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가 머물렀던 조선 궁궐에는 어떤 사연이 - 『궁궐, 조선을 말하다』
궁궐은 왕실가족이 거주하는 곳이며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다. 외전에서 업무를 보고 내전에서는 생활을 한다. 외전의 일은 사관이 속기하는데 법도에 따라 무슨 일을 어디서 했는지 쓰여 있다. 종교적으로 중요한 정월 초하루와 같은 날이나 조회를 할 때 공간을 사용한다. 궁궐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게 계획한 공간이다. 궁궐은 비어 있지 않고 차 있는 공간이다.
글ㆍ사진 손진희
201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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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날 궁궐, 조선을 말하다』의 저자 조재모 교수와 궁궐로 나들이를 나섰다. 이번 행사는 11월 2일과 11월 3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총 3부로 구성되었으며 아트북스가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했다. 첫 번째 만남은 강의, 두 번째 만남은 경복궁 답사, 세 번째 만남은 창덕궁 답사였다.

 

조재모 교수는 『궁궐, 조선을 말하다』에서 생기 있는 궁궐의 모습과 이야깃거리가 있는 궁궐의 역사적 모습을 연결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역사적 사건과 건축물로써의 궁궐을 함께 설명했다. 답사날인 11월 3일,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 궁궐, 중국 궁궐의 짝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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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강연은 궁궐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궁궐은 어떻게 만들까? 건축적으로 어떤 건물을 만들 때는 비슷한 건물을 참조한다. 궁궐은 왕조에 한 번 만드는 특별한 경우라, 참조할 만한 건물이 거의 없다. 옛날 건축가들은 무엇을 참조했을까? 답은 문헌이다. 우리나라의 궁궐은 주례와 같은 문헌에서 이상적인 모델을 찾으려 했다. 이 작업도 쉽지는 않다. 문헌 내용이 모호하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하는 작업과 분서갱유 등으로 소실된 문헌을 복원하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궁궐은 조선식 요소를 많이 도입하여 궁궐제도를 재탄생시켰다. 축선이 하나인 것은 대부분의 궁궐이 가진 특징이다. 하지만 궁궐이 시장보다 뒤에 있는 것은 조선식 구조다. 지형이 산기슭에 위치해 내려다보는 형상이 되기 때문이다.

 

궁궐은 왕실가족이 거주하는 곳이며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다. 외전에서 업무를 보고 내전에서는 생활을 한다. 외전의 일은 사관이 속기하는데 법도에 따라 무슨 일을 어디서 했는지 쓰여 있다. 종교적으로 중요한 정월초하루와 같은 날이나 조회를 할 때 공간을 사용한다. 궁궐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게 계획한 공간이다. 궁궐은 비어 있지 않고 차 있는 공간이다.
 
우리가 한양의 5대 궁궐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인의 관점이다. 5개의 궁궐이 한꺼번에 존재했던 때는 거의 없다. 조선전기에는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이 함께 쓰였다. 후기에는 창덕궁, 창경궁과 경희궁을 사용했다. 궁궐은 두 개를 함께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이 나거나 전염병이 돌았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법궁은 경복궁이였지만 때로는 창덕궁이 사실상의 법궁일 때도 있었다. 창덕궁을 사랑한 임금은 태종과 성종이다. 어른을 모실 공간이 부족하여 창경궁을 새로 지었다. 창경궁은 이전 궁궐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도 창덕궁과 항상 함께 쓰이는 궁궐이다. 궁궐의 모습을 보면 당시에 왕실의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공간을 융통성 있게 사용했음을 볼 수 있다. 급격하게 사람 수가 많아지거나 줄어들면 건물을 용도 전환하거나 폐기하고 때로는 옮겨 사용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으로 조선 전기의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광해가 2진으로 궁궐에 남고 선조가 1진으로 궁궐을 떠났다. 이후 궁궐이 모두 불타 월산대군의 저택을 임시로 쓰던 것이 오늘날 덕수궁이다. 그리고 창덕궁, 창경궁을 복원했다. 이때 광해는 궁궐을 새로 지을 계획을 세웠는데 이것이 인경궁이다. 당시에 청기와를 사용하고 2층 누각을 지을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결국 신하들의 반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학계는 청기와가 창덕궁에 남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경복궁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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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궁궐 탐방에 나섰다. 궁에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은 침전과 편전 그리고 법전이다. 침전은 왕의 생활공간이고 편전은 왕이 공부하고 일하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법전은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경복궁은 법전으로써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영제교를 건너 근정전으로 들어왔다. 근정전은 법전으로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조회는 왕권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매일 하는 것은 아니며 직접 신하와 임금이 마주 대하는 일은 없다. 근정전 안에는 온돌이 없고 바닥을 타일과 비슷한 구조로 처리하고 있다. 여기에 세워진 품계석은 정조 때 만들어졌다. 조회가 줄어들면서 신하들이 조회 때 어느 곳에 서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져 품계석을 새로 세웠다고 한다. 건물의 높이는 2층이지만 천장이 높은 구조로 건물을 쓰고 있는데 이는 온돌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강녕전은 침전으로 온돌이 깔려있다. 조선 전기에는 중궁전과 임금의 방이 한 건물에 있었다. 조선 후기, 건물을 새로 만들어 중궁전으로 썼다. 이것은 유교적 사상이 한층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용마루가 없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한다. 마루가 넓은 것은 조현례라는 폐백이 이루어지거나 내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앞에 월대에서는 무희가 공연을 하였다. 내연은 주로 보는 것이고 외연이 있음으로 해서 남녀가 나누어서 이루어졌다.

