고 표현했구요. 그럼에도 이게 앞으로 과학 발전에서 굉장히 유용한 시점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한 가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사회물리학자들이 사람을 사회적 원자로 보겠다는 관점으로 대상하는 사회 현상은 세상의 모든 사회 현상이 아니에요. 그런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 현상이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게 처음 생각보다 굉장히, 기대 이상으로 광범위하다. 적용 여지가 넓다. 그런 면에서 기여를 제가 볼 때는 이미 했구요. 앞으로도 중요한 기여를 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국형태(사회자): 지금까지 말씀을 들으니 사회적 원자에서는 저자가 인간 사회, 집단으로써 벌이는 사회 현상에 관심을 두는 것 같고, 버스트에서는 개인행동에 주된 관심을 두는 것 같습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거죠? 집단으로서의 패턴과 개인으로서 인간 행동의 예측 가능성. 이런 것들이 다른 속성인가요? 아니면 같은 범주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하나요?
윤영수(버스트): 제가 읽은 바로는, 사회적 원자에서 이야기하는 원자는 적응하는 원자입니다. 버스트에서는 인간 행동이 예측 가능한 이유가 인간이 우선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선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결국은 내가 지성을 가지고 적응한다는 의미예요. 적응은 곧 자신의 행동 위치를 스스로 바꾼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적응하는 원자, 적응이라는 의미에서는 근본적인 속성 자체는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형태(사회자): (김범준을 향해)그러면 어떤가요. 사회적 원자들이 보이는 집단적인 패턴. 그것이 윤영수 연구원님이 지금 이야기하신 인간 개인으로서 벌이는 예측성, 비예측성하고 관련이 보이시나요.
김범준(사회적 원자): 『버스트』 를 보면 굉장히 다양한 맥락에서 예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게 굉장히 혼재되어서 혼동되게 사용합니다. 통계 물리학을 연구하고, 했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강남 어디 사는 갑돌이가 지금 어디 있느냐. 그거는 복잡계 과학에서 추구할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측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구요. 사회적 원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거시적인 패턴과 그 예측에는 의미가 있지만, 기체 분자 몇 번째가 어디 있는지를 예측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듯이 특정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올바른 방향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형태(사회자): 적어도 사회적 원자의 저자가 보는 시각에서는 인간을 원자처럼 보는 것이고. 그 사람의 다양한, 다른 사람하고 충분히 구별되는 개성 같은 것은 무시하는 거죠.
김범준(사회적 원자): 좀 조심을 해야 될 것이, 개성을 ‘무시’한다가 아니고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거예요. 사회 전체의 패턴으로 볼 때는, 서로 다른 개성들이 정반대의 방향에서 상쇄됩니다. 거시적인 표현을 개인의 구체적인 개성을 포함해서 우리가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국형태(사회자): 예측 이야기는 버스트에서 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요? (윤영수 연구원님을 향해) 저자의 주장이 ‘인간 행동은 결국 예측 가능하다.’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예측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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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수(버스트): 강연장이었다면 김범준 교수님이랑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여기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버스트의 대변인으로써 나온 만큼, 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타당할 것 같고 배틀답게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셨던 그 기체 분자는 지능이 없거든요. 인지가 없어요. 즉 사회적 원자가 아닙니다. 애당초 예측도 아닙니다. 『버스트』 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지를 갖추고 적응하는 에이전트를 대상으로, 에이전트로 구성된 시스템 상에서 에이전트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입니다.
바라바시는 인간 행동을 시간적으로 보아 행동 패턴이 폭발성을 지니는데, 예측 가능성은 정규 분포를 따른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행동 자체는 멱함수 분포를 가지고 이는 굉장히 지극히 일상적인 일을 반복하다가 어떤 특정 시점에 특정한, 굉장히 특이한 점프가 일어난다는 뜻이거든요. 왜 이러냐 하면 인간의 자원이나 역량이 굉장히 유한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을 두고 무얼 할까를 고민해 우선순위를 매겨야 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인간 행동은 예측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국형태(사회자): 바라바시가 이야기하는 예측도 정확하게 딱 꼬집어서 그 사람이 언제 어디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을 확률이 얼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예측이죠.
