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는 좌우가 없다 - 김제동
김제동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다. 웃음에는 좌우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염치를 알고, 부끄러움을 알며, 그에 대한 죄책감과 채무의식도 갖고 있다.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구보다 주장하는 이다.
글ㆍ사진 최을영
201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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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상실

김제동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한 시민이 지난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 때 김제동이 트위터상에서 투표 독려를 한 것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고발한 것이다. “김 씨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게시한 글은 단순한 투표 독려가 아니라 박 후보의 당선을 위한 능동적, 계획적 행위”라는 것이 고발의 주요 논지였다.1)

그런데 이 시민이 경찰에 김제동을 고발했다가 취하하고, 검찰에 다시 고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공안1부로 배정하고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대변인 김석재 총무부장은 “제가 듣기로는 경찰에도 같은 내용을 고발했다가 취하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랬다 해도 (다시 고발장이 들어오면) 혐의 내용에 따라 수사에 들어갈 수는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고발장이 접수됐는데, 말도 안 되는 주장이면 각하할 것이나, 일단 혐의 여부는 조사해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2) 또 김제동의 검찰 수사가 형평성에 맞지 않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고발도 없는데 나서서 조사하면 그런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고발장 접수도니 사건을 조사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반박하기도 했다.3)

검찰 수사 착수 이후 김제동은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시즌 3’의 홍보 영상 촬영을 위해 연 게릴라콘서트 자리에서 “여러분, 제가 누구를 찍었는지 제 얼굴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모르잖아요. 궁예도 아니고. (검찰이) 관심법을 씁니까”라고 비판했다. 또 “‘유명한 사람이 뭘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다 유명한 사람(이름이 있는 사람)이다. 각자가 다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며 “학교를 다니는 것, 정치를 하는 것, 제도를 만드는 것 모두 사람이 행복한 게 목적”이고 “사람이 만든 제도가 사람을 억압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4) 수사에 대한 심경을 묻는 질문에는 “얼마 전에는 버스기사께서 ‘괜찮으세요’라고 묻더라. 어려운 일 뭐가 있느냐. 별일 없이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맞기만 했지 싸운 적도 별로 없다. 처음으로 싸우는 상대가 너무 세서 너무 무섭다. 하지만 여러분이 있기에 겁이 안 난다”고 말했다.5)


트위터 상에서 투표를 독려한 것이 선거법 위반이고, 이를 검찰에서 수사한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황희석 변호사는 한마디로 “검찰 수사기관은 법률가 전문 집단인데 이 사안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검찰도 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라며 “검찰이 김제동 씨를 기소하게 되면 스스로 바보가 되는 것이다. 법정으로 가게 되면 무죄가 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6)

고발장이 들어왔으니 수사한다는 검찰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고 쳐도, 상식적으로 봤을 때 ‘투표합시다’라고 한 것을 ‘선거법 위반’으로 모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 더구나 소셜미디어이자 사적인 소통의 공간인 트위터를 통해 한 것이 아닌가? 선관위의 유명인 투표 독려 금지 지침만큼 황당하고 어이상실 할 일이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또 기소할지, 불기소처분으로 갈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노제 사회를 본 이후 계속된 ‘김제동 수난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감성을 울리는 말의 힘

김제동은 1974년 경북 영천에서 1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장사로 6남매를 먹여살려야 했다. 궁핍했지만 김제동은 “형편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술집 웨이터도 하고 도로공사 현장에서 막노동도 했지만 제가 특별히 고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들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고 그렇게 살지 않았나요?”7)

그는 잘 알다시피 이벤트 MC 출신이다. 1996년 모교인 계명전문대 행사 사회를 본 것이 인연이 되어서 이벤트 MC로 활동했고 대구*경북 지역을 주름잡던 이벤트 MC 방우정을 3년간 따라다니며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그래서 방우정을 제2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던 중 우연히 윤도현을 알게 되어 윤도현밴드 콘서트장에서 진행을 맡아왔다. 윤도현은 그 인연으로 김제동을 방송에 데뷔시키기도 했다. 2002년 8월부터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 사전 MC를 맡긴 것이다.

