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강수진 “제 남편은 무슨 음식이든 다 만들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누구 때문에 무용한 적은 없어요. 하고 싶어서 했고, 지금도 제 발전을 위해서 계속 하는 거죠. 무슨 일이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그 일에 동력원이 돼야 남김없이 불태워볼 수 있는 거죠.
201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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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갈비를 사랑한 발레리나
저는 보통 발레리나가 아니랍니다. ‘대식가’ 발레리나니까요. 저처럼 잘 먹는 발레리나 없을 거예요. 특히 한국에 올 때마다 먹는 양념갈비가 좋아요. 원래는 고기를 싫어해요. 특히 빨간 고기요. 빨간 고기의 맛을 즐겨볼 수 있을까 해서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못 먹겠더라고요. 어쩐지 비린 것 같고 금속성 쇠 맛도 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양념갈비는 고기 맛보다 양념 맛으로 즐길 수 있잖아요. 무겁고 둔탁한 육질 사이로 달큰한 양념이 배어들면서, 빨간 고기 맛에 움찔했던 혀를 다독여주는 것 같아요.
양념갈비는 제게 구원이었어요. 음식과 화해하도록 도와줬으니까요. 발레를 잘 하려면 잘 먹어야 해요. 발레는 육체노동이거든요. 먹지 않으면 뛰지 못해요. 제가 마흔이 넘도록 발레를 할 수 있는 것도 잘 먹어서 그런 거예요. 저를 위해서, 제 발레를 위해서 먹어야 해요. 그러려면 고기가 필요하고, 어색한 미감을 양념으로 달래주는 양념갈비가 고기를 즐기게 해주고요.
무용하는 후배 중에 극단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미래를 위해서는 좋지 않아요. 오래갈 수가 없어요. 발레를 위한 몸을 유지하려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좋아요. 비단 발레리나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맛있는 걸 안 먹고 산다는 건 슬프지 않나요.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삶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요.
제가 발레를 위해선 잘 먹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스물세 살 무렵이었어요. 그전까지는 저도 음식과 전투를 벌였죠. 열여덟 살 이후로 세상의 다이어트란 다이어트는 모두 다 해봤어요. 그때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유학 가서 먼저 배운 게 발레 하는 법이 아니라, 음식 먹는 법이었어요. 그전에는 한국에서 김치와 콩나물국만 먹었는데, 유럽에서 빵을 먹어야 하고 치즈도 먹어야 하니까 속이 받아주질 않았어요. 우유도 못 먹겠더라고요. 지방질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느끼한 맛에 거부감이 심하거든요. 2년간 음식과 투쟁했어요. 선생님한테 매일 혼났죠. “너 그러면 한국으로 보낸다”고 겁을 줘서 울면서 먹었어요. 살기 위해서, 배우기 위해서요. 억지로 꾸역꾸역 넘기다 보니 차츰 맛을 알게 되더라고요.
맛을 알게 되고, 고기를 먹게 해준 양념갈비는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줬어요. 한국에서밖에 못 먹는 음식이라서 더 정이 가기도 해요. 독일에도 한식당이 있지만 이 맛이 나질 않아요. 먹고 싶어도 고국에 와서만 먹을 수 있고, 먹을수록 고국을 떠올리게 하니까 가슴 어딘가에 늘 들어 있는 음식인 거죠. 양념이 들어간 이 맛이 어릴 때부터 제 피에 있었던 거 같아요.
외국에서 살수록 한식이 입에 맞아요. 점점 더 그리워지고요. 스트레스 받을 때도 한국의 맛으로 풀어요. 고마운 즉효약, 고춧가루죠.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정신적으로 못 견디는 일 있으면 매운 걸 먹어요. 어떤 음식이든 고춧가루를 시뻘겋게 잔뜩 뿌려서 먹는 거죠. 속이 얼얼할 정도로 심하게 매운 음식을 먹으면 머리가 멍하잖아요. 멍한 채로 딴 생각 없이 땀을 쫙 흘리면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위가 상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고춧가루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예요.
