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지탱해준 만화 <슬램덩크> - 잃어버린 만화를 찾아서
현실을 넘어서는 만화적 상상력이 주는 힘도 있지만 그보다 만화의 컷과 컷 사이의 여백의 빈칸, 페이지를 넘길 때의 공백은 상상을 자극한다.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온전히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겨진 것이 바로 만화의 힘이다. 무한반복해서 같은 만화를 읽고 또 상상하면서 나는 수많은 다른 가능성을 상상했고, 또 그 안에서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것들이 켜켜히 겹쳐져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201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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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화방이나 기웃거리던 사람‥?
한 매체에 어떤 유명한 분이 인터뷰에서 “그렇게 만화방이나 기웃거리던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을 읽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였다. 연예인이나 배우의 인터뷰를 보면 약간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가끔 만화책도 보고요‥”라는 말을 한다. 뭔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몰래 한다는 듯한, 길티 플레저의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볼 때마다 최소한 내 주변의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화를 보는 것, 그리고 만화방에 가는 것이 마치 불량식품을 먹는 일이나 유해업소에 들어가는 것인양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 분은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고, 어릴 때 공부를 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만화를 제대로 즐겨 읽지 못하고, ‘만화방이나 다니는 친구’와는 어울리지 않은 무균질 환경에서 살아왔었는지, 만화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난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잠시 내 자랑을 좀 해야겠다. 나 또한 공부라면 할 만큼 한 사람이고,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알만큼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내게 만화 없는 지금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사실 나만 극소수의 예외적 사례는 아닌 것 같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내가 배운 인생사 기본의 팔 할은 만화’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고,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볼때 한 명도 빠짐없이 참으로 유연하고 사회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었기에, 만화란 것이 참 좋은 것이고, 하물며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자양분이라고 여기기조차 했었기에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런 말을 하는 분과 우리는 얼마나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온 것일까.
만화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한 번은 “만일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때 나는 서슴없이 “다니던 만화방의 내가 좋아하는 구석자리에 앉아 라면을 하나 시켜 천천히 먹으면서 다시는 보지 못할 최고의 만화들을 일 권부터 차근차근 읽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내게 만화방은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예닐곱 살 코흘리개 시절부터 드나들던 만화방은 문을 열고 들어갈 때부터 다르다. 한정된 용돈 안에서 꼭 봐야하는 만화 만 잘 골라야한다. 돈이 모자라니, 주인아저씨의 눈길을 피해 몰래 옆자리 친구가 보던 만화책을 슬쩍 들고는 요금을 내지 않고 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도,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다음에도 만화방을 드나드는 것, 좋아하는 만화를 사서 모으는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금도 내 서가의 1/5은 만화책이다.
그런데 정작 내 방에서 만화는 천덕꾸러기이기는 하다. 서가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구석이나 타인의 눈이 잘 닿지 않는 바닥에 쳐박히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만다. 미안해, 만화들…이런 핍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화가 내가 정신과 의사로 살아가는 데, 또 책을 쓰는 일을 하는 데에 준 기여가 참 많다고 여기고 고마워한다. 왜냐하면 전문가적 입장에서 이런 유용성 있기 때문이다. 만화는 상상을 자극한다.
현실을 넘어서는 만화적 상상력이 주는 힘도 있지만 그보다 만화의 컷과 컷 사이의 여백의 빈칸, 페이지를 넘길 때의 공백은 상상을 자극한다.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온전히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겨진 것이 바로 만화의 힘이다. 무한반복해서 같은 만화를 읽고 또 상상하면서 나는 수많은 다른 가능성을 상상했고, 또 그 안에서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것들이 켜켜히 겹쳐져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만화책! “만화방이나 기웃거린 덕분에, 저 나름 성공했다고요~.“
지금의 나를 만든 추억속의 만화들
그런 배경을 앞에 두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만화들을 기억의 광에서 끄집어 내 보려 한다.