“도현이 형이 고집을 피워 저를 불렀던 거였어요. 그 누구도 저를 반기지 않더군요. ‘쟤 뭐야’ 하는 분위기였어요. 방송에 나가고 싶어서 안달 난 놈 정도로 보였던 거죠. 그래서 저를 원하지 않는데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대구로 내려왔어요.”8)

그런 그를 다시 끌어올린 것도 윤도현이었다. 윤도현은 김제동에게는 방송사에서 나왔다고 둘러대며 자신의 돈으로 출연료를 줘가면서까지 방송에 데뷔시켰고, 2002년 12월부터 <윤도현의 러브레터> 사전 MC와 ‘리플해주세요’ 코너를 진행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데뷔 8개월 만에 3개 지상파 방송사에서 6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인기비결은 무얼까? 방송사 PD들은 김제동의 인기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야인 생활을 많이 해서 내공이 대단하다. 누구든 상대방을 올렸다 놨다 할 수 있는 1대 1의 최고수다. 특히 어르신들과 대화할 때에도 자신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대화가 가능하다. 녹화할 때 노인분들부터 챙기는 인간미도 만점이다.”(MBC <까치가 울면> 김영진 PD)

“못생긴 것도 김제동의 무기다.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자신과 비교함으로써 위로를 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상대방과 관객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드는 최고의 기술이다.”(SBS 예능국 신정관 책임PD)

“자신을 낮추는 것이 김제동 개그의 특징이다. 강호동 같은 ‘강자’에게는 계속 눌리다가도 마지막에 ‘한방’ 날림으로써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적절한 표현을 구사하는 똑똑한 방송인이다. 친근한 외모가 시청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또 약간은 불쌍해 보이는 미소가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도 한다.”(SBS <야심만만> 최영인 PD)

ⓒ민중의 소리

인기비결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말이었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었다. 그래서 김제동 어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3년 KBS 연예대상 남자 진행부문에서 신인상도 받았다.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늘어갔고, 여러 출판사가 그의 어록을 허락없이 출판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2005 푸른미디어’ 언어상을 받기도 했다. 여성민우회는 “사투리 화자가 가지는 특유의 친근감으로 말의 장단과 고저가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았다”“부정적이고 공격적 언어가 난무하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바른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돋보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9)

그렇게 김제동은 한때 ‘잘나갔다.’ 잘나간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들머리에 있는 게 바로 감성을 울리는 말의 힘과 태도다. 2006년 1월부터 시작된 <느낌표!>의 코너 ‘산넘고 물건너’에서 그의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난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고 국장님을 직접 찾아뵙고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진료까지 해주니 더없이 기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에 애착이 있던 김제동은 카메라 밖에서도 노인들을 직접 챙기며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이 그리우신 분들입니다. 내가 이야기 한마디 걸어주고, 사인 하나 해주는 걸로 이렇게 기뻐하는데 이보다 더한 것도 해드려야죠.”10)

그의 인기는 이런 말과 행동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덕분인지 김제동은 2006년 KBS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2008년 2월 25일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식전행사 사회를 맡기도 했다.


염치의 힘

그의 말이 힘 있는 이유는 말과 행동의 일치 때문이다. 김제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염치다. 그는 염치를 안다. 2008년 12월 18일 400회 특집으로 진행된 MBC <100분토론>에서 사회자 손석희가 “연예인으로 경제위기에 대해 느끼는 점이 다른가”라고 묻자 김제동은 “아픈 곳을 찌르신다. 하루에도 몇 개씩 줄고 있다”면서도 “연예인들이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은 염치가 없다”고 말했다.11)

억대의 기부를 계속해오는 것도 이런 염치 때문이다. 연예인으로 성공한 뒤 죄책감과 채무의식이 생겼다는 것이다.