김범준(사회적 원자): 예측이라고 할 때는 무엇을 예측할지, 그 주어를 잘 봐야 될 것 같아요. 복잡계 이론이 아무런 예측도 못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내일 주식이 오를까 떨어질까 저는 몰라요.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보통 우리나라는 하루 주가가 1%정도 변하거든요. 일 년 정도 후면 플러스 마이너스를 몇% 정도 변할까 대충은 알 수 있어요. 올라갈지 내려갈지는 몰라요. 그런데 몇% 폭 안에 들어갈지는 알 수 있어요. 그것도 예측이라면 예측인 거죠. 그런 예측이 돈을 벌게 해 주지는 못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전 재산을 탕진해서 주식을 사야 될지 안사도 될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될 수 있죠. 의미 있는 예측은 있습니다.
그런데 바라바시의 이야기 중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다음 주 수요일 몇시에 어디 있을지를 90%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제가 한번 볼까요. 저는 내일 새벽 5시에 분.명.히. 집에 있습니다. 이게 예측인가요? 바라바시가 예측할 ? 있다는 90%의 대부분은 제가 보기에는 이런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더 재미있게 하고 무언가 이해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한 나머지 10%이지 내일 아침 새벽 5시에 집에 있다는 것을 예측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정도면 거의 배틀 같은데요.
윤영수(버스트): 저도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예측 가능성을 100% 이렇게 적용했다는 이야기를 안 썼어요. 실마리, 조금의 실마리. 우선순위 메커니즘 아이디어 자체는 저는 굉장히 높이 살 만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떤 조금의 실마리 정도지 100% 예측 가능하다는 것도 아니고 실제적으로 사회 예측 가능성 이슈에 대한 완전히 깨끗한 해답을 제공해 줬다고는 저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형태(사회자): 좀 더 이야기를 하다가 질문을 받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충분히 흐른 것 같아서, 지금부터 잠시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아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이야기들… 나왔지 않았던 이야기도 해 주시고요. (질문자가 나옴)예, 말씀하시죠.
질문자: 복잡계 관련해서 책을 한 두세 권정도 읽었는데요. 제가 공부하다가 복잡계… 복잡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예측을 끝까지 추구하지만 할 수 없는 것을 복잡계라고 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미분처럼 끝없이 쪼개고 무언가 하다 보면 결국에는, 0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지만 미분을 끝없이 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겠지라는 무한한 반복가능성을 보고 언젠가는 정복해야 될 대상으로 보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범준(사회적 원자): 복잡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도 복잡성이라는 것이 정량적으로 이거라고 정의를 한 사람은 없고요. 누구나 동의하는 복잡성의 공통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2, 30년 전에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그 드러나는 현상이 아주 복잡한 것. 그게 관심이었다면, 지금은 복잡해 보이지만 그나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것. 그런 것에 주목하는 것 같아요.
윤영수(버스트): 조금 부연해서 설명을 드리면요. 실제적인 맥락은 같은 맥락이구요. 과거 카오스 혼돈 이런 개념들이 처음은 김범준 교수님 말씀대로 굉장히 간단한 변수 몇 개가 만들어 내는 거시적인 패턴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더라 라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스템이 굉장히 복잡한데 여기에 패턴 자체가 존재하더라. 이 패턴 자체가 뭔가 일정한데 그렇다면 그것의 마이크로 메커니즘이 뭔가. 이것을 찾는 게 최근의 핫 이슈입니다.