요즘에는 제가 먹고 싶은 음식을 끼니마다 먹을 수 있어요. 전속 요리사가 있어서죠. 이 세상의 어떤 음식도 만들어낼 수 있는 제 남편 툰치 소크만이요. 20년도 전에 처음 만났죠. 저와 같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였어요. 남편은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대요. 그런데 전 남편 첫인상이 무서웠어요. 동료 무용수 중에 제일 나중에 인사한 사람이었어요. 남편은 1996년에 은퇴했어요. 남자 무용수로는 정년을 채운 거예요. 남자들은 허리가 안 좋아져서 은퇴하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저희 발레단은 최고 난이도 작품을 많이 해서 특히 힘들었어요. 같이 파트너로 무대에 선 적도 있어요. 딱 한 번. 연습할 때 눈이 마주치면 자꾸만 웃음이 나서 못하겠더라고요. 그 후로 같이 서지 말자고 했어요.
남편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서 연애하던 처음에도 좋았지만 지금이 더 좋아요. 모든 점이 다. 가면 갈수록 좋아요. 신기하죠? 저희도 신기해요. 우리 둘이서도 서로 행복하다, 행운이다라고 해요. 같은 직업이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거든요. 원래 부부가 갈수록 서로 할 얘기가 없잖아요. 발레 얘기만 하면 저도 질려서 못해요. 그런데 남편은 발레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온갖 방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줘요. 굉장히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정말 웃겨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웃겨줘요. 어떨 때는 너무 웃겨서 자다가도 일어나서 웃어요. 같이 매일 웃으면서 사니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이렇게 사는 부부 드물죠. 참 복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원래부터 요리를 잘했는데 갈수록 늘어요. 열네 살 때부터 기숙사에 살다보니 혼자서 요리하다 저절로 늘었대요. “일상이 내 요리의 원천”이라고 늘 말해요. 이 사람 온갖 한국 음식을 다 먹어봤어요. 한번 먹어보면 어떤 음식이든 그 맛을 기억하고 만들어내요. 김치도 담가요. 된장국도 끓이고요. 제가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식탁에 그 메뉴가 올라와요. 양념갈비도 곧잘 하고요. 재료가 다르다보니 한국에서 먹는 맛과는 다르지만, 부족한 맛을 채우는 남편만의 정성이 있어 행복하게 먹게 돼요.
저는 재주가 발레 하나뿐인데 신랑은 재주가 정말 많아요. 신랑은 저보고 특이하대요. 저도 신랑을 특이하게 생각하고 존경해요. 제가 조금이라도 살이 빠져 보이면 막 먹여요. “먹어야 해!”가 저를 위한 그의 구호죠. 요리가 다 되면 제가 먹는 거 먼저 보면서 챙겨주다가, 제가 3분의 1 이상 먹고 나면 그제야 먹기 시작해요. 이런 신랑을 어디서 만나요. 이렇게 저를 사랑해주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사랑해주고요. 가면 갈수록 더 좋아질 수밖에 없죠.
남편이 요리하는 걸 지켜보면서 배운 게 있어요. 예술도 맛도 절정으로 갈수록 단순해진다는 걸요. 요리를 정말 잘하는 사람은 소금과 후추만 갖고도 맛을 살릴 줄 알게 되는 거죠. 발레도 비슷해요. 심플한 게 어려워요. 현란하고 복잡한 기교로 잠시 관객을 속일 수 있겠지만 언젠간 바닥이 드러나죠. 단순한 동작으로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게 진정한 경지죠.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잖아요. 복잡하고 계산하는 사람은 한마디를 해도 불편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 언젠가 떠날 때까지 모든 게 단순하고 간단하면 더 행복하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참 어렵죠.