 

편전이였던 사정전에는 천추전과 만춘전이 있다. 여기는 온돌이 있는 보조 편전이다. 사정전에 온돌이 없었기 때문에 이른 새벽이나 겨울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직접 신하와 임금이 대화를 나누면서 정치를 논하던 곳이었다. 임금은 보고를 받고 공부를 하는 등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대비를 위한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이 있다. 굴뚝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의 문제는 언제나 고민이었다. 경복궁도 다양한 방법으로 굴뚝을 만들고 있는데 아미산도 그 중 하나이다. 교태전에서 완상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경회루는 신하들을 위한 연회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용도로 쓰였다. 우리나라 건축구조로 지붕이 높은 경우는 드물다. 건물이 넓어지면 지붕도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보통 옆으로 넓어진다. 하지만 경회루는 건물이 넓고 높은 돌기둥을 세우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중간 중간에 높은 곳에 있는 문은 옛날에 통로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경복궁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는데 특히 관청이 많이 없어졌다. 예를 들면 집현전이나 내의원 같은 관청들이다.

 

창덕궁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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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창덕궁으로 갔다. 창덕궁은 경복궁과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금천교가 문을 하나만 지나도 있는 것이 그 예이다. 그리고 비교적 마지막까지 궁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현대적으로 변한 부분이 많다는 특징도 있다.

 

먼저 들린 곳은 제사를 지내던 선원전이다. 선원전은 양옆에 건물이 있다. 이는 비교적 보수적이였던 제사를 지내는 곳에 대한 관념으로 이전의 궁궐의 형태를 보존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맞은편에 인정문을 보면 대한제국의 문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이 세계역사로 편입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전인 인정전으로 가면 품계석들이 놓여있다. 하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안에는 입식 가구들이 배치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의식을 담당하는 기능이 없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정전은 편전으로 청기와로 지붕이 되어있다. 앞에는 복도각이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이 복도각은 현판을 가리고 있는데 아마도 제기를 진설하기 위함이라는 설이다. 3년상을 치르면 임금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편전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희정당은 원래 임금의 독서처였지만 침전이 되었다. 창덕궁은 축이 하나가 아닌 것이 경복궁과 다른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희정당 건물은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서 지은 것이기 때문에 옛날과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낙선재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조재모 교수는 “역사는 외우기만 하면 힘든 과목이다. 내가 말하는 것도 한 가지에 관점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이 궁궐을 계속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로써 화창한 가을날 짧았던 궁궐 탐방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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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조선을 말하다 조재모 저 | 아트북스

『궁궐, 조선을 말하다』는 경북대 건축학부 조재모 교수가 ‘체제’의 관점에서 궁궐을 탐독한 책으로 궁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여기서 ‘체제’란 건축 행위에 전제된 계획 같은 ‘건축적 요소’와 궁궐의 실제 운영 방식?역사적 변화 같은 ‘건축 외적인 요소’ 모두를 일컫는다. 지은이는 ‘어떻게 사용하려고 만들었는가’와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조선의 제도와 이념이 궁궐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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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모 #조선 #경복궁 #창경궁 #궁궐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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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2.11.30

오오, 이런 책 읽고 궁궐 탐방 하면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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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는사람

2012.11.15

궁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 예전에 유홍준 교수의 이야기도 떠오르네요. 다음에 들릴 때는 궁궐이 다시 보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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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ghee0412

2012.11.15

한국 고유의 궁궐! 주말에는 역사탐방을 한 번 떠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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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희

단것을 좋아하고 취미가 많음.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인생 목표인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대학생. 채사모2기.