2006년 <느낌표!> 출연료를 모은 돈 1억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한 뒤부터 기부는 계속 이어졌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 터졌을 때는 남몰래 찾아가 자원봉사를 했다. 이 사실은 김제동과 함께 자원봉사를 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원이 홈페이지에 그의 사진을 실으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2010년에는 MBC <환상의 짝꿍> 출연료를 모아 아름다운재단에 ‘환상의 짝꿍 기금’으로 기부하는 등 그는 틈날 때마다 기부를 계속해왔다.

그는 기부를 기부라 하지 않고, 갚아드린다고 얘기한다.

“착한 일이 아니라 제가 살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빚에 쪼들리면 힘들지 않습니까? (나눔은) 빚을 갚는 거니까요. 물질 이외의 것들로도 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될 수 있으면 많은 곳에 서 있고 싶습니다.”12)

아마 그가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을 거다. 첫 정치적 발언이라 할 만한 것은 2004년에 나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그는 “마음속 칼은 있으나 지금 뺄 단계는 아니고요, 열심히 웃기면서 한 표를 행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13)

그리고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노제 사회를 맡으면서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주옥 같은 어록을 남겼다. 주최 측에서 준비해준 원고가 있었지만 그는 “도저히 이 원고대로는 못하겠다. 그냥 가슴에서 느끼는 대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윤도현밴드의 ‘너를 보내고’가 울려퍼지고 난 뒤 “이제 저희들은 먼 산 언저리마다 그분을 놓아드렸습니다. 흐린 날도, 맑은 날도, 비 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그분이 계시는 곳을 향해 창문조차 닫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노제 막바지에는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슬퍼해야겠습니다. 미안해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야말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 가슴속에 잊지 못할 큰 비석을 세우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우리 가슴속에 그분의 한 조각, 퍼즐처럼 맞춰서 심장이 뛸 때마다 그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14)


밥줄공안시대의 희생양

사회적 발언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그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2009년 8월 7일에 트위터를 개설하고 첫 글로 협상이 타결된 쌍용차 사태에 대해 “반갑습니다, 김제동입니다. 이란과 쌍용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라는 말을 올렸다.15)

그해 10월 김제동은 KBS <스타골든벨>에서 하차하게 된다. 그것도 녹화를 며칠 앞둔 시점에 방송을 너무 오래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에 대해 김제동을 방송에서 찍어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방송 PD협회는 2009년 10월 12일 성명을 내 그의 프로그램 하차가 ‘소신 발언에 대한 보복조치의 일환’이라고 주장했고,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방송 내용도 아니고 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문제 삼는 것은 헌법상 기본적인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헌법적 폭거”라고 주장했다.16)

또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KBS가 속보이는 졸렬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17)

김어준은 김제동 사태에 대해 밥줄공안시대가 열렸다면서 이렇게 비판했다.

“김제동 퇴출, 비용 절감이니 오래됐느니, 핑계인 줄 모르는 사람 어디 있나. 노무현 노제에다 사회적 발언, 그 행실 고까워 그런 거 모르는 사람 어디 있냐고. 다 알지. 메시지도 똑같아요. 까불면 밥줄, 끊는다. 그런데 이 생계형 겁박이 무서운 게 뭔지 아나. 바로 주변 사람들이 입을 다문다는 거야.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게 뭐냐. 그렇게 밥줄 걱정에 입 닥치는 거, 그거 자조와 자괴로 되돌아온다는 거야. 감옥 가고 사형되고. 이게 무서운 건 당연해. 그래서 입 다물어도 자학은 안 해. 무서워서 아예 같은 편 되거나 몰래 분해하지. 하지만 이 밥줄 협박에 입 닥치고 마는 건, 자기가 생각해도 치사하고 볼품없거든. 그래서 스스로도 놈들이 제공한 명분에 기꺼이 넘어가 주고 싶어. 모른 척하고 싶다고. 정면으로 자기대면하면 너무 시시하고 초라해지니까. 이게 진정 나쁜 거야. 각하 하나 살자고 나머지 국민 자기비하하게 만드는 세상. 그 패배의식과 허무주의의 누적. 이건 너무 우울하잖아. 그러니까 닥치면, 안 되는 거라고. 거창하게 정의를 위해서가 아냐. 김제동 위해서도 아니라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대로 닥치고 3년 지나봐. 쪽팔리지 않겠냐고. 자기한테.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침묵하면 안 되는 거야. 수다 떨고 구시렁거리고 씨바거려야 해. 닥치지, 말아야 한다고.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떳떳한 나를 위해서. 김제동과 모두의, 건투를 빈다. 졸라.”18)


