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과학의 담을 훌쩍 넘은 교양 - 최재천 『다윈지능』
말을 내뱉고 나니 절반의 진실이었다. 쉬운 건 확고부동한 진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과학책이라 말해야 하나? 분명 이 책은 다윈을 제목에 내세웠고,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등장하며, 과학계의 다양한 이론과 논쟁이 등장한다.
글ㆍ사진 김성광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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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지능
최재천 저 | 사이언스북스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출간한 『다윈 지능』은 150여 년간 진화 이론이 발전해 온 과정과 진화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뇌들의 설전, 그리고 현대 진화 이론의 핵심을 담은 최고의 진화 생물학 교과서이다. 진화론이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철학과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침에 따라 보다 풍성하고 다양해진 21세기 지식 생태계의 전망을 총망라했다.

아니, 이토록 쉬운 과학책이라니!

말을 내뱉고 나니 절반의 진실이었다. 쉬운 건 확고부동한 진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과학책이라 말해야 하나? 분명 이 책은 다윈을 제목에 내세웠고,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등장하며, 과학계의 다양한 이론과 논쟁이 등장한다. 하지만 차마 과학책이라고만 규정하지는 못하겠다. 우리 앞에 견고하던 과학의 담벼락은 무릎 높이 정도로 나지막해졌고, 150살이 넘은 진화론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세상의 이모저모를 설명해낸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 진화론, 시즌2

사실 진화론이 과학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00년도 넘었다. 진화론의 ‘적자생존’ 에서 차용해 강한 민족은 살아남고 약한 민족은 소멸한다고 주장한 ‘사회진화론’이 이미 존재했다. 그 폐혜는 대단했는데,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것은 일본이 더 진화한 민족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합리화한 것이 사회진화론의 대표적 사례다.

사회진화론이 학문적 기반은 얕은채 ‘적자생존’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논리였다면, 최근의 진화론은 과학적 데이터들에 풍부하게 근거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폭넓게 확장한다. 최근의 진화경제학, 생태사회학 등등 역시 모두 그 결과물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회과학자들보다 매일 유전자와 동식물을 관찰하는 생물학자들에게서 더 신선한 경제적, 사회적 힌트를 얻을 정도다.


진화론이 우리에게 주는 힌트의 한 사례

포도상구균의 경우 1941년 페니실린에 의해 거의 소탕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3년 만에 페니실린에 저항성을 가진 균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다시 소탕하기 위해 메티실린을 개발했으나, 황색포도상구균의 등장으로 이것도 무력화되었다. 다시 반코마이신을 개발했지만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는 식으로 병원균과 항생제는 전쟁을 치뤄왔다.

병원균이 이렇게 항생제를 만나면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게 되고, 결국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방향으로 변이된 개체들이 살아남아 번식한다. 외부 환경의 변화로 멸종의 위기를 맞았을 때, 유전적 변이는 이렇게 개체의 생존을 보장한다. 외부 환경은 언제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다양한 변이를 진행하고 있는 개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그 중에 하나는 환경에 적응할 확률이 높으니까)

최근의 경제이슈에 ‘변이’라는 걸 적용해보면 어떨까? 대형마트와 재벌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장악하는 것이 뜨거운 이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작은 기업은 사라진다. FTA를 체결한 것 역시 농업과 중소기업보다 서비스업, 대기업에 집중하는 방향이다. 국민경제를 ‘개체’라고 보고 기업이나 산업을 ‘유전자’라고 본다면, 우리 국민경제는 유전자의 획일화가 이뤄지는 중이다. 해외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거나 해외 경기가 심각하게 침체되면 우리 국민경제(개체)는 꺼내놓을 대책이 없어진다. 만약 ‘지역농업과 내수 중소기업’(유전자)들이 다양하게 살아있다면 외부 환경이 변화하더라도 새롭게 적응하여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최재천, 기억해 둘 이름.

경제만이 아니다. 개미, 침팬지, 갈매기, 청소놀래기 등 수많은 동식물의 사례를 통해 일부일처제, 동성애, 종교 등 인간사회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사례들을 기가 막히게 이어가는 저자의 수완은 그야말로 능수능란하다. 세상에 전문가는 많지만, 일반 독자에게까지 강력한 인상을 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대중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름이긴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최재천 교수의 이름을 좀 더 새겨두어도 좋을 것 같다. 그의 도움으로 다윈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과학의 담을 훌쩍 넘은 교양이 되었다. 경제학에 장하준이 있다면, 생물학엔 최재천이 있다.




