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가르침은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 『김용택의 어머니』
YES24와 예술의 전당이 함께하는 <책 읽는 풍경> 자리에서 김용택 작가는 『김용택의 어머니』 안팎의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그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 속에는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어머니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들이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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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풀검은 자신의 책 제목을 빌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시인 김용택의 책 『김용택의 어머니』를 읽은 후, 로버트 풀검의 그 고백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가르침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었구나. 아마 김용택 시인도 생각을 같이 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가 『김용택의 어머니』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어머니의 일대기’가 아니다. 자신을 성장시킨, 그의 안에 파고든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시인을 기른 8할은 섬진강이 아니라 그 가르침들이다.

YES24와 예술의 전당이 함께하는 <책 읽는 풍경> 자리에서 김용택 작가는 『김용택의 어머니』 안팎의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그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 속에는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어머니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들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싸워야 큰다’




“우리 어머니는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고, 글을 모르고, 농사를 짓고 살아오신 분이죠. 일제 식민지하고 6?25 전쟁을 겪으신 분이구요. 그렇게 농사를 짓고 살면서 있는 사람들과 도시로부터 소외된 시골의 아낙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낙 하나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어머니 세대가) 어떻게 삶을 나름대로 가꾸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았을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글을 배워본 적도, 교문 안에 들어서 본 적도 없는, 한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어머니들의 삶은 분명 지금 우리들의 삶과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 세대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문명화된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많이 배운 만큼 더 약아졌는지도 모른다. 최소비용이니 최대효율이니, 기회비용 같은 ‘그런 것 몰라’서 어머니의 머릿속은 복잡하지 않았다. 사람의 도리와 양심, 그 확고한 기준에 비추어 가늠해 보기만 하면 되었다. 거대한 시멘트 상자 안에서 먹고 사느라 우리는 잊어버렸다. 흙을 밟으며 살아온 어머니는 알고 있는 자연의 언어를.

작가 역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다음의 세 가지라고 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싸워야 큰다’. 공동체와 윤리, 정반합의 원리와 같은 용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 그 과정과 원리에 대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까지도 모두 알고 계셨다.


‘아이고, 그 벌레들이 어머니 말을 알아 듣간디?’

어머니는 자연을 읽을 줄 아셨다. 그리고 자연에게 말을 거셨다. 어머니의 언어가 자연의 언어와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어느 겨울 날, 작가가 밤늦게 시골집에 갔더니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작동을 하지 않았다. 에어가 차서 물을 빼내야 한다고 했다. 보일러 기술자가 와서 보일러에 호스를 연결하고 마당으로 뜨거운 물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 때 어머니가 마당으로 달려나왔다.

“저희 어머니가 달려오시더니 김나는 마당에 엎드려서 ‘눈 감아라, 눈 감아라’ 계속 그러시는 거에요,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어머니가 일어나신 다음에 제가 ‘뭔 일이여?’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이 땅 속에 우리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있겠냐. 갑자기 뜨거운 물이 들어가면 눈이 머니까 내가 눈 감으라 그랬다.’ 그러시는 거에요. ‘아이고, 그 벌레들이 어머니 말을 알아 듣간디?’ 그랬죠. 그런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하믄(그럼).’ 그러시더라구요.”

어머니의 공동체 안에는 사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땅 속의 수많은 벌레들도,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자라난다는 참깨도, 흉년에는 ‘솥텅솥텅’ 풍년에는 ‘솥꽉솥꽉’ 하고 운다는 소쩍새도 모두 ‘함께 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떡혀?’ 아들이 물었다.
‘난 걸어갈란다.’ 어머니가 답했다.





시기도 시기이려니와 농사짓는 집의 형편이 넉넉할 리 없었다. 작가가 중학생이던 50년대 후반, 학교 회비를 내지 못해 집으로 되돌려 보내지는 아이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그 중에는 작가도 끼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조차 없어 14킬로의 자갈길을 걷고 또 걸었다.