웃음에는 좌우가 없다

이런 사태를 겪은 김제동은 “신문 사설들이 1주일간 제 이야기로만 시끄러우니까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떠나 부담스러웠다”“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해도 이런 부담을 안고, 저뿐만 아니라 모든 제작진이 이런 부담을 안아야 해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스타골든벨 하차의) 97% 원인은 내부에서 찾아야 하고, 3% 정도의 요인은 외부에 있지만 그 외부 요인에 의해 저의 무엇인가가 결정됐다고 믿거나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연예인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생활 전반에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한 상황에서, 그 영향력을 과연 어떤 방향으로 소진하고 어떤 운동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전적으로 연예인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제 사회에 대해서는 “굉장히 좋아했던 분인데, 노제 때 사회를 봐줬으면 좋겠다 해서 갔다. 그분이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도 유족들이 원했으면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위터에 ‘쌍용차 잊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린 것에 대해선 “모든 걸 다 떠나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해주자’, 이게 ‘쌍용을 잊지 맙시다’의 제 주관”이라고 말했다.19)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지적에 그는 이렇게 반박한다.

“(방송인으로서) 정치적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에 100% 공감합니다. 하지만 맹세코 전 단 한 번도 정치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사회를 보는 것이, 돌아가신 분에게 예를 표하는 것(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한 뒤 방명록에 ‘잊지 않고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중의 한 명이어서 행복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사랑에 보답하고 살겠습니다’라고 썼다)이 정치적인 것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트위터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이춰이 좌나 우로 나눌 수 있는 개념이라면,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좋습니다. 저는 정치적입니다.”20)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식전행사에서 사회를 본 것에 대해서는 이런 말도 했다.

“(대통령 취임식 사회는) 아주 영광스런 자리였습니다. 정당 행사나 어용적으로 동원된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에 사회를 보는 것을 정치적인 행위라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요?”21)

2010년 4월 하버드대학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문에 그런 말들을 하는데, 돌아간 분 노제에 가서 사회 본 것 갖고 좌파라고 한다면 그런 좌파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정부를 가진 적은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 조국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나는 오로지 웃기고 싶을 뿐입니다.”22)

김제동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다. 웃음에는 좌우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염치를 알고, 부끄러움을 알며, 그에 대한 죄책감과 채무의식도 갖고 있다.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구보다 주장하는 이다. 그가 중요한 사안마다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회적 발언을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위치에 올라서 아무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오해를 살 일도 없고 편합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운이 좋았고 도와준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해서 된 것도 있지만 그건 얼마 안 될 겁니다. 치열하게 6개월 정도 고민했습니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이 가식은 아닌가, 약자 편에 서서 강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은 아닌가…… 깊이 점검해보니 그런 점이 없지 않습니다. 소신 있다, 개념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반대로 잃는 것도 더 많습니다. 49 대 51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보니까 제가 가진 힘이나 부는 원래 제 것이 아니니까 있는 자리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같은 거창한 뜻 말고 미안함, 채무감 같은 게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욕먹더라도 후자를 택하면 양심적으로 편안해지겠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23)