국형태(사회자): 여기서요. 사실 이런 답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들을 최근에는 사회물리학이라고 하잖아요? “사회물리학이란 무엇인가.” 그런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물론 사회물리학이니까 사회를 연구하는 물리학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사회가 이제 물리학의 대상이라면, 그동안 자연이 물리학의 대상이었다면, 김범준 교수님이 말씀해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러면 물리학이 그거를 해야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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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사회적 원자): 저는 물리학이라는 게 연구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고 연구 방법으로써 정의되는 학문이 아닌가란 생각을 많이 합니다. ‘경제학이란 경제학자가 하는 게 경제학이다.’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물리학도 그렇습니다. 사회물리학자가 사회 현상을 물리학적인 개념, 방법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 특히 통계물리학을 하시는 분들이 관심이 많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통계물리학의 대상은 굉장히 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시스템이거든요. 많은 입자를 많은 사람. 으로 바꾸면 통계물리학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사용했던 연구 방법 그대로에요. 그런 면에서 사회물꺸학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통계물리학을 배경으로 갖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물리학의 대상은 될 수 있습니다.
국형태(사회자): 그렇다면 사회과학에서는 왜 이것을 이제까지도 만족스럽게 해결을 못했을까요? 왜 사회물리학이란 분야에서 이 문제를 하겠다고 나서는 걸까요? 경제학 같은 사회과학이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나요?
윤영수(버스트): 고전 경제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에 물리학에서 나왔습니다. 고전 물리학에서 아이디어를 따 와서 경제 사건을 정교하게 계산해 내고, 예측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사회 전체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이것이 안 맞더라 라는 건데요. 고전 경제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완벽한 이성을 가진 존재라고 가정합니다. 문제는 세상이 사실 그렇게 안 돌아가더라는 거죠. 사실은 경제학자들도 이런 비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 시스템, 경제 시스템, 글로벌 트레이딩 시스템 등등 사회 행동은 컨트롤 시스템이고, 거기서 예측을 해서 정책과 기업의 전략이 들어가는 것이거든요. 사실은 모르는 바가 아니고, 깨지지 않은 게 아니고, 알고 있는데 컨트롤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간에 예측을 해야 하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왜 고전 경제학이 여러 고전적인 관점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가. 에 대한 해답은… 사실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국형태(사회자): 『사회적 원자』에서 보면 어림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원자 자체가 처음 이야기하셨듯이 사람을 원자로 단순화하는, 그런 시각인 듯합니다. 사회물리학에서는 개인에 어느 수준까지 어림을 적용하는지. 처음 대상에서 어림하고 나면 보통 무엇이 어느 정도 남는지. 그런 것을 좀 부탁드립니다.
김범준(사회적 원자): 어림이라는 말을 예전에는 근사라고 많이 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설명하려고 하는 이론 혹은 모형을 만들 때 모든 것을 다 넣으면 너무 복잡해서 계산할 수가 없으니까 가능한 한 간단한 모델을 만들려고 하거든요. 어림은 필요해요. 어림을 안 하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사회 현상을 기술할 때 사람을 어떻게 근사 혹은 어떻게 어림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라는 건 사회의 어떤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인가에 따라 다를 듯합니다. 고전 경제학에서는 사람이 무한히 똑똑하다고 가정하잖아요. 그 어림이 타당한 경제 현상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거기에서까지 그 어림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경제 현상 혹은 사회 현상 중에 일정 부분은 그 어림이 맞지 않는 영역이 있을 뿐이죠. 그러면 그 어림을 포기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상황에 따라 어림이 시스템마다 다를 것인데 고전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가정 그것만 가지고서 아무거나 다 설명하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윤영수(버스트): 김범준 교수님이 앞서 새벽 5시에 반드시 집에 있다는 식의 90%는 맞는 말이지만 나머지 10%가 문제가 된다고 하셨는데 기업도 마찬가지거든요. 사실 의사결정자가 관심 있는 것은 어림이 아니고 어림 외적으로 굉장히 우리가 가지를 쳐 낸 것들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런 요소를 다 떼어 낸 상황에서 만들어 낸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거죠. (김범준 교수님을 향해) 사회물리학으로 넘어왔을 때 물리학 하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개인적으로는 조금 궁금합니다.