요즘 아이들은 해리 포터와 포켓몬을 보면서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가는 것을 배우지만, 8-90년대의 프로토콜은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이었다. 모든 소년만화는 성장코드로 구성되어있다. 그중에서 단연 두드러진 만화가 『드래곤볼』이다. 천방지축의 귀여운 손오공이 무천도사를 만나 무술을 배우고 천하무술대회를 나가고, 다양한 전투와 싸움 속에 성장을 해나가는 과정은 중요한 문화적 키워드가 되었다.
당시 ‘능력치를 읽다’, ‘스카우터의 한계를 넘어 선다’와 같은 말이 일상적인 용어로 사용될 정도로 『드래곤볼』은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인기 연재만화의 한계로 인해 드래곤볼을 다 모은 다음에 또 다시 새로운 더 센 적이 등장하게 되고, 하물며 죽고 난 다음에 다시 살아나기 까지 하는 무리수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까지 전반부 '드래곤볼'은 탁월하고 즐거운 성장코믹이다. 성장이 다가 아니다. 너무 심한 고난의 수련 속에 인격이 황폐화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를 위해 수련을 하는 비뚤어진 동기도 삶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전형적인 예다.
즐겁게 배우고 자라날 수는 없을까? 여기에 필요한 요소는 ‘낙관’이다, 그것도 ‘근거 없고 대책 없는 낙관주의’. 바로 그 핵심에 타게이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가 있다. 철부지 싸움꾼 강백호는 어느새 바스켓맨이 된다. 그저 풋내기 슛밖에 넣을 줄 모르고,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적 없지만 이 세상에 자기만큼 농구를 잘 할 사람은 없다고 자부한다. 마음속으로는 서태웅의 실력이 부럽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이라 여긴다. 심한 등부상을 당해서 그만 뛰는 게 좋겠다는 조언에도 “내겐 오늘이 있을 뿐”이라며 강한 승부욕을 갖고 끝까지 뛸 정도로 진정 농구를 좋아하는 남자가 된다.
난 이 만화를 보면서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낙관적 태도’의 중요성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환자 때문에 힘이 들 때에도, 사회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에도, 공부가 어렵고 힘들 때에도 너무 애써 힘들여서 싸워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열심히 즐겁게 ‘왼손은 거들 뿐’인 가벼운 마음으로,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바스켓 맨’이라는 마음으로 해나가다 보면 강백호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힘든 시기를 이겨나갈 수 있었다. 지금도 슬램덩크 24권은 내 방 구석에 가지런히 꽂힌 채 내가 헉헉 될 때마다 ‘너무 힘 주지마, 또 지치지도 말고‥’라고 꾸짖어 주고 있다.
만화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쉽게 간접체험을 하게 해주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학 동아리에서 연극 비슷한 것을 만들어야했다. 누구 한 명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연출이나 연기에 대해 아는 게 없었지만 ‘쇼 머스트 고 온’이었다. 헤매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연극 하는 만화가 있는데‥” 우리는 다같이 만화책을 전권 대여해서 집에 모여서 엠티를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자신감으로 충만할 수 있었다. 무대광풍 마야의 신들린 연기와 쓰기가케 선생님의 귀신같은 연출지도에 홀렸기 때문이다.
만화 『유리가면』의 연극대회에 나간 풋내기 극단원들을 보며 용기를 얻은 애숭이 대학생들은 결국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미스터 초밥왕』을 처음 접하고 나서, 같은 만화애호가인 아내와 나는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초밥집 바에 앉아보기도 했다. 주는 대로 받아먹었지만, 일수법인지 이수법인지, 초밥왕에서 설명하듯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초밥이 나오는지를 유심히 바라보며 초밥의 맛을 음미하는 나를 발견하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 그 만화를 보지 못했다면 싱싱한 회를 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 한 잔 하는 것만 알면서 살았을지 모른다.