저도 제가 발레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 신랑처럼, 발레도 가면 갈수록 더 좋아요. 제가 지금도 발레 할 수 있는 게 쉽지 않은 거란 거 알지만 다른 생각은 안 해요. 제가 하고 싶을 때까지 제 몸이 따라 와줄 때까지 매진할 뿐이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누구 때문에 무용한 적은 없어요. 하고 싶어서 했고, 지금도 제 발전을 위해서 계속 하는 거죠. 무슨 일이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그 일에 동력원이 돼야 남김없이 불태워볼 수 있는 거죠.
어렸을 때는 잘 모르고 했어요. 좋아한 거였지만 뭘 알고 한 건 아니었죠. 그때는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죠.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안 할래요. 저는 나이 드는 게 좋아요. 그만큼 더 배우고 모든 걸 느끼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딱 하나, 몸만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그것 빼곤 젊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요.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 이것도 공평한 거겠죠. 예전에는 마라톤처럼 16시간씩 연습해도 다음 날 벌떡 일어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해요. 대신 정신력이 강해졌어요. 그러니까 나이 들어도 발레에 쏟아 붓는 에너지는 유지가 되는 거죠.
전 예전부터 꿈이 단순하고 소박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걸 하자는 거였죠. 사람들의 인정은 작은 꿈을 놓치지 않고 추구하다 얻어진 부산물이죠. 인정받고 성공한다는 게 꼭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이뤄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나 자신에 대해 진실하자는 게 유일한 목표이고 꿈이에요.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이라도 발전했으면 꿈을 이룬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기 때문에 퇴보할 수도 있죠. 그럴 때는 울면서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게 후회 없이 사는 길인 것 같아요.
저는 보통 발레리나가 아니랍니다. ‘대식가’ 발레리나니까요. 저처럼 잘 먹는 발레리나 없을 거예요. 특히 한국에 올 때마다 먹는 양념갈비가 좋아요. 원래는 고기를 싫어해요. 특히 빨간 고기요. 빨간 고기의 맛을 즐겨볼 수 있을까 해서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못 먹겠더라고요. 어쩐지 비린 것 같고 금속성 쇠 맛도 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양념갈비는 고기 맛보다 양념 맛으로 즐길 수 있잖아요. 무겁고 둔탁한 육질 사이로 달큰한 양념이 배어들면서, 빨간 고기 맛에 움찔했던 혀를 다독여주는 것 같아요.
양념갈비는 제게 구원이었어요. 음식과 화해하도록 도와줬으니까요. 발레를 잘 하려면 잘 먹어야 해요. 발레는 육체노동이거든요. 먹지 않으면 뛰지 못해요. 제가 마흔이 넘도록 발레를 할 수 있는 것도 잘 먹어서 그런 거예요. 저를 위해서, 제 발레를 위해서 먹어야 해요. 그러려면 고기가 필요하고, 어색한 미감을 양념으로 달래주는 양념갈비가 고기를 즐기게 해주고요.
무용하는 후배 중에 극단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미래를 위해서는 좋지 않아요. 오래갈 수가 없어요. 발레를 위한 몸을 유지하려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좋아요. 비단 발레리나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맛있는 걸 안 먹고 산다는 건 슬프지 않나요.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삶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요.
제가 발레를 위해선 잘 먹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스물세 살 무렵이었어요. 그전까지는 저도 음식과 전투를 벌였죠. 열여덟 살 이후로 세상의 다이어트란 다이어트는 모두 다 해봤어요. 그때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유학 가서 먼저 배운 게 발레 하는 법이 아니라, 음식 먹는 법이었어요. 그전에는 한국에서 김치와 콩나물국만 먹었는데, 유럽에서 빵을 먹어야 하고 치즈도 먹어야 하니까 속이 받아주질 않았어요. 우유도 못 먹겠더라고요. 지방질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느끼한 맛에 거부감이 심하거든요. 2년간 음식과 투쟁했어요. 선생님한테 매일 혼났죠. “너 그러면 한국으로 보낸다”고 겁을 줘서 울면서 먹었어요. 살기 위해서, 배우기 위해서요. 억지로 꾸역꾸역 넘기다 보니 차츰 맛을 알게 되더라고요.