#다윈지능 #최재천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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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a777

2012.03.08

EBS에서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다소 딱딱하고 재미없는 주제를 흥미롭게 명쾌하게 풀어주시더라구요. 한국의 리처드 도킨스, 최재천 교수님 앞으로도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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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07

과학이 이렇게 쉽고 재밌다니! 최재천님은 저술로 독자들에게 과학의 생활화 사고의 통섭을 알려주시네요. 앞으로도 꾸준히!출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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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3.07

최재천은 일반인 독자들에게도 적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자중 하나입니다. 그간 우리들이 딱딱하게만 느꼈던 큰 의미에서의 과학이라는 것을 쉽게 표현해 내었기에 말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다윈지능'의 반응도 제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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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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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지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와 『과학자의 서재』를 비롯하여 수십여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학자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번역하여 국내외 학계의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1995년 이래로 시민단체, 학교, 연구소 등에서 강연을 하거나 방송출연, 언론기고를 통해 일반인에게 과학을 알리는 작업을 해왔다. 1953년 강원 강릉에서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고향의 산천을 찾았다.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1979년 유학을 떠나 19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학위, 199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대 전임강사를 거쳐 1992년 미시간대의 조교수가 됐다. 1989년 미국곤충학회 젊은과학자상, 2000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고, 1992-95년까지 Michigan Society of Fellow의 Junior Fellow로 선정되었다. 2004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 한국생태학회장 등을 지냈고, 2006년 이화여대 자연과학대로 자리를 옮겨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소장과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고자 설립한 통섭원의 원장이며, 기후변화센터와 136환경포럼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그 밖에도 '국제환경상' '올해의 여성운동상'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등을 수상했고,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을 비롯하여 4개의 국제학술지의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해외에서는 주로 열대의 정글을 헤집고 다니며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국내에 머물 때면 "알면 사랑한다!"라는 좌우명을 받쳐 들고 자연사랑과 기초과학의 전도사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하버드 시절 세계적 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 있었으며, 그의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였다. '통섭'이라는 학문용어를 만들어 학계 및 일반사회에 널리 알리고 있다. 1998년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과학기술부 과학교육발전위원회의 전문위원을 맡아 청소년의 이공계 진출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과학의 대중화를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수많은 어린이책에 과학적인 내용을 감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러한 활동 외에도 최 교수는 영장류연구소를 설립하여 침팬지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생태계의 가치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도 이곳을 활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생물학자에서 출발하여 사회생물학, 생태학, 진화심리학 등 학문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언제나 공부하는 과학자이다. 그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합을 꿈꾼다. 학문 간 벽을 허물고 통합적으로 사고해야만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온 최재천은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지식의 대통합』을 번역 소개하여 학문 간 교류와 소통의 필요성을 널리 알렸으며, 저서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를 통해 생물학적인 시선으로 고령화 사회의 해법을 제시하여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호모 심비우스’를 제시하여 극단적인 경쟁과 환경 파괴로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는 여성의 세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생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진정한 여성성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그 새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결국 여성과 남성이 더불어 잘사는 길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자의 서재』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비롯하여 30여 권의 책을 저술하거나 번역했다. 그가 한국어로 쓴 최초의 저서 『개미제국의 발견』은 2012년 봄에 영문판 The Secret Lives of Ants로 존스홉킨스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한 영문서적을 비롯하여 다수의 전문서적들과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인간의 그늘에서』,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인간은 왜 늙는가』,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통섭』, 『알이 닭을 낳는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알이 닭을 낳는다』, 『벌들의 화두』, 『상상 오디세이』,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21세기 다윈 혁명』, 『개미』, 『인문학 콘서트』,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호모심미우스』, 『다윈지능』,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등의 저 · 역서 외에도 여러 책에 감수자로 참여했다. 2019년 출간된 『동물행동학 백과사전(Encyclopedia of Animal Behavior)』의 총괄 편집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