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정말 많은 전통 음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미권 음악이 아닌 경우라면 ‘월드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통용되고는 하지요. 각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개성적인 전통음악들이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홀대를 받는 현상은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바드는 국내에서 아이리쉬 음악을 선보이는 흔치 않은 그룹입니다. 휘슬과 플루트, 아코디언 그리고 만돌린 등으로 특별한 사운드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색깔을 갖는 그룹이기도 한데요. 2010년 1집으로 호평을 받았던 이들이 ‘여행’을 주제로 한 신보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의 정규 2집인 < Road To Road >를 소개합니다. 여전히 빌보드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는 고티에(Gotye)의「Somebody that I used to know」 피쳐링으로 이름을 알린 킴브라의 앨범과 신인 아닌 신인인 국내의 인디 뮤지션 혜화동 소년의 앨범도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바드(Bard) < Road To Road >
한 세계를 확장시키는 것은 필시 변두리일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해 손을 뻗을 때도 기꺼이 외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그 차이로써 존재의 가치를 드높이는 사람들의 손에서 음악의 저변 또한 확대될 수 있었다. 바드라는 밴드도 그래서 빛난다. 트랜드와 유행이라는 시대적이고 가변적인 굴레에서 저만치 달아나, 이들은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자신의 소리를 묵묵히 빚어 왔다. 그리고 그 음악은 강한 원심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바드의 독창성은 ‘아이리쉬 음악’으로 완성된다.「서쪽 하늘에」로 이름을 알린 ‘두번째 달’이 아이리쉬 음악을 더욱 구체화하고자하는 목적으로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했고, 그들은 바드라는 이름을 달았다. ‘고대 켈트족의 음유시인 또는 ‘방랑시인’이라는 뜻의 이름은 음악적 정체성에 대한 가장 완전한 정의다. ‘고대, 켈트족, 음유시인, 그리고 방랑.’ 단어 하나 하나가 바드의 음악을 깊숙이 관통한다.
아이리쉬 휘슬, 아이리쉬 플루트, 아코디언, 만돌린, 벤조, 바우런 등 생경한 악기들의 조합은 자연의 음성을 촘촘하게 빚어낸다. 경계선 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 형체 없이 출렁이는 자연이라는 광활한 세계에 처음과 끝이 발생하고 방향이 만들어진 건 ‘길’이 나고부터였으리라. 사람들은 분명한 형태인 길 위에 발을 붙이고 제 일생으로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바드는 ‘길에서 길로’ 향한 여정에서 스친 장면과 사색을 2집 < Road To Road >에 살뜰히 복원한다.
그 풍경은 밀레의 그림처럼 목가적이다. 생명들이 사이좋게 숨 쉬고 자연과 사람이 소박하게 어우러진 평화의 땅을 12곡의 노래를 걸음 삼아 멈춤 없이 여행한다. 지나는 파편마다 맑은 에너지가 유유히 흐른다. 덜컹이는 버스에서 창밖 풍경들에 즐거워진 마음을 담은「Euroline Reel」에는 자유로이 유랑하는 집시가 맞이하고, 첼로마저 리드미컬하게 생동하는 곡 「The right time」은 시골 마을의 작은 술집의 한 잔의 맥주와 흥겨운 춤으로 고단함을 씻어낸다.
전작과의 차이가 있다면, 멤버가 넷에서 둘(박혜리와 김정환)로 줄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주곡의 비중이 줄고 보컬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도 있다. 12곡 중 연주곡은 단 4곡뿐이다. 이를 두고 악기들이 일구던 특유의 짙은 켈틱적 정취들이 묽어졌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절충’으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조금만 달리 보면,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가 그만큼 많아진 연유일 것이다. 악기들의 배려를 받아가면서, 음악에 실어 전하고자 한 말들. 이는 곧 노래가 태어난 가장 자연스러운 설명이 된다.
