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 강한 사람은 친구가 없다
승부욕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도 할 수 없고 좋다고도 할 수 없다. 남을 이겼을 때 희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가위바위보나 묵찌빠 같은 간단한 게임을 해도 이겨야 기분이 좋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친구가 나보다 성적이 좋으면 우울해진다.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글ㆍ사진 최명기
201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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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승부욕


작년 가을, 한국생산성본부에서 ‘CEO 마인드 테라피’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강의에 참석한 CEO들에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CEO를 한 명 떠올리고 그 CEO의 성격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지독한 승부욕을 지닌 CEO를 떠올리는 이는 없었다. 성공하는 CEO의 모습으로 꼼꼼함, 호기심, 끈기, 부지런함 같은 모습을 연상했다. 내가 강한 승부욕은 어떠냐고 물어보자 남을 짓밟고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은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적을 만들어 사업을 망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대답이 많았다.

승부욕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도 할 수 없고 좋다고도 할 수 없다. 남을 이겼을 때 희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가위바위보나 묵찌빠 같은 간단한 게임을 해도 이겨야 기분이 좋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친구가 나보다 성적이 좋으면 우울해진다.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플리커의 malczyk

승부욕은 칼과 같은 존재다. 강도가 남을 찌를 때의 회칼은 흉기이지만 횟집에서 주방장이 회를 뜰 때는 요리 도구이다. 적절한 승부욕은 의욕을 불러오고 더 치열하게 일하도록 만든다. 이길 것 같은 상황에서 승부욕이 강한 이들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지만 과도한 승부욕은 불안을 일으킨다. 불안이 심해져 흥분하게 되면 필요한 정보는 놓치고 불필요한 정보에 주의가 분산되어서 판단을 그르치고 만다. 졌다고 생각이 들면 일 자체를 내팽개친다. 실패했더라도 손해의 정도를 최소화해야 하는 데 실패를 패배로 받아들이면서 이왕 진 것 더는 신경 쓰기 싫다고 하면서 손해를 방치하는 것이다.

원래 강한 승부 기질을 타고 태어난 이가 경쟁심이 자극받는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매사를 승패로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 실제로 성공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능력과 자질이 있는 이가 승부욕이 강하다면 그것은 성공으로 이어지지만 능력과 자질이 없는 이가 승부욕만 강한 경우 더 자주 더 크게 실패할 뿐이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패배에 대한 두려움도 상승하게 되고 불안 때문에 업무 능률이 떨어진다. 강한 승부욕 하나만으로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이들은 드라마에서나 존재한다.

사람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대체로 운과 실력 때문이다. 물론 승부욕과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승부욕과 경쟁심은 그의 성격이었을 뿐 성공의 이유는 아닐 것이며 지나친 승부욕과 경쟁심이 없었더라면 더 빨리, 더 크게 성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반대로 생각을 한다. 자신의 더러운 성격 때문에 더 큰 기회를 놓치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착각한다. 사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처럼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이가 없다. 그가 성공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고 능력과 자질은 안 되는데 더러운 성격으로 지독하게 굴어서 성공했다고 그에 대해서 폄훼한다.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승부욕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다중지능 이론(The Multiple Intelligence Hypothesis)’으로 유명한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쓴 『통찰과 포용』(1996)은 리더십 분석에 대한 기념비적 도서 중 하나이다. 그에 따르면 성공한 리더의 상당수는 불행한 과거에서 비롯된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열등감이 심한 이들은 대체로 힘든 상황이 되면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될 거야’하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도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열등감이 심한 이 중에 힘든 상황에서 더욱 강한 승부욕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도전을 통해서 자신이 못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고 패배할 때 받는 상처가 너무나 두렵기에 일단 경쟁에 돌입하면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하는 것이다.

