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창비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문인으로는 첫 시집을 낸 이병일 시인, 첫 소설집을 쓴 서유미 작가가 출연했다. 10년 넘게 활동하며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3호선 버터플라이와 혼성밴드 이브닝 글로우가 무대를 빛냈다. 이번 북콘서트는 창비, 평화방송, KT&G 상상마당이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했다.
김부긍 아나운서와 성기완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토크와 콘서트가 어우러진 무대였다. 1부에는 이병일 시인과 이브닝 글로우가 등장했다.
성기완 시인(좌), 김부긍 아나운서(우)
이병일, 평론가가 좋아하는 시가 아니라 독자가 좋아하는 시를 쓰겠다
이브닝 글로우가 등장과 함께 북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이브닝 글로우는 채윤서(보컬), 김성철(베이스)로 이루어진 2인조 혼성 밴드다. 보컬인 채윤서는 연기자 출신이기도 하다. 이 점 때문에 처음에 김성철 씨는 채윤서 씨가 얼마나 오랫동안 음악을 오래 할지 의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우려를 깨고 윤서 씨는 음악 공부를 꾸준히 했고 보컬 연습에도 열심이었다. 그 결과 미니앨범, ‘어나더 웨이(Another Way)’를 최근에 발매했다.
이브닝 글로우
이브닝 글로우가 참여한 가운데 검정색 슈트 차림으로 등장한 이병일 시인이 북콘서트에 참여했다. 2007년 문학수첩신인상에 시가,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번에 『옆구리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첫 시집을 냈다. 첫 번째 시집 출간에 대한 소회를 묻자, 이병일은 “얼떨결에 냈지만 나 자신의 시 세계를 보여 준 듯하다.”라고 하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작품을 쓰기 위해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등단한 뒤, 문단 활동을 거의 안 했다. 방 안에서 오직 습작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시집. 첫 시집 출간과 함께 첫 아이도 얻었다. 아이를 가지고 많이 두려웠다는 이병일. 그는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시를 써 줄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옆구리의 발견’이라는 제목은 시인의 가족사와 관련 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고, 전쟁 때문에 옆구리의 갈비뼈를 잃었다. 흉측한 옆구리와 아름다운 옆구리를 대비시켰다. 아름다운 옆구리는 아내의 옆구리다. 이렇듯 그의 시는 자신의 체험과 긴밀하게 닿아있다. 자신이 구사하는 시어에 대해 시인은 “상상력과 삶이 톱니처럼 돌아가는, 체험에서 나오는 언어”라고 말했다.
낭송하는 이병일 시인
이병일 시의 다른 특징으로는 ‘생명’을 꼽을 수 있다. 전라북도 진안 출신인 그는 지금도 고향에 가면 농사일을 한다. 고향에서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동물을 많이 접한다. 그러다 보니 정서가 자연히 ‘생명’으로 흐르게 되었다. 다른 이유도 있다. 3남 6녀 중 막내인 시인은, 희곡을 쓸 때 죽음을 많이 다뤘다. 친누나에게 조언을 받았다. 너무 어두운 것만 쓰지 맑고 맑은 것도 쓰라는 게 당시 받았던 충고.
북콘서트에서 낭독한 ‘흑매화와 호랑이’를 감상해 보자.
흑매화와 호랑이 - 이병일
야생 호랑이 발자국을 쫓아 걷는 남도 천리길,
우리는 소백산맥을 넘어 구례 화엄사에 든다
몇몇은 총과 신발 끈을 다시금 고쳐 매고
몇몇은 뜰에 누워 암팡진 봄볕에 취한다,
잠시 매화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그러나 설레는 봄빛같이 나는 뒤가 마려
대웅보전 뒤뜰, 숲에 급히 숨어 앉아
용을 힘껏 쓰는데,
누가 항문을 바투 핥아 뒤를 돌아보는데,
저만치
흑매화가 호랑이 눈동자로 나를 쏘아본다
나는 움찔 물러섰다가 똥을 짚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호랑이 소식이
산문(山門)으로 들어오지 않음을,
그러나 흑매화는 호랑이의 기억을 가지고 산다
나는 인면수심도 불로불사도 내던지고
피에 젖은 몸, 날래게 숨길 곳을 찾던 호랑이를 생각한다
호랑이는 사냥꾼에 쫓겨, 쫓겨와
좀체 살 만한 땅, 찾다가 없어
그만 시뻘건 얼룩무늬 함부로 끌어안고
흑매화 꽃눈 속으로 겁도 없이 뛰어들었으리라
그 안에서 산산한 울부짖음을
차고 맑게 그러나 어두운 응혈로
다스렸으리라
오늘은 그토록 생시에 찾던 검붉은 호랑이를 만났으니,
나는 또, 세상에 기약 없는 떠돌이가 되어야 한다
평론가가 좋아하는 시가 아니라 시인과 독자가 좋아할 만한 시를 쓰고 싶다고 하는 이병일 시인. 해병대 출신답게 사회자의 질문마다 씩씩하게 대답한 그는 터울을 길게 두고 두 번째 작품집을 준비하겠다고 결심을 밝혔다. 새로운 작품에서는 생명 감각을 더욱 탄탄하게 구축하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그렇게 1부를 함께한 이브닝글로우와 이병일 시인이 무대 뒤로 사라졌다.