이런 일본 만화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는 만화들도 80-9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안기부의 요청에 의해 제작되었으나, 실제로는 많은 대학생들에게는 사회진보에 대한 리얼리즘 만화로 읽힌 허영만의 『오 한강』은 의도와 상관없는 리얼리즘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힘과 감동을 전해줬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10권이라는 양과 녹녹치 않은 등장인물의 수라는 압박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쳐서 접근이 어려웠지만, 『오 한강』은 전혀 그런게 없이 사회와 역사의식을 생각해보도록 도와줬다.
아현동 가스폭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현실의 사건을 만화 스토리안에 절묘하게 녹여낸 윤태호의 『야후』도 잊혀지지 않는 만화 중 하나다. 일본에는 후루야 미노루의 『이나중 탁구부』, 우스카 교스케의 『멋지다 마사루』의 애교 코만도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행석의 『불청객 시리즈』가 있다. 게슴츠레 반쯤 눈을 감고 다니는 멍한 표정의 구영탄은 논리적이지 않고,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스토리 전개도 황당하고 감정이입을 하기도 어렵고 허영만이나 이현세의 만화같은 사실성도 떨어진다. 그런데도 중독성이 있었다. 자꾸 자꾸 보고 싶었다.
어떤 난관이 있어서 옆에 마구만만 함께 있다면 극복할 수 있고, 뽀빠이가 올리브를 구원하듯 은하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고,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해낸다. 밑도 끝도 없는 긍정성과 선의만 있다면 절망은 희망으로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고행석 작가는 반복해서 던져줬던 것이다. 어떤 만화는 문학성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가 등장한 이후 갑자기 로트 레아몽이란 시인과 『말도로르의 노래』가 덩달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요새로 치면 시크릿가든에서 주인공 현빈이 『모모』를 읽자 오래된 책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된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힘이 들 때면 다시 만화를 찾게 되는 이유는
이렇게 만화는 80-90년대 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그리고, 당시 십대와 이십대를 보낸 젊은이들의 마음의 자양분이자 지식흡수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만화는 불량식품과 짝이 되는 저급문화로만 인식되었던 이전세대의 생각과 달리 충분한 작품성과 색다른 정보 전달 능력을 갖춘 만화들이 정식으로 번역되어 나오고, 또 한국의 만화가들이 공장제 만화에서 작가주의적 만화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자라난 이십대들이 부모가 되면서 이제는 만화를 이용한 교육과 같은 에듀테인먼트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고, 많은 교재들인 만화로 만들어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만화 스캔과 다운로드 등으로 종이만화시장이 전과 달리 많이 위축되었고, 웹툰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만화가 대세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만화를 책으로 사서 읽는 것을 선호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도 세 번은 읽지 않고, 영양가 있는 인문학 서적도 두 번은 읽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몇 천원을 내고 산 만화책은 최소 두세 번은 쉽게 읽는다. 화장실에 갈 때 제일 먼저 손이 가고,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리맡에 두고 읽을 가벼운 책으로 만화를 능가할 경쟁상대를 찾기 어렵다. 이제 만화를 낄낄대면서 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아직도 나는 세상살이에 지치고 머리가 전기 충격기로 여러 번 지짐을 당할 정도로 충격을 받고 얼얼한 채 하루가 가버리는 날, 저녁나절 동네 만화방으로 기어들어간다.
소파 깊숙이 엉덩이를 넣고, 과자를 집어먹으면서 테이블위에 만화책을 쌓아놓고 천천히 읽고 있다 보면 어느새 벙벙하게 경직되었던 머리는 말랑말랑해지고, 굳었던 어깨 근육은 서서히 풀려가는 걸 느끼게 된다. 비관적이던 현실은 다시 조금씩 낙관적으로 변해가고, 비론 난 만화속의 영웅은 아니지만 내 앞의 고난도 어떻게든 해결되고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를 하게 된다. 이렇게 만화를 통해 자라난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사는 게 힘이 들 때면 만화를 찾게 되는 법인가보다. 퇴행의 치유력이다.