김범준(사회적 원자): 예. 지금 말씀하신 것하고 아까 우리 같이 이야기한 것하고 이어지는 게, 어떤 집단적인 거시 패턴의 이해가 기업체에서도 필요할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그게 비교의 기준이 되니까요. 그걸 기준으로 얼마큼 벗어나는지. 현실적으로는 그 부분이 기업이라든가 경제 현상에는 더 중요할 수는 있죠. 하지만 어떤 거시적인 패턴을 이해하는 자체는 당연히 선결되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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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형태(사회자): 이제 마무리에 들어가야 될 것 같은데. 종교도 이런 사회물리학으로 설명이 가능할까요?
김범준(사회적 원자): 종교에 대한 것은 요새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공개석상에서 어떤 입장은 안 말할 생각이고요. 제가 할 이야기는 이 책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확인하시며) 이 책에서는 종교를 사회성이란 걸로 설명하려고 애를 써요. 종교에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사실 종교일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특징짓는 어떤 지표만 있으면 돼요. 무엇이든 사람들을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 지표가 있으면 그 지표를 내세우는 집단이 성공적이라는 거예요. 신이 존재하냐 존재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종교가 지표의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윤영수(버스트): 저는 버스트에서 그다지 특별한 관점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종교의 히스토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것 같습니다. 상징성과 예측 가능성/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을 보이기 위해 예를 들고 있고 결국 이 책에서 종교는 히스토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어떤 부가적인 재미적인 수단이지, 종교 그 자체에 대한 의미는 작은 것 같습니다.
국형태(사회자): 그러면 마무리로서 지금까지 사회물리학의 여러 관점들하고 복잡계 과학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결국 이런 접근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더 낫게 해 줄 것인지. 인간 행동에 무엇을 더 개선해 줄지 그런 가능성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회물리학의 앞으로의 전망.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범준(사회적 원자): 사회물리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앞으로 이런 시점을 가지고 접근하는 연구 분야가 굉장히 넓어질 것입니다. 물론 이 연구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론과 개념을 이용해서 성공적으로 설명 가능한 영역들은 계속 넓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고요. 제가 오늘 처음에는 미시적인 예측보다는 거시적인 패턴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드렸었는데, 지금은 윤영수 연구원님의 말씀대로 패턴을 이해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패턴을 만드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가장 미시적인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거시적인 패턴을 설명하는 아주 작은, 미시적인, 그러니까 아주 약간의 이해를 갖고도 우리가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서도 사회물리학이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윤영수(버스트): 저는 복잡성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느끼기에도 가면 갈수록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세상이 복잡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극히 작은 부분밖에 모르거든요. 굉장히 복잡해진, 또 복잡한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지극히 일부분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저도 당연히 마찬가지이고요. 그렇지만 이 복잡한 세상에서 뭔가 패턴을, 마이크로 메커니즘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고 이 책이 기회가 되어서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지고 공부도 하고 같이 나아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국형태(사회자): 인간이나 사회, 또 복잡계.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살고 있는 것들이죠. 이런 것들에 대한 더 정량적인 연구가 최근에 새로 시작된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두 책을 통해 이 연구들, 사회물리학과 복잡성 과학의 일면을 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분야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늦은 시간까지 고맙습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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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이론서와 과학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사회적 원자』와 『버스트』 두 책의 저자 모두 기본적으로 분야가 같고 대담자 역시 같은 분야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들인 탓에, 처음에는 점잖은 분위기가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책이 ‘우선순위’와 ‘예측’을 말하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윤영수 연뢱?이 『버스트』 의 관점을 옹호하는 역을 자청하면서 서로를 공격하고 수비하는 장면이 적지 않게 나왔다. 치열한 논의가 끝나고 두 대담자가 도달한 결론은 복잡계 이론이 만물을 모두 포괄하려는 이론이 아니며 두 책이 서로가 중시하지 않는 부분을 조명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거시 패턴에 힘써 왔지만 미시 메커니즘에도 주목하고 싶다는 김범준 교수의 바람과 많은 이가 복잡계 과학에 더 뛰어들어 주기를 바라는 김범준 연구원의 요청을 끝으로, 거의 2시간 동안 열띠게 진행된 대담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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