이야기는 시대의 결핍들을 품는다. 지진을 모티브로 삼은 「춤추는 바람」은 자연재해와 환경파괴로 무너지는 가녀린 터전을 노래한다. ‘헝클어진 물가에는 / 갈 곳을 잃은 새들의 노래 / 만들어진 빛에 가려 / 비출 곳 없는 외로운 달’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와 함께 만든「오래된 이야기」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파헤쳐진 낙동강을 안타까워한다. ‘오랜 아픔 속에 사람을 지켜온 건 / 가난에게 지지 않은 들풀의 마음’ 핍박의 역사 속에서도 시와 음악으로 영롱했던 아일랜드 민족을 노래한「섬의 노래」와 ‘하나의 태양 같은 하늘 아래 내가 빼앗은 너의 행복 / 하나의 바다 같은 공기 안에 네가 훔쳐간 나의 꿈’ 알고 보면 모두 하나로 연결된 우리들이 불공평함 없이 서로 더불어 살길 바란「하나로 이어져」가 전하는 메시지도 결코 가볍지 않다. 세상도 사람도 조금 더 순수해지길 바라는 염원이 곡마다 그윽하다.
이국땅의 전통음악을 펼쳐 보이지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건 소리가 자연과 사람이라는 인류의 공통 언어, 그 본능적 감성을 향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아이리쉬 음악이라는 ‘장르’가 소리의 목적에 온전히 가닿기 위한 탁월한 ‘장치’로써 기능한다고 볼 수도 있다. < Road To Road > 는 자유로워진 형태와 구체적인 언어로 ‘bard’의 정체성을 이으며, ‘일상’을 ‘삶’이라는 여행으로 환치한다. 아름다운 선율과 따뜻한 서정, 세상을 향한 애틋한 시선과 섬세한 사색을 가만히 따르면 어느샌가 조금은 착해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킴브라(Kimbra) < Vows >
재능 넘치는 여걸(女傑) 뮤지션들의 춘추전국 시대라 할만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팝 음악 시장의 판도는 그들 손아귀에 있는 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복고 열풍을 이끌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7 Club’에 그 이름을 올리며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누구나 예상했기에 충격적이나 비극적이지 않았다. 비욘세는 손꼽히는 ‘재벌 음악가’ 중 한 명이다. 천문학적인 공연수익과 음악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 가정에 충실한 모습들 모두 훌륭한 스타로서의 이상(理想)이다. 자신을 ‘팝 음악계의 악마’로 칭하는 레이디 가가는 끝없는 이슈를 몰고 다니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굳건히 새기고 있다. 또, 언제나 ‘사랑스러운 그녀’ 케이티 페리는 시종일관 상한가를 달리고 있고, 현재 ‘빌보드의 지배자’는 여전히 아델이다.
새로운 여제(女帝)의 자리를 노리는 뉴질랜드 출신의 킴브라는 2011년 9월에 데뷔작 < Vows >을 발표했다. 하지만 자신이 들고 나온 타이틀보다 빌보드와 UK 싱글차트 1위를 비롯해 10여 개국 차트 정상을 정복한 벨기에 출신 고티에의「Somebody that I use to know」의 피쳐링으로 그 이름을 음악계와 대중에게 알린다. 글로벌 뮤지션으로 향하는 정도(正道)는 아니었지만 ‘빌보드 넘버원’의 파급력은 그대로 본인에게 이어졌다.
기발한 음악성과 독특한 외형적 매력을 가지고 있던 그의 음악 세계는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늘 그렇듯 팬들과 평단은 모두에게 친근한 ‘누군가’의 이미지에 그녀를 끼워 맞추며 ‘닮은꼴 찾기’에 여념 없었다. 뷰욕의 아방가르드적 요소에 더해진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신스팝이 접목된 음악적 방향성과 (아직은 범접 불가한(?)) 레이디 가가의 독특을 넘어선 기괴한 패션 감각,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연상되는 짙은 눈 화장과 매혹적 흑발은 ‘강렬한 음악 자극제’를 갈구하는 대중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한 여성 뮤지션의 ‘새로운 표상’이다.