맛을 알게 되고, 고기를 먹게 해준 양념갈비는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줬어요. 한국에서밖에 못 먹는 음식이라서 더 정이 가기도 해요. 독일에도 한식당이 있지만 이 맛이 나질 않아요. 먹고 싶어도 고국에 와서만 먹을 수 있고, 먹을수록 고국을 떠올리게 하니까 가슴 어딘가에 늘 들어 있는 음식인 거죠. 양념이 들어간 이 맛이 어릴 때부터 제 피에 있었던 거 같아요.
외국에서 살수록 한식이 입에 맞아요. 점점 더 그리워지고요. 스트레스 받을 때도 한국의 맛으로 풀어요. 고마운 즉효약, 고춧가루죠.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정신적으로 못 견디는 일 있으면 매운 걸 먹어요. 어떤 음식이든 고춧가루를 시뻘겋게 잔뜩 뿌려서 먹는 거죠. 속이 얼얼할 정도로 심하게 매운 음식을 먹으면 머리가 멍하잖아요. 멍한 채로 딴 생각 없이 땀을 쫙 흘리면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위가 상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고춧가루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예요.
요즘에는 제가 먹고 싶은 음식을 끼니마다 먹을 수 있어요. 전속 요리사가 있어서죠. 이 세상의 어떤 음식도 만들어낼 수 있는 제 남편 툰치 소크만이요. 20년도 전에 처음 만났죠. 저와 같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였어요. 남편은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대요. 그런데 전 남편 첫인상이 무서웠어요. 동료 무용수 중에 제일 나중에 인사한 사람이었어요. 남편은 1996년에 은퇴했어요. 남자 무용수로는 정년을 채운 거예요. 남자들은 허리가 안 좋아져서 은퇴하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저희 발레단은 최고 난이도 작품을 많이 해서 특히 힘들었어요. 같이 파트너로 무대에 선 적도 있어요. 딱 한 번. 연습할 때 눈이 마주치면 자꾸만 웃음이 나서 못하겠더라고요. 그 후로 같이 서지 말자고 했어요.
남편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서 연애하던 처음에도 좋았지만 지금이 더 좋아요. 모든 점이 다. 가면 갈수록 좋아요. 신기하죠? 저희도 신기해요. 우리 둘이서도 서로 행복하다, 행운이다라고 해요. 같은 직업이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거든요. 원래 부부가 갈수록 서로 할 얘기가 없잖아요. 발레 얘기만 하면 저도 질려서 못해요. 그런데 남편은 발레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온갖 방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줘요. 굉장히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정말 웃겨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웃겨줘요. 어떨 때는 너무 웃겨서 자다가도 일어나서 웃어요. 같이 매일 웃으면서 사니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이렇게 사는 부부 드물죠. 참 복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원래부터 요리를 잘했는데 갈수록 늘어요. 열네 살 때부터 기숙사에 살다보니 혼자서 요리하다 저절로 늘었대요. “일상이 내 요리의 원천”이라고 늘 말해요. 이 사람 온갖 한국 음식을 다 먹어봤어요. 한번 먹어보면 어떤 음식이든 그 맛을 기억하고 만들어내요. 김치도 담가요. 된장국도 끓이고요. 제가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식탁에 그 메뉴가 올라와요. 양념갈비도 곧잘 하고요. 재료가 다르다보니 한국에서 먹는 맛과는 다르지만, 부족한 맛을 채우는 남편만의 정성이 있어 행복하게 먹게 돼요.