때는 보리 베고 모내는 철. 온 몸이 땀에 젖어 동네에 도착했을 때 작가의 부모님도 보리를 베고 있었다.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아들의 사연을 듣고 어머니는 말이 없다. “가자!” 앞장서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서서는 보리를 한 줌 들고 마당으로 나와 닭들을 불러들였다. 닭장 안으로 유인된 닭들은 망태에 담긴다. 어머니는 다시 앞장선다. 갈담 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닭들이 모두 팔리고 학교에 낼 회비와 학교가 있는 순창까지 갈 차비가 생겼다. 닭을 판 돈 전부였다. 어머니가 차표를 끊고 남은 돈을 모두 아들의 손에 쥐어준다. “어머니는 어떡혀?” 아들이 물었다. “난 걸어갈란다.” 어머니가 답했다.

“아이구, 그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탁 멕히잖아요. 그 뙤약볕에 밥도 안 먹고 6, 7킬로를 돌아서 자갈길을 가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차를 타고, 어머니가 먼저 출발하시더라구요. ‘나는 갈랑게 차 타고 가라.’ 차를 타고 지나가니까 자갈길에 먼지가 자욱하잖아요. 그 먼지 속에 어머니가 오시다가 자갈을 잘못 밟았나봐요. 비틀비틀 하시더라구요. ‘아구, 어매!’ 내가 그렇게 불렀더라니까요. 그때 정말 앞의 의자를 잡고 막 울었습니다. 어매가 불쌍해서 울기만 했죠.”



어머니의 친구는 누구였을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머니는 누구와 상의를 하고 누구에게 하소연을 했을까. 깊은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나는 늘 궁금하다. (p. 138)

예술가 어머니가 몸소 실천한 상생의 가치

어려운 형편 속에서 버거웠지만 ‘사람답게’ 살아오신 어머니였다. 신의를 지키는 것은 어머니에게 ‘마땅한 도리’ 중 하나였다. 작가의 고향 마을에도 보따리 장사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는데, 옷이며 생필품들을 이고 지고 찾아와 곡식과 맞바꾸어 가곤 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렇게 모은 곡식들을 한 번에 가지고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보따리 장사들은 작가의 부모님에게 곡식을 맡기고 돌아갔다. 집집마다 먹을 양식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으니 맡기는 사람도 맡아주는 사람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서로간의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보따리 장사들의 곡식도 잘 지켜주는 신뢰감 있는 분, 먹고 사는 게 늘 힘들었을 때인데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 분. 작가는 부모님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의 인격을 믿었기에 보따리 장사들이 곡식을 맡기고 되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쓰면 그대로 시가 되었다’고 말하는 시인 김용택. 그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일상 속에는 곳곳에 예술이 서려 있었다. 가을 날 강가의 바위 위에, 혹은 담장에 얹은 지푸라기 위에 널어 말리고 있는 애호박의 모습은 놀라운 예술이었다. 어머니는 가을의 바람과 햇살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문에 창호지를 바르며 단풍잎이며 대나무 잎이며, 담쟁이 넝쿨까지도 따다가 무늬를 만들어 넣은 창호문도 훌륭한 예술 작품이었다. 그에게 어머니는 예술가였다. 글로 쓰지 않았을 뿐 말소리로 시를 전하는 ‘문맹의 시인’이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연을 종합적으로 잘 이해하고, 거기에서 생명을 가꿔서 너도 먹고 나도 먹고 같이 살았죠.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상생의 가치를 그들은 몸소 실천하면서 수천년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도 남들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와 똑같죠.’




<책 읽는 풍경>을 마무리하며 작가는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잊어버린 게 너무 많고, 버린 게 너무 많고, 외면한 것들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했다. 돈을 많이 벌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욕심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이따금씩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한 번 멈추어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는 이야기한다. 바로 지금이 우리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살아가도 좋은 걸까’ 생각해 볼 때라는 것이다.

작가의 그 생각들은 보이지 않게 『김용택의 어머니』 안에 녹아들어 있다. 잊고 있었던, 혹은 멀리 떠나 있었던 삶의 방식들과 이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산다는 건 말이야….’ 조곤조곤 어머니가 들려주는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김용택의 어머니』 출간 후 독자들과의 만남이 있을 때마다 작가는 항상 ‘우리 어머니도 남들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와 똑같죠.’ 라는 말을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완전무결한 분으로 비추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때로는 이웃들과 다투기도 하고, 자식들 다 소용없다며 ‘자식들 앞에서’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하시는 보통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김용택의 어머니』 안에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더 많이 담겨있음이 틀림없다. 나의 어머니의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한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하는 것도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질문

시인이 되고자 결심하신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셨나요?