당신의 염치를 응원한다

그래서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자살이 이어졌을 때 그는 자진해서 카이스트에서 토크콘서트를 열었고, 2011년 4*27 재보선 때 투표를 독려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행사에서는 봉하마을에서 토크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해 6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투쟁에도 함께 했다. 그는 등록금 투쟁 참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흔히 말하는 잣대로 나름 성공한 30대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입니다. 저는 등록금이 얼마가 되든 졸업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의 대학생이나 대학에 다니지 않는 20대, 지금 너무 힘듭니다. 함께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 미안하죠. …… 그다음은 믿음이 있습니다. 괜찮다, 아직 젊으니까. 이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니들 젊다, 그러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안 됩니다. 각각의 삶의 모습이 다른데 어떤 높은 분처럼 나도 가난했어, 해봐서 알아,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해,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약 올리는 것밖에 안 됩니다. 그것부터 먼저 얘기하면 안 되죠. ‘미안하다’가 먼저라야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아니지 않습니까.”24)

이 말에서도 염치가 보인다. 염치 있는 행동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2011년 8월 서울에 폭우가 내렸을 때 강남구 판자촌인 구룡마을에 가서 자원봉사를 했고, 철거 중인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에 찾아가 ‘희망의 책꽂이’ 행사를 진행하며 주민들을 위로했다. 일면식이 없던 이소선 여사의 장례식장을 찾은 것도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는 염치 때문이었다.25) 대담집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인세를 기부한 것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건물 옥상에 실내야구장 건립을 약속한 것도, 인권센터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토크콘서트를 진행한 것도 모두 염치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만드는 꿈을 꾸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제 꿈이 원래 선생님이었습니다. 성적이 안돼서 사범대를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환상의 짝꿍>에 나온 8살 아이가 ‘꼭 미국 사람과 결혼할 거다”라고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영어는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들고 싶은 학교는 15분 수업하고 45분 휴식하는 학교입니다. 컴퓨터와 게임기를 철저히 배제하고 45분간 사람하고만 노는 것입니다. 그에 앞서 3개월 과정의 영어캠프를 준비 중입니다. 아이들 10명이 조를 짜 원어민 강사 한 명에게 한글을 가르치도록 할 생각입니다. 3개월 뒤에 원어민 강사가 필기시험을 봅니다. 잘 가르친 아이에게는 상을 주려고 합니다. 원어민 강사들이 우리말을 잘 못하는 것 보면서 아이들이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26)

이런 염치, 절대 흔치 않다. 그래서 김제동의 염치가 더욱 빛이 날 터이다. 이해찬이 규정한 “몰염치, 파렴치, 후안무치, 3치 정권”이라는 이명박 정권하에서는 그 빛이 더욱 밝은 것이리라.

김제동이 2010년 2월부터 시작한 토크콘서트는 강연콘서트 혹은 토크콘서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전국투어를 나설 정도로 인기가 높아 시즌 1과 시즌 2를 거친 토크콘서트는 시즌 3를 준비 중이다.

김제동의 토크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말로, 지극히 상식적으로, 아주 지극하고 간곡하게 관객들에게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시민이란 무엇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어슴푸레하게 깨달았다. 우리가 가치있는 존재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 깨달음을 준 김제동. 그래서 당신을, 당신의 염치를 응원한다.