한 매체에 어떤 유명한 분이 인터뷰에서 “그렇게 만화방이나 기웃거리던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을 읽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였다. 연예인이나 배우의 인터뷰를 보면 약간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가끔 만화책도 보고요‥”라는 말을 한다. 뭔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몰래 한다는 듯한, 길티 플레저의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볼 때마다 최소한 내 주변의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화를 보는 것, 그리고 만화방에 가는 것이 마치 불량식품을 먹는 일이나 유해업소에 들어가는 것인양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 분은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고, 어릴 때 공부를 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만화를 제대로 즐겨 읽지 못하고, ‘만화방이나 다니는 친구’와는 어울리지 않은 무균질 환경에서 살아왔었는지, 만화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난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잠시 내 자랑을 좀 해야겠다. 나 또한 공부라면 할 만큼 한 사람이고,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알만큼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내게 만화 없는 지금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사실 나만 극소수의 예외적 사례는 아닌 것 같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내가 배운 인생사 기본의 팔 할은 만화’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고,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볼때 한 명도 빠짐없이 참으로 유연하고 사회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었기에, 만화란 것이 참 좋은 것이고, 하물며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자양분이라고 여기기조차 했었기에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런 말을 하는 분과 우리는 얼마나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온 것일까.
만화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한 번은 “만일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때 나는 서슴없이 “다니던 만화방의 내가 좋아하는 구석자리에 앉아 라면을 하나 시켜 천천히 먹으면서 다시는 보지 못할 최고의 만화들을 일 권부터 차근차근 읽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내게 만화방은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예닐곱 살 코흘리개 시절부터 드나들던 만화방은 문을 열고 들어갈 때부터 다르다. 한정된 용돈 안에서 꼭 봐야하는 만화 만 잘 골라야한다. 돈이 모자라니, 주인아저씨의 눈길을 피해 몰래 옆자리 친구가 보던 만화책을 슬쩍 들고는 요금을 내지 않고 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도,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다음에도 만화방을 드나드는 것, 좋아하는 만화를 사서 모으는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금도 내 서가의 1/5은 만화책이다.
그런데 정작 내 방에서 만화는 천덕꾸러기이기는 하다. 서가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구석이나 타인의 눈이 잘 닿지 않는 바닥에 쳐박히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만다. 미안해, 만화들…이런 핍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화가 내가 정신과 의사로 살아가는 데, 또 책을 쓰는 일을 하는 데에 준 기여가 참 많다고 여기고 고마워한다. 왜냐하면 전문가적 입장에서 이런 유용성 있기 때문이다. 만화는 상상을 자극한다.
현실을 넘어서는 만화적 상상력이 주는 힘도 있지만 그보다 만화의 컷과 컷 사이의 여백의 빈칸, 페이지를 넘길 때의 공백은 상상을 자극한다.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온전히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겨진 것이 바로 만화의 힘이다. 무한반복해서 같은 만화를 읽고 또 상상하면서 나는 수많은 다른 가능성을 상상했고, 또 그 안에서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것들이 켜켜히 겹쳐져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만화책! “만화방이나 기웃거린 덕분에, 저 나름 성공했다고요~.“
지금의 나를 만든 추억속의 만화들
그런 배경을 앞에 두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만화들을 기억의 광에서 끄집어 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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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해리 포터와 포켓몬을 보면서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가는 것을 배우지만, 8-90년대의 프로토콜은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이었다. 모든 소년만화는 성장코드로 구성되어있다. 그중에서 단연 두드러진 만화가 『드래곤볼』이다. 천방지축의 귀여운 손오공이 무천도사를 만나 무술을 배우고 천하무술대회를 나가고, 다양한 전투와 싸움 속에 성장을 해나가는 과정은 중요한 문화적 키워드가 되었다.