열등감의 심리적 근원은 다양하다. 부모가 너무나 완벽하고 높은 성공 기준을 강요하는 경우 자식은 부모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자신보다 잘난 형제 역시 열등감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주눅 들게 한다. TV나 언론에 등장하는 좋은 집안, 화려한 스펙,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이들과 비교하면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이가 없다. 별 볼 일 없는 나이지만 적어도 일할 때만은 절대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발동하면 그것이 승부욕으로 이어진다.

승부욕이 강한 이들은 매사를 이기느냐 지느냐로 판단한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경향이 있다. 성공의 뒤안길에는 패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다. 한 번 승자는 영원한 승자이고 한 번 패자는 영원한 패자, 세상은 단선 철도와 같아서 한 번 앞서면 영원히 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삭빠르게 행동하며 승자들의 뒤를 좀 더 빠른 속도로 쫓아가서 따라잡으면 이사도 되고 사장도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막상 기회를 잡았을 때 훼방하는 이들이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패자들인 경우가 종종 있다. 세상에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 친구가 없다. 그들의 삶은 삭막하다.

이렇게 승부욕이 강한 이들의 삶에는 승리하는 순간만이 오직 기쁨으로 남는다. 그러나 매번 승리할 수는 없다. 승리보다 실패가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기쁨보다 뼈저린 아픔이 더 많게 된다. 승리의 순간을 제외하면 항상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누군가를 이기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보상을 받지만, 이기지 못하면 긴장과 스트레스로 삶은 고단해진다. 직장은 이기기 위한 전쟁터일 뿐 행복과는 거리가 멀고 이기기 위해 직장에서 죽도록 일을 한다.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직장에서의 삶이 전쟁과 같다면 그의 삶 역시 전쟁과 같을 확률이 크다. 따라서 승부욕이 강한 이들은 맹목적인 이기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의 안전띠를 만들어야 한다.

승부욕 이면에는 생존 본능이 깔려 있다. 진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아직도 이런 공포가 뇌에 남아 있다. 그러나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는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해서 그것이 죽음이나 절대빈곤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승부욕이 강하다고 해서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일하는 일터는 누군가 죽어야 내가 살아남는 생존 경쟁의 장소가 아니다. 만약에 당신이 이기고야 말겠다는 승부욕을 장점으로 여기고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경쟁심이 강한 당신은 언젠가 따돌림 받게 된다. 적이 생기게 되고 패배가 아닌 것을 패배로 여기면서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게 된다. 석기시대에 유용했던 승부욕을 이제는 내려놓을 때다. 그렇게 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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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당신을 일하게 만드는가 최명기 저 | 필로소픽
이 책은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일하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일하는 의미를 깨달으면 일의 지루함과 스트레스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MBA를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라는 독특한 이력답게 경영학과 정신의학을 접목한 ‘마음경영’으로 일과 삶을 조망한다. 이 책은 수많은 내담자들과의 심리 상담과 현장 강연, 그리고 인류학, 진화심리학, 사회학 등 실무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탐구한 워크 테라피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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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 #무엇이 당신을 일하게 만드는가
1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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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커피좋아

2012.12.31

항상 시기(타이밍)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적절한 때에 발휘하면 가장 이상적인 효과를 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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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23

2012.12.30

모든지 너무 과한 것은 좋지 않다는 진리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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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

2012.12.17

승부욕이 있어야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반대 생각도 맞는 것 같네요. 실력과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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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지은이 최명기는 마음경영 전문의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2003년 듀크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하고, 내친김에 건강의 통합적 방법을 모색하다 듀크 대학교 Health Sector Management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에 돌아와 부여다사랑병원을 열었다.
경영학을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라는 독특한 이력을 살려, 경영학과 정신의학을 통합한 마음경영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고 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병원경영 강의를 했으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직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즈리뷰」에서 마음경영을 주제로 칼럼을 썼고, 의료전문 사이트 ‘메디게이트’에 의료경영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한국생산성본부(KPC)에서 CEO 마인드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정신분열증을 대처하는 방법』,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마음이 경영을 만나다』, 『트라우마 테라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