자국인 뉴질랜드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인기를 얻은 첫 싱글 「Settle down」은 겹겹으로 쌓아 올려놓은 보컬 스캣 위에 리드미컬한 리듬 앤 블루스의 바운스를 덧입힌 진행이 핵심이 되는 작품이다. 개성 넘치는 그녀의 가창은 이어지는「Something in the way you are」에서 나타난다. 고티에와의 협업에서도 드러난 몽환의 온기를 품은 목소리의 마력은 물론, 가슴속 응어리를 쥐어짜는 절창을 들려준다.
선공개한 싱글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의「Cameo lover」는 앨범 전체 구성의 기괴한 분위기와 또 다른 팝넘버다. 자칫 무겁게만 여겨질 수 있는 작품에 다양성과 자신의 너른 영역표현의 발로(發露)라 할 수 있다. 앨범의 특색을 잘 나타내는 트랙인「Good intent」는 미국 인기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와 비디오게임 <심즈 3>에 삽입된 곡이다. 비트의 강약 조절로 인한 곡의 풍성한 스케일 전환은 대중의 귀를 끌어당기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의 작품에는 ‘카멜레온 효과’에 있다. 어떤 상황이든 자신을 그 환경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데, 말 그대로다. 비쥬얼적인 측면과 음악적 매력, 모두 누군가를 닮은 듯은 하지만 자신만의 독창성을 확실하게 표현해내며 솔로 뮤지션으로서 비범한 재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친근한 독특함’은 80년대의 신스팝을 중심으로 소울과 재즈, 버블검 팝과 펑크라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비트를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공간감의 만들어 낸다. 준수한 결과를 얻어냈고, 이후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 대한 물음 역시 흥밋거리로 다가온다. 서로 다른 형질의 개체들을 하나로 묶어낸 기상천외한 응집력은 그를 특별한 존재로 아로새긴다.
혜화동소년 < 1st EP >
신인이지만 신인이 아니다. 혜화동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첫 앨범을 낸 이 뮤지션은 사실 국내 인디 신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정현우. 밴드 프리마켓과 프레디하우스, The Apop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홍대의 하드코어 사운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은 전혀 생소한 글자가 아니다. 앞선 밴드들의 초창기 앨범을 찬찬히 살펴보면 베이시스트의 역할로 크레디트에 올라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음반은 독특하게 다가온다. 하드코어 사운드로 채워진 이력을 생각해보면 솔로 앨범 역시 그 연장선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작품은 예상 밖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의 따스함과 태를 채 벗지 않은 소년의 풋풋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혜화동소년이라는 이름은 이를 암시하는 복선. 변화는 전면에서부터 이루어졌다.
개성이 드러나는 특유의 미성을 바탕으로 솔직한 가사와 보드라운 사운드를 더해 달콤한 모던 록을 완성시켰다. 특히 과감한 인트로가 귀를 이끄는 「너에게」나 가사와 멜로디가 사랑스러운 조화를 이루는 타이틀 곡 「사랑해 더 사랑할게」는 앨범에서 돋보이는 수작이다. 각 파트의 유기적인 결합에서 발생한 완성도 역시 수준급으로, 원 맨 밴드로서 작사 작곡과 편곡, 프로듀싱은 물론 노래와 연주까지 혼자 오롯이 해냈다는 사실과 함께 뮤지션의 실력을 가늠케 하는 또 다른 지표다.
급작스레 기획된 한 순간의 변화가 아니다. 델리 스파이스와 언니네 이발관 등 1세대 모던 록 밴드를 바라보고 꾸준히 준비했다는 이야기처럼 앨범에는 혜화동소년의 오랜 노력의 흔적이 담겨있다. 완벽한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그러나 깊은 노력과 고민에서 드러나는 잠재력은 확실하다. 변화와 새로운 시작, 두 가지를 탁월하게 해내며 출발한 것만으로도 작품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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