저는 재주가 발레 하나뿐인데 신랑은 재주가 정말 많아요. 신랑은 저보고 특이하대요. 저도 신랑을 특이하게 생각하고 존경해요. 제가 조금이라도 살이 빠져 보이면 막 먹여요. “먹어야 해!”가 저를 위한 그의 구호죠. 요리가 다 되면 제가 먹는 거 먼저 보면서 챙겨주다가, 제가 3분의 1 이상 먹고 나면 그제야 먹기 시작해요. 이런 신랑을 어디서 만나요. 이렇게 저를 사랑해주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사랑해주고요. 가면 갈수록 더 좋아질 수밖에 없죠.
남편이 요리하는 걸 지켜보면서 배운 게 있어요. 예술도 맛도 절정으로 갈수록 단순해진다는 걸요. 요리를 정말 잘하는 사람은 소금과 후추만 갖고도 맛을 살릴 줄 알게 되는 거죠. 발레도 비슷해요. 심플한 게 어려워요. 현란하고 복잡한 기교로 잠시 관객을 속일 수 있겠지만 언젠간 바닥이 드러나죠. 단순한 동작으로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게 진정한 경지죠.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잖아요. 복잡하고 계산하는 사람은 한마디를 해도 불편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 언젠가 떠날 때까지 모든 게 단순하고 간단하면 더 행복하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참 어렵죠.
저도 제가 발레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 신랑처럼, 발레도 가면 갈수록 더 좋아요. 제가 지금도 발레 할 수 있는 게 쉽지 않은 거란 거 알지만 다른 생각은 안 해요. 제가 하고 싶을 때까지 제 몸이 따라 와줄 때까지 매진할 뿐이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누구 때문에 무용한 적은 없어요. 하고 싶어서 했고, 지금도 제 발전을 위해서 계속 하는 거죠. 무슨 일이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그 일에 동력원이 돼야 남김없이 불태워볼 수 있는 거죠.
어렸을 때는 잘 모르고 했어요. 좋아한 거였지만 뭘 알고 한 건 아니었죠. 그때는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죠.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안 할래요. 저는 나이 드는 게 좋아요. 그만큼 더 배우고 모든 걸 느끼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딱 하나, 몸만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그것 빼곤 젊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요.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 이것도 공평한 거겠죠. 예전에는 마라톤처럼 16시간씩 연습해도 다음 날 벌떡 일어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해요. 대신 정신력이 강해졌어요. 그러니까 나이 들어도 발레에 쏟아 붓는 에너지는 유지가 되는 거죠.
전 예전부터 꿈이 단순하고 소박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걸 하자는 거였죠. 사람들의 인정은 작은 꿈을 놓치지 않고 추구하다 얻어진 부산물이죠. 인정받고 성공한다는 게 꼭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이뤄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나 자신에 대해 진실하자는 게 유일한 목표이고 꿈이에요.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이라도 발전했으면 꿈을 이룬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기 때문에 퇴보할 수도 있죠. 그럴 때는 울면서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게 후회 없이 사는 길인 것 같아요.
- 맛있다, 내 인생 신정선 저 | 예담
맛은 추억이고, 위로이다. 맛있는 먹을거리가 풍성해진 요즘에도 사람들은 어릴 적 먹던 거칠고 투박한 음식을 기어이 찾아다니며 먹는다. 추억을 음미하고,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이다. 이 책은 이순재 신경숙 이승철 에드워드권 김대우 윤대녕 패티김 배병우 김수영 황주리 강수진 박찬일 이원복 하성란 이지나 배한성 서상호 이진우 진태옥 문훈숙 이왈종 장석주 조태권 이희 승효상 전무송 정끝별 안효주 김윤영 조은과 같은 이 시대 최고의 명사들과 함께 한 끼 식사를 나누며,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간절한 맛의 기억을 함께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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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신정선
1974년 3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언어학과를 어렵게 입학해 간신히 졸업했다. 2001년 8월 수습 41기로 조선일보에 입사해 날마다 책상에 머리를 찧으며 기사를 쓴다. 2011년 12월 현재 문화부에서 공연을 담당한다.
만다
2013.03.20
yerim49
2012.11.01
freewired
201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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