당시 ‘능력치를 읽다’, ‘스카우터의 한계를 넘어 선다’와 같은 말이 일상적인 용어로 사용될 정도로 『드래곤볼』은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인기 연재만화의 한계로 인해 드래곤볼을 다 모은 다음에 또 다시 새로운 더 센 적이 등장하게 되고, 하물며 죽고 난 다음에 다시 살아나기 까지 하는 무리수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까지 전반부 '드래곤볼'은 탁월하고 즐거운 성장코믹이다. 성장이 다가 아니다. 너무 심한 고난의 수련 속에 인격이 황폐화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를 위해 수련을 하는 비뚤어진 동기도 삶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전형적인 예다.
즐겁게 배우고 자라날 수는 없을까? 여기에 필요한 요소는 ‘낙관’이다, 그것도 ‘근거 없고 대책 없는 낙관주의’. 바로 그 핵심에 타게이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가 있다. 철부지 싸움꾼 강백호는 어느새 바스켓맨이 된다. 그저 풋내기 슛밖에 넣을 줄 모르고,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적 없지만 이 세상에 자기만큼 농구를 잘 할 사람은 없다고 자부한다. 마음속으로는 서태웅의 실력이 부럽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이라 여긴다. 심한 등부상을 당해서 그만 뛰는 게 좋겠다는 조언에도 “내겐 오늘이 있을 뿐”이라며 강한 승부욕을 갖고 끝까지 뛸 정도로 진정 농구를 좋아하는 남자가 된다.
난 이 만화를 보면서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낙관적 태도’의 중요성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환자 때문에 힘이 들 때에도, 사회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에도, 공부가 어렵고 힘들 때에도 너무 애써 힘들여서 싸워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열심히 즐겁게 ‘왼손은 거들 뿐’인 가벼운 마음으로,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바스켓 맨’이라는 마음으로 해나가다 보면 강백호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힘든 시기를 이겨나갈 수 있었다. 지금도 슬램덩크 24권은 내 방 구석에 가지런히 꽂힌 채 내가 헉헉 될 때마다 ‘너무 힘 주지마, 또 지치지도 말고‥’라고 꾸짖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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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쉽게 간접체험을 하게 해주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학 동아리에서 연극 비슷한 것을 만들어야했다. 누구 한 명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연출이나 연기에 대해 아는 게 없었지만 ‘쇼 머스트 고 온’이었다. 헤매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연극 하는 만화가 있는데‥” 우리는 다같이 만화책을 전권 대여해서 집에 모여서 엠티를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자신감으로 충만할 수 있었다. 무대광풍 마야의 신들린 연기와 쓰기가케 선생님의 귀신같은 연출지도에 홀렸기 때문이다.
만화 『유리가면』의 연극대회에 나간 풋내기 극단원들을 보며 용기를 얻은 애숭이 대학생들은 결국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미스터 초밥왕』을 처음 접하고 나서, 같은 만화애호가인 아내와 나는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초밥집 바에 앉아보기도 했다. 주는 대로 받아먹었지만, 일수법인지 이수법인지, 초밥왕에서 설명하듯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초밥이 나오는지를 유심히 바라보며 초밥의 맛을 음미하는 나를 발견하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 그 만화를 보지 못했다면 싱싱한 회를 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 한 잔 하는 것만 알면서 살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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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본 만화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는 만화들도 80-9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안기부의 요청에 의해 제작되었으나, 실제로는 많은 대학생들에게는 사회진보에 대한 리얼리즘 만화로 읽힌 허영만의 『오 한강』은 의도와 상관없는 리얼리즘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힘과 감동을 전해줬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10권이라는 양과 녹녹치 않은 등장인물의 수라는 압박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쳐서 접근이 어려웠지만, 『오 한강』은 전혀 그런게 없이 사회와 역사의식을 생각해보도록 도와줬다.