| 주 |

1) 김경년, 「“김제동이 나경원 찍었을지 어떻게 아나?”」, 『오마이뉴스』, 2011년 12월 13일, 인터넷판
2) 조현호, 「김제동 투표 독려는 선거법 위반? 검찰 수사 논란」, 『미디어오늘』, 2011년 12월 9일, 인터넷판
3) 조현호, 앞의 글
4) 이대희, 「김제동 “처음 싸우는 상대가 너무 세서 무섭지만…”」, 『프레시안』, 2011년 12월 13일, 인터넷판
5) 이대희, 앞의 글
6) 이재진, 「“김제동 수사는 멍청한 짓, 검찰도 알고 있다”」, 『미디어오늘』, 2011년 12월 9일, 인터넷판
7) 정재욱, 「이벤트 MC 출신 방송인 김제동」, 『경향신문』, 2003년 8월 22일, 44면
8) 정재욱, 앞의 글
9) 「인물과 화제 : 개그맨 김제동 푸른미디어 언어상」, 『경향신문』, 2005년 12월 9일, 21면
10) 남지은, 「산넘고 물건너 촬영현장 : 진료 손길에 정 ‘한 사발’ “가지 말고 내랑 살자”」, 『한겨레』, 2006년 3월 16일, 38면
11) 박효순, 「신해철 독설, 김제동 여유 빛났다, ‘100분토론’ 소신발언 호평」, 『경향신문』, 2008년 12월 20일
12) 권복기, 「웃음 대신 걱정 끼쳐 죄송… 예능 대신 자꾸 시사프로 섭외 와요」, 『한겨레』, 2009년 11월 27일, 22면
13) 전종휘, 「국회서 받은 상 반납한 가수 윤도현 “가수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였죠”」, 『한겨레』, 2004년 3월 25일, 23면
14) 남종영, 「김제동 “가슴에 큰 비석 세우겠다”」, 『한겨레』, 2009년 5월 30일, 3면
15) 백승찬, 「방송인 김제동씨, 트위터에 글 올려」, 『경향신문』, 2009년 8월 7일, 29면
16) 박창섭*이문영, 「KBS 피디협 “김제동 하차는 보복성”」, 『한겨레』, 2009년 10월 13일, 2면
17) 이인숙, 「김제동 퇴출 외압 의혹 ‘쟁점’」, 『경향신문』, 2009년 10월 13일, 5면
18) 김어준, 「보통 사람 입 막는 밥줄공안시대의 개막」, 『한겨레』, 2009년 10월 15일, 34면
19) 박주연, 「김제동 씨 “웃음엔 좌우 없다”」, 『경향신문뮡, 2009년 11월 16일, 24면
20) 권복기, 앞의 글
21) 권복기, 앞의 글
22) 유신모, 「미국 하버드대서 ‘왜 웃겨야 하는가’ 강연 김제동 “사람을 웃기려면, 그 사람을 좋아하세요”」, 『경향신문』, 2010년 4월 26일, 21면
23) 신동호, 「웃기는 사회의 웃기는 혁명가 김제동」, 『주간경향』, 2011년 7월 26일, 인터넷판
24) 신동호, 앞의 글
25) 정희완*김형규, 「이소선 여사 타계 : “노동소외 없는 세상 한평생 꿈꾸셨는데”」, 『경향신문』, 2011년 9월 5일, 5면
26) 권복기, 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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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사상사 #김제동 #인터뷰
1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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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2.12.30

김제동도 대단한 사람이죠. 직접 만나보면 진솔한 면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어요. 이번에도 여러 분야에서 동영상으로 만나기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여전히 소신있고 매력적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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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826

2012.08.28

힐링캠프를 보는 이유인 김제동님.. 김제동님의 유머코드랑 잘 맞았는데.. 예전처럼 김제동님의 전성기 다시한번 왔음 좋겠어요... ㅎㅎ 책까지 출간하시다니.. 읽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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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2012.05.31

김제동이 쓴 책은 사실 별로였지만, 그의 위트만은 저와 코드가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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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을영

2005년부터 월간 <인물과사상>에 시사인물포커스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에 살다』(2002)와 공저 『환경주의자들』(2001), 『미래를 파는 디지절 상인들』(2001), 『남성의 광기를 잠재운 여성들』(2001), 『베스트셀러과 작가들』(2001), 『상상력과의 전쟁』(2002), 『한국영화산업 개척자들』(2003) (이상 인물과사상사 펴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