서유미, 직장 생활을 소설로 쓰다
서정성과 노이즈를 추구하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연주로 북콘서트 2부를 열었다. 이날 사회를 진행한 성기완 시인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로 활약 중이다. 10년이 넘게 활동한 3호선 버터플라이는 최근에 4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정규앨범으로는 8년 만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각종 노이즈를 결합하여 새로운 소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3호선 버터플라이
3호선 버터플라이와 함께 2부를 진행한 사람은 서유미 작가다. 그녀는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제5회 문학수첩 작가상을, 『쿨하게 한 걸음』으로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한 해에 한 번도 받기 힘든 문학상을 1년에 2차례 수상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작품은 모두 장편이었고, 2012년에 출간한 『당분간 인간』은 그녀가 낸 첫 단편집이다.
문인 대부분이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서유미 작가의 관찰력은 자본주의 구성원에 특화되어 있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에서는 자본주의가 압축적으로 표현된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그림으로써 근대인을 표현했다. 『쿨하게 한 걸음』은 자본주의에서 잉여로 인식되는 30대 백수를 사실적으로 다뤘다. 이번에 나온 소설집 『당분간 인간』도 그녀가 기존에 발표했던 작품의 연장선 위에 위치한다.
서유미 작가
“사람 관찰하는 거 좋아한다. 현대 사회가 많이 복잡하고 정신없지만. 사실은 매우 단순하고 반복이다. 이 소설집에서도 반복성에 대해 천착했다. 인간, 일하는 사람, 시간에 맞게 일하고 퇴근한다. 반복에 대해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현대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표제작인 ‘당분간 인간’에서는 너무 우유부단한 직장인과 너무 융통성이 없는 직장인이 나온다. ‘스노우맨’은 눈이 많이 내린 날, 출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장인 이야기를 그렸다.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고는 쓸 수 없을 만큼 밀도가 높다. 실제로 서유미 작가는 작품활동을 하기 전에 직장생활을 7년 했다고 한다.
“직장생활이 소설이 될 거란 생각은 못했다. (직장생활은) 재미없는 이야기다. 출근하고 점심 먹고 스트레스 받고. 아침에 다 한 곳으로 출근하고, 출근을 안 하거나 1분이라도 늦으면 죽을 거 같고, 점심으로 뭘 먹을까가 정말 큰 문제고. 점심 때 맛없는 음식 먹으면 하루를 망친 것 같고, 퇴근 시간 밀리면 미칠 것 같고. 하루를 빨리 끝내고 싶지만 또 하루가 끝나면 허무하다.”
그녀가 직장생활에서 느낀 감정은 ‘비정함’이었다. 틈이 허락되지 않는 생활, 그것이 직장생활이다. 살다 보면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는 틈, 갈라진 곳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성의 화장만 해도 그러하다. 피부 사이로 갈라진 게 있어도 메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게 현대사회. 현대사회는 비정한 사회다.
7년여의 직장생활을 관두고 지금은 작가가 된 서유미. 그렇다면 작가로서 사는 삶은 어떨까.
“직장인과 프리랜서. 서로서로 부러워한다. 직장인은 프리랜서를 동경하지만 프리랜서는 직장인의 월급 통장이 부럽다. 다만, 직장에서 일한 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작가로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해병대 출신의 시인. 직장 경력 7년 차의 소설가. 두 문인과 함께 한 북콘서트는 3호선 버터 플라이의 공연과 함께 막을 내렸다.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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