답변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초ㆍ중ㆍ고등학교 때까지 책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에는 책을 읽은 사람이 없었어요. 서른다섯 가구가 살았는데 글을 아는 사람이 두 명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죠. 선생이 된 후에 책을 월부로 사서 보기 시작했어요. 그 땐 월부 책장사가 있었죠. 책을 많이 보다 보니까 생각이 많아 졌습니다. 생각이 많아져서 어떻게 주체를 못했어요. 왜냐하면 제 주위에는 시를 읽는 사람도 없고, 쓸 사람도 없고, 보여줄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고 정리를 하는 거에요. 5~6년 정도 계속하다 보니까 어느 날 제가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죠. ‘아니, 이게 시인가?’ 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어야죠(웃음).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책을 읽은 지 13년 만에 문단에 나왔습니다. 시를 쓴 특별한 계기가 동기는 없었습니다. 그냥 썼습니다.

질문

많은 사람들이 시를 어렵다고 말합니다. 어떤 시들은 읽은 후에 좀처럼 그 뜻을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시는 감동이 천천히 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이 빠른 것을 원하는 세태는 시와 멀어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시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이 시를 잃어버리면서 꿈을 잃어버렸습니다. 시는 그냥 읽고 느끼신 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시를 한 권 다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해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시를 공부했지만 이해가 잘 안 되는 시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냥 이해 못 하면 되는 겁니다. 알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지요.

제 시가 시험문제에 많이 출제됩니다. 요새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전화가 옵니다. ‘이 단어 때문에 16명의 국어 선생님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두 팀으로 갈라졌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메일도 오고 전화도 와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끔찍합니다. 어떻게 제 시를 놓고 회의를 다 하십니까.’ 끔찍하잖아요(웃음). 그냥 시는 읽고 느끼면 되는 겁니다. 시를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내에 출간된 김용택 시인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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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어머니 김용택 저/황헌만 사진 | 문학동네

오는 10월 등단 30주년을 맞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자기 시의 원 주인이자 시원(始原)인 어머니에 대해서 쓴 수필이다. 김용택의 어머니 ‘양글이 양반’은 이미 문단 안팎에서 입심 좋고, 삶과 생명에 대한 혜안을 지닌 ‘문맹의 시인’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김용택은 지금까지 어머니에 관해 시로, 인터뷰로, 산문 속 일화로 간간이 풀어놓긴 했지만, 책 한 권을 온전히 어머니 이야기로 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팔순이 넘은 노모의 인생을 처음부터 고스란히 복원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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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어머니 #김용택의 어머니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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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커피좋아

2012.12.20

자신의 어머니를 관찰 대상으로 한 책이네요. 어머니라는 일반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김용택 시인에게는 어떠한 의미로 기억되고, 다듬어 졌는지 알게 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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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스테네스

2012.08.03

가장 큰 선생님은 어머니와 자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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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7.30

섬진강 시인이라 널리 알려진 시인 김용택을 만든 8할이 섬진강이었다면 그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이 어머니에게서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에게는 배울 점이 참 많지요. 자신이 처한 여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한 경우가 많으니 말입니다. 이점은 우리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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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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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1948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썼더니, 어느 날 시를 쓰고 있었다. 1982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의 글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등장하고 있으며 어김없이 그들은 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년퇴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시골 마을과 자연을 소재로 소박한 감동이 묻어나는 시와 산문들을 쓰고 있다. 윤동주문학대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이 있고,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전8권),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등 산문집 다수와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이 있다. 그 외 『콩, 너는 죽었다』 등 여러 동시집과 시 모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전5권),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그림책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사랑』 등 많은 저서가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 살았으면, 했는데 용케 그렇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과분하게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여 고맙고 부끄럽고, 또 잘 살려고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