아현동 가스폭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현실의 사건을 만화 스토리안에 절묘하게 녹여낸 윤태호의 『야후』도 잊혀지지 않는 만화 중 하나다. 일본에는 후루야 미노루의 『이나중 탁구부』, 우스카 교스케의 『멋지다 마사루』의 애교 코만도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행석의 『불청객 시리즈』가 있다. 게슴츠레 반쯤 눈을 감고 다니는 멍한 표정의 구영탄은 논리적이지 않고,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스토리 전개도 황당하고 감정이입을 하기도 어렵고 허영만이나 이현세의 만화같은 사실성도 떨어진다. 그런데도 중독성이 있었다. 자꾸 자꾸 보고 싶었다.
어떤 난관이 있어서 옆에 마구만만 함께 있다면 극복할 수 있고, 뽀빠이가 올리브를 구원하듯 은하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고,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해낸다. 밑도 끝도 없는 긍정성과 선의만 있다면 절망은 희망으로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고행석 작가는 반복해서 던져줬던 것이다. 어떤 만화는 문학성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가 등장한 이후 갑자기 로트 레아몽이란 시인과 『말도로르의 노래』가 덩달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요새로 치면 시크릿가든에서 주인공 현빈이 『모모』를 읽자 오래된 책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된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힘이 들 때면 다시 만화를 찾게 되는 이유는
이렇게 만화는 80-90년대 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그리고, 당시 십대와 이십대를 보낸 젊은이들의 마음의 자양분이자 지식흡수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만화는 불량식품과 짝이 되는 저급문화로만 인식되었던 이전세대의 생각과 달리 충분한 작품성과 색다른 정보 전달 능력을 갖춘 만화들이 정식으로 번역되어 나오고, 또 한국의 만화가들이 공장제 만화에서 작가주의적 만화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자라난 이십대들이 부모가 되면서 이제는 만화를 이용한 교육과 같은 에듀테인먼트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고, 많은 교재들인 만화로 만들어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만화 스캔과 다운로드 등으로 종이만화시장이 전과 달리 많이 위축되었고, 웹툰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만화가 대세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만화를 책으로 사서 읽는 것을 선호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도 세 번은 읽지 않고, 영양가 있는 인문학 서적도 두 번은 읽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몇 천원을 내고 산 만화책은 최소 두세 번은 쉽게 읽는다. 화장실에 갈 때 제일 먼저 손이 가고,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리맡에 두고 읽을 가벼운 책으로 만화를 능가할 경쟁상대를 찾기 어렵다. 이제 만화를 낄낄대면서 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아직도 나는 세상살이에 지치고 머리가 전기 충격기로 여러 번 지짐을 당할 정도로 충격을 받고 얼얼한 채 하루가 가버리는 날, 저녁나절 동네 만화방으로 기어들어간다.
소파 깊숙이 엉덩이를 넣고, 과자를 집어먹으면서 테이블위에 만화책을 쌓아놓고 천천히 읽고 있다 보면 어느새 벙벙하게 경직되었던 머리는 말랑말랑해지고, 굳었던 어깨 근육은 서서히 풀려가는 걸 느끼게 된다. 비관적이던 현실은 다시 조금씩 낙관적으로 변해가고, 비론 난 만화속의 영웅은 아니지만 내 앞의 고난도 어떻게든 해결되고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를 하게 된다. 이렇게 만화를 통해 자라난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사는 게 힘이 들 때면 만화를 찾게 되는 법인가보다. 퇴행의 치유력이다.
<이 글을 쓴 하지현 박사는…>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오늘부터 만화책을 읽겠다는 하지현 건국대 정신과 교수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 특히 만화를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이제는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가 됐다.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만화책으로 기른 낙관의 힘, 간접체험, 사회의식, 공감의 힘으로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 등의 책을 썼다. 서울 KU씨네마테크에서 매달 관객들과 영화를 같이 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마 테라피’도 진행한다. 최근에는 채널예스에서 월요일마다 맛깔진 신간 서평을 나누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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